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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추사체는 현판이나 편액 글씨로는 꽝이다.
둘째 七十一果病中作이 71세 과천 노인이 병중에 쓰다 인가?
추사가 말년에 사는 곳 과천을 빌려 스스로를 果라 했다는데 글쎄 좀 미심쩍다.
첨엔 累病이라 읽었는데 모르겠다.
죽기 직전 저걸 썼다는데 오늘내일 하는 뇐네가 殿板 글자 大筆을 갈길 힘이 있었는가?
낙관엔 완당阮堂이라 썼는데 진짜 김정희 낙관인가?
강남 봉은사서 剡溪 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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