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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형식이 내용을 구속한다, 부장품의 경우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4.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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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닌토쿠천황仁徳天皇이 묻힌 곳이라 하는 오사카 다이센능고분大仙陵古墳이다. 간단히 다이센고분大仙古墳이라고도 한다. 

이 무덤을 일컬어 피라미드를 능가하는 전 세계를 통털어 옛날 무덤 왕릉 중에서는 최대 규모라 선전하곤 하는데 어느 정도인가 하면

2018년 4월에 궁내청宮内庁 3차원 조사 결과에 따르면 

봉분과 해자 합치고 바깥 경계 구역까지 포함한 최대 길이 840m에, 너비 최대 654m

봉분만은 길이 486~525.1m 

봉분 아래쪽 기준 면적 103,410~121,380㎡

뒤쪽 원형 봉분만 지름 249~286.33m, 높이 35.8~39.8m

앞쪽 네모난 모양 전방부前方部가 너비 307~347m에 길이 237~257m, 높이 33.9~37.9m

에 달한다고 하니 그 규모가 엄청남을 보겠다.
 

 

매장주체부는 이런 모습으로 알려진다. 이건 닌토쿠천황시대에는 나올 수 없는 묘제 아닌가 싶다. 암튼...

 
흔히 황남대총을 고대 시대 한반도 최대 고분을 꼽지만, 두 개를 나란히 이어붙인 봉분 기준 길이 120m에 높이 23m 정도라 저에 견줄 수는 없다. 단일 고분 최대라는 봉황대 고분은 봉분 기준 지름 80m에 높이 23m 정도가 아닌가 기억한다. 

암튼 다시 대선고분으로 돌아가면 저 거대한 무덤은 발굴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가운데 에도시대에 도굴로 이른바 매장주체부가 노출된 것으로 알려지고 메이지시대인가 그 주변 조사가 이뤄졌는데, 이것만으로도 적지 않은 꺼묻거리가 출토되었다. 
 
같은 삼국시대 말기, 대략 5~7세기 중반 이전 왕릉급 무덤을 비교하면, 신라와 백제가 껴묻거리에서 현격한 차이가 나는가?

다시 말해 왜 신라 무덤이 백제 무덤에 견주어 압도적인 껴묻거리 양상을 자랑하는가?

혹자는 부장품을 적게 넣는 박장薄葬과 많이 넣는 후장厚葬 풍습을 원인으로 들기는 하지만, 또 그것이 일정 부문 타당성을 지니겠지만, 나는 달리 본다. 

곧, 형식이 내용을 구속한 결과라 본다. 

무슨 뜻인가?

뒤에서 상론한다.  

 
*** previous article *** 

 
왜 신라 무덤 유물이 압도적인가

왜 신라 무덤 유물이 압도적인가

도굴꾼 때를 타지 않은 무령왕릉은 백제 왕과 왕비가 죽어 어떤 방식 혹은 껴묻거리와 더불어 장송葬送했는지를 적나라히 보여주었으니, 그것이 출토한 유물은 왕과 왕비 합장릉이라 해서 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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