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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혼차 일나기 - 서저유이

by taeshik.kim 2019. 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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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표제작이기도 한 <홀로서기>는
실은 민요였다.

80년대
이 시는 대구경북을 뒤엎었다.

연습장이며 책받침이며
온통 이 시였다.

그땐 작자가 누군지도 몰랐다.
저작권이 없던 때이니 문구 제조업자들도 누구 작품인지도 모른 채 마구마구 찍어냈다.

이 시절 소피 마르소와 피비 캣츠와 브룩쉴즈라는 책받침 모델 3대 걸물이 있었다.

그들 사진을 박은 책받침 앞장 혹은 뒷장엔 꼭 저 시가 있었다.

그 시절 대구경북지역 에프엠 방송에도 언제나 저 시였다.

마르소와 캣츠와 쉴즈는 선택이었으되 저 시는 필수였다.

저 <홀로서기>와 책받침 쟁탈 이전투구를 벌인 다른 시가 있었다. 

윌리엄 워즈워스 <초원의 빛>이었다. 


내가 서울로 유학한지 며태만에 마침내 작자가 나타났다.

서정윤이라 했으며 교사라 한 기억이 있다. 갱상도에는 정유이라 부른다. 서정유이...

경상도 지역 민요가 마침내 대한민국을 침공했다.

그 직후던가?

<접시꽃 당신>이 혜성처럼 등장해 <혼차 일나기>와 초한쟁패를 벌이기 시작했다.

저 <혼차 일나기>는 재야에서 유명해졌다가 제도권을 장악한 희한한 시다.

내가 김천을 떠나 상경하던 그날

내 첫사랑이 저 시를 줬다.


홀로서기


1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

가슴이 아프면 아픈 채로,
바람이 불면 고개를 높이 쳐들면서,

날리는 아득한 미소.
어디엔가 있을 나의 한 쪽을 위해

헤매이던 숱한 방황의 날들.
태어나면서 이미 누군가가 정해졌었다면, ​
​이제는 그를 만나고 싶다.​


2 홀로 선다는 건
가슴을 치며 우는 것보다 더 어렵지만

자신을 옭아맨 동아줄,
그 아득한 끝에서 대롱이며 그래도 멀리,

멀리 하늘을 우러르는 이 작은 가슴.
​누군가를 열심히 갈구해도

아무도 나의 가슴을 채워줄 수 없고
결국은 홀로 살아간다는 걸

한 겨울의 눈발처럼 만났을 때
나는 또 다시 쓰러져 있었다.


3 지우고 싶다
이 표정 없는 얼굴을 버리고 싶다

아무도 나의 아품을 돌아보지 않고
오히려 수렁 속으로 깊은 수렁 속으로 밀어 넣고 있는데

내 손엔 아무것도 없으니
미소를 지으며 체념할 수밖에......

위태위태하게 부여잡고 있던 것들이
산산히 부서져 버린 어느날,

나는 허전한 뒷모습을 보이며
돌아서고 있었다.


4 누군가가 나를 향해 다가오면
나는 <움찔> 뒤로 물러난다.

그러다가 그가 나에게서 멀어져 갈 땐
발을 동동 구르며 손짓을 한다.

만날 때 이미 헤어질 준비를 하는 우리는,
아주 냉담하게 돌아설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아파오는
가슴 한 구석의 나무는 심하게 흔들이고 있다.

떠나는 사람을 잡을 수 없고
떠날 사람을 잡는 것만큼 자신이 초라할 수 없다.

떠날 사람은 보내어야 한다.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일지라도.

 
5 나는 지켜야 한다.
누군가가 나를 차지하려 해도

그 허전한 아품을 또 다시 느끼지 않기 위해
마음의 창을 꼭꼭 닫아야 한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얻은 이 절실한 결론을
<이번에는> <이번에는>하며 어겨보아도

결국 인간에게는
더이상 바랄 수 없음을 깨닳은 날

나는 비록 공허한 웃음이지만
웃음을 웃을 수 있었다.

아무도 대신 죽어주지 않는 나의 삶,
좀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6 나의 전부를 벗고 알몸뚱이로 모두를 대하고 싶다.
그것조차 가면이라고 말할지라도 변명하지 않으며 살고 싶다.

말로써 행동을 만들지 않고
행동으로 말할 수 있을 때까지 나는 혼자가 되리라.

그 끝없는 고독과의 투쟁을
혼자의 힘으로 견디어야 한다.

부리에, 발톱에 피가 맺혀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숱한 불면의 밤을 새우며
<홀로 서기>를 익혀야 한다.


7 죽음이 인생의 종말이 아니기에
이 추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살아 있다.

나의 얼굴에 대해 내가 책임질 수 있을 때까지
홀로임을 느껴야 한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홀로 서고 있을,
그 누군가를 위해 촛불을 들자.

허전한 가슴을 메울 수는 없지만
<이것이다>하며 살아가고 싶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사랑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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