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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THESIS

홍수도 규모가 다른 중국

by 한량 taeshik.kim 2020. 6. 27.

 

 

중국 남부 '물난리 중'…25일 연속 경보·싼샤댐 붕괴설까지 | 연합뉴스

중국 남부 '물난리 중'…25일 연속 경보·싼샤댐 붕괴설까지, 김진방기자, 국제뉴스 (송고시간 2020-06-27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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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남부 최악 홍수 사태…"싼샤댐 붕괴 우려" 소문마저 | 연합뉴스

중국 남부 최악 홍수 사태…"싼샤댐 붕괴 우려" 소문마저, 안승섭기자, 국제뉴스 (송고시간 2020-06-24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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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대국大國이긴 한가 보다. 홍수도 짱이다. 규모가 역대급이고 여타 지역 그 규모를 압도한다.

한반도엔 장마선선이 상륙했으니 같은 몬순기후 지역으로 그 영향이 더 직접적인 중국 강남은 더 피해가 극심할 수밖에 없으리라. 오죽했으면 저쪽을 수향水鄕이라 했겠는가?

 

물에 잠긴 광시좡족 자치구 구이린 시가지. 여긴 맨날맨날 홍수가 났다 하면 이런 장면을 제공한다.



황하도 자주 범람했지만 장강에 견줄 수는 없다. 강우량에서 쨉이 되지 아니한다. 저짝이 더 환장할 노릇은 코로나바이러서 진원지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코로나 사투한지 언제라고 울트라수퍼한 플러드 flood 까지 덮치니 미치고 팔짝 뛸 일 아니겠는가?

전반으로 보아 중국 대륙은 한반도보다 더 저주 받은 땅이다. 저는 비가 너무 자주 그리고 많이 와서 문제요 서쪽은 한방울도 오지 않아 문제다.

 

광시좡족 자치구 구이린



그럼에도 왜 저리 저 땅엔 사람이 언제나 그리도 바글바글했는지 참말로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기록이 남지 않은 신석기시대만 해도 고고학적 발굴성과로 볼진대 이미 바글바글 쌀독에 쓴 바구미만큼 사람이 많았으니 하기야 한반도 역시 그러해 내 아무리 봐도 한반도 인구는 통일신라 전성기에 이미 천만은 넘었다.

저런 인구 초밀지역 장강 주변과 그 남쪽이 홍수로 그야말로 쑥대밭이다.

 

집도 떠니리 가고



오죽 민심이 흉흉하면 싼샤三峽 댐까지 붕괴한단 말이 나오겠는가?

 

한달 가까지 계속된 이번 폭우에 이재민만 1천374만명이 발생했다 하고 81명이 사망 혹은 실종했다는데, 이 수치를 어찌 봐야 하는지 자신이 없는데 충칭 치장綦江현 장강 수위가 1951년 이래 가장 높은 227.6m라는데...잉? 물이 이만큼 찼다는 것인가? 

 

물이 불보다 더 무섭다는 말 실감한다. 

 

물론 불 불, 그리고 이 둘을 합한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세금이다만...

 

 

 

 

 

댓글7

  • 연건거사 2020.06.27 19:23

    핵이 없는 대만의 장거리 순항미사일 타겟이 산샤댐이라는 소문이 있었는데 과연?
    답글

    • 가능하지 않을까요?

    • 四叶草 2020.06.27 20:30

      삼협댐은 적의 공격가능성 때문에 미사일부대가 포진해서 그야말로 물샐틈 없는 방어에 만전을 기하고 있어요. 적국이 (가령 미국이) 삼협댐을 파괴하면 중국에 치명타를 입힐 수는 있겠지만, 엄청난 수의 민간인을 수몰시키기는 것이므로 그에 따른 국제인권적 비난도 엄청받겠죠. 그래서 자제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 四叶草 2020.06.27 21:10

    삼협댐을 열면 하류에 홍수가 나고, 안 열면 상류에 홍수가 나는데, 그 동안 안 연것은 가득이나 바이러스로 고생한 무한을 배려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대신 중경이 피해를 본 것으로 지도자는 하류냐 상류냐 선택의 기로에 섰는데, 아직 설계상 안전수치보다는 아래지만, 홍수경계수위는 2미터 이상 초과한 상태에서 댐의 수문을 열어야한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답글

    • 四叶草 2020.06.27 21:10

      불과 이틀전이 강물에 몸을 던진 굴원의 넋을 위로하는 단오절이였는데 이런 일이 발생해서, 굴원이 다시 태어나도 치수를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현실을 통탄하지 않을까 합니다.

    • 서울도 80년대서야 비로소 홍수에서 비교적 안전지대가 됐다는 걸 잊어서는 안되겠죠. 전두환 최대 치적입니다.

  • 그런대로 2020.07.04 17:48

    우리인구가 통일신라 때 1000만은 아닐 것
    1919년 기미 독립운동때 이천만 동포라고 나옵니다
    당시 신라는 한반도 70%를 점유하고, 나머지는 발해가 점유합니다
    고대나 삼국시대는 전투 전리품이 거주민를 포로로 잡아오는 겁니다
    사람이 적어서입니다
    통일신라때 경주인구가 80만이라고 하는데요
    40만도 아닐겁니다
    답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