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ld trees buried in the flood 1,700 years ago
경남 사천시 곤명면 성방마을을 관통하는 완사천이라는 하천 주변 공사현장에서 언제쯤 어찌하여 묻혔는지를 알 수 없는 고목枯木들이 다수 발견되고, 나중에 이를 분석해 본 결과 기원후 3~7세기 나무들이며, 가공한 흔적이 없고 인위로 매몰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아 홍수 등에 휩쓸려 들어간 것으로 드러났다는 소식이 있었거니와(우리 공장에서도 다루지 않았다.)
이 일은 이른바 정통 언론에서는 거의 다뤄지지 않고 일부 인터넷 매체나 현지 언론에서 논급되었거니와 내가 볼 적에는 대단히 중요한 고고학적 발견으로 본다.
우선 이 발견 경위와 그 개요를 정리하면 이렇다.
한국농어촌공사가 사천시 곤명면 성방리 455-1번지 일원 완사천 변에다가 농업용수 확보를 위한 성방양수장을 건설키로 하고는 관련 공사를 진행 중이었다. 성방양수장은 인근 지방하천인 완사천에서 물을 끌어올 작정이었다. 이 사업 정식명칭이 '마곡지구 다목적농촌용수개발사업'인 듯하다.
당연히 사업 시행 전 2017년, 농어촌공사는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에 사업지구에 대한 문화재지표조사를 실시했지만, 이렇다 할 문화층 흔적이 발견되지 아니해서 굴착 공사를 진행 중이었다. 그러다가 인근 마을 주민 이은주 씨가 굴착 현장에서 고목 7주를 발견했다는 신고가 2020년 3월 23일 사천시청 문화관광과에 접수됐다.
이은주씨는 외지인으로 도예가라 하는데, 이곳에 남편이랑 정착한 듯하다. 굴착현장에서 고목들을 보고는 이상하다 직감한 그는 "내가 발견신고를 할 테니 저 고목들은 한군데다 잘 치워놔라" 부탁했다고 하며, 현장 작업반은 그것을 한쪽에다가 치워놓고 파란색 갓빠로 덮어놓았다고 한다.
현시점에서 한가지 아쉬운 점은 이렇게 해서 고목 7주가 본래 발견지점에서 이격했다는 사실이다.
이런 신고를 접한 사천시청과 문화재청은 혹 이들 고목이 사천지역에서 기 발견된 이른바 매향목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는 공사를 중지키시고 표본조사를 실시토록 한다. 이에 농어촌공사에서는 경상문화재연구원(원장 노태섭)에 매장문화재 표본조사를 의뢰한다.
조사는 2020년 4월 7일∼2020년 4월 8일(실조사일수 2일)에 걸쳐 실시되었으며 조사면적은 478㎡였다. 연구원은 무엇보다 이들 고목이 보물 제614호 ‘사천 흥사리 매향비’에 기록된 매향埋香과 관련된 유물인지 여부를 판단함과 아울러 관련 유구를 확인하는 데 집중했다.
조사대상지는 백마산(179.9m)에서 발원하여 덕천강(진양호)에 합류하는 완사천 남쪽 충적지에 위치한다. 완사천은 저구릉성 산지 사이를 흐르는 협곡성 하천으로 구릉 골짜기에서 합수하는 지점에 소규모 충적지가 형성되어 있고 조사대상지는 이러한 소규모 충적지 일부에 해당한다.
조사대상지 남쪽은 구릉 말단부가 인접하며, 이 구릉 남사면에는 분청사기 등이 확인되는 ‘성방리 유물산포지2’, 성방리 분청사기요지2‘가 있다.
이곳은 완사천 제방 바깥에 구획된 경작지로 최근까지 논으로 이용됐다. 조사 돌입 당시 표토 아래로 약 4m가 굴착된 상태였다. 최초 신고자를 대상으로 고목 원위치를 당시 관계자 증언을 보강해 평면배치도를 작성하는 한편 토층 양상과 원위치를 유지한 다른 고목을 파악했다. 물론 이와 관련된 문화층 흔적이 있는지도 조사대상이었다.
조사결과 완사천 남안 소규모 충적지에 위치하는 조사대상지는 해발고도 46.3m이며 굴착된 바닥 해발고도는 41.7m였다. 다시 말해 이미 5미터 정도가 파인 상태였다.
층위는 현대경작층(1층, 복토층)-근현대경작층(2층)-배후습지로 추정되는 흑갈색니질점토층(3층)-굵은 사질토와 실트성 사질토가 반복 퇴적된 양상으로 나타나는 범람층(4층)이 확인되며, 암반층은 지하수 용출로 확인할 수 없었다.
조사대상지 서벽 토층 양상으로 볼 때, 조사대상지는 과거 완사천 옛 하도의 범위 내에 해당하며, 하도 퇴적층 상단에서
확인된 흑갈색니질점토층은 하도의 기능이 폐기된 이후에 형성된 배후습지의 뻘층으로 판단됐다.
참나무로 추정되는 고목 및 도토리편은 뻘층을 포함한 하상퇴적층 전체에서 확인됐다. 다른 토층도 비슷한 양상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결과를 토대로 2020년 4월 8일 14시 00분 자문회의가 열렸다. 자문위원으로는 임학종 이범홍(이상 경상남도문화재위원) 최성국(전북대학교 생명과학부)이 위촉됐다.
회의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했다.
1) 고고학 측면에서 조사지역의 지형적 성격
○ 조사대상지는 완사천 변의 자연퇴적층과 大木, 小木, 種実 등이 출토됨.
○ 조사대상지 내에서는 크게 3개층이 확인되었음. (최하층 개흙층, 중간층 홍수 범람에 의한 모래층, 최상층 개흙과 유기물 혼합층)
○ 자연적 이벤트(홍수 등)로 인해 하천 주변에 매몰목과 종실이 묻힌 것으로 판단됨.
2) 매향의식과 관련한 유구 및 유물인지 여부
○ 출토 고대목(추정 매향목 7주 포함)는 가공된 것이 全無하고, 인위적으로 굴립하여 세우거나 박은 것이 전혀 없음. 모두 橫置되어 있고, 홍수범람층에 포함되어 있어 고고학적으로 무의미함.
○ 고대목의 종류는 상수리나무, (산)벚나무이며 때죽나무씨, 복숭아씨 등이 출토되었음.
○ 출토유물이 전혀 없어 고대목의 시기는 不明임.
○ 고삼림, 고환경연구를 위해서는 가치가 있으나 인위적인 흔적이 확인되지 않아 매향비와 관련성을 특징지을 수 없음..
3) 추가 의견
○ 향후 보고서에 수종 분석, 고대목의 연대 측정 등이 게재되면 좋을 듯함.
○ 고대목의 시대적 구분이 중요함. 탄소연대분석을 통해 시대를 특정하여 그 시대 고삼림 복원에 중요한 증거라 판단됨.
○ 현장은 원계획대로 공사를 시행하여도 무방함
간단히 정리하면 이들 고목은 홍수 등과 같은 자연 요인에 따라 묻힌 것이며, 나무 자체에서 가공한 흔적이 없고 일부러 세우거나 박은 흔적이 없어 사람이 부러 설치한 것으로는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다만, 나는 이런 의견들을 보면서 고고학이 과연 무엇인가를 다시금 생각한다.
홍수와 같은 자연적 이벤트가 형성한 고목들은 고고학적 탐구대상이 아닌가?? 이거 언제적 구닥다리 고고학인가?
사람이 남긴 흔적만이 고고학 연구대상인가? 그렇다면 사람은 자연과의 교유 없이 지 혼자 마스터베이션 하면서 살았나?
내가 생각하는 고고학은 이런 것이 아니다. 저런 견해는 슐레이만 시대나 해당할 법한 구닥다리 시대 고고학이다. 홍수가 있었다면, 더구나 그런 홍수에 나무들이 휩쓸려 내려와 하천변에 쌓였다면, 그것이 당시 인간사회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과연 고산림 복원에만 의미가 있는가?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다.
암튼 저에서 발견된 고목들은 자연과학적 분석이 있었다. 자문위원에 최성국 전북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가 위촉된 까닭은 그 분석을 위함이었다. 암튼 최 교수 분석결과는 이렇다.
표본조사에서 확인된 토층에 대한 연대측정을 위해 3, 4층에서 확인된 고대목과 종실種實에 대한 탄소년대를 측정하였고 그 결과, 범람 모래층(4층)내 고대목의 년대는 4세기에서 5세기 전반으로, 3층인 흑갈색니토층내 고대목의 년대는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후반대로 보고되었다. 조사구역내 출토수종은 7종이 확인되었다. 추정 매향목을 포함한 45점을 수종 분석한 결과로 졸참나무 26점, 단풍나무 7점, 밤나무 5점, 자작나무 2, 느릅나무 2, 느티나무 2, 버드나무 1점이 검출되었다.
이들을 종합한 조사단 의견은 아래와 같다.
조사 결과와 자문위원의 의견을 종합하면 조사대상지는 완사천의 구하도 일원에 해당하며, 고대목의 출토지는 고 완사천의 하도 내에 해당한다. 고대목과 목편이 확인되는 3층과 4층에서 埋香의식과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인위적인 굴광선은 확인되지 않으며, 전반적으로 완사천의 영향으로 형성된 자연층으로 보여진다. 고대목 및 종실은 자연적 이벤트(홍수 등)으로 인해 매몰된 것으로 판단된다. 조사대상지 내에서 유물이나 유구는 확인되지 않았다. 출토된 목재에 대해서는 동 조사관련 학술자문위원의 의견대로 고삼림 환경 복원 등의 의미가 있을 수 있기에 수종 분석 및 연대측정 결과물을 부록으로 첨부하였다. 아울러 본 조사지역 내 매몰된 삼국시대 고대목이 구하도에 분포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번 발견은 대단한 중요성을 지닌다고 본다. 예컨대 당시 식생과 관련해 참나무를 필두로 하는 7종 수종이 확인됐다. 그것이 더구나 홍수의 영향으로 상류에서 휩쓸려 내려왔다는데, 이런 성과를 어디에서 구한단 말인가?
이 조사성과는 실로 다양한 각도에서 접근이 가능하다고 본다. 인위로 형성된 것이 아니기에 고고학 대상이 아니다? 그렇다면 혹 저런 홍수가 인간에 의한 남벌 영향일 가능성은 없는가? 어찌하여 고고학 대상이 아니라고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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