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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산업유산 등재를 둘러싼 공방에 당시 일본 수상 안배진삼安倍晋三, 아베 신조가 우리 정부에 친서를 보냈다.
그 친서에서 아베가 이르기를 우리는 표결로 가겠단 내용이 있었다.
하지만 표결은 없었다.
표결을 일본은 자신했지만 21개 whc 위원국 중 한일을 제외한 19개국 누구도 표결을 원치 않았다.
이들은 한일간 원만한 타결을 압박했고 이 과정에서 의장국인 독일 외무부가 깊이 개입했다.
이번 세계유산위 의장 역시 현직 독일 외무 차관이었다.
독일측은 한일간 합의를 근거로 그 어떤 논의도 부치지 않고 만장일치 형태로 세계유산 등재 망치를 두들겼다.
독일 정부의 중재 노력도 존중받아야 한다.
*** 補 ***
그 친서를 나는 실물로 확인하지는 않았다. 이는 2015년 여름 군함도를 세계유산에 등재한 유네스코 세계유산위 개최지 독일 본에서 내가 한국대표단 외교부 관계자한테 직접 들은 내용이다.
그런 아베가 어제 유세 중에 산탄총을 맞고는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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