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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26년 전 체육부 기자 시절 긁적인 쿠바 사탕수수 농장 한국인 이민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1. 8.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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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 08. 12 16:36:00
작성부서 스포츠레저부 DESK부서 스포츠레저부

광복 50주년맞아 쿠바 韓人이민사, 42년만에 공개

(서울=연합) 金台植 기자=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韓人들의 초기 쿠바 이민사가 당시 한인들의 생활상, 독립운동지원내용 등과 함께 상세한 전모를 드러냈다.

이같은 사실은 쿠바 이민 1세대이면서 현지에서 독립활동을 했던 故 林千澤씨(88년 사망)가 지난 53년 쓴 '큐바한인이민력사'(이하 이민사)라는 사료가 42년만인 12일 42년만에 처음 공개되면서 밝혀졌다.

이 사료는 작자인 故임천택씨와 일제 시대부터 교류가 있던 방암(芳巖)  계연집(桂淵集) 선생의 아들인 계훈모씨가 소장해 오던 것인데 광복 50주년기념 한민족 축전개최에 참가하기위해 임천택씨의 9남매 중 장남인 임은조씨69)가 내한함에따라  12일 올림픽 파크텔에서 임씨를 만나 공개한 것이다.

국판으로 32면 정도인 이 '이민사'는 지난 53년 여름에 임천택 씨가 쿠바 마탄사스 자택에서 쓴 것으로 이듬해 2월 미국 하와이에 있던 한인 소식지인 `하와이 태 평양주보'에서 발행됐다.

 

표지에는 '큐바이민사'라 했지만 본문을 보면 '큐바이민력사'라 했다. 

 

'이민사'에는 집필자의 약력과 가족활동에서부터 쿠바 한인 이민의 내력, 쿠바 각 지역 재류동포의 주요 조직 및 활동 등 이민 재류동포에 대한 전반적인 자료들이 망라돼 있는데 특히 상해 임시정부와 독립군에 보낸 독립자금 내역이 자세히 적혀 있어 해외 독립운동사 연구에도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쿠바 한인 교포들이 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댔다는 사실은 백범 김구 선생이 '백범일지'에도 적고 있으나 자금이 어떻게 얼마나 모금돼 어떻게 전달됐는지는 이 자료에 의해 밝혀지고있다.

'이민사'에 따르면 쿠바 한인 동포들의 단체인 '대한인국민회 큐바지방회'는 지난 37년 10월부터 39년 2월까지 국민회 부담금 명목으로 3백60원52전을 모금, 국민총회로 송금했으며 40년 말부터 이듬해 초까지는 광복군 후원금 명목으로 78원30전을, 다시 41년 10월부터 44년까지는 독립자금 명목으로 8백58원88전을 국민총회로 송금했다.

이 외에도 큐바지방회는 독립자금 2백46원5전을 아바나 중국인 은행을 경유, 중경의 임시정부 김구 주석에게 직접 송금하기도 했다.

이를 종합하면 쿠바지방회는 37년부터 45년까지 총 1천4백89원75전을 모금했는데 모금은 주로 30여명의 지방회 회원들로부터 나온 것으로 되어 있다.

 

쿠바에서 온 엘리자벳 주닐다 산체스 리베로(한국명 성애리·21·여) 씨가 2013년 8월 13일 오후 인천시 이민사박물관에 전시된 자신의 증조부 사진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이런 후손들을 애니껭이라 한다. 

 

또 이 사료에는 1923년 3월1일 3.1운동 발발 4주년을 맞아 쿠바 현지에서 한인들이 시위활동을 전개한 사실도 새롭게 밝혀졌다.

뿐만 아니라 '이민력사'는 21년 쿠바에 들어간 한인수가 3백여명이며 이들의 직업별 분포와 사망률, 이혼률, 실업률 등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이 사료에 나타난 쿠바 이민은 지난 1905년 5월 15일 한인 1천33명이 멕시코 식민회사와 4년 계약으로 유카탄 반도에 정착함으로써 비롯된다.

식민회사 농장에서 4년을 일했음에도 한푼의 임금을 받지못한 한인들은 1921년 쿠바에 먼저 들어가 있던 이해성 씨의 권유로 일단의 한인들이 쿠바 마티니의 설탕농장으로 들어갔다가 마탄사스에 이주함으로써 현지에 뿌리를 내리게 된다.

'이민사'의 저자인 故 임천택씨는 1903년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나 두살 때인 1905년 3월 어머니와 함께 멕시코 유카탄으로 이민을 갔으며 이곳에서 16년을 보낸 뒤 1921년 쿠바에 들어가 마탄사스에 정착, 이후 대한인국민회 큐바지방회'를 설립해 독립운동과 한인 교육활동에 전념하다 지난 88년 별세했다.

임천택씨는 부인 김귀희 씨와의 사이에 9남매를 뒀는데 장남 은조씨(69)가 광복50주년을 맞아 이번 한민족축전에 참가하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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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1921년을 기점으로 쿠바 설탕농장으로 한인들이 이주한 100주년이 되는 해다. 그 백년 전 머나먼 카리브해로 헐벗고 주린 식민지 조선인들이 먹고 살겠다고 사탕수수 농장 일꾼으로 갔다. 

우리 공장 한류기획단에서는 실은 작년 초반 단이 출범한 초창기에 이에 즈음해 모 기관과 관련 취재 기획을 하고, 예산까지 확보했다가 팬데믹 여파에 눈물을 머금고 포기한 적이 있다. 

우리 공장 멕시코 특파 고미혜가 이를 즈음한 기획도 한다는 소문을 듣기는 했는데, 그 또한 어찌할 도리는 없을 듯하고, 어찌 대체했는지는 모르겠다. 

이 쿠바 이민을 나는 기자생활 초창기에 우연히 관련 기록을 접하고는 그런대로 관심이 있었지만, 이후 이런저런 일에 치어 더는 추적을 하지 못하고 중단하고 말았다. 

관련 기억을 우리 공장 DB에서 뒤지니 1995년 8월 12일에 송고한 저 내 기사가 걸린다. 지금으로부터 꼬박 26년 전에 쓴 글이라, 내가 저와 같은 기사를 쓴 기억은 희미하게 남았는데, 대체 무슨 인연이었을까는 까마득히 망실한 터라, 살피니 당시 저 기사 송부 당시 나는 체육부 소속 기자라, 보니 당시 한민족축전이라는 행사를 한 모양이고

그에 쿠바 한인 후손들이 참석한 모양이라, 또 살피니, 문제의 저 '큐바한인이민력사' 전체를 내가 통독하고 쓴 듯하다. 

자료를 찾아보니 이듬해인 1996년 애니깽이라는 영화가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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