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초상화 주인공은 그 유명한 앤 불린Anne Boleyn.
걸핏하면 마누라 바꿔 버런 바람둥이 군주 영국 땅 헨리8세 둘째 마누라다.
헨리 8세는 조강지처와의 이혼은 안 된다고 로마 교황청이 판시하자, 야마가 돌아 그럼 나 오늘부터 가톨릭 안해! 별도 교단 세울 거임! 하고선 가톨릭에서 떨어져나와 영국 성공회를 만들고 그 교황 자리에 지 스스로가 앉으니, 이것이 유럽 사회에 당시 몰아친 프로테스탄티즘 독립 운동 일환이었다.
그 전에 이미 유럽 대륙에서는 마르틴 루터니 쯔벵글리니 칼벵이니 하는 친구들이 나와서 로마 교황청에 반기를 들고선 교단 독립을 선언한 상태였거니와,
저쪽에서는 가톨릭에서의 허례허식과 부패를 고발하면서 새로운 종교운동을 펼친 데 반해 잉글랜드에서는 느닷없이 국왕의 이혼과 재혼을 둘러싼 와중에 그것이 터져 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조강지처 내쫓고 그 자리를 꿰찬 앤 불린은 딩가딩가 행복한 나날들을 보내며 권력을 구가했는가?
천만에, 왕비 책봉 불과 3년(1533~1536) 만에 쫓겨나고 말았다.
쫓겨난 앤 불린은 무시무시한 반역 혐의를 뒤집어 쓰고선 처형 당하고 말았으니, 아들을 낳지 못하는 칠거지악에 걸린 것이다.
이후로도 헨리 8세는 네 명인가 마누라를 거푸 바꿔치기 했다.
불행한 앤 불린한테 유일한 위안은 그 사이에서 난 딸이 아버지를 뒤이어 권좌에 올랐다는 것이니, 그 여왕이 영국사 가장 위대한 군주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엘리자베스 1세다.
자 이 정도는 드라마나 영화로로 자주 제작되고 소개됐으니 신비감을 주는 것도 아니지만, 저 초상 배경 설명으로 이 정도로 만족하기로 하고, 바로 저 분이 앤 불린이렸다?
저 초상은 앤 불린 초상 중에서는 가장 익숙하고 널리 알려진 것이라,
지금은 앤 불린이 어린 시절을 보낸 히버 성Hever Castle이라는 데 있고, 보다시피 가슴팎으로 살짝 말아올린 두 손 중 오른손에 장미 한 송이를 든 장면이 있다 해서 히버 장미 초상Hever Rose portrait, 혹은 더 간단히 장미 초상Rose portrait이라는 별칭으로 일컫기도 한다.
그렇다면 저 초상은 언제 누가 그렸을까?
다만 하나 분명한 점은 살아 생전 불린 초상화는 단 한 점도 없다는 사실이다. 저 초상 역시 그가 죽고 나서 어느 시점에 누군가가 그렸다.
저 초상화와 관련한 특별전을 준비하면서 소장처인 히버 성에서 아예 이 참에 저 그림을 둘러싼 여러 비밀을 파헤치자 해서 단단히 작정하고 달라들었다.
저 초상은 도화지에 그린 것이 아니다. 나무 판대기를 도화지 삼아 물감 칠해 그려 넣었다. 이 나무 패널은 참나무였다.
히버성이 케임브리지 피츠윌리엄 박물관Fitzwilliam MuseumHamilton 산하 부서 중 하나인 커 연구소Kerr Institute라는 데다가 분석을 맡겼다.
CT도 촬영하고 해서 밑그림도 좀 보고, 이 참에 그림을 그린 참나무 나이 좀 알아볼 요량이었다.

사진은 의뢰받은 커 연구소에서 마치 복사하듯 그림을 넣어 슬라이스 식으로 쪼개가며 ct 촬영을 했다.
나아가 이 참에 저 나무 패널 나이테 연대도 살펴봤다! 이 나무 판대를 제작한 시점 이후가 당연히 그림을 제작한 시점 아니겠는가?
그 결과 저 참나무 패널은 엘리자베스 1세 여왕 재위 기간인 1583년에 벌채한 것으로 드러났다.
벌채한 시점이 곧 그림을 그린 시점이라 볼 수는 없겠지만, 절대로 그림이 나온 시점이 이 벌채한 시점을 거슬러 올라갈 수는 없다.
따라서 저 초상은 1583년 혹은 그 직후 어느 시점에 제작된 것이 분명하다.
다음으로 밑그림.
완성본 그림을 무턱대고 그릴 수는 없는 법이고, 스케치 비슷한 게 남아있기 마련이며, 나아가 서양 그림은 처음 완성되고 나서도 훗날 끊임없이 땜질을 해대니, CT나 적외선 촬영을 하면 지금 보는 그림 밑에 어떤 그림이 들어있는지가 드러난다.

이것이 바로 현재 보는 초상(왼쪽)과 그 밑그림(오른쪽) 대비다.
무엇이 다른가?
가장 크게는 현재는 B자를 박은 목걸이 중심 장식이 본래 그림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B가 들어갈 자리에 다른 무엇인가가 들어가 있다.
왜 저리 바꿨을까? 이건 모르겠다!
이 대목 진술이 없는 것으로 보아 분석한 사람들도 그 이유를 제대로 모르는 듯하다.
하지만 이것으로써 모든 탐구는 끝났는가?
아니올씨다라는 데 심각성이 도사린다.
첫째 앤 불린과 그의 딸 엘리자베스 시대는 튜더 왕조 시절이라, 저 시절 초상은 공식이 있어, 첫째 손은 넣지 않고, 둘째, 초상은 인물을 직접 보고 그리는 것이 아니라, 이리 그리라 해서 초본을 왕실에서 내려주어 그것을 화가가 손질해서 완성한다!
이 점을 기억하면 저 초상이 이상한 점을 직감할 것이다.
첫째, 들어가지 않는 손을 굳이 넣은 이유는 무엇이고 둘째 오른쪽이 분명 초본인데 화가가 이 초본을 버리고서 수정을 가한 이유는 도대체 뭔가?
바로 이 두 가지 점을 새로 밝혀낸 사실이라 해서 주로 영국 쪽 언론에서 대서특필 중이다.
원본을 일부러 바꾸고, 나아가 굳이 들어갈 필요가 없는 손을 넣은 모종하는 정치 권력 이데올로기가 있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한꺼번에 풀린다.
장미를 쥔 저 두 손을 보면, 둘 다 손가락이 다섯개씩이다. So what?
영국이 가톨릭을 버리게 한 원흉인 앤 불린이 잉글랜드 가돌릭계에서는 어찌 봤겠는가? 요부라 몰아쳤다. 저 시절 요부를 처단하는 가장 무서운 무기는 마녀였다!
그래서 가톨릭에서는 앤 불린이 손가락이 여섯 개인 마녀라고 몰아쳤다.
그렇다면 저 그림 의도는 명백하다!
봐라! 앤 불린은 손가락이 여섯 개가 아닌 다섯개인 지극히 정상인 사람이다!
그렇다면 저렇게 그린 주체는 누구인가?
볼짝 없다! 딸 엘리자베스다.
엘리자베스는 정통성 시비에 시달렸다. 여자인 데다, 엄마가 요부라고 하니 자칫하면 쿠데타 빌미를 준다.
정상적인 사람의 딸이라는 보증이 필요한 엘리자베스는 일부러 굳이 손을 넣어 엄마가 손가락이 각각 다섯개씩인 정상이라는 구상물을 만들어냈다.
이를 통해 저 단순하기 짝이 없는 초상화 한 장은 역사의 한 국면을 장식하는 거대한 실록이 된다.
'역사문화 이모저모'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중세 여성들이 매사냥을 통해 성별 규범을 전복하다 (0) | 2026.02.04 |
|---|---|
| 금으로 떡칠한 바르나 황금맨, 고추까지 황금 덮개 (0) | 2026.01.26 |
| 로마 성문화를 비추는 창 폼페이 베티이 가옥 (0) | 2026.01.26 |
| 고관대작들의 참전, 신라와 조선의 갈림길 (0) | 2026.01.26 |
| [紀異] 혹슨 보물Hoxne Hoard, 잃어버린 망치 대신 건진 횡재 (0) | 2026.01.2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