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널 소식을 전하기가 얼마만인지 모른다. 그도그럴 것이 좋은 소식이라곤 없었으니 말이다.
20여년 철권통치를 구가한 아르센 벵거 체제가 막을 내리면서 그 집권 말기에 시작한 붕괴 조짐은 좀처럼 회복기미가 없어 그 후임 에머리 체제는 더욱 나락으로 곤두박질하더니 마침내 1년 반만인가에 붕괴하고 만신창이가 난 구너스는 에버튼을 거쳐 말년을 아스널에서 선수생활을 하고는 펩 과디올리나를 보좌해 맨시티 코치로 가 있던 아르테타를 긴급수혈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아르테타도 급한 불을 끄지는 못했으니 겨우 하루하루를 막는데 급급하다가 챔스티켓을 보장하는 리그 4위권은 고사하고 유에파컵EUFA CUP 티겟 확보에도 실패하는 순위로 정규시즌을 마감하고 말았다.
아스널이 저번주에 막을 내린 2019-20 프리미어리그 정규 시즌에서 받아든 성적은 14승 14무 10패, 승점 56점 8위였다. 아르센 벵거 이래 최저 순위, 최저 승점이 아닌가 하거니와, 그만큼 처참했다. 영국 프로축구 1부리그인 프리미어리그는 상위 1~4위가 챔피언스리그를 나가고, 5~7위 세 팀은 유에파컵 티켓이 주어진다.
이런 구너스 Gunners 한테 그나마 유럽컵 희망은 남았으니, FA컵 우승트로피였다. 이에서 우승하면 정규리그 순위와 관계없이 유에파컵 티켓이 최우선으로 주어진다. 불행 중 다행으로 아스널은 준결승에서 난적 맨시티를 2-0으로 격파하고는 결승에 올라 맨유를 꺾고 올라온 첼시를 상대로 방금 끝난 결승전을 치렀다.
나는 내심으로 아스널이 불리하다고 봤다. 그만큼 최근 폼이 좋지 못했고, 무엇보다 첼시에는 유독 약한 모습을 보인 까닭이다. 작년 유에파컵 결승이 있었다. 그때도 아스널은 첼시와 만나 바쿠 대전을 치렀는데 0-3인가로 완패했다.
이 결승전은 다음 시즌 챔스 티켓이 걸렸다는 점에서도 아스널로서는 매우 중요한 경기였다. 유에파컵 챔피언한테는 정규리그 순위와 관계없이 다음 시즌 챔스 진출권이 주어지는 까닭이었다. 아스널은 정규시즌에서 이미 4위권 밖으로 밀려난 까닭에 챔스에 나가기 위해서는 첼시를 잡아야했지만, 분패하고 말았다. 이때 감독이 에머리였다.
그런 아픈 기억을 간직한 까닭에, 또 그를 포함해 첼시에는 많이 약한 모습을 보였기에 오늘 새벽 FA컵 결승전도 내심 불리하다고 봤다. 다만 내가 기대했던 점은 준결에서 뜻밖에도 맨시티를 2-0으로 완파하면서 오른 그 기개 하나는 희망이었다.
이 준결승전은 실은 나는 보지 않았다. 질 것으로 봤고, 괜시리 봤다간 기분만 잡칠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 뉴스를 보니 뜻밖에도 이겼더라.
오늘 결승전은 내 우려 대로 출발했다. 초반에 내내 밀리며 수비에 구멍이 뻥뻥 뚫리더니 전반 5분만에 풀리시치한테 한방 얻어맞고 0-1로 끌려갔다. 대략 경기시작 15분 정도는 일방적으로 밀리지 않았나 싶다. 그러다가 이후 마침내 전방압박이 살아나면서 주도권을 가져오기 시작했고, 전반 28분 아스필리쿠에타 반칙으로 자신이 얻은 페널티킥을 오바메양이 성공하며 동점을 만들었다.
나는 아스필리쿠에타 반칙이 퇴장으로 봤지만, 주심은 옐로카드로 그쳤다. 이날 경기는 여러 모로 아스널에 운도 따라주었는데, 무엇보다 수비핵인 아스필리쿠에타가 전반 34분 햄스트리 부상으로 실려나간 데 이어 후반 4분만에는 선제골 만이 아니라 아스널을 시종 위협한 미드필더 풀리시치 또한 햄스트링으로 꼬꾸라지며 부축을 받으며 나갔다. 첼시 공수 핵이 다 무너진 것이다.
이런 균열을 이용해 아스널은 마침내 후반 23분 베예린의 빠른 발을 이용한 과감한 전방돌파로 시작한 역습에서 오바메앙의 그림 같은 칩샷으로 마침내 역전에 성공했다. 그에 더해 후반 28분에는 전반에 경고 한 장을 문 코바치치가 자카한테 무리한 태클을 가하다가 경고 누적으로 퇴장하는 바람에 숫적 우위도 점거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경기는 긴장감 없이 흘러가며 시간공방을 벌이다가 아스널 우승컵으로 결론났다.
이날 승리로 아스널은 챔스 티켓은 아니지만 그래도 유에파컵 진출을 확보함으로써 숨통을 텄다. 더구나 그렇게 나락 일로만 걷다가 큰 우승 하나를 이룩했으니, 팬들한테 체면치례를 했다고 본다. 무엇보다 초짜감독 아르테타로서는 시즌 중반 취임하고서 이런 성과를 냈으니, 그 지배체제를 공고히 하는 효과가 있다 하겠다.
물론 아스널 앞날이 밝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계약 막바지에 이른 오바메앙이 재계약을 계속 미루는 점이 맘에 걸리거니와, 파브레가스와 반 페르시, 그리고 램지와 비슷한 전철을 밟지 않나 하는 우려가 크다. 구단에는 이적료 한 푼 안 남기고 떠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혹자는 이번 FA컵 우승으로 그의 잔류 가능성이 커졌다 하겠지만, 그것이 그리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아니하는 현상을 내가 너무 많이 봤다. 라카제트도 계속 떠난다는 말이 흘러나온다. 외질은 잊힌 존재가 되었고, 임대로 데려온 세바요스는 초창기에는 적응에 애를 먹었으나, 시즌 중후반 이후 보니, 꼭 필요한 선수라 어떤 식으로건 잡아두어야 하지만, 이 역시 진전한 소식은 없다.
어쩌다 우리 구너스가 유에파컵 티켓 확보에 환호 혹은 안도하는 신세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그 유명한 무패우승 신화는 아주 먼나라 얘기가 되고 말았으니 하이버리 구단을 헐어버리고 현재의 에미리츠구단을 짓기 시작하면서 주축 선수를 팔아제끼는 판국에서도 언제나 챔스 티겟을 확보한 것은 오로지 벵거의 힘이었다.
하지만 구단은 미국인 짠돌이 구단주 크뢴케의 짠물 운영에 그나마 남아있던 파브레가스며 반 페르시 같은 수퍼스타들도 하나둘 다른 구단으로 이적하면시 더욱 미끄러지기만 했으니 벵거 말년 두 시즌인가는 연속으로 챔스 티겻 확보도 실패하는 지경이었다.
그 사이 경쟁 구단들은 더욱 막강한 금권을 휘두르며 전력을 보강하며 아스널과 전력 차이를 더욱 벌려갔으니, 만수르 이전에는 쨉도 되지 않던 맨시티가 대표적이요, 쳐다보지도 않던 레스터시티까지 태국 자본을 등에 엎고 그림 같은 우승 동화를 썼고, 이번 시즌에도 내내 선전이 눈부셨다.
뭐 이런 절규를 들을 리 만무하고, 전해질 리도 없겠지만, 크뢴케야, 돈 좀 쓰라 이 망할 영감탱이야. 돈도 졸라 많다더만 어찌 그리 자린고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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