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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찌질이 김부장들이 주인인 역사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5. 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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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질이 김부장, 약자들한테는 한없는 폭군으로 군림하면서 힘 있는 사람한테는 한없이 굴종하는 찌질이다.

 
한국역사학이 구성하는 한국사는 언제나 주인공은 안중근이며, 그 반대편에 이완용을 내세우는 대립구도다. 

그리하여 모두가 안중근이 되어 총칼 들고 적진으로 돌진하라 하며, 그것이 이상적 인간상이라 설파하며, 그리하여 그들을 끊임없이 추앙하는 한편 그 반대편 군상으로 무수한 이완용들을 발굴해 맞우며 질타한다. 

이것이 한국역사학이 구축한 무식한 역사 구도다. 

하지만 저들은 그 시대를 구성하며 그 시대 역사 층위를 형성한 무수한 분자 인자 중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아니하며, 그런 점에서 예외에 지나지 않는다. 

이 예외를 침소봉대하여 그것이 마치 역사의 이상인양, 혹은 그것이 대변인양 떠들어댈 수는 없다. 

그래 역사를 저런 대립각 구도로 세울 수 있느냐는 차치하고 그것이 가능하다 해도, 안중근과 이완용이 양극을 이루는 간극 사에는 무수한 사람이 포진한다.

이를 한국역사학은 민중이니 농민이니 하는 무책임한 몰명沒名으로 호명하며 그네들을 숭고한 그 무엇으로 치환했으니 그런 그들은 끊임없이 압제와 폭력에 질곡했다고 주물한다.

이른바 민중사관이 그것이라, 계속 말하듯이 이런 민중사관이야말로 그네를 능동하는 주체로 설정하는 듯하나 기실 따지고 보면 등신 천치론에 다름 아니다. 

저 식민지 이래 근현대사만 해도 어찌 이 한국사에 이완용과 안중근만 있겠는가?

김부장?  무엇을 김부장으로 정의하느냐는 다르겠지만, 간단히 말해 찌질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이 찌질이들이 주인공인 역사로 탈구축해야지 않겠는가?

그들이 주인공인 역사가 어찌 그네를 찬송하며 칭송하며 추앙하는 일이겠는가?

역사의 주인공과 그 상찬은 전연 다른 이야기다. 

친일? 저항?

조선신민 2천만 중에 저런 길을 걸은 사람은 한 줌도 되지 않는다.

그 한 줌 되지 않는 사람들만이 오직 역사의 주체라고 설정하면 나머지는 전부 진짜 찌질이가 되고 만다.

그 한 줌 되지 아니하는 자들의 농간에 놀아나기만 하는 찌질이들 말이다. 

저 무수한 김부장들을 이제는 역사하는 당당한 주체들로 일일이 거명하며 불러내어 연단에 서게 하고 그네들이 고함치게 해야지 않겠는가?

친일? 저항? 그딴 숭고함보다 하루하루 살이가 버겁기만 한 사람들, 그래서 찌질하기만 한 사람들, 때로는 굴종하고 때로는 끌어엎고 싶고, 때로는 남들을 짓밟고서 일어나고픈 욕망이 꿈뜰하는 그런 욕망하는 주체로서 찌질이 김부장들이 당당한 역사의 주체로 서야지 않겠는가? 

그 찌질이가 내 엄마요 내 아버지요 내 할아버지요 내 할머니며 내 삼촌 고모 이모들이다. 아니 내 자회상이다.

친일과 저항이 아닌 욕망하는 무대로, 각종하는 찌질이가 판치고 용솟음하는 그런 역사판으로 바꿔야지 않겠는가? 

 

세차하는 김부장은 2025년 서울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세차하는 김부장은 2025년 서울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김부장은 19세기 말 서울에도 있었고, 1905년 을사조약때 대구에도 있었으며1910년 경술국치때 광주에도 있었다. 구한말 한국 사람들이 모두 독립운동가였다고 생각하면 천만의 말씀이다. 대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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