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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조선시대를 연구하려는 사람들은 시골 재래시장부터 조사하라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5. 1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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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누이 말했지만, 내 고향에선 내가 어린 시절까지도 물물교환이 경제활동 주된 통로였다. 

나한테 있는 물건을 주로 오일장이라는 형식을 빌려서 그것을 주고 그 시장에서 내가 필요한 물건으로 바꾸어오는 시스템이었다. 

내가 좀 자라 홀랭이로 토끼를 잡고, 또 산에서 도라지며 하는 것들을 캐기 시작할 무렵에는 내가 사냥한 산토끼 내가 캐거나 뜯어다 놓은 도라지 고사리가 대표적인 물물교환품이었다.

물론 이것들도 계절성을 민감하게 탄다. 산토끼는 겨울철에나 홀랭이 사냥이 가능했다. 

이걸 아버지가 가져 나가서 간고등어니 간갈치니 하는 절반은 썩고, 절반은 소금덩어리인 생선을 바꿔오시거나 했다. 

문제는 내가 필요한 물건을 얻기 위해서는 저쪽에서 필요로 하는 저런 물건들이 있고 많아야하는데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니 내내 주린 생활을 더하겠는가? 

내가 태어난 시절에 돈이 있기는 했고 그것이 요긴하기는 했지만, 난 그 고향을 떠나기 전까지 내가 우리 집에서 그런 돈을 제대로 구경한 적이 없다. 돈은 기본에서 없었다. 있다 해도 쥐꼬리 만큼이었다. 

요새도 아주 가끔 고향을 가면 엄마가 장보러 김천 황금동 시장을 가자신다 해서 차로 모시고 다니곤 한다.

이제 구순을 앞둔 우리 할매 엄마 쫄쫄 따라다니다 보면 재미 있는데, 잘난 아들놈 덕분에 요새는 돈 거래가 기본이기는 하다만, 그래도 물물교환 그 질긴 전통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본다. 

내가 어린 시절과 지금 시절 고향 땅에서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이 주업 혹은 주식인 쌀 문제라, 이걸 그 옛날에는 직접 농사를 지어 조달했지만, 쌀 농사 안지은지 선캄브리아 후기라, 이걸 사다 먹는다. 

황금동시장에 가면 쌀가게가 있다. 물론 쌀만 취급하는가 하면 기타 잡곡 또 오만가지 그 동네서 필요한 물품은 다 취급한다. 

엄마가 쌀을 사는 방식을 보니 뿔싸! 물물교환이었다. 예컨대 동생이 가꾼 추자(호도)를 가져가서 그걸 주고선 그에 상응하는 액수에 해당하는 만큼 쌀을 바꾸어 온다. 이런 식이다. 

내 엄마만 그런 줄 알았더니 옆집 아지매들도 똑같다. 

조선시대 물물교환 경제가 어찌 돌아갔는가 그 생생한 현장을 보고싶거덜랑 시골 재래 시장을 가라! 

반나절만 쌀가게 앞을 지켜봐도 그 실체를 여실히 보게 될 테니깐 말이다. 

김용섭 강만길 책 논문 읽어 봐야 건질 것도 없고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물물경제에서 무슨 자본주의 맹아란 말인가?

어림반푼어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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