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효의황후 묘지명을 보건대 황후는 보력寶曆 2년 2월 5일 무진일에 문사당文思堂 측침側寢에서 항년 50세로 잠들고 그해 겨울 10월 24일 갑신일에 진릉대珍陵臺에 안치된다.
이 증언을 통해 우리는 당시 발해 왕궁에 문사당이라는 건물채가 있었음을 보며, 그에는 침실이 달렸음을 추찰한다.
문사당은 여러 모로 보아 자경전 같은 곳이라, 궁궐 중에서는 당연히 北院에 있었을 것이며 이곳이 바로 왕비가 주석하는 메인 공간임을 안다.
측침은 좀 더 살펴야겠지만 사람이 죽을 때 옮겨 놓는 그 방을 말하는 게 아닌가 한다.
사망에서 최종 안장까지 그 사이 윤달이 끼지 않았다고 가정할 때 대략 9개월이 걸렸다.
진릉대에 안치한 10월 24일은 길일이라 해서 점을 보아 선택했을 것이다.
그 9개월 간 시신은 어디 있었을까?
매장했을까? 아니면 구더기 끓는 시신으로 안치했을까? 빈전은 어디에 있었을까?
순목황후의 경우 “연평延平 2년 4월 24일에 붕어崩御하시어, 선비鮮卑의 불역산不易山 언덕에 빈殯하니 예에 따른 것이었다.
건흥建興 12년(829) 7월 15일에 □릉으로 천장하여 편안히 하니 또한 예에 맞았다”고 했으니, 이 경우 연평延平은 새로 튀어나온 발해 연호라 정확히 어느 시점인지 알 수가 없다.
앞선 대흥大興과 보력寶曆 사례를 보건대, 기존에는 재위 장장 56년에 이르는 문왕이 재위 기간 내내 대흥이라는 연호만 사용한 것으로 알았다가 그 어중간에 寶曆이라는 연호를 사용했다가 다시 대흥으로 복귀한 전례가 드러난 점을 참조한다면, 건흥建興 역시 그 어중간에 연평이라는 연호가 끼어들지 말라는 법도 없다.

다만, 연평이 정확히 어느 왕 때 어느 기간만큼 사용했는지를 알 수가 없다. 저 증언에서 우리는 순목황후가 죽어서 최종 매장되기까지 불역산이라는 데서 임시로 매장했음을 본다.
빈전이 있는 데가 왜 불역산인가 하는 물음은 현재로서는 다른 관련 증언이 발견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겠다.
정혜공주의 경우 보력 4년 여름 4월 14일 을미일에 시댁에서 죽고 아마도 그 시댁 선영에 묻혔다가 보력 7년 겨울 11월 24일 갑신일에 진릉에 배장되었다 하니, 왜 하필 이 시점에 이런 일이 있었을까?
혹자는 남편이 이 무렵 죽어 합장하는 바람에 저런 천장이 저때 있었다 할지 모르겠지만 같은 묘지명에는 분명히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나 정사를 돕는 뜻을 끝내 이루지 못하고, 어린 자식마저 요절하여 벼슬길에 나아가기 전이었다”했으니 이걸로는 설명할 수가 없다.
나아가 정혜는 죽어 그 직후에는 남편과 합장됐을 텐데, 그렇다면 천장할 때 공주만 공주라 해서 덩그러니 진릉으로 옮기고, 남편은 그 자리에 그대로 놔둘 수는 없는 법이다. 무엇인가 곡절이 있었다고 봐야 하겠다.

정효 공주 또한 남편을 먼저 보내고, 어린 딸도 잃는 아픔을 겪다가 大興 56년 여름 6월 9일 임진일에 시가에 죽어 대략 5개월 뒤인 그해 겨울 11월 28일 기묘일에 염곡染谷의 서원西原에 배장되었다 했으니, 이 염곡이 진릉珍陵이 있는 계곡 혹은 산 이름이라 해서 이런 별칭으로 불렀으리라 본다.
죽음과 최종 안장 사이 5개월도 만만치는 않아 이 기간에 시신은 이미 洗骨 상태였다고 보아야지 않겠는가? 이 기간 분명 어딘가는 가매장했을 법한데, 그런 사정을 알 수는 없다.
아무튼 장송 시스템이 상당히 유동적이었으며, 그때그때 편의와 사정에 따른 것이었음을 엿볼 수 있겠다.
이런 사정은 동아시아 시공간을 보면 이렇다 할 異例라고도 할 수 없다.

예법禮法? 그런 게 있기는 했고 그것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역시 그 운용에는 방편方便이 가장 중요함을 볼 수 있겠다.
저 묘지명들은 일견 적지 않은 텍스트 분량을 자랑하는 듯하나, 내 능력이 모자람서일 수도 있겠지만, 그 분량에 견주어 건질 만한 건더기가 결코 그에 걸맞게 많다고는 할 수 없다. 공갈빵이며 속빈 강정이다.
이런 공갈빵 속빈 강정은 우람한 특징이 하나 있어 언제나 소리는 요란하다!
그런 빈깡통은 자갈 하나가 들어갈 때 소리가 더 요란한 법이다.
***
이상은 2025. 11. 29(金) 서울 강서 허준박물관에서 문헌과문물(문문)과 도서출판 주류성이 공동 주최한 '발해가 증언하는 발해' 학술대회 발표 내 졸고 '묘지명이 폭로한 발해사, 그것이 돌발하는 몇 가지 관건關鍵'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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