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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금관만? 허리띠도 접어 포개서 허리춤에 얹었다!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5. 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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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황남동 120-2호분 피장자 유물 출토 상태

 
금관 가고 금동신발 갔으니 이제 허리춤으로 가자!

그래 이것도 계급별로, 권력별로 다른 양상을 보이는데, 왕이나 왕비급은 황금으로 중심으로 떡칠했지만, 그 아래 등급에서는 은제나 금동제 같은 것으로 만들었다. 

그 치장 드림장식 역시 차이가 있어 왕이나 왕비급은 치렁치렁 단 반면, 그 아래것들은 몇 개만 폼만 남기도 다는 것으로 만족했다. 
 

경주 황남동 120-2호분 피장자 유물 출토 상태

 
문제는 그 어떤 허리띠건 실제 이걸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이랑 마찬가지로 허리에 꽉 칭군 채 저승으로 갔냐는 것.

물론 다 그렇다는 보장은 없으나 현재까지 드러나는 양상으로 볼 때 금관 금동관이랑 똑같다! 

대충대충 만든 금관 금동관 흉내만 내서 만든 다음 절반으로 포개서 얼굴을 가리는 death mask 혹은 facial mask로 썼듯이 허리띠 역시 똑같은 양상을 보인다. 

곧, 이것도 실제 허리춤에 채우지 않고 그걸 포개서 시신 허리춤에 올려두었다. 

이걸 보면 금동신발 역시 실제 시신이 신지 않고서 그냥 발아래 놓아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할 수도 있지만, 백제문화권 5세기 공주 수촌리 무덤인가로 기억하는데, 그 신발 안쪽에서 엄지발가락인가 나온 것을 보면 거기에선 확실히 시신한테 신긴 것은 분명하다. 
 

경주 황남동 120-2호분 피장자 허리춤 벨트와 왼팔 은팔찌 착장 상태

 
다만 신라문화권에서도 그러한가 단안하기는 부족한 측면이 너무 많아 이 부분은 의심으로만 일단 남겨두고 훗날 다른 지역 발굴양상을 살펴 보면 될 듯하다. 

아무튼 저 시대, 그러니깐 4~6세기 적석목곽분 시대 경주 지역 중심 신라문화권을 보면 다 그렇다고는 확신하기 힘들지만, 대체로 허리띠 역시 포개서 얹어놓았다. 
 

경주 황남동 120-2호분 피장자 허리띠 부분 세부

 
실제 시신이 착용한 상태인가 아닌가는 왜 중요한가?

실생활에서는 아예 저런 벨트를 착용한 일이 없거나, 착용했다 해도 극히 드물에 착용한 근거가 된다. 

실제 지금껏 참고로 살핀 황남동 120-2호분은 드림 장식이 별로 없어서 그렇지 이른바 왕릉 혹은 왕비릉급 경우는 달라서 

 
보기야 뽀대나지 저걸 차고 다녀?

어떤 미친 놈이?

함에도 왜 저런 걸 신라인들은 덕지덕지 매달아 주었는가?

간단하다.

귀신이니깐!

귀신이 못하는 게 어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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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어 포개서 시신 얼굴가리개로 쓴 신라금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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