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신라 왕조는 진평왕 13년, 서기 591이 되어 그 왕궁 월성 남쪽을 정좌한 남산 일대에 새로운 산성을 하나 쌓으니, 이를 그들은 남산성南山城이라 불렀고, 이때 새로 성을 고쳐 쌓았다 해서 남산신성南山新城이라 했다.
그 조막디만한 무덤 하나 만드는 데도 구간별 공사구간을 따로 주어 십장을 따로 임명했으니, 저런 길다란 산성을 쌓을 때야 두 말 해서 무엇하랴.
이때 전국적인 사회문제가 있었다. 곳곳에서 관급 부실공사 사태가 일었다.
공사대금 부풀리기와 자재 빼돌리기는 기본이요 작업 인부는 분명 문서상 백명이라 했는데 실 작업인원은 서른 명도 되지 않았다.
조사 하니 그 자재 인력 모조리 힘 있는 놈들이 빼돌려 지 집구석 수리하는데 썼고 농장 일을 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더는 이 대충대충 얼렁뚱땅주의를 방치할 수 없었다. 칼을 뺐다.
우리 오늘부터 공사 실명제 한데이 단디 들으레이 안 들어마 지긴데이.
진평왕 이름으로 하달한 법령 포고문은 이랬다.
신해년辛亥 2월 26일, 남산신성南山新城을 맹가는데 즈음해 명령한데이. 지은지 3년이 지나 비름빡이 무너지마 응분의 책임을 물을 끼데이. 부실공사 안 하겠데이 주디에 피 바르고 맹세해레이.
辛亥年二月卄六日南山新城作節如法以作後三年崩破者罪敎事爲聞敎令誓事之
이 포고령이 내려오자 현장에선 불만이 터져 나왔다.
와 하필 지금 와서 지랄이고? 이기 다 접때 삼년산성에서 춘배랑 영디기랑 해쳐먹다 걸리서 이렁기라. 글케 해쳐묵고도 태시기는 안걸맀다메?
맹서는 구간별로 하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산성 쌓는다고 농한기 이용해 겨울 혹한기 전국 각지에서 노가다 인력을 징발하고선 구간별로 각기 떼어주어 성을 쌓게 했기 때문이다.
그때라고 달랐겠는가?
온갖 불법이 판을 쳤다.

그네가 구간별로 성돌 하나를 골라선 저런 포고문 새기고 그 하단에 공사 책임자들 명단까지 남긴 까닭은
철저한 공사실명제 실현이라는 정신도 물론 있겠지만 우리가 읽어야 할 것은
저런 법령까지 끌어낸 그 대충대충 대강대강 얼렁뚱땅주의 그 만연이라는 사실이다.
신라?
뭐 국가에서 한다고 정성 다해 만들고 쌓았을 거 같지?
금관?
저거 만드는 과정에서 도대체 얼마나 많은 금을 빼돌렸을까를 생각해야 한다.
물론 그렇다고 조정이 호락호락 당했겠느냐만 짜고 치면?
방법 없다.
어차피 대강대강 흉내만 내고선 정성으로 포장하면 그뿐이었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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