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문화 이모저모

연암이 서얼 호통 주장? 누구나 하는 말의 우라까이일 뿐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6. 2. 16.
반응형

 

"아아, 우리 왕조가 서얼의 벼슬길을 막은 지 300여 년이 되었으니, 폐단이 큰 정책으로 이보다 심한 것이 없습니다. 옛날을 상고해도 그러한 법이 없고, 예법과 형률을 살펴봐도 근거가 없습니다. 건국 초기에 간사한 신하들이 기회를 틈타 감정을 푼 것이 바로 중대한 제한 규정으로 되어 버렸으며 후대에 요직에 있던 인사들이 명망이 높은 것을 핑계대어 오류를 답습하니 하나의 습속을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세대가 차츰차츰 멀어지면서 습속을 따라 개혁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서얼의 금고는 이러한 것에 불과합니다."

"역대 임금들께서는 중도와 준칙을 세워 통치의 법도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았으며, 벼슬자리에는 어진 사람만 임명하고 직무를 나누어 맡기는 데는 능력만을 고려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모두를 공정하게 대하였으니, 어찌 또 모계의 귀천(貴賤)을 가지고 차별을 했겠습니까. 그러므로 조정에 임하여 널리 묻고, 그 처지를 애통해하며 불쌍히 여겨, 변통하여 벼슬길을 열어 줄 방도를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연암집燕巖集 권3이 채록한 의청소통소疑請疏通疎라

박지원이 어느 지방관인가 근무할 적에 조정 혹은 임금한테 낸 건의서라 해서 역사학계, 특히 조선시대 사학계에서는 그의 북학파적인 실학 사상의 정수를 보여주는 한 대목이라 해서 대서특필한다, 

맞는가?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라, 서얼에 대한 무차별한 차별이 얼마나 비인간적 처사인지는 연암 이전에도 조선시대 내내 주구장창 있었다.

결코 새로울 것도 없고,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답습에 지나지 아니하니, 조선의 식자라면 누구나 할 만한 소리, 실제 그런 선배 지식인이 때마다 들고 나온 같은 주장을 되풀이한 데 지나지 아니한다. 

저런 문제의식은 누구나 지녔지만, 어느 누구도 섣불리 건딜 수 없었으니, 이는 임금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자신 서출인 영조는 말할 것도 없고, 그 서출의 손자인 정조 또한 서얼 소통에는 비교적 온건한 정책을 유지하기는 했지만, 절대권자인 왕들조차 저 문제는 어찌할 수 없는 문제였다. 

저 서얼 호통 혹은 차별 금지를 반대한 이는 누구였을까?

이 점을 너무 쉽게 망각하는데, 그 정책 결정권을 쥔 자들이 가장 두려워한 이는 임금도 아니었으니 바로 본처였다!

서얼을 차별하지 않는다?

이를 본처들이 용납했을 거 같은가? 

이 꼴을 어찌 본처들이 용납하겠는가?

어림반푼어치도 없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