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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THESIS

고대 대만에서 드러난 의례적 발치, 그 기원과 동기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6. 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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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및 현대 대만 인구에서 기록된 규칙적인 치열과 발치 패턴을 보여주는 그림. 검은색은 발치된 치아를 나타낸다. 출처: 아시아 고고학 연구(2024). DOI: 10.1016/j.ara.2024.100543


(2024년 8월 19일) 고고학자 Yue Zhang과 동료들이 학술지 Archaeological Research in Asia에 발표한 최근 연구는 신석기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대만에서 행해진 치아 발치tooth ablation 관습에 대한 자세한 통찰을 제공한다.

치아 발치는 건강한 치아를 제거하는 관습이다.

고대 대만에서는 주로 앞니, 특히 절치incisors (I)와[또는] 송곳니canines (C)를 제거하는 형태로 나타났다.

이 관습은 최초의 오스트로네시아(AN) 공동체Austronesian communities와 관련이 있으며, 이들은 이후 아시아 태평양 지역으로 퍼져 나갔다.
 

화살표로 표시된 치아 제거(패턴: 2I2C1)가 있는 난관리 동쪽 두개골Nanguanli East skulls. (1) 매장 코드: E3-B2; (2) 매장 코드: F5-B32. (출처: Tsang et al., 2011a, Cheng-hwa Tsang 제공).


그러나 최근까지 이 관습에 대한 포괄적인 고고학적 및 민족지학적 연구가 부족해 이 관습이 어떻게 발전하고, 왜 지속되었으며, 그 주변 사회적, 문화적 규범은 어떠했는지에 대한 지식 격차가 컸다.

이 관습은 대만에서 약 4800년 전(BP)에 처음 관찰되었다.

신석기 시대(4800~2400년 전)는 수렵채집 사회가 정착 사회로 전환되던 시기와 일치한다.

이러한 정착 사회는 새로운 도기층, 작물(쌀과 기장), 동물을 재배하기 시작했으며, 가장 초기에 알려진 치아 발치 관습을 도입했다. 
 

선사시대 대만의 치아 발치 유적 분포. 대만 남부 신석기 후기 유적 20곳을 하나의 좌표점으로 나타냈다(전체 유적 명칭은 표 1 참조).
대만에 분포하는 최신 공식 인정 오스트로네시아어족.


기록된 가장 흔한 치아 발치 패턴은 2I2C1과 2I2였다(여기서 2는 양쪽 치아를 모두 발치한 것을 의미하고, 위첨자superscript는 위쪽 치아와 그 위치를 나타낸다).

유골 분석 결과, 치아 발치는 남녀 모두에게서 동일하게 행한 것으로 보인다.

해안 지역에서 시작된 치아 발치, 매장, 그리고 농업 관습은 주변 아시아 태평양 지역까지 확산되고 번성했다. 

"고대 대만의 치아 발치 관습 발달은 대만 신석기 문화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와 일맥상통합니다. 대만의 초기 오스트로네시아인 집단에서 관찰되는 일관된 치아 발치 패턴(2I2C1)은 다른 지역에서 발견되는 패턴과도 유사합니다."

"동남아시아 섬 지역 전역에 걸쳐 오스트로네시아 관련 문화가 존재했습니다. 따라서 2I2C1 치아 발치는 고대 오스트로네시아인의 특징으로 볼 수 있습니다." 장 교수 말이다. 
 

(1) Tsou(Tapangu 부족)와 (2) Bunun(Vaqlas 부족) 공동체에서 치아를 뽑아 제거하는 역사적 장면(1935년). (3) Niae'ucna 마을 Tsou 소녀가 발치된 치아를 보여준다(2I2C1). (4) Bunun 사람들이 치아 발치에 사용하는 도구로, 토착어로 Ishi-babaintosu라고 한다. (출처: 1–2: East Asia Image Collection, Special Collections and College Archives, David Bishop Skillman Library, Lafayette College; 3. Yuasa, 2000; 4. Noya, 1936).


그러나 신석기 시대 후기에 이르러 남성들 치아 발치 빈도가 감소하는 새로운 경향이 나타났다.

1900년 전 무렵 철기 시대에 이르러서는 치아 발치는 거의 전적으로 여성들만 관습이 되었다. 

이러한 변화의 원인은 수수께끼다.

그러나 장(Zhang)은 다음과 같은 가능한 설명을 제시했다.

"남성들 사이에서 치아 발치가 감소한 것은 더 광범위한 문화적, 사회적 변화를 반영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신석기 시대의 물질문화가 이 시기에 이르러 지역적 특성에 맞게 완전히 적응하고 진화함에 따라, 치아 발치에 대한 해석도 달라졌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송 케플렉Song Keplek 5(인도네시아 자바) 두개골에서 화살표로 표시된 2I2C1 치아 발치 흔적. (출처: Noerwidi, 2012, Sofwan Noerwidi 제공)


고고학적 연구를 통해 일부 통찰력을 얻을 수 있지만, 민족지학적 기록에서도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치아 발치에 대한 가장 초기 기록 중 일부는 중국 삼국시대(서기 220년)에, 다른 일부는 17세기 네덜란드 학술지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가장 포괄적인 민족지학적 기록은 일본 식민지시대(1895~1945년)에 수집되었는데, 이 시기에 원주민 조사(1901~1909년)가 진행되었다. 

이후 1910년대 무력 진압으로 치아 발치를 포함한 많은 지역 전통이 사라졌지만, 일부 공동체는 20세기 중반까지도 이를 계속 행했다.

이러한 민족지학적 기록들은 치아 발치의 여러 가지 이유를 자세히 보여준다.

그 이유는 다양했으며, 집단마다 차이가 있었다. 치아 발치의 동기 중 하나는 심미적인 이유였다.

시술자들은 개, 돼지, 원숭이와 같은 정상적인 치아 구조가 매력적이지 않다고 여겨 쥐와 유사한 치아를 가지려 했다.
 

대만 및 동남아시아 도서 지역에서 치아 발치가 이루어진 주요 부위의 분포 (AN-type=2I2C1)


다른 동기로는 기념적인 이유가 있었다.

치아 발치는 용기를 시험하거나 조상의 용맹함을 기리는 방법으로 여겨졌다.

어떤 이들은 이를 성인으로 가는 통과의례로, 또 어떤 이들은 집단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행위로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치아 발치의 동기 중에는 실용적인 이유도 있었다.

예를 들어 파상풍으로 턱이 굳어 약물을 복용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약을 쉽게 삼키기 위해 치아를 발치한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일부 실용적인 이유들은 생각만큼 유용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부눈Bunun 지역 증언에 따르면 치아 발치가 발음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증언을 기록한 학자 역시 치아를 발치하지 않은 사람들도 발음이 좋다는 점을 지적하며 의구심을 표했습니다. 기능적인 관점에서 보면 앞니는 음식물을 자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발치는 식사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개) 남아 있는 앞니가 어느 정도 보완해 줄 수는 있습니다."  
 

화살표로 표시된 것은 남아 있는 부러진 치근이다. (1) NKLE F5B40(대만 난관리 동부); (2) 매장 번호 미상(중국 본토 장쑤성 다둔지). 상악 중절치와 송곳니는 사후에 소실되었다. (출처: 1. Pietrusewsky et al., 2017; 2. Han et al., 1974).


치아 발치 동기뿐 아니라 방법과 시기도 지역마다 달랐다.

대만 북부 지역에서는 금속, 나무, 돌 등의 도구로 치아를 두드려 뽑는 방식을 선호했다.

반면 남부 지역에서는 나무나 대나무 막대기 한두 개를 실에 묶어 치아 주위에 단단히 묶어 뽑는 방식을 선호했다.

발치 후에는 출혈과 염증을 막기 위해 해당 부위에 소금이나 억새풀 재를 채워 넣었다.

마취 없이 시행된 이러한 발치 시술은 6~8세 어린아이부터 20세 성인에 이르기까지 감내해야 했다.

흥미롭게도, 현대 인류학 연구에 따르면 신석기 시대 후기와 철기 시대와는 달리 치아 발치는 여성에게만 국한된 관습이 아니었다.

장(Zhang)은 "현대 인류학 기록에 따르면 남녀 모두 치아 발치를 시행했지만, 각 성별의 빈도는 구체적으로 기록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중국 동부 및 대만에서 치아 발치가 발생한 주요 부위 분포(AN 유형=2I2C1)


장과 동료들 연구는 포괄적이지만, 추가 연구가 계획되어 있다.

"우리 연구는 주로 신석기 시대 유골 자료에 의존하는데, 이 시기는 고대 오스트로네시아계 인구가 광범위한 지역으로 이주한 중요한 시기입니다."

"현재까지의 연구 결과는 보존 상태와 지역 고고학적 조사로 인해 드물고, 때로는 특정 지역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치아 발치의 기원과 진화, 그리고 오스트로네시아인들이 새로운 지역을 탐험하고 정착하면서 이 관습을 어떻게 이어갔는지 더 잘 이해하려면 더 많은 골격 표본이 필요한다. 

또한 장은 "고고학적 및 역사적 기록과 현대 민족지학적 설명에서 나타나는 성별 분포의 불일치는 향후 연구를 위한 흥미로운 질문들을 제기한다"고 덧붙였다.

Publication details
Yue Zhang et al, Ritual tooth ablation in ancient Taiwan and the Austronesian expansion, Archaeological Research in Asia (2024). DOI: 10.1016/j.ara.2024.100543 

Journal information: Archaeological Research in Asia, 
© 2024 Science X Network


저 멀쩡한 이빨이 나가 떨어질까 염려하시어 우리네 선생님들은 사랑하는 제자들 아구창을 날릴 때 이런 말씀을 하시었다.

이빨 깨물어레이, 안 그라마 이빨 나간데이.

이런 말씀도 하시었다.

니 아부지 머하시노?

면서기 혹은 지서장 아들이면 건딜지 않으셨다.

참 훌륭한 스승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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