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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THESIS

중세시대 나병 환자도 교회 가까운 곳에 묻혔다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6. 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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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시대 부유한 기독교인들은 나병leprosy stigma이라는 사회적 낙인에도 '신에게 더 가까운' 무덤을 구입했다는 사실이 고고학자들에 의해 밝혀졌다

by 프론티어스Frontiers

이미지 출처: Pixabay/CC0 Public Domain

 
덴마크 중세 기독교인들은 죽음 이후에도 명망 있는 무덤을 구입함으로써 부를 과시했다.

교회에 가까울수록 가격이 더 높았다.

연구진은 이러한 무덤들을 통해 질병에 따른 사회적 배제를 조사했다.

나병leprosy이나 결핵tuberculosis처럼 사회적으로 죄악과 연관된 질병에 걸린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눈에 잘 띄는 곳에 묻혔는지 연구한 것이다.

놀랍게도, 사회적으로 낙인찍힌 질병에 걸린 사람들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눈에 잘 띄는 곳에 묻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프론티어스 환경 고고학(Frontiers in Environmental Archaeology)에 발표된 이 논문 주저자인 사우스다코타 대학교 사이지 켈멜리스Saige Kelmelis 박사는 "이 연구를 시작하면서 영화 '몬티 파이튼과 성배Monty Python and the Holy Grail', 특히 전염병 수송 수레 장면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이 그림은 과거 사람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오늘날 사람들이 심각한 질병에 어떻게 대처했는지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 연구는 중세 공동체의 대응 방식과 구성이 다양했음을 밝혀냈습니다. 일부 공동체에서는 환자들이 이웃과 함께 묻히고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치료를 받았습니다." 
 

이 연구에 골격 유물을 제공한 유적 위치. 지도 출처: Dorthe Dangvared Pedersen 편집, OpenStreetMap 및 QGIS / Kelmelis 외, Frontiers in Environmental Archaeology (2026)


무덤 너머

연구를 이끈 켈멜리스 크리스텐센, 비키 크리스텐센Vicki Kristensen 부부와 도르테 페데르센Dorthe Pedersen 박사(남덴마크Southern Denmark 대학교)는 도시와 시골에 있는 5개 중세 공동묘지에서 발굴된 성인 유골 939구를 조사해 도시와 시골 간 차이를 파악하고자 했다.

인구 밀도가 높을수록 나병과 결핵 모두 전염이 쉬웠고, 중세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던 비위생적인 환경은 두 질병에 대한 취약성을 높였다.

그러나 두 질병은 환자의 삶에 각기 다른 영향을 미쳤다.

나병 환자는 얼굴에 병변이 나타나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특징이 되었지만, 결핵은 증상이 뚜렷하지 않았다.

켈멜리스는 "결핵은 사람들이 증상 없이 아주 오랫동안 앓을 수 있는 만성 감염병 중 하나"라고 말했다.

"또한, 결핵은 나병처럼 눈에 띄게 장애를 유발하지 않으며, 감염 원인과 전염 경로가 알려지지 않은 시대에는 결핵 환자들이 나병 환자들만큼 심각한 사회적 낙인을 받지 않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아마도 중세 사람들은 한 가지 질병과 싸우느라 다른 질병은 그저 덤으로 여겨졌을지도 모릅니다." 

과학자들은 각 유골의 질병 상태와 생존 기간을 평가했다.

나병은 얼굴 병변facial lesions과 2차 감염으로 인한 손과 발에 손상을 남기는 반면, 결핵은 폐 주변 관절과 뼈에 영향을 미친다. 

과학자들은 묘지를 지도화해서 종교 건물 내 매장과 같이 신분 차이를 나타내는 경계를 찾았다.

그리고 각 유골을 이 지도에 표시해 신분이 높은 지역과 낮은 지역 간 차이를 분석했다. 

켈멜리스는 "사람들이 더 좋은 매장지를 얻기 위해 비용을 지불할 수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고 설명했다.

"생전에 자선가, 기사, 성직자 같은 사람들은 재산을 이용해 신과 더 가까운 곳에 묻히는 특권을 누렸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예를 들어 교회 앞쪽 좌석에 앉는 것처럼 말이죠." 
 

덴마크 Frederikshavn 지방자치단체에 있는 중세 석조 교회인 Åsted 교회. 크레딧: Västgöten / CC BY-SA 3.0


죽은 자들을 다시 불러내다

연구진은 질병과 매장 신분 사이에 전반적인 연관성을 발견하지 못했다.

건강 상태와 상관관계가 있는 차이가 나타난 곳은 리베Ribe의 도시 공동묘지뿐이었다.

신분이 낮은 공동묘지에 묻힌 사람들 약 3분의 1이 결핵 환자였던 반면, 수도원이나 교회에 묻힌 사람들은 12%만이 결핵 환자였다. 

나병이나 결핵 환자라고 해서 신분이 높은 지역에 묻히는 것이 배제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연구진은 이러한 차이가 사회적 낙인이 아니라 결핵에 대한 노출 정도의 차이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하지만 모든 공동묘지에는 결핵 환자가 많이 묻혀 있었다.

특히 드로텐Drotten 도시 공동묘지에서는 매장된 시신 거의 절반이 신분이 높은 지역에 있었고, 그중 51%가 결핵 환자였다.

명망 있는 묘지에 묻힐 여유가 있던 사람들은 더 나은 생활 환경을 누렸을 가능성이 높으며, 이는 결핵이 뼈에 흔적을 남길 만큼 오래 생존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수 있다. 

이러한 결과는 중세 사람들이 고정관념과는 달리 눈에 띄게 아픈 사람들을 사회에서 배제하지 않았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러나 연구진은 일부 묘지에 대한 더 완전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추가 발굴이 필요하며, 엄격한 진단 기준이 모든 환자를 식별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켈멜리스는 "일부 사람은 박테리아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뼈에 흔적이 나타나기 전에 사망했을 수 있다"고 경고하며, "유전체 분석 방법을 활용하지 않는 한, 이러한 질병이 과거 사회에 미친 영향을 완전히 파악할 수 없을 것이다"고 덧붙였다. 

More information
Closer to godliness: a contextual study of osteoarchaeological and spatial patterns of diseased individuals in medieval Danish cemeteries, Frontiers in Environmental Archaeology (2026). DOI: 10.3389/fearc.2025.1699370 

Provided by Frontiers 


***


이번 연구성과는 미셸 푸코 그 유명한 광기의 역사가 말하는 그것과 연동한다. 

푸코에 의하면 중세 혹은 르네상스 시대까지만 해도 나병은 그다지 사회에서 격리되지 않다가 17~18세기 고전주의 시대가 개막하고 이성 중심 사회로 변모함에 따라 부적격자로 규정되어 감금되어 격리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런 주장은 그 사실성 여부를 두고서도 격론에 휘말리게 된다.

푸코가 사료를 오독했다는 것도 개중 하나다.

 
광기의 역사 by Michel Foucault
https://historylibrary.net/entry/%EA%B4%91%EA%B8%B0%EC%9D%98-%EC%97%AD%EC%82%AC

광기의 역사 by Michel Foucault

"중세 말에 나병이 서양 세계에서 사라졌다. 이에 따라 마을 변두리나 도시의 성문 근처에는 넓은 빈 터가 생겨나니, 이곳에 더 이상 역병이 엄습하지는 않았으나, 예전에 만연했던 역병으로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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