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본문 바로가기

견한잡록

노익장 과시, 정력 자랑 여성이야 폐경은 곧 생산 단절이지만, 남자는 그렇지 않아 기억에 피카소는 90에 자식을 봤다고 안다. 전통시대로 넘어가면 흔치는 않으나 70~80에도 가끔 후사를 생산했다. 당시 세태에서는 기록적인 장수를 한 심수경(沈守慶․1516~1599)은 건강관리를 잘했는지, 아니면 정력에 셌는지, 75에 자식을 낳고, 80에 다시 자식을 두었다. 그의  《견한잡록(遣閑雜錄)》에는 이에 읽힌 이야기가 보인다. 뭐 어투는 남사스럽다는 것인데, ..
책력 혹은 역서, 시간의 독점 시간은 제왕의 독점물이었다. 공간 역시 그러했다. 그래서 책력은 오직 제왕의 이름으로 공포되었으며, 지리지 역시 그러했다. 임진왜란은 그런 시간을 군주로부터 강탈한 사건이다. 심수경(沈守慶․1516~1599)의 《견한잡록(遣閑雜錄)》에 보이는 이야기다. 역서(曆書)는 국가의 큰 정사로, 중국에서는 매년 역서를 반포한다. 우리나라도 역서를 만드는데 중국과 비슷하여 별다른 차이가 없으나, 오직 주야(晝夜)에 있어서 중국은 극장(極長)이..
면앙정가와 가사문학 고려말 조선 초에 발생해 이후 유행하는 긴 사설형 운문형식 우리말 노래를 가사歌辭라 하고, 그를 둘러싼 문학 환경 전반을 가사문학이라 하거니와, 이에 대한 명칭으로 가사라는 게 과연 적당한지 나는 모르겠다. 심수경(沈守慶․1516~1599)의 《견한잡록(遣閑雜錄)》에는 면앙정가에 대한 평이 보이거니와 그에서는 그냥 '이어장가俚語長歌'라고만 했다. 근세에 우리말로 장가(長歌)를 짓는 자가 많으니, 그 중 송순(宋純)의 면앙정..
묘제와 봉분 무덤에 가서 조상을 제사하는 행위인 묘제墓制 혹은 묘를 살피는 성묘省墓는 실은 각종 의례서에서는 근거를 찾기 어렵다. 이는 아마도 어느 일정 시기까지 무덤에다가 그 표식인 봉분을 만들지 않은 데서 비롯한 것으로 나는 본다. 중국사를 보면 공자 이전에는 봉분이 없어, 일단 무덤을 쓰고 나면, 그 위치는 후손도 이내 잊어버린다. 그런 까닭에 장소도 모르는 묘제가 있을 수가 없다. 따라서 묘제의 제1 성립 조건은 그 위치 확인이다. 묘제를 둘러싼 이렇다 ..
서얼 차별, 그 부당성은 누구나 알았으나... 심수경(沈守慶․1516~1599)의 《견한잡록(遣閑雜錄)》에 보이는 이야기다. 국법(國法)에 서얼(庶孼)은 과거를 보지 못하도록 하는데, 이는 옛날에는 없던 일이다. 당초 이런 법을 세운 뜻이 무엇인지 모르겠고, 근래에는 벼슬길을 열어주자는 의론이 여러 번 있었으나, 결국 행해지지 않고 있으니, 또한 그 무슨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서얼로 문장에 능한 자는 앞선 시대에 어무적(魚無跡)과 조신(曹伸)이 가장 유명하고, 근세에는 어숙권(魚叔權)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