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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보고서7

발굴보고서 발간 2년 강제화, 그 의미 과거 문화재보호법, 그리고 현재 그에서 분리한 매장법, 더 정확히는 그 시행세칙인지로 기억한다만, 발굴은 완료한지 2년안에 보고서를 내야 한다는 강제 조항이 있다. 과거에도 있었지만 이는 사문화하다시피 했지만, 이를 정말로 법적으로 강제화하기 시작한지는 10년이 채 되지 않는다. 이를 처음 도입할 적에는 반대 일색이었다. 그 내막을 이해하지 않는 바 아니지만, 보고서를 제때 내지 않는 발굴 기관과 발굴자는 영원히 추방해야 한다는 믿음, 나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2년이라는 기간도 그에 타당한 이유가 있으면 한 차례 연장을 하는 걸로 기억한다. 언젠가 고백한 적이 있지만, 발굴완료 후 2년 안에 보고서 강제화에 나 역시 생각보다 더 깊이 관여했다. 내 신념이 옳다는 믿음 지금도 변함이 없다. 왜 2년안에 .. 2024. 1. 21.
발굴보고서 발간 법제화가 초래한 변화 이를 부른 주동세력은 첫째, 국립박물관 둘째, 대학박물관이었다. 국립박물관은 그 중요한 경주 조양동 유적을 파고도 30년 이상 보고서를 내지 않았다. 비단 조양동 뿐인가? 단 한 군데도 제대로 보고서를 낸 데가 없었다. 대학박물관은 더 했다. 그 옛날 통장 관리를 교수놈들이 개인 통장으로 할 때라, 발굴비는 지가 다 삥땅 쳐서 고급 승용차 굴리고, 아파트 사고 부동산 투자할 때라, 막상 발굴이 끝나고 나면 나몰라라, 유적 유물 정리가 하세월이었으니, 모든 대학박물관이 이 꼴이었다. 이 꼴은 더는 보지 못한다 해서 내가 칼을 뺐다. 틈나는 대로 조졌다. 그랬더니, 그런 빚을 진 자들이 다 이따우 소리를 해댔다. "연구도 제대로 안 됐는데, 보고서를 어째 내노? 섣부르게 보고서 내마 일본놈들만 좋데이" 내가.. 2021. 3. 31.
기자가 협박해 나온 경주 조양동 발굴보고서 2000년 무렵부터 발굴보고서 미간에 내가 각종 협박을 가하기 시작했다는 말을 했거니와 그에 굴복해 뒤늦게 나온 발굴보고서 중 조양동보고서가 기억에 남기에 이를 전한 당시 내 기사를 전재한다. 증언하건대 이 조양동보고서는 발간자가 김태식이다!!! 내가 협박해서 나온 것이다!!! 그 내력을 본다. 우선 아래 기사는 발굴보고서 1차분이 나왔다는 소식이다. 2000년 8월이다. 2000.08.30 10:18:23 경주 조양동 발굴보고서 21년만에 발간 (경주=연합뉴스) 김태식기자 = BC 57년 신라 건국 이전 경주 상황을 《삼국사기》 신라본기 혁거세 조는 "일찍이 조선(고조선)의 유민(遺民)들이 이곳에 들어와 계곡에다 각기 6촌락(村落)을 이루고 살고 있었다"고 하고 있다. 혁거세는 이들 촌락을 통합해 신라.. 2020. 12. 7.
유물등록 안한 기관들을 향한 고발장(2001) 이 기사를 쓴 시점이 2001년 7월이다. 이에서 다루는 발굴보고서 미간 문제는 심각한 문제로 대두했으며, 이 문제를 더는 미뤄둘 수 없다 해서 나는 그 전해부터 계속 문제를 삼았다. 이에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이 무렵에 이미 2000년 무렵에 발굴을 해제끼고 발굴보고서는 내지 않는 관행이 심각한 문화재행정 문제였다는 사실이다. 보고서를 안 낸 곳은 말할 것도 없이 국립박물관과 대학박물관 두 부류로 갈라진다. 이때 떠밀려서 몇 군데 내기는 했지만, 이후 특히 대학박물관은 배째라 해서 영영 나자빠진다. 그렇게 20년을 숨죽여 기다리다가는 그런 기억이 사라질 즈음, 발굴보고서 미간 문제는 국가가 책임질 일이라며 여론을 조성하기 시작해 마침내 그를 위한 국민세금을 빼갔다. 주객 전도가 일어난 것이다. 간단히 .. 2020. 12. 6.
서기 2000년은 나에겐 발굴보고서와의 전투였다 흐름이 있다. 유행이 있다. 풍납토성 문제가 겨우 안정되기 시작하면서 이후 나는 또 다른 사투를 벌였다. 다름 아닌 미간 발굴보고서와의 싸움이었다. 그 주된 침공 대상은 국립박물관과 대학박물관이었다. 이 친구들 주특기가 몇십 년 지난 발굴보고서를 계속 미간 상태로 두었다는 점이었다. 천지사방 발굴만 하고 보고서 안 낸 데가 수두룩 빽빽했다. 내가 짜증을 냈다. 왜 안 내냐 물으면, 맨날 하는 말이 똑같아서 "제대로 연구가 안 돼서.."라는 말이었다. 연구가 안 된 상태에서 섣불리 보고서를 낼 수 없다는 거였다. 물론 예산이 없어서 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애초 보고서 예산은 누가 어디다 말아쳐드셨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더 웃긴 건 문화재청. 보고서 안 낸 기관과 교수들 다 고발하고 문화재 현장엔 얼씬도.. 2020. 12. 5.
glossary를 도해한 발굴보고서 요샌 내가 발굴보고서 보지 않은지 하도 오래라, 이런 시스템이 지금은 일반적 현상인데 내가 뒷북 칠 수도 있음을 혜량바란다. 전남도관광문화재단 문화재연구소에서 2019년 발간한 발굴보고서 《[학술총서 6] 신안 흑산도 무심사지Ⅱ》를 이 연구소 홈페이지로 들어가 다운로드하고는 무심히 책장을 넘기다가 그 서두에 이 보고서에서 사용하게 될 기와 관련 용어를 정리한 이런 도판을 보았으니 참 좋은 시도로 본다. 다른 보고서들에서도 이런 방식을 많이 채택하는지 최신 정보에 어두우나, 내가 한창 보고서를 긁적이던 무렵까지만 해도 이런 도해는 전연 없었다. 그 어떤 보고서건 그 보고서에서 사용할 용어집 정리와 설명은 기본 중의 기본인데, 그런 대목에서 우리 발굴보고서는 무척이나 불친절했다. 이 용어집을 glossary.. 2019. 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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