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 부른 주동세력은 첫째, 국립박물관 둘째, 대학박물관이었다.
국립박물관은 그 중요한 경주 조양동 유적을 파고도 30년 이상 보고서를 내지 않았다. 비단 조양동 뿐인가? 단 한 군데도 제대로 보고서를 낸 데가 없었다.
대학박물관은 더 했다. 그 옛날 통장 관리를 교수놈들이 개인 통장으로 할 때라, 발굴비는 지가 다 삥땅 쳐서 고급 승용차 굴리고, 아파트 사고 부동산 투자할 때라, 막상 발굴이 끝나고 나면 나몰라라, 유적 유물 정리가 하세월이었으니, 모든 대학박물관이 이 꼴이었다.
이 꼴은 더는 보지 못한다 해서 내가 칼을 뺐다. 틈나는 대로 조졌다. 그랬더니, 그런 빚을 진 자들이 다 이따우 소리를 해댔다.
"연구도 제대로 안 됐는데, 보고서를 어째 내노? 섣부르게 보고서 내마 일본놈들만 좋데이"
내가 말했다.
"니미 씨발, 30년 동안 연구 안했음 연구 쫑 난거다. 내라! 씨발. 누가 니들더러 연구하라 했니? 니가 연구할 능력이나 되니? 어딜 팠더니 토층은 이렇고 이런 유적 유물이 나왔더라 이것도 보고 못한단 말이냐?"
별지랄을 다했다. 한마디로 못낸다는 것이었다. 사실 저 꼴은 일본고고학 고질이었다. 일본 고고학이 저 모양 저 꼴이다. 근데 한국에서 지난 10년 이상 발굴조사 완료 이후 2년내 강제보고서 발간을 법제화하고, 이를 준수하지 않는 기관은 퇴출하고 그 책임자는 처벌하기 시작했다.
이 변화가 일본, 그리고 중국으로 급속도로 퍼졌다. 중국?
이 친구들 요즘 발굴성과 각종 형태로 즉각 즉각 공간되기 시작했다. 과거와 같은 꽁치기 전통 없다. 거의 다 모조리 공개한다.
이 움직임, 한국이 주도했다는 거 아는가?
(2017. 3. 31)
***
이렇게 냅다 얻어터지던 대학박물관들이 언젠가부터 우린 발굴비만 받았지 보고서 발간 비용을 받은 적이 없다는 궤변 같은 논리를 내세우기 시작했다. 안 받아? 뭘 안받아? 다 삥땅 친거다.
이 논리와 별개로, 혹은 현실을 감안했음인지 문화재청에서도 2000년 이전 미발간조사 비용을 지원하기 시작해서 한창 그 작업이 벌어지고 있다.
이 사업, 언젠가는 철퇴맞는다. 2중지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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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협박해 나온 경주 조양동 발굴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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