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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비봉4

자연암반을 3단으로 깎아 비좌碑座를 만든 비봉 진흥왕순수비 북한산北漢山을 구성하는 여러 봉우리 중에서도 서해 쪽을 조망하는 비봉碑峰 정상 진흥왕 순수비 자리다. 2011년 가을에 포착한 모습인데 저 순수비는 그새 또 바뀌어 새것으로 교체되었다. 실물은 1971년인가 그 어간에 뽑아다가 국립중앙박물관에 쳐박아놨다. 난 이런 문화재 보존방식 누차 얘기하지만 증오한다. 우리가 눈여겨 볼 대목 중 하나는 비신碑身을 꽂은 대좌臺座다. 자연 암반석을 3단으로 턱을 지게 방형으로 깎고는 그 복판을 구유를 파듯이 구멍을 뚫고는 거기에 방형 비석 몸통을 꽂았다. 누차 지적했듯이 파주 감악산 꼭대기 몰자비沒字碑도 이와 똑같고 비 형식도 같다. 무엇보다 사방을 조망하는 산 꼭대기라는 입지조건도 같다. 감악산비도 볼짝없이 진흥왕비다. 비좌를 가로지른 크랙이 몇군데서 가 있는데 저건 .. 2020. 5. 1.
Monument of King Jinheung 진흥왕의 꿈 그 꿈은 무엇이었을까? 북한산 여러 봉우리 중에서도 유독 한강과 서해를 조망하는 저 비봉碑峰 꼭대기로 진흥왕은 왜 기어올랐을까?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 北漢山新羅眞興王巡狩碑 As one of the several markers set up to commemorate the visits of King Jinheung (r. 540-576) of Silla to the border areas of his newly expanded territory, this stone monument was originally located on one of the tallest Bukhansan peaks now called Bibong to commemorate Silla’s territorial exp.. 2019. 11. 4.
북한산 비봉 진흥왕순수비에 올라 진흥왕 순수비 논문 쓴다고 비봉碑峰에 몇번 올랐다. 보다시피 온통 암반이라, 이 일대에서는 조난사고가 요즘도 심심찮고, 사망에 이르는 일이 많다. 그만큼 험준한 곳이다. 이건 촬영일이 2011년 10월 16일이라고 찍힌다. 그 전에 이곳에 처음 올랐을 적에 나는 진흥왕 순수비眞興王巡狩碑에 대한 기존 해설이 모조리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종래의 압도적인 견해로는 신라 진흥왕이 유가적 왕도정치儒家的王道政治를 표방하기 위해 북한산으로 순수巡狩를 하고는 그 기념으로 이 비석을 세웠다는 것이다. 내가 본 북한산 비봉 현장은 유가적 왕도정치를 표방하거나, 선전할 수 없는 험준한 바위산이었다. 그렇다면 왜 진흥왕은 이런 데 행차했는가? 천신天神과 지기地祇를 제사하기 위함이었다. 특히 천신을 제사하기 위해서는 하늘과 가.. 2019. 10. 18.
천오백살 돌덩이에게 천오백년 부동자세로 섰다가 글자는 거의 다 지워지고모자는 잃어버렸으며몸통엔 총까지 맞았으니곳곳이 생채기라견디다 못해 중환자실로 갔다. 2018. 1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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