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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훈민정음 창제자가 세종임은 움직일 수 없다 '나랏말싸미' 논란 "역사 왜곡" vs "영화일 뿐"송고시간 | 2019-07-24 19:26 훈민정음 창제 과정을 둘러싼 송강호 박해일 주연 영화 '나랏말싸미'가 개봉하자, 그것을 누가 창제했는지를 둘러싸고 논란이 좀 이는 모양지만, 이는 이 영화가 느닷없이 신미信眉라는 중을 등장케 해서는 그를 실상 그 창제의 주체자로 설정했다 해서, 그런 모양이나, 이는 개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훈민정음은 세종 창제 맞다. 신미가 생뚱 맞게 왜 등장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신미가 훈민정음 창제에 간여한 흔적은 눈꼽만큼도 없다. 이는 무엇보다 훈민정음을 세종 어제御製라 한 데서 단적으로 확인한다. 그 창제를 둘러싼 모든 기록이 세종 어제라 하며, 무엇보다 세종 당대 기록을 토대로 해서 그의 죽음 직후에 편찬 완료한 세..
노종(奴宗) 금관가야 마지막 구형왕의 세 아들 중 맏이로 세종(世宗)이라고도 한다. 삼국사기 권 제4 신라본기 제4 법흥왕 : 19년(532) 금관국(金官國) 왕 김구해(金仇亥)가 왕비와 세 아들 즉 큰 아들 노종(奴宗), 둘째 아들 무덕(武德), 막내 아들 무력(武力)을 데리고 나라 창고에 있던 보물을 가지고 와서 항복하였다. 왕이 예로써 대접하고 상등(上等)의 벼슬을 주었으며 본국을 식읍(食邑)으로 삼게 하였다. 아들 무력은 벼슬하여 각간(角干)에 이르렀다. ☞세종(世宗)
찬탈과 양위, 그 시소게임 방원이는 왜 생전에 셋째 이도한테 양위했을까? 방석이 때문이다. 방석이가 실패한 원인..그건을 전복한 자가 본인이기에 어찌해야 하는지를 너무 잘 알았다. 성계가 실패한 이유는 골육의 정을 끊지 못했기 때문이다. 방석이를 제외한 모든 아들은 죽여버리거나 팔다리를 끊고 지방으로 위리안치했어야 한다. 이걸 본능으로 방원이는 알았다.한데 이도는 이걸 몰랐다. 아들이 병약함을 알았으되 그 아들을 지나 바로 손자에게 갈수밖에 없음을 알았을 것이로대 혈육에 이끌려 후사를 망치고 말았다. 권력은 부자라도 나누는 물건이 아니다. 태양은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