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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몽규3

윤동주와 송몽규 윤동주와 송몽규는 일본으로 유학가지 않고 그냥 다른 사람들처럼 숨어 살았으면 이 사람들은 안 죽고 해방 이후까지 살아남아 둘 다 대학교수나 시인으로 잘 살다 갔을 가능성이 많은 양반들이다. 이 양반들이 도일할 무렵에는 참으로 엄준한 시국으로 학병 징집이 시작될 형국이었는데 왜 이때 무리하게 일본으로 도일했는지 아마도 이 사람들은 젊은 시절 누구에게나 있는 학구열, 지적 욕구 때문에 일본으로 갔으리라 보는데, 아마 이때 도일하지 않았다면 해방 후 귀국했을 것이고, 한국전쟁이라는 또 다른 고비가 있긴 하지만 다른 그 또래 사람들처럼 잘 살지 않았을까. 사실 이 두 양반이 일본에서 취체되어 결국 옥사한 그 혐의도 아무것도 아니다. 아마 일본이 전쟁 때문에 광분한 시기가 아니었다면 그 정도로 죽음에 이르지도 않.. 2025. 4. 24.
윤동주와 송몽규 이 두 사람에 대해서는 민족시인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지만, 사실 개인적으론 이 두 사람은 민족시인이라는 이름만으로는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고 본다. 죽을 때까지 저항한 민족시인이라는 것인데-. 사실 윤동주와 송몽규는 80년대 대학가에 흔하게 존재한 젊은이들과 별차이가 없다. 시대가 암울하여 비운에 명을 달리하였을 뿐이다. 이 양반들은 그 고비만 넘겼으면 아마도 해방 이후 적당한 자리에서 자기 일을 하면서 살아갔을 것이고, 천수를 다하고 인생을 마쳤을 수도 있다. 요즘 태어났다면 요즘 젊은이들처럼 생각하고 고민하는 인생을 살았을 것이다. 대개 격렬한 저항으로 유명해 진 사람들은 인생에 대해서는 경외하지만 뭔가 나와는 다른 종류의 인간이라는 느낌이 커서 그만큼 멀게 느껴지는 것이 보통인데, 이 두 사람.. 2023. 9. 19.
일제시대의 지식인: [1] 윤동주와 [2] 송몽규 이 두 사람은 고종사촌 지간으로 이들의 이야기는 연전 "동주"라는 영화를 통해 잘 알려져 있다. 윤동주와 송몽규의 일제시대 프로필을 보면-. 윤동주: 명동소학교-광명중학교-연희전문 (문과) 송몽규: 명동소학교-대성중학교-연희전문 (문과) 이다. 연희전문을 마친 후 둘은 일본유학을 택하는데 결국 조선땅에서는 그 이상의 대학 교육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조선에서 택할 수 있는 길은 경성제대예과를 들어가거나 (이 경우 연희전문을 나왔으므로 고등학교 과정을 다시 듣는 꼴이다) 아니면 경성제대 본과로 들어가는 것인데 후자의 경우 본과 신입생은 경성제대 예과생, 고등학교 졸업생 등으로 우선순위를 정해 놓았으므로 이들은 사실상 경성제대에서 더 공부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따라서 연전과 보전 졸업자들은 대학공부.. 2023. 5.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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