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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골14

나주 영동리고분 인골 얼굴복원 일화 이 블로그 탑재 글 중 하나로 아래가 있으니 해골로 남은 나주 영동리의 고대인들 2020. 6. 14. 21:05 해골로 남은 나주 영동리의 고대인들 천오백년전 지금의 전남 나주 일대 토호들이 해골이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났다. 반남고분 인근 나주 영동리 고분군에서 동신대박물관이 조사한 백제고분에서 드러났다. 지금은 동신대 산학협력 historylibrary.net 맨 뒤에 보면 본래 원고 작성일자가 2016. 6. 10로 찍혔다. 저때는 내가 아마 해직시절이고 《직설 무령왕릉》을 출간한 직후라 겸사겸사 전국을 목적없이 유람할 때이며 아마 그 무렵에 저쪽에서 강연이 있지 않았나 기억하는데 암튼 이 나주 영동리 고분에 얽힌 일화도 하나 얘기해둬야겠다. 그곳 출토 저들 인골을 전시 중인 나주 복암리전시관은 이.. 2022. 6. 10.
화보로 보는 경주 월성 성벽 인골 발굴 이와 관련한 성과는 아래 우리 공장 박상현 기자 기사를 참조하라. 신라 월성서 또 인신공양 흔적…4세기 '제물 인골' 추가 발견 박상현 / 2021-09-07 09:00:00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발굴조사…신장 135㎝ 전후 왜소한 성인 여성 2017년 인골 2구와 인접…30여년전 20여구도 인신공양 가능성 https://k-odyssey.com/news/newsview.php?ncode=179539570295769 신라 월성서 또 인신공양 흔적…4세기 ′제물 인골′ 추가 발견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발굴조사…신장 135㎝ 전후 왜소한 성인 여성2017년 인골 2구와 인접…30여년전 20여구도 인신공양 가능성(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신라 왕성인 경주 월성(月城) 성벽 k-odyssey.com 이에 대.. 2021. 9. 7.
경주 탑동 주민이 보내온 탑동 유적 발굴현장 박찬진 선생은 천원마을 주민이며 이번 180센티 기호철 타입 장대 신라 인골이 나온 지점 옆집에 산다. 그가 어제 발굴현장 공개한 자리에서 찍은 사진을 잔뜩 보내왔으니 그걸로 이번 발굴성과를 즐감하기 바라노라. 목곽이 죽이는데 겉보기완 달리 망가지는 까닭에 수습 보존처리는 하지 못하고 그대로 복토한단다. 2021. 7. 16.
가마쿠라의 중세일본 인골 일본 가마쿠라鎌倉는 일본사 최초의 막부가 존재한 곳으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인류학자들에게는 일본 굴지의 중세 인골이 집단 발굴된 곳으로 학술적 관심을 끌었습니다. 가마쿠라 해안 지역에 있는 유이가하마由比ヶ浜에서는 당시 집단 매장된 인골 4000여 구가 발견되어 현재까지 당시 사람들의 체질과 질병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2020. 9. 15.
해골로 남은 나주 영동리의 고대인들 천오백년전 지금의 전남 나주 일대 토호들이 해골이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났다. 반남고분 인근 나주 영동리 고분군에서 동신대박물관이 조사한 백제고분에서 드러났다. 지금은 동신대 산학협력단이 위탁 운영하는 복암리전시관에 모셔놨다. 이 영동리고분군은 나랑도 인연이 무척이나 깊어 그것이 지하에서 깨어나던 날 나도 그 현장에 있었다. 인골 상태로 보아 얼굴 복원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인골이라면 입맛 다시는 일군의 무리가 있으니 그쪽에서 알아서 할 일이다. 그간 어디갔나 무척이나 궁금했다가 이리도 다시 조우하니 아름답도다. (2016.,,6. 10) 2020. 6. 14.
김해 예안리의 납작머리 편두扁頭 부산대박물관이 조사한 김해金海 예안리禮安里 고분군 77호분 인골이다. 이 분 두개골은 정상이다. 이 분은 같은 기관이 조사한 동 고분군 99호 인골..이 분은 납작머리 편두扁頭가 완연하다.99호분은 4세기 무렵 목관묘木棺墓로 간주된다. 두 분 다 김해 금관가야 분들이다.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동이전東夷傳에 진한辰韓의 풍습으로 “어린 아이가 출생하면 곧 돌로 그 머리를 눌러서 납작하게 만들기 때문에 지금의 진한사람의 머리는 모두 납작하다”라고 했으니, 이를 증명하는 편린으로 본다. 2019.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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