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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8

황룡사 터, 그 완벽한 폐허 어쩌다 경주를 다녀오고선, 그러고 또 어쩌다 황룡사 터를 찾고선 흔연欣然해져 넋을 잃은 작가는 말한다. "겨울이고 저물녘이라 더 그랬을 것이다. 봄이나 여름이나 가을이고, 새벽이나 한낮이라도 나름의 정취는 고스란했을 테다. 예술품에 '완벽하다'는 말이 쓰일 수 있다면 석굴암에 그러할 거라 했는데, 폐허에 '완벽하다'는 말을 쓸 수 있다면 황룡사지에 그럴 것이다." 그러면서도 못내 독자 혹은 청중이 믿기지 못한 듯 "그냥 가보시라, 황룡사지, 그토록 위대한 폐허"를 부르짖는다. 무엇이 이토록 그를 매료했을까? 그는 말한다. "화려했던 과거를 되짚을수록 현재의 폐허는 허무로 깊어진다." 상술하기를 "거대한 초석들 위에 세워졌을 거대한 기둥은 온데간데없다. 사라진 영화, 사라진 신전 앞에 머리를 조아릴 필요는.. 2022. 12. 8.
환멸 산다는 건 환멸과, 그리고 허무와의 투쟁이다. 이 전투가 늘 비극인 까닭은 패자는 환멸과 허무가 아니라 늘 그걸 부여잡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2015. 3. 28) 2021. 3. 28.
산신석 너머 미등으로 나는 석가모니보다 훨씬 어린나이에 제행무상을 체득했다. 싯달타는 해뜰 무렵 동쪽을 바라보며 깨달음을 얻었다지만 나는 어린시절 해질녘 뒷산 기슭 미등에 올라 인생이 이리도 허무함을 알았노라. 이를 알고서 부처는 환희를 얻었지만 나에겐 고통뿐이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저 산신석에 앉아 에세 프라임 한 대 빠니 그때의 허무가 입덫처럼 밀려왔다. 워즈워쓰가 스쳐가고 예이츠가 다녀갔다. (2016. 9. 22) 2020. 9. 22.
생평의 동지 아픈 사랑도 십년이면 족하다. 증오도 삼년을 넘지 못한다. 한데 허무는 생평의 동지다. (2015. 9. 9) 2020. 9. 9.
황룡사 낙조엔 구토 같은 허무가 지금은 앙상히 뻬대만 남은 경주 황룡사지皇龍寺址 하시何時도 상념 주지 아니한 적 없으니 비가 오면 비가 와서 미세먼지 덮으면 미세먼지가 덮어 눈 나리면 눈 나려서 잡풀 우거지면 잡풀 우거져서 그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도되 강렬한 한 방 그것이 휘몰아 칠 땐 저와 같은 상념들이 한가지로 휘몰이 하는데 나는 그걸 일러 구토 같은 허무虛無라 한다. 그건 니힐리즘nihilism이면서 그걸 뛰어넘는 더 숭고한 것이니 그 니힐nihil은 보들레르식 무기력이 아니요 니체식 바이탤러티vitality라 가장 죽고 싶을 때가 가장 살고 싶을 때라 황룡사 낙조는 그런 것이다. 내가 세상 좋은 일몰은 그런대로 경험했으되 오두산전망대의 그것과 이 황룡사지의 그것은 그 어디에도 견줄 데 없는 황홀 니힐 그것이더라. 가라 황룡.. 2019. 5. 21.
황룡사에서 바라보는 선도산 낙조 美란 무엇인가?이 물음에 나라고 무슨 뾰죽한 쾌변快便이 있으리오? 그럼에도 그 실체 오리무중인 美를 절감하는 순간만큼은 대략 알아차리니, 문득 시리도록 보고픈 사람을 떠올리게 하면 그 장면이 美요, 그때 떠오르는 사람이 진정한 너의 사랑이라는 것이다. 조울증 혹은 우울증 환자가 아닐진대, 마양 죽고픈 마음이 들면, 그런 상념을 문득 키운 경관이 곧 美라고 보면 대과가 없다. 경주 황룡사터에서 그 서쪽 산도산 너머 해 지는 광경 본 적 있는가? 보아도 보아도 물리지 않는 명장면, 그래서 언제나 그 자리 그 순간에 서면 가슴 아리며, 언제나 그 아린 과거가 파로라마처럼 롤을 이뤄 흘러가며, 목놓아서는 사는 게 왜 이리 좆같냐 부르짖고픈 그런 장소요 그런 시간이다. 그 붉음을 나는 늘 경이하며 찬탄한다. 저 .. 2019. 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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