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황금7 기원전 4천500년 전, 저들은 황금 떡칠을 하고선 활보했다 현재까지 금을 제련해 각종 물품을 만들어는 기술이 가장 빠른 곳은 메소포타미아도, 이집트도 아닌 불가리아 바르나Vaena 라는 흑해 연안이다. 이 일대를 중심으로 불가리아랑 루마니아가 흑해를 접한 연안을 따라 가장 이른 시기에 제련을 했다. 계속 소개했듯이 그 시점은 무려 기원전 4천500년!!!!우리는 암사동에서 움집 집고선 빗살무늬 토기 만들어 도토리나 주워먹던 시절이다. 저 무렵 무덤을 발굴했더니 저런 양상이었다. 그걸 토대로 얼마나 고증에 충실한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런 금부치를 생전에 걸친 모습을 복원해 보면 오른쪽과 엇비슷하다 한다. 저런 사람들이 암사동 신석기시대에 그 일대를 횡단하고 다녔단 상상을 해 봐라. 물론 우리는 황금 제련술이 아주 늦어서 이른바 낙랑 유적을 제외하고선 신라 권역에서 .. 2025. 5. 19. 지구상 가장 먼저 출현한 금은? 인류는 언제쯤부터 금을 제련 가공하기 시작했으며 그 한국적 발현은 언제일까? 후자의 물음에 한국고고학은 거의 꿀먹은 벙어리라 비단 금 뿐이겠는가? 구리는? 철기는? 석탄은? 수은은? 유리는? 이런 물음은 제대로 물어본 적도 없고 엉뚱한 토기 놀음으로 날밤까시는 중이어니와 암튼 현재까지 가장 이른 시기 황금유물이 발견된 곳이라 해서 선전되는 지점이 저 분이라 흑해 근처 지금의 불가리아 땅 바르나 묘지 Varna Necropolis 에서 확인한 Grave 43이라는 이름을 부여한 데서 드러난 자그마치 기원전 4천년대 한 남자 무덤이 되시겠거와 금으로 떡칠을 하셨다 한다. 이 바르나 네크로폴리스는 다른 자리서 상세히 다뤄볼까 한다. 2024. 6. 28. 다 녹여 재활용한 황금, 기적으로 살아남은 아우렐리우스 황금 흉상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를 묘사한 황금 흉상으로 1939년 4월 19일 스위스 서부 아방슈 Avenches 에서 발견된 로마제국 시대 유물이다. 높이 33.5㎝에 무게가 1.6㎏인 이 유물은 주시해야 하는 까닭은 우리가 보통 저 시대 저런 인물상은 보통 대리석으로 제작한다 알려졌지만, 그렇지 않음을 입증하는 한편, 저와 같은 황금 유물이 많았을진대 왜 남은 유물은 적은가를 궁구해야 하는 책무를 부여한다. 왜 드문가? 간단하다. 녹여서 재활용했기 때문이다. 실제 저런 로마제국시대 황금 홍상은 단 6점으로 알려진다. 고고학? 믿지 마라! 실상 허상을 탐구하는 학문이 고고학이다. 이 재활용 문제는 그만큼 심각하다. 고고학 근간 자체를 흔드는 문제다. 아벤티쿰 Aventicum 시고니에 신전 Cigognier.. 2024. 4. 25. 신라의 황금 유물들은 어디에서 왔을까? https://n.news.naver.com/article/023/0003770953 [단독] 신라 공주의 ‘금동 신발’도 찾았다 경주 쪽샘 44호분서 3년 전 출토된 5세기 후반 10대 소녀의 금 유물들… 당시에 못찾은 신발 조각 찾아내 내달 4일 유물 일체 현장서 공개 1500년 전 열 살 남짓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신라 공주 n.news.naver.com 유물에 대해서는 강평할 수준이 되지 못하므로 언급하지 못하지만, 저 금딱지 유물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은, 저 금을 저 시대에 제련해서 제작했을 것 같지 않다. 신라에 들어온 것은 금동장식을 제작할 수 있는 공인과 황금덩어리 아니었을까. 그 황금덩어리를 쓰고 쓰고 또 쓰다가 바닥을 드러낼 때쯤 되어 황금유물들도 사라진 것이 아닐지? 청동기와 황.. 2023. 6. 21. 식용으로서의 황금 금을 서양에서도 복용하는지 알 순 없으니 동아시아에선 없어서 못 먹었다. 金은 장기간 복용하면 몸이 가벼워지고 수명을 늘인다는 선약仙藥 중에서도 약효가 가장 뛰어난 상약上藥 중에서도 언제나 선두주자였으니 그 합성물을 금단金丹이라 했으니 금단은 황금과 주사였다. 나 오늘 금가루 복용했다. 한데 과식해서 몸무게 2키로는 늘고 수명은 일주일이 단축되었다. 과식하지 말지어다. 2020. 6. 5. 금괴를 찾는 박정희 이발사, 효자동 이발소 이야기 지금은 연합뉴스로 이름을 바꾼 연합통신에 1993년 1월 1일 입사해, 6개월에 걸친 수습기간을 끝내고 발령받은 부산지사에서 근무하던 시절이었다. 요새도 그러한지 모르겠지만, 그때만 해도 부산지사 신참기자는 언제나 남구 해운대에 배치되었으니, 이곳이 다름 아니라, 광안리 해운대 송정해수욕장을 낀 유흥지인 까닭이었다. 당시 부산 남구 인구가 60만을 상회했으니, 내가 서울로 옮긴 직후 그 일부를 떼어냈으니 그것이 수영구다. 당시 남구청 홍보 담당하는 공무원으로 대언론 업무로 이골이 난 분이 있었는데, 하루는 기자실에 들러서 전하기를 "희한한 사람이 있다. 박정희 대통령 전용 이발사였다고 하는 분인데, 그 분이 일본사람이 왜정 때 묻어놓은 금괴를 찾는다고 6년째 땅굴을 파고 있다"면서 취재하면 좋을 것 같다.. 2019. 3. 18. 이전 1 2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