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전체 글24235 [삼국강역] 분열한 기성학단의 서기 500년 무렵 지도 이것이 일반은 물론이요, 학계에 통용하는 삼국강역도다. 475년 고구려-백제 전쟁 이후 550년대 신라에 의한 한강유역 점령까지 대강 저랬다고 한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적지 않아서 요새는 서서히 백제가 한강유역을 여전히 장악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런 반론에 의한 서기 500년 무렵 삼국 강역도는 얼추 아래와 같이 된다. 저 부분, 곧 한강 하류 유역이 관건이 된다. 암튼 저런 강역이 550년대 진흥왕 시대를 맞은 신라 팽창 정책에 따라 아래와 같이 변했다고 한다. 간평한다. 저 세 지도 중 지도1 기성 학단이 주장하는 서기 500년 무렵 강역도는 어림반푼어치도 없다. 그렇다 해서 지도2 백제의 한강 유역 상실설을 부정하는 기성 강단의 주장에 따른 서기 500년 무렵 삼국 강역도. 특히 백제.. 2026. 6. 8. 스페인 해안서 무더기로 발견된 투구가 로마 유물? 헛소리였다 알리칸테Alicante 대학교 제공30년 넘게 이 투구는 로마 시대 유물로 간주됐다.하지만 새로운 연구에 따르면 이 투구들은 중세 후기 지중해의 상업 및 군사 네트워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증거 자료임이 밝혀졌다.알리칸테 대학교(UA)가 주도한 연구를 통해 스페인 해역에서 발견된 가장 주목할 만한 무기 유물 중 하나인 43개의 투구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졌다.이 투구들은 1990년 베니칼로Benicarló 해안 피에드라스 데 라 바르바다Piedras de la Barbada 수중 고고학 유적에서 발굴되었다. 케임브리지 대학교 출판부에서 발행하는 Antiquity에 발표된 이 연구는 알리칸테 대학교와 살레르노 대학교University of Salerno 공동 지도를 받는 박사 과정 학생 마누엘 프랄리치아르.. 2026. 6. 8. 완전히 끌어엎고 새로 짠 삼국 강역도 물론 아주 정확하게 그릴 수는 없다. 대강이라고만 해 둔다. 이것이 무엇인가?서기 500년 무렵 신라 고구려 백제 삼국 간 국경 영역이다. 내가 볼 적엔 지금 우리한테 통용하는 삼국강역도는 다 틀렸다. 내가 제시한 저 얼추하는 삼국강역도야말로 이를 두고 전개하는 모든 논쟁을 한 방에 끝장내며무엇보다 삼국사기가 말하는 삼국 강역[더욱 정확히는 그것을 분탕질하는 역사학도들 문제겠지만] 을 봄눈 녹듯이 사라지게 만든다. 지금 생각하는 저 무렵 삼국강역도는 저 곡선을 전연 고려하지 못했다. 삼팔선 혹은 휴전선에 가까운 직선 코스로 생각했다. 간단히 말하면 475년 전쟁 이후에도 백제는 한강 유역을 고구려에 상실한 적이 단 한 번도 없고, 신라는 아주 일찌감치 동해안 일대는 다 먹어 버린 상태였으며, 고구려는 백.. 2026. 6. 8. 모칭 유학은 어떻게 호적과 족보를 고쳤는가 흔히 조선시대에는 족보를 돈 주고 샀다던가, 남의 족보에 이름이 끼어 들어갔다던가 하고 이야기들 하지만, 족보에 대해 조금만 살펴 보면 이것이 그렇게 만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잘 알다시피 족보와 호적은 한 몸으로 표리를 이룬다. 족보는 호적을, 호적은 족보를 서로 지지하는 형국이기 때문에 어느 하나 바꾼다고 졸지에 그 동네에서 양반 행세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알다시피 조선시대에는 3년에 한 번 호적을 만들었는데, 당사자가 호적 단자를 올리면 관에서 이를 받아 3년 전 호적과 대조하여 확인하고, 새로 만든 호적을 3부 만들어 하나는 그 동네 관에서 보관하고, 한부는 관찰사, 한부는 중앙정부에서 각각 보관하였다. 따라서 양반 족보 하나 산다고 내가 양반이 될 수 있는 것.. 2026. 6. 8. 신라는 왜 하필 울진 죽변에다 비석을 세웠는가? 동해안 코스는 내가 일부러 포항을 시작으로 강릉까지 서너 번을 자동차로 주파해 본 적 있다. 지금이야 도로가 잘 뚫린 데다 풍광도 좋지만 신라 시대로 들어가 그 당시에도 그러했는가는 별개 문제라이 현대의 도로가 신라시대 그 도로를 근간으로 삼느냐는 별개 문제라, 이건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금새 안다. 무엇보다 지금의 현대 동해안변 도로가 통과하는 지점이 저들 도로가 닦이기 전인 반세기 전, 혹은 백년 전으로만 돌아가도 이 동해안 코스는 막히는 데가 너무 많다. 간단히 말해 해변을 따라 경주 혹은 포항에서 강릉 속초까지 걸어서 간다?가다가 산적 만나 죽고, 호랑이 만나 밥이 되고 만다. 지금은 경상북도로 편입됐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강원도로 분류된 울진 땅에 죽변이라는 데가 있다. 요새는 뭐 .. 2026. 6. 8. 부여 송국리, 농꾼들한테는 신이 내린 땅 나 같은 소백산맥 기슭 산촌 출신은 환경에 특히 더 민감해서 생경한 풍경을 만날 때마다 대뜸 이곳이 농사 짓기에 좋은 땅인가 아닌가를 본다.만경평야..놀란다. 논이라 해 봐야 천수답이 전부인 줄 안 나 같은 놈한텐 끊임없이 펼쳐지는 비옥한 충적 평야가 부러울 뿐이다.그래 산이 안 보이더라.문젠 그 다음.농업 근대화 이전으로 돌아가 이 넓은 땅을 농토로 일군다? 웃기는 얘기다. 이 넓은 땅을 누가 소로 간단 말인가? 다음. 지금이야 수리시설이 잘되어 있지만, 전근대로 돌아가서 이랬을까? 웃기는 짜장이라, 이 드넓은 평야는 실은 범람지대라 농사를 지을 수가 없다. 그래서 그 광대무변한 풍광과는 달리 나한테는 영 좋지 아니한 땅이었다. 다음. 비슷하지만 조금은 다른 호남 내륙 준평야지대. 흙을 보니 이건 뭐 .. 2026. 6. 8. 오하이오 골프장에서 느닷없이 튀어나온 아데나 시대 석기 도구 더미가 미스터리를 심화하다 미국 오하이오 한 골프장에서 우연히 발견된 유물은 고고학자들에게 특이한 수수께끼를 남겼다. '조슈아 캐시Joshua Cache'로 알려진 이 유물 더미에는 정교하게 제작한 양면 석기stone bifaces 11점이 포함되며, 이 석기들은 이후 현대식 건설 공사 과정에서 지면이 변형된 채 묻혀 있었다. 연구진은 수년간 이 유물들을 연구했지만, 그 연대와 용도에 대한 많은 의문점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이 이야기는 2021년 1월, 조슈아 페터Joshua Fetter가 슈거 크릭Sugar Creek 골프 코스의 연못 근처에서 나뭇잎 모양 돌기둥을 발견하면서 시작되었다. 이 지역은 미래 주택 개발을 위한 부지 정지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첫 번째 유물을 발견한 후, 그는 작은 구역을 조사해 여러 개 유물을 더.. 2026. 6. 8. 콜로세움 인근 이태리 학생들이 학교 체육관 아래서 1,800년 된 로마 호화 주택 발견 장난기 넘치는 고등학생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고고학자들이 콜로세움 근처에서 서기 2세기경에 지은 크고 호화로운 로마 주택을 발굴했다.수년 동안 로마 콜로세움에서 불과 몇 걸음 떨어진 한 고등학교 학생들은 체육관 바닥 아래에 신비로운 방들이 숨어 있다는 이야기를 지어내곤 했다. 이제 그 소문이 사실임이 밝혀졌다.학생들은 몰래 여러 차례 탐험을 하던 중 학교 아래에서 고대 구조물을 발견했다.이를 알게 된 선생님이 당국에 신고했고, 고고학자들이 현장에 도착해 자세한 조사를 진행했다.올해 초 진행한 발굴 조사 결과, 어두컴컴한 복도와 희미하게 불이 켜진 방들이 실제로 2세기경에 지어진 호화로운 빌라 일부였던 것으로 밝혀졌다.카보우르 과학고등학교(Liceo Scientifico Cavour)는 콜로세움 근처에 위.. 2026. 6. 7. 14,400년 전, 다섯 사람과 한 마리 개가 소나무 가지 등불 삼아 이탈리아 동굴로 들어갔다 이탈리아 북서부 바수라 동굴Bàsura Cave에 대한 새로운 연구를 통해 약 14,400년 전 후기 구석기 시대 사람들이 깊은 지하 통로를 어떻게 이동했는지에 대한 새로운 증거가 제시되었다.연구진은 꽃가루pollen 연구, 숯 분석, 고고학적 발굴, 그리고 실험을 통해 동굴 안에 발자국이 남아 있는 에피그라베트Epigravet 시대 방문객들이 사용한 조명 방식을 재구성했다.리구리아Liguria 지방 토이라노Toirano 마을 근처에 위치한 바수라 동굴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중요한 선사 시대 동굴 유적 중 하나다.이 동굴에는 화석화한 인간 발자국, 그들과 함께 이동한 개과 동물canid 흔적, 벽과 천장에 남은 숯 자국, 그리고 대량의 동굴곰 유해를 보존한다.고고학자들은 1950년대에 처음으로 이 유적을 .. 2026. 6. 7. 황토고원 룽산문화龙山文化는 어떻게 사회적 복잡성을 달성했을까? 고고학적 연구를 통해 드러난 식생활 구조의 비밀 (中国新闻网, 6월 7일) 황토고원의 사회적 복잡성은 용산문화龙山文化 시대(4600~4000년 전)에 급격히 증가했다.인신공희[殉人]의 등장은 이 지역 사회 진화와 계급 분화의 중요한 지표였다.그러나 이전까지 학자들은 서로 다른 사회 계층, 특히 무덤 주인과 희생자 사이의 식생활 차이와 생활 조건에 대해 체계적인 이해가 부족했다.중국과학원대학교 인문대학 고고학인류학과, 중국과학원 척추고생물학·고인류학연구소, 그리고 섬서성고고연구원 공동 연구팀은 최근 황토고원 옌안延安의 루산마오芦山峁 유적(4410~4080년 전)에서 발굴된 신석기 후기 룽산문화 순장묘[殉人墓葬]를 집중 연구했다.연구팀은 식생활 구조를 통해 무덤 주인과 순장자 사이의 신분 차이를 밝혀냈으며.. 2026. 6. 7. 순수巡狩를 소풍으로 아는 자들, 진흥왕의 경우 진흥왕 순수비 나온 김에 더 웃기는 이야기 하나 더 하겠다. 진흥왕 순수비에는 진흥왕이 저런 산꼭대기에 행차할 때 왕을 수행한 신료들 명단이 있다. 왕을 따라 쫄쫄 따라다니는 이런 일을 저 순수비에서는 수가隨駕라 했다. 따를 수에다가 수레를 탄다는 뜻을 의미하는 가자를 써서 저리 말한 것이다. 저 수가 명단을 보면 대략 스무명 남짓하거니와, 이는 승려 집단과 중앙 고위관료, 그리고 하급 실무 관료 정도로 삼분하겠으니, 그 숫자 합쳐봐야 저 숫자에 지나지 않는다. 한데 저 심각성을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왕이 서울을 떠나 전국을 주유하는데 이것이 어찌 큰 일이 아니겠는가?하지만 정작 저 문제를 다루는 이른바 연구자 집단은 실로 안이하게 접근하니, 저 비문에만 매달려 누가 행차를 수가했느니 그들의 직책이 .. 2026. 6. 7. 족보와 가승, 진위 판별을 위한 문헌들 족보와 가승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수백 년에 걸쳐 계속 당대의 상황을 반영하며 고쳐지고 팽창해 왔기 때문에오늘날 집집마다 전해지는 책자의 내용은 한마디로 말하면진위를 판별할 수 없다 하겠다. 여기 간단히 족보와 가승을 최소한 "준 역사학급" 수준까지 끌어올려 살필 수 있는데 필요한 여러 사료들을 적어본다. 물론 더 있을 수도 있겠는데 필자 역시 이 부분은 학술적 취지에서 접근한다 해도 아마추어는 아마추어인지라 한계는 있다고 할 수밖에 없겠다. 1. 조선시대의 여러 온라인 문헌 검색 툴: 한국학계 여러분이 애 쓴 결과 요즘에는 온라인 상에서 기본적인 사료, 실록이나 승정원일기, 문집 등 사료는 한 번에 검색 가능하여 도움이 된다. 전질이 번역되어 있는 추안급 국안도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다. 2. 문과,.. 2026. 6. 7. 지들이 모르면 덮어 놓고 제사, 진흥왕 순수비의 기이함! 고고학이건 역사학이건 나발이건 지들이 모르는 것을 만나면 이 족속은 주특기 혹은 본능이 제의祭儀 혹은 제사라, 모르는 유물 만나면 하는 말이 "제의 관련 기물로 추정된다" 하고 지들이 아리숑숑한 건물터를 만나기만 하면 더 가관이라 "모종의 제례를 치르던 곳으로 보인다"고 한다. 그래서 고고학 역사학에 제의 제례 혹은 제사는 소도蘇塗요 피안이다. 왜? 그렇다고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로서도 별 뾰족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말 나온 김에 그만 좀 제사 타령해라. 너희들은 너희가 모르는 건 무조건 어찌 그리 다 제사니? 그런가 하면 누가 봐도 이건 제의의 기념물, 곧 제장祭場인데, 그런 사실조차 까마득하게 모르고 지나가는 일이 있다. 견주건대 불상을 보고서도 석가모니를 모르고, 교회를 보고서도 예수를 .. 2026. 6. 7. 고거련, 그 공포정 독재정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광개토왕비 말 나온 김에 더 이상한 점이 있었다. 물론 찾아보면 꼭 없었다 할 수도 없을런지 모르고, 그에 따라 내 조사가 철저하지 못했다는 반론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정말로 저 점이 수상쩍기 짝이 없었다. 광개토왕비는 프로파간다다. 실록을 가장한 프로파간다다.모든 프로파간다는 그것을 작성한 주체가 있고, 그 주체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으며, 그것이 겨냥한 독자가 있기 마련이다. 내가 볼 때는 저 가장 기본하는 문제를 역사학은 묻지 않았다. 단언하지만 단 한 놈도 저 주체 문제와 독자 문제를 묻지 않았다. 물론 조금 선언을 한정하고자 한다. 제대로 혹은 진지하게 말이다. 단 한 놈도 저 주체와 독자 문제를 진지하게 묻지 않았다.이렇게 치환한다. 저런 비문은 이데올로기성이 더 농후하기 마련이다. 이를 검증하기 위.. 2026. 6. 7. 문중은 어떻게 몸을 불리는가 우리나라에서 족보가 만들어진 것은 조선 전기의 일로 문중마다 족보가 나와 정착한 것은 기껏해야 임란 이후의 일이다. 하지만 족보가 만들어진 이후에는 대략 2-3 세대 주기로 계보가 편찬되니100년 정도 주기로 족보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는 국립도서관에 소장된 고문서 족보를 열람하면 쉽게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족보는 최근 문중 인구가 수십만을 헤아리는 거대 종족들 족보도 정작 임란 이후 찍어낸 족보를 보면 아주 소략하여 책 한 권 정도를 간신히 묶어 낸 경우가 많다. 이렇게 간단했고 적힌 사람도 얼마 없던 족보가 그 후 수백년이 지나면서 점점 몸을 불려나가 지금과 같이 한 집안 수십 권에 이르는 엄청난 대동보까지 나오게 되는 것인데, 당연한 일이지만 이는 단순히 생물학적 인구증가만으로는 이렇게 될 수 없다... 2026. 6. 7. 잊힌 고대 인도 제국, 로마와 교역한 '사타바하나Satavahana 왕조' 1938년 10월, 이탈리아 고고학자 아메데오 마이우리Amedeo Maiuri는 고대 로마 도시 폼페이 발굴 현장에서 놀라운 발견을 했다.바로 정교하게 조각한 작은 상아 여성상이었는데, 거의 확실히 인도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한다.오늘날 폼페이 락슈미Pompeii Lakshmi 또는 폼페이 야크시Pompeii Yakshi로 알려진 이 유물은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만들었지만, 베수비오 화산 화산재 아래 묻혀 로마 세계 중심부까지 오게 되었다.학자들은 이 조각상이 힌두교 행운의 여신 락슈미를 묘사한 것인지, 아니면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는 자연의 정령 야크시를 묘사한 것인지에 대해 여전히 논쟁을 벌인다.하지만 이 조각상이 상징하는 바는 분명하다.고대 세계 최고의 문명 두 곳을 잇는 생생하고 구체적인 연.. 2026. 6. 7. 광개토왕비는 왜 처절한 사료비판을 피해 갔는가? 간단하다. 그에서 민족의 영광을 읽어내기 때문이다. 광개토왕비가 말하는 그 침략주의 팽창이야말로 우리가 이상이며, 우리가 꿈꾸어야 하는 주눅들고 쪽팔리기만 한 한국사 굴욕의 한 줄기 빛인 까닭이다. 봐라!저 비문이 말하는 프로파간다 얼마나 폼 나는가? 온 세상이 지꺼라는데, 그리하여 백제도 신라도 그 앞에 무릎을 꿇고 한민족 철천지원수 왜국도 박살을 냈다는데, 저 언설을 어찌 포기한단 말인가? 광개토왕비가 말하는 저 역사관이 바로 환단고기의 그것이다. 저 광개토왕비가 고구려 남긴 실록이며, 또 그것이 당대에 남긴 기록인 까닭에 그 진위는 따질 필요가 없으니, 우리는 따라만 가면 되며, 따라가며 위대한 광개토왕, 위대한 고구려 제국을 노래하기만 하면 그뿐이다. 왜?그들이 그리 노래했으니, 우리는 그것을 따.. 2026. 6. 7. 집안 야사에 휘둘리는 조선후기사 조선시대 소위 통설이라는 주장이 사료 연구로 간단히 뒤집히는 경우가 자주 보인다. 예를 들어 원래 이런 줄 알았는데알고 보니 이렇더라, 이런 내역들인데 20세기 이후 지방 사족들 목소리가 워낙 높다 보니 조선시대를 바라보는 시각도 그에 편중되어 그 주장을 토대로 그 시대를 바라보는 경우가 많은 바, 정작 문헌 고찰을 상세히 하면 간단히 논파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예를 들어 이전에도 이야기한 것 같지만, 우리나라 향촌 사족들 이야기가 조선후기사 이해에 영향을 주다 보니 지방 사족들이 엄청난 영향을 주고 사족으로 권위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지만, 이런 것은 멀리 볼 것도 없이 문과 방목만 살펴봐도 근거가 없고, 중앙 사족의 힘과 권위가 워낙 강고하여 향촌 사족은 이에 비할 바가 없다는 것이 명확하다. .. 2026. 6. 7. 폼페이 제빵소 유적 아래서 발견된 말 혹은 나귀 두 마리가 보여주는 화산 폭발 직전의 순간 폼페이 '순결한 연인들의 집House of the Chaste Lovers' 유적에서 고대 도시에서 일하던 동물들의 삶에 대한 새로운 증거가 발견되었다.제빵소 유적을 발굴하던 고고학자들은 무너진 건물 잔해 아래에서 말, 당나귀 또는 노새로 추정되는 말과 동물equids 두 마리 뼈를 발견했다.이 발견은 서기 79년 베수비오 화산이 폼페이를 파괴하기 직전의 마지막 순간들을 엿볼 기회를 제공한다.이 동물들은 20세기 후반에 처음 발굴된 지역을 정비하고 재조사하는 작업 중에 발견되었다.연구원들은 제빵소 오븐 옆 방에서 이전 발굴 작업에서 손대지 않은 흙을 일부 제거했다.그 아래에는 벽에 기댄 두 마리 대형 초식동물 유해가 놓여 있었다. 순결한 연인들의 집은 폼페이에서 가장 중요한 발굴지 중 하나로 꼽힌다.이 .. 2026. 6. 7. 이집트 텔 콤 아지자 유적에서 멧돼지 매장지 발견 이집트 베헤이라 지역Beheira Governorate에 위치한 텔 콤 아지자Tell Kom Aziza 유적에서 그리스-로마 시대 공동묘지 일부와 고왕국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정착 활동 흔적이 발견되었다.이는 이집트 역사 여러 주요 시대를 아우르는 긴 고고학적 연대기를 보여준다.이번 발굴은 이집트 최고유적위원회Supreme Council of Antiquities 산하 고고학 조사단이 수행했다. 이집트 관광유적부에 따르면, 공동묘지는 이전 거주층 위에 만들었으며, 지층 분석 결과 고왕국 시대부터 신왕국, 후기 왕조 시대를 거쳐 그리스-로마 시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발굴을 통해 다양한 매장지가 발견되었다.일부 무덤은 흙을 파낸 단순한 구덩이였지만, 다른 무덤들은 진흙 벽돌로.. 2026. 6. 7. 흥부 자식들 같은 선사시대 우리 조상님들 패션, 과연 그랬는가? 김단장께서 방추차, 반달돌칼 이야기를 쓰는 김에필자도 평소의 의문을 하나 조금 풀어보기로 한다. 바로 우리나라 신석기시대-청동기시대와 삼국시대옷의 디자인에 대해서다. 필자는 이쪽 전공이 아니라 매우 조심스러운데, 삼국시대 옷이야 무덤 벽화등 실물에 준하는 증거들이 있으니 비교적 정확히 그렸으리라 보지만, 우리나라 신석기-청동기시대 옷 디자인을 보면 예외 없이 통 옷감을 한 군데 구멍 뚫어 흥부네 집 애들처럼 입고는 허리에는 띠를 둘러 묶은 모습으로 그려 놓는데이거 과연 정말 그럴까. 왜 필자가 이렇게 의문을 갖는지 그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유명한 외치-. 외치가 발견된 알프스 꼭대기에서, 외치 자체는 벌거벗은 모습으로 발견되었지만, 그 주변을 뒤지니 당시 그가 입던 옷을 많이 수습하여 그 당시.. 2026. 6. 6. 이전 1 2 3 4 ··· 1155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