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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군은 마무리만 한 서원철폐] (5) 서자가 더는 의미가 없는 시대 앞서 19세기까지 과연 향촌 질서에서 학계 일부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전통적 사족, 향안과 청금록으로 상징되며 서원을 끼고 있는 이들의 힘이 조선이 망할 때까지도 유지되고 있었는가, 이 부분이 매우 중요한 지점이다. 필자 생각으로는 물론, 그 쪽 편에 선 이들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우리가 향촌의 정통 사족이며, 우리 동네 가면 호적에 유학이라고 쓰는 놈들 바글바글 하지만 그런 놈들은 본디 어디서 나온 놈들인지 뻔한지라, 무릇 향안과 청금록, 서원으로 상징되는 우리야말로 여전히 향촌 사회의 주인공으로, 새로 등장한 모칭 유학 따위야 우리에게 비할소냐,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문제는 앞서 노상추일기에서 본 것 같은 장면은 비단 안강 노씨 뿐 아니라 다른 성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전.. 2026. 5. 29.
동아시아를 집어삼킨 독극물 중독 바람, 진흥왕도 집어삼키다 우리는 앞서 위진남북조시대 말기 북제와 더불어 중원을 양분한 선비족 왕조 북주北周 황제 무제武帝 우문옹宇文邕과 돌궐 출신 그의 황후 아사나씨阿史那氏가 유해 분석 결과 모조리 수은 혹은 납과 같은 중금속 중독으로 30대에 훅 갔음을 확인했거니와 그 원인은 딴 게 없다. 시대 정신이 중금속 독극물을 약물로 요구한 까닭이다. 이때는 불교 흥성기이기도 하면서 도교가 한창 발흥하던 무렵이라, 도교 의학은 금단대약金丹大藥이라 해서 약물 한 방에 영원히 죽지 않은 불멸의 생명을 얻는 일을 추구했으니 문제는 영원한 한 방이기는 했지만, 그 영원은 영생永生이 아니라 죽음이었다는 데 있겠다. 약물 부작용에 따른 죽음은 제왕일수록 심했거니와, 그만큼 의료 혜택이 큰 데 따른 부작용이라, 그에 따른 희생자는 위진남북조시대를 .. 2026. 5. 28.
2천 년 전 운남성을 주름 잡은 전국滇國 사람들, 그들이 남긴 찬란한 유산 석채산石寨山 고분군 ***아래 몇 가지 용어 번역을 손을 봐야 한다. 조개 운운한 대목은 청동기로 치환해야 한다. 시간이 업어 일단 그대로 싣는다. (文博时空 作者 张闻, 2026년 5월 26일 10시 41분) 작은 언덕에 있는 “전왕滇王”의 무덤1953년 7월, 곤명昆明의 골동품상 왕파케汪发科는 감정을 위해 몇 점 청동 무기(단검短剑, 창矛, 도끼钺)를 운남성박물관 감정실로 가져왔다.전문가 리자루이李家瑞와 쑨타이추孙太初는 이 유물들이 청동기 시대 것은 맞지만 독특한 문양, 육중한 형태, 그리고 강한 지역적 민족적 특징이 일반적인 상나라와 주나라 시대 청동기와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즉시 알아챘다.박물관은 이 유물들의 가치가 높다고 판단해 구매를 제안했지만 골동품상은 발견 장소를 밝히기를 거부했고, 그 후로 단서는 끊겼.. 2026. 5. 28.
필자가 호적과 족보를 파는 이유 필자의 현재 작업, 족보와 호적-. 이 두 가지는 필자 후반 작업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앞으로 필자가 전개하는 작업을 지켜보시면 알 것이로되지금 필자가 시간이 남아 족보와 호적을 파고 있는 것이 아니란 뜻이다. 족보와 호적은 조선후기를 이해하는 문으로 들어가는 열쇠이고, 필자는 여기서 얻어낸 정보를 필자가 지금까지 해온 조선시대 사람들의 질병사 그리고 생활사와 연결할 생각이다. 이 작업은 필자 인생 종반기의 작업-자연과학과 인문학의 대통합의 중요한 한 부분이 될 것이다. 자세한 진행 내역은 아래, 새로 업데이트 한 필자의 홈페이지도 함께 참고해 주기 바란다. DONG HOON SHIN Notes and Reflections paleoshin.blogspot.com 2026. 5. 28.
냉전 시대 첩보위성이 아르메니아 우라르투 요새 주변 운하를 찾다 아라라트 평원Ararat Plain은 지상에서 보면 평범해 보일 수 있다. 아르메니아에서 가장 중요한 농업 지역 중 하나인 이곳에는 들판, 도로, 관개 수로, 마을들이 펼쳐진다. 하지만 위에서, 특히 냉전 시대 첩보위성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이 땅은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약 2,700년 전 우라르투Urartu 왕국 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오랫동안 땅속에 묻혀 있던 수로, 제방, 수리 시설의 흔적들이 발견된 것이다.Antiquity에 발표된 새로운 연구는 아르메니아 아르마비르Armavir 인근에 위치한 우라르투 요새 아르기슈티히닐리Argishtikhinili 주변 1,019.05km에 달하는 수리 시설들을 지도화했다.그중 연구진은 요새 주변에 주로 집중된 134.6km에 달하는 고대 수로 .. 2026. 5. 28.
루마니아서 금속 탐지기로 3,000년 된 희귀 금 목걸이 세 점 발굴 루마니아 수도 부쿠레슈티 북동쪽 프라호바Prahova 카운티에서 3,000년 된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이 발굴되었다. 이 유물에는 청동기 시대 금 목걸이가 포함된다.마르지네아 퍼두리Marginea Pădurii 인근, 우를라치Urlați 마을 근처 외딴 언덕에서 발견된 이 유물에는 총 무게가 300g이 넘는 거대한 금 목걸이 세 점이 들었다.금 목걸이와 함께 철제 바퀴, 작은 도끼 두 점, 청동 팔찌도 발견되었는데, 전문가들은 이 희귀한 유물들이 이 지역 청동기 시대와 초기 철기 시대 연대기에 대한 재평가를 요구할 수 있다고 말한다.이 발견은 일요일 오후, 허가받은 금속 탐지기 사용자가 탐사하던 중 이루어졌다.그의 탐지기가 주변에 도로도 없고 마을도 없는 외딴 지역 큰 돌 근처에서 강한 신호를 감지했다고 .. 2026. 5. 28.
이탈리아 반도 아드리아해변 바스토 태양광 발전소 건설 예정에서 로마 이전 공동묘지 2,300년 이상 된 바스토Vasto 공동묘지가 푼타 펜나Punta Penna 산업단지에 건설 예정이던 태양광 발전소 부지 조성을 위한 사전 조사 과정에서 발견되었다.이는 아브루초Abruzzo 남부 지역 이탈리아 공동체와 관련된 대규모 선로마 시대 매장지pre-Roman burial ground다.키에티Chieti와 페스카라Pescara 지역을 관할하는 고고학·미술·경관 감독청Soprintendenza Archeologia, Belle Arti e Paesaggio은 건설 공사 착공 전 필수적으로 실시한 예방적 고고학 조사 중에 이 발견이 이루어졌다고 발표했다.현대 에너지 프로젝트로 시작된 이번 발굴 작업은 로마가 아드리아 해안 지역을 완전히 장악하기 이전 수 세기의 역사를 엿볼 예상치 못한 창을 열어주.. 2026. 5. 28.
선비족 북주 황제의 돌궐 황후도 중금속 중독으로 32세에 훅 갔다 고고학 전문가들이 미스터리를 밝혀내다: 1,500년 된 궁궐 독살 사건의 비밀(시안일보, 2026년 5월 27일 11시 35분) 1,500여 년 전, 돌궐突厥족 공주 아시나씨阿史那氏는 장안長安에서 북주北周 왕조 왕가로 시집가서 무제武帝 우문옹宇文邕[성이 우문이며 옹이 이름이다]의 황후가 되었다.그녀는 32세에 세상을 떠나 남편과 함께 섬서성 함양咸阳의 효릉孝陵에 묻혔다. 천 년 후, 그녀의 유해에서 발견된 대퇴골 일부가 과학자들에게 놀라운 비밀을 드러냈다.그녀의 몸에서 일반인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납 중독[铅毒]이 발견된 것이다.푸단대학교 과학고고학연구원 원샤오칭文少卿 연구팀은 이전에 무제武帝의 외모를 복원하고 사인을 규명한 바 있으며, 이번에는 섬서성고고연구원과 협력해 효릉에 안치된 무제와 황후의 유해.. 2026. 5. 27.
선비족 출신 북주 황제 무제와 돌궐 출신 그의 황후 해골이 폭로한 선비와 돌궐의 기원[2024] 우문옹 얼굴 복원하고, 단약 복용에 따른 중금속 중독으로 사망 확인 (极目新闻, 2024년 3월 28일 19시 14분) 북주北周 무제周帝인 우문옹宇文邕(성씨가 우문宇文이다)은 36세 젊은 나이에 갑작스러운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그의 출신, 사인, 그리고 외모는 오랫동안 많은 사람 관심을 끌었다.최근 푸단대학复旦大学, 샤먼대학 厦门大学, 그리고 섬서성고고연구원陕西省考古研究院은 우문옹 무덤에서 발굴된 유골을 과학적으로 분석했다.그 결과, 우문옹의 죽음은 장기간 불로장생약을 복용한 것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내렸다.최근 공개된 얼굴 복원 이미지 또한 그가 북방 유목민 특징을 뚜렷하게 지니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2024년) 3월 28일, 섬서성 문물국陕西省文物局은 북주 고위 고분 발굴 연구의 .. 2026. 5. 27.
[스핀오프] 수포군관을 모아서 취재하겠다는 이야기는 왜 나왔을까 앞에서 쓴 바. 우리나라 영조대에는 균역법이 실시되어 일반 백성들은 두 필씩이던 군포를 한 필씩으로 줄이고 그 차액만큼 다른 데서 수입을 보충하고자 한 바,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런 일이 있을 때면 차출되어 나오는 이들이 향촌 중인, 자신은 양반이라 생각하지만 정작 양반들은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서자들을 중심으로 한 이들로, 이들이 동네마다 차출되어 수포군관이 되어 졸지에 군포 한 필씩을 내야 하게 되었다. (교과서적으로는 선무군관이지만, 수포군관이라는 이름도 당시 혼용했으므로 그냥 수포군관으로 쓰겠다)이들은 원래 양반이라 하여 안 내던 군포를 한필이라도 내게 되었으니그 불만이 하늘을 찔렀는데, 그래서 달래기 용으로 나온 것이 바로 이들에게 수포"군관"이라는 이름을 준 것이다. 그런데 수포 .. 2026. 5. 27.
조선후기..향촌 중인을 주목하라 우리나라 조선시대 건국 시점, 소위 여말선초 사족들은 그 조상들을 따라 올라가면고려시대 호장 집안이 많다. 물론 고려시대 호장은 조선시대와 달라 지방의 실제적 지배자라하기는 하지만, 고려시대 역시 조선시대와 마찬가지로 권력의 정점은 개성을 중심으로 그 인근에 몰려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호장 집안은 향촌의 지배세력으로 고려사회에서는 중앙 귀족보다는 떨어지는 존재라 하겠다. 이들이 조선건국과 함께 일제히 부상하여 호장 집안이었던 이들이 중앙 사족으로 변신하면서, 남아 있는 호장의 잔여 세력을 점차 향리로 퇴락시키는 것이다. 조선후기를 보면, 그 시대까지도 스스로 향촌의 주인을 자임한 이들이 있다. 그리고 그 틀을 뚫고 스스로의 힘으로 신분을 상승한 이들이 있으니이들이 바로 향촌 중인, 서자, 모칭 유학冒稱.. 2026. 5. 27.
[대원군은 마무리한 한 서원철폐] (4) "문중은 망했다" 서자들 집단 시위에 결국 굴복한 노상추 집안 우리나라 족보는 조선시대 후기 뒤쪽으로 갈수록처음에는 이름도 안 올리던 서자가 올라오기 시작하고, 나중에는 그 이름 앞에 붙어 있던 '서庶'라는 글자까지 떨어지는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집안 족보가 17세기부터 18, 19, 20세기에 대략 출간되었다고 본다면, 각 족보를 비교해 보면 상당히 재미 있는 구석이 많다. 17세기 족보에는 서자는 전혀 없지만, 18세기부터 서자가 등장, 이름 꼭지에는 서자를 붙이되, 19세기가 되면 서자라는 표식이 날라가기 시작하는 모습이 보인다. 우리는 이런 변화를 범상하게 봐서는 안 된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그리고 김단장께서도 이야기한 것 같지만, 주류 양반사회는 이들 서자에 대해 절대로 호의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들 입장에서는 왠만하면 얘들은.. 2026. 5. 27.
[대원군은 마무리만 한 서원철폐] (3) 피장파장이었던 "글자도 못 읽는 학생들" 임란 이후 향교가 서자들의 소굴이 되자(서얼이라고 쓰지 않는 이유는 노비로 편제된 얼자들이 향교에 교생이 되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 경우는 서자라고 좀 더 좁혀 쓰는 것이 옳다)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인조 대 이후 정기적으로 시험을 봐서떨어지는 이들은 향교 교생직을 박탈하고 군적에 편입하였는데, 그러다 보니 나오는 이야기가 당시"향교 교생들은 글자 못 읽는 이들도 있었다"하는 양반 측 프로파갠다에 한국학계가 무심히 동조하는 모습을 보이는 바, 솔직히 글자 못 읽고 구두도 못 떼는 이들이야 서자들만 있었겠는가? 양반 자제들은 이 고과에서 빼 놔서 그렇지 이들도 시험 보면 떨어질 놈이 수두룩 했으리라. 일단 무과 급제로 방향을 튼 양반 자제들 같은 경우, 제대로 구두 떼고 사서 삼경을 줄줄 외었을 이가.. 2026. 5. 27.
"혈통이 가족 기반?" 천만에, 고대 DNA가 폭로한 5천년 전 신석기 시대 '혼합 가족' 5천 년도 더 전에, 중앙 유럽 거대한 석조 무덤에 묻힌 사람들은 모두 한 혈연 가족의 구성원이 아니었다.어떤 이들은 혈연으로 얽힌 가족이었고, 또 어떤 이들은 단순히 혈연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연결고리로 얽혀 있었다.킬 대학교Kiel University 연구진이 주도한 새로운 고대 DNA 연구는 중앙 유럽의 신석기 시대 공동체가 예상치 못한 유연한 가족 구조를 지니고 살았음을 밝혀냈다.서로 다른 혈연 배경을 가진 아이들이 함께 자랐을 가능성이 있다.유전적 관계뿐 아니라 사회적 유대감 또한 한 가구, 공동체, 심지어 공동 매장지의 구성원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Science에 발표된 이번 연구 결과는 선사 시대 거석 무덤에 대한 오랜 통념에 도전한다.이 기념물들은 종종 혈연 가족.. 2026. 5. 27.
[대원군은 마무리만 한 서원철폐] (2) 서자들이 싫어 차린 딴집 살림 흔히 서원이 난립하게 된 이유로, 사족들이 향교의 교육에 불만이 있고, 훌륭한 스승 밑에서 성리학을 도야 할 만한 공간을 원해서 성립하고 어쩌고 이렇게 알듯모를 듯한 이유를 대지만, 집에서 공부를 안하는 애가 독서실 간다고 하겠는가?이 문제에 대해서는 대원군이 서원 철폐 때 통렬히 비판한 바 있으니, 서원 철폐를 도로 물려 달라는 향촌 사족들 요청에 대원군은,너네는 향교에서는 공부 못하는가? 라고 공박한 바, 통렬한 비판이라 하겠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향교에서 양반들이 박차고 나가 서원으로 모인 것은향교에 모여든 서자들 때문이었다. 이들이 바로 17세기 초반, 각종 문헌에 "교생"이라고만 직역이 적히는 이들로, 양반들이 "놀고 먹으며 향교에 등록해서 군역 빠질려는 놈들"이라고 이야기하면 바로 이들을 지.. 2026. 5. 27.
DNA 분석이 새로 쓰는 17세기 핀란드 사미족 남자 이야기, 십대 시절엔 아이슬란드 거주한 듯 투르쿠 대학교University of Turku 제공 투르쿠Turku 대학교와 그 협력자들이 진행한 새로운 연구는 17세기 초 핀란드 쿠사모Kuusamo의 키트카 호수Lake Kitka 근처에 묻힌 한 인물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을 제공한다. DNA 및 동위원소 분석 결과, 사미족 문화유산과 연관된 이 무덤 주인공은 현대 사미족과 유전적으로 연결되며, 핀란드 밖에서 삶의 일부를 보낸 것으로 나타났다.투르쿠 대학교 연구진은 1970년대 핀란드 쿠사모의 키트카 호수 근처에서 발견된 무덤 주인공을 대상으로 DNA 및 동위원소 분석을 실시했다.이 인물은 17세기 초를 산 것으로 추정되며, BMC Genomics에 발표된 이번 연구는 그의 생애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를 제공한다.약 40세 남성 치아에서 추출한 DN.. 2026. 5. 27.
영국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인구 유전체학이 밝혀낸 비밀 앵글로색슨과 켈트, 그리고 바이킹을 넘어: DNA가 밝혀낸 영국 이주 역사의 역동성 by 제이 실버스타인Jay Silverstein, 더 컨버세이션The Conversation 우리 각자는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있으며, 종종 상상 속 조상 계보를 통해 정체성을 추적한다.정체성은 근본적으로 문화적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생물학적, 즉 세대를 거쳐 전해지는 안정적인 유전적 유산이라는 개념에 기반을 두는 경향이 있다.인구 유전체학은 우리가 상상하고 싶어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역동적이며 서로 얽혀 있는 역사를 드러냈다.깊고 끊임없는 유산의 섬으로 오랫동안 간주된 영국과 같은 곳에서조차 유전 데이터는 활발한 이주, 혼합, 그리고 문화적 재창조로 점철된 역사를 시사한다.두 가지 새로운 연구는 로마.. 2026. 5. 27.
첨단기법으로 다시 분석한 25만 년 전 초기 네안데르탈인 치아, 기후변화 따른 역동적 진화 모습 드러내 by 스페인 국립 인류 진화 연구 센터Spanish National Research Centre for Human Evolution 스페인 국립 인류 진화 연구 센터Spanish National Research Centre for Human Evolution (CENIEH)가 주도한 이번 연구는 유럽 네안데르탈인의 복잡한 진화를 탐구하는 새로운 탐구로, 고고인류과학(Archaeological and Anthropological Sciences)에 발표되었다. 프랑스 남동부 파이르Payre 유적에서 발견된 화석 치아 분석을 바탕으로, 이번 연구는 약 25만 년 전 중기 플라이스토세 네안데르탈인 집단의 다양성과 진화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을 제공한다.프랑스와 호주 연구 기관도 참여한 이번 연구에서는 첨단 영상.. 2026. 5. 27.
[대원군은 마무리만 한 서원철폐] (1) 향교를 박차고 나선 서원 흔히 대원군의 서원철폐는 기세등등한 전통사족의 기세를 꺾은 것으로 평가된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사림의 대두 이후 사족들의 힘은 여전히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대원군이 철벽 같았던 금성탕지金城湯池를 공격했던 것은 아니다. 대원군은 다만 이미 백여 년에 걸쳐 꾸준히 힘이 빠진 이들 서원을 중심으로 뭉쳐 있는 세력에 대해마지막 한 방만 선사했을 뿐이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서원을 중심으로 한 사족, 이라고 이야기하지만이들은 서울을 중심으로 집권한 경화사족의 적수는 도저히 아니었다. 앞에서 쓴 것처럼 우리의 선입견과 달리 지방의 향촌 사족들은 요즘 이야기하는 것처럼 강력한 힘을 보유한 적이 없었고, 심하게 이야기하자면 대과는 언감 생심, 소과도 생원이나 간신히 걸리면 되는 정도의 집안.. 2026. 5. 27.
600년 전 명나라 시대 수술 도구에서 독성 약초 마취제 흔적 발견 중국 동부 명나라 무덤에서 출토된 수술 도구에 남아 있는 잔류물을 현미경으로 분석한 결과, 고대 수술 도구에 마취제anesthetic가 사용되었다는 최초의 직접적인 화학적 증거가 밝혀졌다. 이번 연구 결과는 14세기 중국 의사들이 의료 시술 중 통증을 줄이기 위해 독성 식물 화합물을 사용하는 정교한 방법을 개발했음을 시사한다.연구진은 장쑤성 장인Jiangyin에 있는 의사 하취안Xia Quan 무덤에서 출토된 철제 가위와 족집게를 조사했다. 이 무덤은 명나라 초기인 1348년에서 1411년 사이에 조성되었다. 분석 결과, 멍크후드monkshood 또는 울프스베인wolfsbane이라고도 하는 투구꽃 속Aconitum genus 식물에서 생성되는 독성 알칼로이드toxic alkaloid인 아코니틴aconi.. 2026. 5. 27.
만만하지 않은 서자들-노상추 일기의 백미 사실 노상추 일기 외에도 부북일기 등 조선시대 당시 출신군관의 일기는 처음이 아닌지라, 노상추 일기는 그 일기에 써 있는바, 영남사족들이 차별받고 있다는 불만, 이것 때문에 뜬 듯 하다. 부북일기가 그 사료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여성과의 염문에 대한 기록으로 졸지에 유명해 진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사실 부북일기의 저자들이 당시 다른 사족들과 비교해서 그다지 성적으로 분방했던 이들도 아닌듯 한데일기에 그만 덜컥 그 이야기를 남겨 유명해져 버렸던 것처럼, 노상추 일기에서 쓴 것처럼 당시 영남지역이 유독 차별을 받는 상황도 아니었다. 오히려 서울 근교의 사족이 절대 우위를 점하는 우리 역사에서 볼때 이 지역 사족들이 대거 중앙에서 활동한 16세기가 비정상이었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각설하고-. 노상추.. 2026. 5.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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