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전체 글24242 [삼국강역] 남한강에서 쫓겨난 고구려, 보복을 다짐한 온달 아주 간단히 5-6세기 중반 무렵 삼국간 국경선과 충돌 지점이다.물론 저 기간 백제와 신라 사이에 다툼이 없지는 않았으나 전반으로 보아 갈등 국면은 매우 적다.빨간 x가 백제 고구려가 쌈박질하는 구간이고 파란x가 신라 고구려가 충돌하는 전투라인이다.신라 고구려는 남북 국경선에선 붙은 적이 없다. 태백산맥이 있기 때문이다.집중적으로 충돌하는 구간 중 하나가 지금의 강릉 삼척 일대 신라 영토다.나는 계속 고구려는 동해안을 진출한 적이 없다 하는데 이건 명백하다.저 동해안 북쪽을 침략할 때 고구려는 언제나 말갈을 의지한다.왜 말갈인가?동해안 본래 주인이고 고구려 시대에도 고구려에 신속하기는 했으나 완전 복속도 아니며무엇보다 저 동해안 땅이 본래는 말갈 영역이었기 때문이다.말갈은 신라에 이를 갈았다.야금야금 지.. 2026. 6. 9. [서평] 물고기 인문학과 조-명-치 해방 이후 이미 80년이 넘은지라 각 분야에서 꾸준히 자기 성과를 낸 분이 많다. 필자는 60 이후 작업으로 지금까지 해오던 조선시대 사람들의 건강과 질병상태를문헌으로 복원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세상 만사를 다 섭렵해야 하는데 당연히 필자의 수명도 유한하니이미 좋은 성과를 낸 분야가 있다면 그에 얹혀 가려한다. 필자는 조선시대 식생활 정보를 안정성동위원소 해석에 적극 활용하려 하는데, 그 중에는 일기에서 보듯이 우리 조상님들 단백질공급원으로 가장 중요했던 어류, 그 중에서도 바다 생선이 있다. 필자도 생선을 좋아하긴 하는데 고등어 청어 갈치나 구별하지 그 외 꼼꼼히 구별할 수준은 당연히 못된다. 생선 식별에 그런 수준까지 올라갔으면 당연히 필자가 지금까지 해오던 연구가 부실해졌을 터-. 민.. 2026. 6. 9. 머리 없는 7,000년 전 슬로베니아 농경 사회 해골들이 말해주는 것들 킬 대학교Kiel University 제공 머리가 없는 수십 구 인골이 마치 무작위로 겹쳐 있거나 나란히 놓인 모습은 언뜻 섬뜩하다.2022년부터 연구진들은 슬로바키아 브라블레Vráble 인근에 위치한 7,000년 된 정착지에서 이러한 유골들을 발굴한다.머리 없는 해골들은 고대 사회의 위기를 보여주는 끔찍한 증거로서 신석기 시대 대학살의 잔해일까?초기 뼈 분석과 지금까지의 발굴 결과들을 종합해 보면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반면, 우리에게는 특이해 보이는 매장 방식이 지역적, 더 나아가 광범위한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사회적 관행 일부였다는 증거가 있으며, 갈등이나 위기의 흔적은 극히 제한적입니다."킬 대학교(CAU) 마틴 푸르홀트Martin Furholt 교수는 말한다.그는 이번 연구 주저자이며, 해당 .. 2026. 6. 9. 80만년 전 초기 인류은 목적에 맞는 석기 제작 위해 현무암 의도적으로 선택 by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Hebrew University of Jerusalem새로운 연구에 따르면 약 80만 년 전 고대 인류는 단순히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돌을 사용하는 대신, 도구 제작 각 단계에 따라 특정 현무암basalt 채집지를 의도적으로 선택한 것으로 나타났다.연구진은 노출된 현무암과 현재는 매몰된 현무암 용암류에서 발견된 석기 도구의 지구화학적 "지문fingerprints"을 추적해 이 인류가 환경에 대한 상세한 지식, 뛰어난 계획 능력, 그리고 세대를 거쳐 유지되고 반복되는 장기적인 기술 전통을 지녔음을 입증했다.Scientific Reports에 발표된 새로운 연구는 게셰르 베놋 야아코브Gesher Benot Ya'aqov (GBY) 아슐리안 유적Acheulian site에서 발견된.. 2026. 6. 9. 빈돌란다 요새가 선물한 로마시대 샤워용 나막신 로마인들은 뜨거운 바닥으로부터 발을 보호하고 미끄러운 표면을 더 잘 이동하기 위해 목욕탕에서 나막신 형태의 신발clog-style footwear을 신은 최초의 사람들이었다.고고학자들은 하드리아누스 장벽Hadrian's Wall 인근 고대 로마 요새인 빈돌란다Vindolanda에서 수천 점 보존 상태가 양호한 신발을 발견했다.그중에서도 이 나막신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샤워용 신발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나무로 된 플랫폼 밑창wooden platform sole과 가죽 갑피leather upper로 구성된 "목욕용 나막신bath clog"은 오늘날 사람들이 탈의실 샤워실이나 네일샵에서 무좀과 같은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신는 슬립온 신발slip-on shoe과 유사한 형태다.하지만 로마인들은 라틴어로 "스쿨.. 2026. 6. 9. 고대 치석 분석을 통해 밝혀낸 일본 구강 미생물 군집의 지역적·역사적 변화 by 도호 대학교Toho University 일본 연구진이 인체 유골 치석dental calculus에 보존된 DNA를 분석해 일본인의 구강 미생물oral microbiomes 군집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구명했다.주로 에도 시대 사람들 치석과 현대인 치석에서 추출한 치석의 미생물 구성을 비교 분석한 결과 시대, 지역, 그리고 여러 구강 세균 종의 계통 발생과 관련된 차이점을 발견했다.이번 연구 결과는 치석이 인류 역사와 인간과 미생물 간 관계를 연구하는 새로운 길을 열어줄 수 있음을 시사한다.본 연구는 Scientific Reports에 게재되었다.도호대학교, 도쿄대학교, 규슈대학교 및 공동 연구기관 연구진은 에도 시대(1603~1868) 일본인의 구강 미생물군을 인골에서 추출한 치석에 보.. 2026. 6. 9. 만만치 않은 조선시대 족보와 호적 - CODA 앞에서 조선시대 족보와 호적이 만만치 않다는 이야기를 쓴 바,이 시대 족보와 호적이 개판 오분전이라는 인식을 갖게 된 건워낙에 19세기 삼정 문란에 엉망이라는 이야기를 교과서에서 반복적 주입을 한 데다, 족보도 날조에 사기로 가득찬 믿을 수 없는 문건이라는 선입견 때문인데, 사실 이 시대 호적과 족보는 거짓이 많은 건 사실인데, 그렇다고 해서 그 거짓이 방만함과 게으름의 산물인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족보와 호적은 정보를 수단收單하면, 그냥 싣거나 임의로 맘대로 고치거나 빼거나 한 것이 아니고, 반드시 이전 식년式年의 자료나 족보라면 이전 족보와 대조를 해서 그때와 비교하여 달라진 점을 확실 편찬자가 알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다시 말해 족보와 호적에 엉터리가 들어가더라도 방만함과 안일함.. 2026. 6. 8. [삼국강역] 분열한 기성학단의 서기 500년 무렵 지도 이것이 일반은 물론이요, 학계에 통용하는 삼국강역도다. 475년 고구려-백제 전쟁 이후 550년대 신라에 의한 한강유역 점령까지 대강 저랬다고 한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적지 않아서 요새는 서서히 백제가 한강유역을 여전히 장악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런 반론에 의한 서기 500년 무렵 삼국 강역도는 얼추 아래와 같이 된다. 저 부분, 곧 한강 하류 유역이 관건이 된다. 암튼 저런 강역이 550년대 진흥왕 시대를 맞은 신라 팽창 정책에 따라 아래와 같이 변했다고 한다. 간평한다. 저 세 지도 중 지도1 기성 학단이 주장하는 서기 500년 무렵 강역도는 어림반푼어치도 없다. 그렇다 해서 지도2 백제의 한강 유역 상실설을 부정하는 기성 강단의 주장에 따른 서기 500년 무렵 삼국 강역도. 특히 백제.. 2026. 6. 8. 스페인 해안서 무더기로 발견된 투구가 로마 유물? 헛소리였다 알리칸테Alicante 대학교 제공30년 넘게 이 투구는 로마 시대 유물로 간주됐다.하지만 새로운 연구에 따르면 이 투구들은 중세 후기 지중해의 상업 및 군사 네트워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증거 자료임이 밝혀졌다.알리칸테 대학교(UA)가 주도한 연구를 통해 스페인 해역에서 발견된 가장 주목할 만한 무기 유물 중 하나인 43개의 투구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졌다.이 투구들은 1990년 베니칼로Benicarló 해안 피에드라스 데 라 바르바다Piedras de la Barbada 수중 고고학 유적에서 발굴되었다. 케임브리지 대학교 출판부에서 발행하는 Antiquity에 발표된 이 연구는 알리칸테 대학교와 살레르노 대학교University of Salerno 공동 지도를 받는 박사 과정 학생 마누엘 프랄리치아르.. 2026. 6. 8. 완전히 끌어엎고 새로 짠 삼국 강역도 물론 아주 정확하게 그릴 수는 없다. 대강이라고만 해 둔다. 이것이 무엇인가?서기 500년 무렵 신라 고구려 백제 삼국 간 국경 영역이다. 내가 볼 적엔 지금 우리한테 통용하는 삼국강역도는 다 틀렸다. 내가 제시한 저 얼추하는 삼국강역도야말로 이를 두고 전개하는 모든 논쟁을 한 방에 끝장내며무엇보다 삼국사기가 말하는 삼국 강역[더욱 정확히는 그것을 분탕질하는 역사학도들 문제겠지만] 을 봄눈 녹듯이 사라지게 만든다. 지금 생각하는 저 무렵 삼국강역도는 저 곡선을 전연 고려하지 못했다. 삼팔선 혹은 휴전선에 가까운 직선 코스로 생각했다. 간단히 말하면 475년 전쟁 이후에도 백제는 한강 유역을 고구려에 상실한 적이 단 한 번도 없고, 신라는 아주 일찌감치 동해안 일대는 다 먹어 버린 상태였으며, 고구려는 백.. 2026. 6. 8. 모칭 유학은 어떻게 호적과 족보를 고쳤는가 흔히 조선시대에는 족보를 돈 주고 샀다던가, 남의 족보에 이름이 끼어 들어갔다던가 하고 이야기들 하지만, 족보에 대해 조금만 살펴 보면 이것이 그렇게 만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잘 알다시피 족보와 호적은 한 몸으로 표리를 이룬다. 족보는 호적을, 호적은 족보를 서로 지지하는 형국이기 때문에 어느 하나 바꾼다고 졸지에 그 동네에서 양반 행세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알다시피 조선시대에는 3년에 한 번 호적을 만들었는데, 당사자가 호적 단자를 올리면 관에서 이를 받아 3년 전 호적과 대조하여 확인하고, 새로 만든 호적을 3부 만들어 하나는 그 동네 관에서 보관하고, 한부는 관찰사, 한부는 중앙정부에서 각각 보관하였다. 따라서 양반 족보 하나 산다고 내가 양반이 될 수 있는 것.. 2026. 6. 8. 신라는 왜 하필 울진 죽변에다 비석을 세웠는가? 동해안 코스는 내가 일부러 포항을 시작으로 강릉까지 서너 번을 자동차로 주파해 본 적 있다. 지금이야 도로가 잘 뚫린 데다 풍광도 좋지만 신라 시대로 들어가 그 당시에도 그러했는가는 별개 문제라이 현대의 도로가 신라시대 그 도로를 근간으로 삼느냐는 별개 문제라, 이건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금새 안다. 무엇보다 지금의 현대 동해안변 도로가 통과하는 지점이 저들 도로가 닦이기 전인 반세기 전, 혹은 백년 전으로만 돌아가도 이 동해안 코스는 막히는 데가 너무 많다. 간단히 말해 해변을 따라 경주 혹은 포항에서 강릉 속초까지 걸어서 간다?가다가 산적 만나 죽고, 호랑이 만나 밥이 되고 만다. 지금은 경상북도로 편입됐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강원도로 분류된 울진 땅에 죽변이라는 데가 있다. 요새는 뭐 .. 2026. 6. 8. 부여 송국리, 농꾼들한테는 신이 내린 땅 나 같은 소백산맥 기슭 산촌 출신은 환경에 특히 더 민감해서 생경한 풍경을 만날 때마다 대뜸 이곳이 농사 짓기에 좋은 땅인가 아닌가를 본다.만경평야..놀란다. 논이라 해 봐야 천수답이 전부인 줄 안 나 같은 놈한텐 끊임없이 펼쳐지는 비옥한 충적 평야가 부러울 뿐이다.그래 산이 안 보이더라.문젠 그 다음.농업 근대화 이전으로 돌아가 이 넓은 땅을 농토로 일군다? 웃기는 얘기다. 이 넓은 땅을 누가 소로 간단 말인가? 다음. 지금이야 수리시설이 잘되어 있지만, 전근대로 돌아가서 이랬을까? 웃기는 짜장이라, 이 드넓은 평야는 실은 범람지대라 농사를 지을 수가 없다. 그래서 그 광대무변한 풍광과는 달리 나한테는 영 좋지 아니한 땅이었다. 다음. 비슷하지만 조금은 다른 호남 내륙 준평야지대. 흙을 보니 이건 뭐 .. 2026. 6. 8. 오하이오 골프장에서 느닷없이 튀어나온 아데나 시대 석기 도구 더미가 미스터리를 심화하다 미국 오하이오 한 골프장에서 우연히 발견된 유물은 고고학자들에게 특이한 수수께끼를 남겼다. '조슈아 캐시Joshua Cache'로 알려진 이 유물 더미에는 정교하게 제작한 양면 석기stone bifaces 11점이 포함되며, 이 석기들은 이후 현대식 건설 공사 과정에서 지면이 변형된 채 묻혀 있었다. 연구진은 수년간 이 유물들을 연구했지만, 그 연대와 용도에 대한 많은 의문점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이 이야기는 2021년 1월, 조슈아 페터Joshua Fetter가 슈거 크릭Sugar Creek 골프 코스의 연못 근처에서 나뭇잎 모양 돌기둥을 발견하면서 시작되었다. 이 지역은 미래 주택 개발을 위한 부지 정지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첫 번째 유물을 발견한 후, 그는 작은 구역을 조사해 여러 개 유물을 더.. 2026. 6. 8. 콜로세움 인근 이태리 학생들이 학교 체육관 아래서 1,800년 된 로마 호화 주택 발견 장난기 넘치는 고등학생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고고학자들이 콜로세움 근처에서 서기 2세기경에 지은 크고 호화로운 로마 주택을 발굴했다.수년 동안 로마 콜로세움에서 불과 몇 걸음 떨어진 한 고등학교 학생들은 체육관 바닥 아래에 신비로운 방들이 숨어 있다는 이야기를 지어내곤 했다. 이제 그 소문이 사실임이 밝혀졌다.학생들은 몰래 여러 차례 탐험을 하던 중 학교 아래에서 고대 구조물을 발견했다.이를 알게 된 선생님이 당국에 신고했고, 고고학자들이 현장에 도착해 자세한 조사를 진행했다.올해 초 진행한 발굴 조사 결과, 어두컴컴한 복도와 희미하게 불이 켜진 방들이 실제로 2세기경에 지어진 호화로운 빌라 일부였던 것으로 밝혀졌다.카보우르 과학고등학교(Liceo Scientifico Cavour)는 콜로세움 근처에 위.. 2026. 6. 7. 14,400년 전, 다섯 사람과 한 마리 개가 소나무 가지 등불 삼아 이탈리아 동굴로 들어갔다 이탈리아 북서부 바수라 동굴Bàsura Cave에 대한 새로운 연구를 통해 약 14,400년 전 후기 구석기 시대 사람들이 깊은 지하 통로를 어떻게 이동했는지에 대한 새로운 증거가 제시되었다.연구진은 꽃가루pollen 연구, 숯 분석, 고고학적 발굴, 그리고 실험을 통해 동굴 안에 발자국이 남아 있는 에피그라베트Epigravet 시대 방문객들이 사용한 조명 방식을 재구성했다.리구리아Liguria 지방 토이라노Toirano 마을 근처에 위치한 바수라 동굴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중요한 선사 시대 동굴 유적 중 하나다.이 동굴에는 화석화한 인간 발자국, 그들과 함께 이동한 개과 동물canid 흔적, 벽과 천장에 남은 숯 자국, 그리고 대량의 동굴곰 유해를 보존한다.고고학자들은 1950년대에 처음으로 이 유적을 .. 2026. 6. 7. 황토고원 룽산문화龙山文化는 어떻게 사회적 복잡성을 달성했을까? 고고학적 연구를 통해 드러난 식생활 구조의 비밀 (中国新闻网, 6월 7일) 황토고원의 사회적 복잡성은 용산문화龙山文化 시대(4600~4000년 전)에 급격히 증가했다.인신공희[殉人]의 등장은 이 지역 사회 진화와 계급 분화의 중요한 지표였다.그러나 이전까지 학자들은 서로 다른 사회 계층, 특히 무덤 주인과 희생자 사이의 식생활 차이와 생활 조건에 대해 체계적인 이해가 부족했다.중국과학원대학교 인문대학 고고학인류학과, 중국과학원 척추고생물학·고인류학연구소, 그리고 섬서성고고연구원 공동 연구팀은 최근 황토고원 옌안延安의 루산마오芦山峁 유적(4410~4080년 전)에서 발굴된 신석기 후기 룽산문화 순장묘[殉人墓葬]를 집중 연구했다.연구팀은 식생활 구조를 통해 무덤 주인과 순장자 사이의 신분 차이를 밝혀냈으며.. 2026. 6. 7. 순수巡狩를 소풍으로 아는 자들, 진흥왕의 경우 진흥왕 순수비 나온 김에 더 웃기는 이야기 하나 더 하겠다. 진흥왕 순수비에는 진흥왕이 저런 산꼭대기에 행차할 때 왕을 수행한 신료들 명단이 있다. 왕을 따라 쫄쫄 따라다니는 이런 일을 저 순수비에서는 수가隨駕라 했다. 따를 수에다가 수레를 탄다는 뜻을 의미하는 가자를 써서 저리 말한 것이다. 저 수가 명단을 보면 대략 스무명 남짓하거니와, 이는 승려 집단과 중앙 고위관료, 그리고 하급 실무 관료 정도로 삼분하겠으니, 그 숫자 합쳐봐야 저 숫자에 지나지 않는다. 한데 저 심각성을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왕이 서울을 떠나 전국을 주유하는데 이것이 어찌 큰 일이 아니겠는가?하지만 정작 저 문제를 다루는 이른바 연구자 집단은 실로 안이하게 접근하니, 저 비문에만 매달려 누가 행차를 수가했느니 그들의 직책이 .. 2026. 6. 7. 족보와 가승, 진위 판별을 위한 문헌들 족보와 가승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수백 년에 걸쳐 계속 당대의 상황을 반영하며 고쳐지고 팽창해 왔기 때문에오늘날 집집마다 전해지는 책자의 내용은 한마디로 말하면진위를 판별할 수 없다 하겠다. 여기 간단히 족보와 가승을 최소한 "준 역사학급" 수준까지 끌어올려 살필 수 있는데 필요한 여러 사료들을 적어본다. 물론 더 있을 수도 있겠는데 필자 역시 이 부분은 학술적 취지에서 접근한다 해도 아마추어는 아마추어인지라 한계는 있다고 할 수밖에 없겠다. 1. 조선시대의 여러 온라인 문헌 검색 툴: 한국학계 여러분이 애 쓴 결과 요즘에는 온라인 상에서 기본적인 사료, 실록이나 승정원일기, 문집 등 사료는 한 번에 검색 가능하여 도움이 된다. 전질이 번역되어 있는 추안급 국안도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다. 2. 문과,.. 2026. 6. 7. 지들이 모르면 덮어 놓고 제사, 진흥왕 순수비의 기이함! 고고학이건 역사학이건 나발이건 지들이 모르는 것을 만나면 이 족속은 주특기 혹은 본능이 제의祭儀 혹은 제사라, 모르는 유물 만나면 하는 말이 "제의 관련 기물로 추정된다" 하고 지들이 아리숑숑한 건물터를 만나기만 하면 더 가관이라 "모종의 제례를 치르던 곳으로 보인다"고 한다. 그래서 고고학 역사학에 제의 제례 혹은 제사는 소도蘇塗요 피안이다. 왜? 그렇다고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로서도 별 뾰족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말 나온 김에 그만 좀 제사 타령해라. 너희들은 너희가 모르는 건 무조건 어찌 그리 다 제사니? 그런가 하면 누가 봐도 이건 제의의 기념물, 곧 제장祭場인데, 그런 사실조차 까마득하게 모르고 지나가는 일이 있다. 견주건대 불상을 보고서도 석가모니를 모르고, 교회를 보고서도 예수를 .. 2026. 6. 7. 고거련, 그 공포정 독재정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광개토왕비 말 나온 김에 더 이상한 점이 있었다. 물론 찾아보면 꼭 없었다 할 수도 없을런지 모르고, 그에 따라 내 조사가 철저하지 못했다는 반론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정말로 저 점이 수상쩍기 짝이 없었다. 광개토왕비는 프로파간다다. 실록을 가장한 프로파간다다.모든 프로파간다는 그것을 작성한 주체가 있고, 그 주체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으며, 그것이 겨냥한 독자가 있기 마련이다. 내가 볼 때는 저 가장 기본하는 문제를 역사학은 묻지 않았다. 단언하지만 단 한 놈도 저 주체 문제와 독자 문제를 묻지 않았다. 물론 조금 선언을 한정하고자 한다. 제대로 혹은 진지하게 말이다. 단 한 놈도 저 주체와 독자 문제를 진지하게 묻지 않았다.이렇게 치환한다. 저런 비문은 이데올로기성이 더 농후하기 마련이다. 이를 검증하기 위.. 2026. 6. 7. 이전 1 2 3 4 ··· 1155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