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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레드퍼드: Decent하고 Generous 한 미국에 대한 조사 로버트 레드포드는 요즘 세대는 잘 모를 것이다. 로버트 레드포드에 대한 설명은 요즘도 한참 주가를 날리는 브레드 피트가 사실은 로버트 레드포드의 짝퉁이나 하위호환으로 배우 인생을 시작했다는 말 한마디로 족하다. 로버트 레드포드는 Decent 하고 Generous 했던 미국의 상징이다. 필자 세대가 기억하는 미국이란 그런 이미지였고 영화를 만들어도 뭔가 다르고 민주주의를 해도 뭔가 다른 그런 나라였는데 요즘 하도 희안한 꼴을 많이 보다 보니 필자가 알던 미국은 언제적 이야기인지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로버트 레드포드의 죽음은 그런 의미에서 필자의 세대에는 뭔가 좀 다르게 다가오는 것도 사실이다. 로버트 레드포드가 상징하는 decent하고 generous 한 시대가 다시 돌아왔으면 한다마는그게 쉽지 않을 것 .. 2025. 9. 17.
을축년 대홍수가 덮친 1925년의 대기근 1925년은 이른바 을축년 대홍수로 기억되지만 이 해에 수해가 오기 전, 봄에 이미 조선은 극심한 대기근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 당시 지면을 보면 연일 기근 소식이며 구황을 위한 각종 사회 캠페인이 펼쳐진다는 기사가 나온다. 대홍수는 이런 기근의 와중을 덮친 셈이 되겠다. 한참을 굶다가 이번에는 대홍수가 덮쳤으니 당시로서는 매우 살기 힘든 시절이었을 것이다. 산미증식계획 와중에 왜 대기근이 오는가? 조선에서 일본 쪽으로 미곡의 수출은 (조선이 식민지가 된 후부터는 이출移出이라 불렀다) 항상 조선 쪽에 쌀 부족을 낳았는데, 이 당시의 기근도 이와 관련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기근은 산미증식계획 와중에 발생했기 때문에 산미증식계획이 일본 측에 유리하고 우리에게는 불리한 것이라는 입장에서 이.. 2025. 9. 17.
배우 감독 모두 성공한 로버트 레드퍼드, 그 지울 수 없는 족적 현대 영화사에서 지울 수 없는 족적을 남긴 할리우드 영화 배우 겸 영화감독 로버트 레드포드Robert Redford가 미국시간 화요일 아침 유타주 자택에서 별세했다고 미국 언론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향년 89세.그의 이름은 한국 영화팬들한테도 지울 수 없는 족적으로 남았으니 스팅The Sting이며 아웃 오브 아프리카Out of Africa며, 특히 브레드 피트를 앞세운 흐르는 강물처럼A River Runs Through It 같은 작품이 특히나 인구에 회자했다. 60년이 넘는 경력 동안 레드포드는 "부치 캐시디와 선댄스 키드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 "제레미아 존슨Jeremiah Johnson", "스팅", "더 웨이 위 워The Way We Were", "모두가.. 2025. 9. 17.
쌀 말고는 내다 팔 것이 없는 조선의 20년대 식민지시대 신문만 봐도 그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 충분하다. 조선의 20년대-. 쌀 말고는 내다 팔 것이 없다.반면에 들여오는 물건은 일본의 공산품, 그리고 미국 유럽 등의 공산품이다. 일본과 미국 유럽 공산품 간에는 서열이 있다. 미국 유럽 공산품이 일본 공산품보다 상위에 있으며 일본 공산품은 그보다 못하지만 조선과 가까운 곳에서 생산되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일본 정부의 보호 무역 기조 등등으로 조선에서 판로를 찾았다. 아마 이 당시 돈의 흐름은 조선에서 쌀을 팔고 그 돈으로 일본의 공산품을 사서쓰는 방향으로 돌고 있었을 것이고, 이에 따라 당시의 신문 기사가 채워지고 있었다고 본다. 면직물로 세계를 지배하고 설탕으로 무역을 지배하는 제국주의에서 그 식민지로 부터 면화와 사탕수수 원료를 공급받는 .. 2025. 9. 16.
Smoked Mummy에 대해 아래 김단장께서 올리신 훈제 미라에 대해 써 본다. 이 미라 연구는 나름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필자도 전혀 관련이 없다고 할 수는 없어 아는 바를 남겨 두겠다. 이 훈제 미라는 사실 단백질로 이루어진 생명체의 시신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건조를 시킬 것인가 훈제를 할 것인가 하는 부분은 일차적으로 음식물의 저장과정에서 습득하게 되는 지식이며 이 중 훈제하여 조상의 시신을 보존하는 방식은 지금도 필리핀 등 일부 동남아시아 국가의 부족들이 행하고 있다. 물론 기원은 음식물 저장에서 왔겠지만 당연히 이 지역 사람들은 조상들의 미라를 이렇게 만드는 것은 그들을 조상으로 의식 때마다 모시고 나와 숭배하기 위해서이다. 여기서는 1만 2천년인가 전의 훈제된 미라를 찾았다 하니 이런 미라는 만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 2025. 9. 16.
[독설고고학] 각중에 땡긴 문암리 옥결 중국국가박물관 소장 옥결玉玦이라는 옥제품이라, 저 박물관이 소개하는 정보는 이렇다.新石器时代. 直径3.5厘米 青玉,此器扁圆环状,中部有小圆孔,一侧有窄缺口。最早的玉玦发现于内蒙古赤峰兴隆洼文化墓葬内,出土时位于人头骨的两侧,且缺口向上,应是耳环一类的装饰品。在新石器时代的玉制品中,玦分布相对广泛,各地多有出土。간단히 홍산문화 옥기라 한다. 이 분은 홍산문화 일파인 흥륭와문화兴隆洼文化 옥결玉玦로 내몽고 흥륭와 유지兴隆洼遗址 출토품이다. 이건 같은 신석기시대 玉玦이나 저짝 강남으로 내려가 강소성 남경南京 북양北阴 양영 유지阳营遗址 신석기 무덤에서 1958년 출토한 것으로 현재 남경박물관南京博物馆에 있다. 내가 우연히 바로 아래 고성 문암리 유적 한반도 신석기시대 옥결이 생각나서 AI 돌리고 해서 옥결이라는 자료들을 .. 2025. 9. 16.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자치통감과 그 강목 중국 역사서인 자치통감資治通鑑과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과 같은 전적이 조선 초기에 금속활자본으로 다양하게 간행된 것도 눈에 뛴다.자치통감강목의 초기 간본은 1428년(세종 10)에 간행한 경자자본庚子字本과 1438년(세종 20)에 수양대군에게 활자 주조를 명하여 인쇄한 병진자본丙辰字本이 유명한데,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성종대에 활자가 주조된 계축자癸丑字本도 남아 있다. 이처럼 자치통감강목이 다양하게 간행된 것은 송원대宋元代 이후 주자학이 체제교학體制敎學으로 정립되고 중국은 물론 한국과 일본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면서, 학자들의 필독서 중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세종은 자치통감강목을 애독하여 집현전 문신에게 훈의訓義를 만들게 하는 한편, 이를 간행하도록 명하였다.그리하여 1436년 진양대군(훗날 세조.. 2025. 9. 16.
출신이 다양한 구한말 관리들, 개천에서 난 용들 구한말 관리 중에는 물론 전통의 명가 출신, 혹은 정말 몰락양반이라는 잔반 출신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서자 출신, 중인출신, 그리고 모칭 유학 출신 등18세기까지도 제대로 된 관직 진출이 불가능했던 사람이 상당수 들어가 있으며이들 중 일부는 당시 정계의 최정점에까지 올랐다고 본다. 그리고 이 구한말 관리의 상당수는 일제강점기가 시작되자 그대로 총독부관리로 넘어갔거나 혹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조선인 동향을 주도하는 재야의 계층으로 남았다. 일제시대 이미 최고학부까지 공부한 사람은 필자가 보기엔 거의가 바로 이런 인적 풀에서 나왔다. 이들은 정치적 동향에 따라 일제강점기에는 혹은 독립운동도 한 사람도 있겠고, 혹은 열심히 돈을 번 사람도 있겠으며, 혹은 아예 친일의 길을 걸었던 사람도 있어 다양한 모습으로 분.. 2025. 9. 16.
찹쌀떡 팔다 중추원 의장도 되고, 고무신 장사도? 구한말 외부대신, 법부대신, 그리고 중추원 의장을 하다가 일제시대에는 작위를 받아 귀족 대접을 받던 이하영-. 그는 사실 이항복 후손으로"집안은 거족이나 직계에 벼슬이 없어 어릴때는 찹쌀떡도 팔고 동자승을 하려고도 했다"는 것이다. 그러다 구한말 출세하여 대신과 중추원 의장 등 크게 영달하였다. 고종 시기에 출세한 이 중에는 이런 사람이 많다. 원래 양반이었다가 벼슬이 끊어져 고생하다 출세했다는 것인데, 이하영은 찹쌀떡을 팔았다지만, 같은 구한말 군부대신을 지낸 이용익은 원래 양반 집안이지만 보부상을 했다 한다. 이들만이 아니라 구한말에 활약한 사람들은 대개 비슷한 집안 내력의 클리셰가 있는 경우가 많다. 원래 양반인데 벼슬이 끊어져 어릴 때 막일을 하며 고생을 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몰락양반의 후손인.. 2025. 9. 16.
운하를 막아세운 웨일스 로마 목욕탕 발굴 고고학자들이 로마 목욕탕으로 추정하는 석조 구조물을 발견하면서 웨일스 유서 깊은 운하 복원 작업이 예상치 못하게 중단되었다.몬머스셔 Monmouthshire 세픈 플라이트에서 발견된 이 유적은 문화유산 전문가들 사이에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주요 요새인 카를리온Caerleon에서 불과 6마일(약 9.6km) 떨어진 곳에서 이전에 알려지지 않은 로마 유적을 발견할 가능성이 있다. 헤리티지 데일리Heritage Daily 보도에 따르면, 로저스톤Rogerstone의 포틴 록스Fourteen Locks 운하 시스템 복원 작업 중 대칭적인 석조 구조물이 드러났다.수 세기 동안 쌓인 토사와 진흙 아래에 숨은 이 정교한 구조물들은 문화유산 당국이 개입하여 최근 웨일스에서 가장 중요한 고고학적 발견 중 하나가 될 수.. 2025. 9. 16.
"현대 플라스틱은 중요한 고고학적 기록" by 요크 대학교 University of York플라스틱은 고속도로, 샛길, 해변에 버려져 현대 사회의 재앙으로 간주되곤 한다.하지만 새로운 연구는 현대 플라스틱이 인류 역사의 중요한 시기에 발생한 활동과 행동을 기록하는 귀중한 자료이기도 하다고 주장한다. 이 연구는 Cambridge Prisms: Plastics 저널에 게재되었다. 유엔은 매년 4억 톤의 플라스틱이 생산되어 환경에 가장 큰 위협 중 하나로 작용한다고 추산한다. 환경에 미치는 영향 외에도 미세 플라스틱 입자는 인간, 동물, 식물에 일상적으로 침투한다. 그러나 이 연구 주저자인 요크 대학교 존 스코필드John Schofield 교수는 플라스틱이 현대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그는 "플라스틱을 독성 유산이자 환경 피.. 2025. 9. 16.
가장 오래된 1만2천년 전 미라, 동남아시아서 발견 by 아디티 라마크리슈난Adithi Ramakrishnan 과학자들이 동남아시아에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미라를 발견했는데, 그 시기는 최대 1만 2천 년 전이다. 미라화는 시신을 보존함으로써 부패를 방지하는 과정이다.칠레 아타카마 사막의 모래나 아일랜드 습지처럼 부패를 방지하는 환경이 조성된 곳에서는 자연적으로 이러한 과정이 일어날 수 있다.다양한 문화권의 인류 또한 조상을 기리거나 영혼을 저승으로 보내기 위해 방부 처리를 통해 미라를 만들었다. 이집트의 미라가 가장 잘 알려져 있지만, 지금까지 가장 오래된 미라 중 일부는 약 7,000년 전 현재 페루와 칠레에 산 친초로족Chinchorro이라는 어부들이 제작했다. 월요일 미국 국립과학원 회보(Proceedings of the Natio.. 2025. 9. 16.
18세기 호적과 노비 18세기 호적의 노비가 사실은 머슴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이 시대 호적을 직접 못 본 사람들이다.이 시기 호적은 주호 밑에 노비 이름을 줄줄이 적어두게 되어 있고, 이 노비들은 성도 없고 이름만 달랑 적혀 있고 아버지도, 어머니도 호적에 안 적는다. 그렇게 주호 밑에 종속된 사람들이라는걸 한 눈에 알 수 있다. 만약 머슴처럼 고용되어 일하는 사람이라면, 주호 밑에 종속되어 적힐 리도 없고, 아버지 어머니 이름 죄다 빼고 적을 리도 없다. 거듭 말하지만, 18세기 노비는 머슴이나 이런 고용된 사람들이 아니라, 인신이 예속된 사람들이다. 서양사에서 본다면 농노에 가장 가까울 것이라 생각한다. 이 상태에서 18세기 후반 거쳐 19세기로 들어가면서노비들이 주인으로부터 독립하여 독립 가구를 형성하고스스로가 주호가.. 2025. 9. 16.
걸핏하면 터지는 일본 화산섬에서 멸종된 식물 기원을 추적하다 by 도쿄 도립 대학 Tokyo Metropolitan University 제공 과학자들이 화산 활동이 활발한 일본 니시노시마Nishinoshima에서 멸종된 식물 개체군 기원을 추적했다.도쿄 도립대학 과학자들이 잦은 분화로 식생이 주기적으로 "재설정"되는 화산섬 니시노시마Nishinoshima에서 멸종된 식물 개체군의 유전적 계통을 구명했다. 이 계통을 인근 섬에서 추적하는 동안, 그들은 그곳에서 씨앗이 드물게 발견되는 "창시자 효과founder's effect"를 포함한 독특한 유전적 특징을 발견했다.이 발견은 고립된 환경에서 생태계 발달 초기 단계를 엿볼 수 있는 드문 기회를 제공한다. 이 연구는 식물 계통학 및 진화(Plant Systematics and Evolution) 저널에 게재되었다. .. 2025. 9. 16.
고기후 패턴이 미래 온난화 단서를 제공하다 by Rebecca Owen, Eos 이산화탄소(CO2) 농도 상승은 지구 대기 온도를 상승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그러나 해양의 열 저장과 탄소 순환의 변화를 포함한 느린 피드백 과정으로 인해 이러한 온도 변화가 즉시 나타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지구가 평형 상태equilibrium에 도달하는 데 수십 년, 심지어 수천 년이 걸릴 수도 있다. 그러나 기후 모델마다 평형 상태에 도달하는 시점에 대한 추정치가 크게 다르다.이러한 차이의 한 가지 이유는 "패턴 효과pattern effect", 즉 해수면 온도의 불균일한 변화가 대기 순환, 나아가 운량, 강수량, 열 전달에 영향을 미치는 독특한 해양 온난화 패턴을 만들어내는 방식 때문이다.이러한 복잡한 요인들의 상호작용은 온난화를 증가시키거나 감소시키고, 온.. 2025. 9. 16.
고대 토양 DNA가 5,000년 된 숯 의학 실체를 밝히다 터키 동굴에서 DNA 분석을 통해 선사 시대 사람들이 5,000년 전부터 소화기 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숯 기반 치료법을 사용했다는 증거가 드러났다.동시에 항생제 내성 유전자antibiotic resistance genes가 현대 의약품이 개발되기 수천 년 전부터 존재했음을 밝혀냈다.터키 종굴다크Zonguldak 주 이뇌뉘 동굴İnönü Cave에서 발견된 이 획기적인 발견은 고대 의학과 미생물 진화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최근 PLoS ONE에 게재된 이 연구는 터키 최초의 대규모 고대 DNA 토양 연구 중 하나다.존굴다크 뷜렌트 에제비트 대학Zonguldak Bülent Ecevit University 과학자들이 최첨단 메타게놈 시퀀싱metagenomic sequencing을 사.. 2025. 9. 16.
18세기 노비를 직시해야 한다 요즘 인터넷 보면 18세기 노비는 사기라던가 그게 아니라 그때 노비는 머슴이라던가 하는 이야기를 하는 경우를 보는데18세기에는 전국민 절반 이상이 노비가 맞다. 조선시대 호적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살아 있기 때문에역사를 그렇게 왜곡해서는 안 된다. 흔히 한국인들 스스로가 하는 말 있지 않는가,역사를 잊는 민족은 생존할 수 없다던가. 이 경우가 딱 그렇다. 18세기 노비를 이해해야19세기 유학 모칭자들이 여는 새로운 시대가 이해가 되는 것이다. 19세기의 그 자칭 "잔반"들은 잔반이 아니다. 몰락양반?19세기에는 몰락양반보다 더 많은 사람이 평민에서 노비에서 유학으로 올라와 았었다. 19세기의 많은 유학, 그 사람들은 원래 양반 후손이 아니라 대부분 평민, 아니 더 많은 수가 노비의 후손이었다. 19세기에.. 2025. 9. 16.
금계랍-키니네 광고 20년대 신문 광고를 보면국내산 광고가 거의 없다. 대부분 해외 수입품으로 미국 쪽에서 실어온 박래품이거나 일본산 공산품이 많은 것을 보면당시 조선의 척박한 산업기반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시점까지도 조선에서 내다 팔 것은 쌀밖에 없었던 셈이다. 위 광고는 약수입상의 광고인데, 금계랍과 각종 피부병 치료제를 팔고 있다. 금계랍은 키니네, 말라리아 약이다. 오늘날에는 열대지역 말라리아 감염이 우려되는 지역으로 여행하는 분들에게 사전 복용시킨다. 이 광고를 보면 키니네, 금계랍은 만병통치약이다. 학질 말고도 열병에는 다 복용하며 매일 조금씩 복용하면 보약으로도 쓸 수 있단다. 그러니 좀 비싼 듯 해도 집집마다 한 병씩 사두란다. 우리나라는 조선시대까지도 학질이 정말 많은 나라라 열이 날만 하면 금계랍을 먹으.. 2025. 9. 15.
고대 이집트 구리 제련 작업장 남부 시나이서 발굴 이집트 고고학 탐사대가 남부 시나이 와디 엘-나사브 유적Wadi El-Nasab에서 구리 제련 작업장 copper smelting workshop, 행정 건물, 관측소 등을 발굴하여 고대 이집트 광산업의 규모와 조직에 대한 새로운 단서를 제공했다고 이집트 언론이 최근 보도했다. 고대 이집트 최고유물위원회Supreme Council of Antiquities (SCA)에 따르면, 오랫동안 구리와 터키석turquoise 주요 산지로 알려진 이 유적은 고왕국 시대부터 후기 시대까지 활발하게 채굴되었으며, 특히 신왕국 시대에 가장 활발했던 것으로 추정한다. SCA 사무총장 모하메드 이스마일 칼레드Mohamed Ismail Khaled는 "발굴된 작업장, 다양한 모양과 크기의 구리 주괴ingots, 그리고 송풍구.. 2025. 9. 15.
20년대, 여러 명이 말하던 민족개조론 춘원은 30년대 말의 행보로이전까지 소급해서 욕을 먹고 있는 측면이 강한 듯 한데,사실 춘원이 민족개조론을 발표한 당시 (1922년)이 주장을 한 사람은 춘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여러 명이 있었음은 당시 신문을 보면 알 수 있다 그것도 아예 특집기사를 만들어 여러 명이 연재하거나 아니면 외국인에게 한국인의 결점, 고칠점을 이야기해 달라 하여그것을 정초의 신년 기사로 싣거나 하기도 했다. 이런 경향이 1922년에서 1925년 사이에 꽤 보인다. 아마 춘원처럼 30년대에 변절의 혐의가 생겼다면이 사람들도 덩달아 모두 소급하여 욕을 먹었을 것이로되 그렇지 않은 것을 보면 이 양반들은 대개 춘원처럼 인생 마무리를 하지는 않은 것 같다. 사실 이 당시까지만 해도 신문 사회면은 하루가 멀다하고 독립운동하는 이들이.. 2025. 9. 15.
문인으로 생활하는 춘원 1925년의 신문을 보면 춘원은 명백히 문인으로 생활이 가능한 수준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날짜 신문 하나만 보아도 영대靈臺라는 동인지에 그의 글이 실려 있고, 동아일보에 소설도 하나 연재하고 있었다. 동아일보에 연재 중인 "재생"작자가 "장백산인"으로 되어 있지만 이건 춘원이다. 장백산인이란 백두산인이라는 뜻이다. 이 소설 삽화를 그린 안석주는 KAPF 소속 예술가로 "우리의 소원은 통일" 작사가다. 당초 이 양반이 작사를 할 때는 "우리의 소원은 독립"이었다고 한다. 그의 아들이 노래를 작곡. 이 시기는 춘원이 이미 "민족개조론" (1922년)을 발표한 뒤라 이전과는 정치적 행보를 달리 할 때였다. 2025. 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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