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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숙-석품의 난] (2) 땔감은 어떻게 조달했는가? 신라 진평왕 시대가 말년에 접어든 그 재위 53년, 서기 631년 이찬 칠숙柒宿과 아찬 석품石品이 주도한 반란이 어떤 시대적 배경에서 모의되었음을 앞서 살폈거니와, 이제 우리는 사전 모의 과정에서 발각되어 일망타진된 이 난의 전개, 혹은 수습과정에서 일어난 사건을 통해 신라시대 경제사 한 단면을 들여다 보고자 한다.바로 땔감 조달 문제다.이 땔감이 인류문화생활사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는 새삼 강조할 필요는 없겠지만, 우리는 이 문제를 심각히 여긴 적이 별로 없다. 고고학계에서 숯가마 운운하며 떠드는 꼴을 봤지만, 팠더니 숯가마 나왔다, 딱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보고 수준에 머물 뿐이라, 그걸로는 택도 없다. 이를 이해하기 위한 절대의 전제로 나는 아래 백거이 시를 들거니와, 이 시에서 말하는 바로 .. 2026. 7. 27.
17세기는 18-19세기와 다르다 우리나라 조선후기사는 필자가 누차 여기에 썼지만, 17-19세기를 하나로 뭉뚱그려 대충 얼렁뚱땅 상황을 기술하는데, 예를 들어 이렇다. 조선시대 상품화폐경제, 자본주의 맹아 등을 이야기 하면서 17-19세기로 뭉뚱그려 쓰면서실제 증거는 19세기 것을 들이 미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 17세기부터 시작된 것처럼 기술한다. 필자가 각종 일기를 본 바로는, 우리나라 17세기는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이 시기는 좋게 포장해서 선물경제, 물물교환이 대부분으로돈이 돌지 않던 시기였다. 이 시점은 18-19세기와 함께 묶어서는 안된다. 필자가 보기엔 우리나라 조선후기의 분기, 기점은 17-19세기를 한데 묶어서는 안되고, 18세기 중반 이후를 따로 뗴서 앞과 분리해서 설명해야 하고, 그 기점이 이 언저리라는 것.. 2026. 7. 27.
10년에 걸친 시리아 내전은 문화유산도 거덜냈다 by 에이미 올슨Amy Olson, 다트머스 대학교Dartmouth College 2011년에 시작해 2024년까지 지속된 시리아 내전 기간 동안 수십 개 고고학 유적이 약탈로 파괴되었다.마지막으로 포괄적인 분석이 발표된 것이 2017년이었기 때문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팔미라Palmyra, 장기간 발굴 작업이 진행 중인 마리Mari, 그리고 거대한 열주로 유명한 고대 로마 도시 아파메아Apamea를 포함한 문화유산 유적이 2016년 이후에 본 피해 규모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다트머스 대학 새로운 연구에 따르면 시리아의 많은 고고학 유적이 도굴뿐만 아니라, 터키군이 점령한 지역에서는 조직적인 불도저 작업으로 훼손된 것으로 나타났다.이 연구 결과는 잡지 헤리티지Heritage에 게재되었다. 연구진.. 2026. 7. 27.
댐 건설로 수몰 위기 처한 앙골라 유적서 15세기 무덤과 화장 유골 발굴 샌디 오스터, Phys.org수력 발전 댐 건설이 임박하자 고고학자들은 댐 수몰 전에 앙골라에서 가장 오래된 매장지와 유일하게 알려진 화장 유골을 15세기 정착지에서 발굴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카쿨로 카바사Caculo Cabaça 유적에서 고고학자들은 앙골라 중부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석조 건물과 앙골라에서 가장 오래된 매장지, 그리고 이전에는 볼 수 없던 화장 유골을 발굴했다.이 연구는 야외고고학저널(Journal of Field Archaeology)에 발표되었다.하지만 유적이 댐 저수지 아래에 수몰될 예정이었기에 연구팀은 유골이 영원히 사라지기 전에 시간과의 싸움을 벌여야 했다."우리는 곧 사라질 것으로 예상되는 장소들을 우선적으로 발굴했습니다."파리 국립자연사박물관 Muséum national .. 2026. 7. 27.
반일종족주의 친일종족주의 다 좋지만 무슨 이야기를 하더라도 앞뒤는 맞아야 하지 않겠는가? 호적 일기만 들여다 봐도 앞뒤가 하나도 안 맞는 소리를 하는데생각은 비우고 따라 하는 것도 유분수지. 필자가 이 문제에 관심이 있고 목소리 높여 외치는 이들에게 한 가지 조언 하자면, 조선시대 호적 일기 한 번 펴보지도 않고 이차 사료도 아니고 남들이 써 놓은 이야기 인용에 인용에 인용이런 책을 읽고 목소리 높여 논쟁에 들어가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가끔 이 문제에 끼어 드는 이들 중 학자라고 자칭하는 사람들도 조선시대 호적 한 번 일기 한 번 보지 않고 끼어든 것이 아닌가의심스러운 사람도 많다. 필자도 굳이 지금 여러가지 학계에서 주장 되는 논의 중친일적 조류가 있는 이야기를 애써 옹호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만, 최소한 무슨 이야기를 하던간에 앞.. 2026. 7. 27.
조선후기의 촛점은 민족모순인가 계급모순인가 민족모순과 계급모순은 80년대에도 한국사회를 분석하는 데 중요한 화두였다. 한국이 이렇게 비실거리는 것은 식민지-혹은 반식민지 수탈 때문인가, 아니면 자본가의 노동자에 대한 착취 때문인가, 이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따라 한국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방법이외세를 몰아 낼 것인가, 정품 노동운동인가로 나뉘어지고, 그에 따라 소위 말하는 NL과 PD가 분기하였다. 둘 다 한국이 어차피 선진국이 된다는 것은 꿈깨라. 어차피 한국은 좀 있으면 망하는데 식민지이기 때문에 망하느냐, 아니면 노동자가 억압되는 문제로 망하는가 하는 점만 차이가 있을 뿐으로, 이 사이에 논쟁이 바로 유명한 사회구성체 논쟁이 되겠다. 이 사회구성체 논쟁이란 것은 필자가 여러 번 썼지만, 한국사회를 분석하여 어떻게 혁명을 할 것인가를 논쟁.. 2026. 7. 27.
무덤을 만든 폭풍: 고대 몬순이 만들어낸 장엄한 공룡 화석 유적 by 알피오 알레산드로 키아렌자Alfio Alessandro Chiarenza, 더 컨버세이션The Conversation 약 8천만 년 전, 현재 이탈리아 북동부에 해당하는 열대 해안 지역은 몬순 폭우와 열대성 사이클론 tropical cyclones 공격을 받았다.폭풍은 공룡 사체, 악어, 식물, 강 진흙을 갯벌로 쓸어갔고, 조수와 미생물 필름film of microbes이 모든 것을 밀봉하여 놀라운 보존 상태를 만들어냈다.나와 동료들은 트리에스테 인근 빌라지오 델 페스카토레 화석 산지(Villaggio del Pescatore Lagerstätte)의 격렬한 열대 기후를 재구성한 새로운 연구를 발표했다.이 연구는 이곳에 불과 40여 년 동안 생명체가 거의 매일 기록된 형태로 보존되어 있음을 밝혀냈다.. 2026. 7. 27.
한국사 주인공으로 한 번도 등장해 본 적 없는 노비들 필자가 아는 한 노비들은 우리나라 역사 기술에서 과거는 포함 심지어는 21세기까지도 한 번도 역사의 주체로 설명되고 기술되었던 적이 없다. 필자가 기억하는 바 노비가 우리 사회의 화제이자 스폿라이트를 받던 적은 딱 두 번 있었으니, 웃기게도 둘다 소위 K 드라마 관련이라, 한 번은 바로 "추노" 두 번째는 바로 "미스터 선샤인"이다. 이 두 드라마의 주인공 언저리에 있던 인물들이 바로 노비로 이것도 드라마라 한때 화제가 반짝 일었을 뿐,전 국민이 우리 조상만큼은 양반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나라라 그런지 그 후에도 노비는 한때 전 국민의 절반에 육박하는 인구수를 자랑했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제대로 스폿을 받은 바가 없다. 로마시대는 노예가 굴렸다고 전해지는 바, 그 당시에도 노예의 비율은 전체 인.. 2026. 7. 26.
이란 혁명을 열렬히 환호한 미셸 푸코, 그 이후 각종 탄압에는 주둥이를 다물었다 1978년, 이란이 혁명의 기운이 무르익자 미셸 푸코 Michel Foucault는 관광객이나 외교관이 아닌, 자신의 이론을 확인하려는 이론가로서 그곳에 도착했다.권력, 담론discourse, 그리고 서구 제도의 숨은 작동 방식에 대한 분석으로 명성을 떨친 이 프랑스 철학자 푸코는 이탈리아 신문 코리에레 델라 세라Corriere della Sera의 특파원으로 두 차례 이란을 방문했다.그는 자신이 목격한 것이 전례 없는 일이라고 확신했다. 그것은 계급 투쟁에 의한 마르크스주의적 봉기도, 헌법 개혁을 추구하는 자유주의적 반란도 아니었다.이 점에서 푸코의 예상은 적중했다.이란 혁명은 마르크스주의적이지도, 자유주의적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가 서구 정치 범주에서 벗어난 대담한 시도라고 칭송한 것은 새로운 무언.. 2026. 7. 26.
17세기 조선시대 호적은 국비로 인쇄해야 한다 17세기 우리나라 조선시대 남아 있는 호적은국비로 인쇄하여 무료로 전 국민에게 배포하여 뿌려야 한다. 그래야 우리나라는 우리 조상이 양반이라는 사람들이 전 인구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모순, 조선후기를 "민중사"로 봐야 한다는 막장 주장, 한국사는 일찍부터 "민족사"였다는 엉터리 주장이 발 붙일 곳 없어지며, 17세기에는 이미 자본주의 맹아가 싹텄다는 엉터리 이야기, 지주전호제 소작제가 이미 그 당시 성립되었다는 말도 안되는 소리가 발 붙일 곳 없이 사라지게 된다. 한 마을에 몇 안 되는 양반이 수백 명 끝없이 이어지는 노비를 한 집에 거느리고, 그 많은 사람이 "양반 1 호"로 편제되는 모습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지금 이 글 보는 분들 절대 다수는 그 조상이 18세기에 노비 혹은 잘 해야 평민이었지.. 2026. 7. 26.
[금관총은 자비왕릉] (번외2) 대충대충 아무렇게나 새긴 왕 이름 금관총에서 자비마립간, 곧 이사지왕尒斯智王이라는 글자를 새긴 유물은 현재까지 3점이 알려졌으니, 모두 환두대도라 해서 큰칼 손잡이 끝장식에 저런 식으로 새김했다.개중 하나는 尒斯智王(사진)이라 새기고, 다른 하나는 이사지왕도尒斯智王刀라 해서 이사지와의 칼을 의미하는 글자를 새겼으며, 다른 한 점은 다 부러져 나가고 尒라는 한 글자만 꼴랑 남았다.흔히 좀 아는 체 하는 자들(우리는 이를 고고학도나 역사학도라 부른다)이 하는 말을 들으면, 같은 칼이라고 은장도 종류 작은 칼knife을 刀라 하고, 장검sword을 검劍이라 한다지만, 다 개소리라, 새겨 들을 필요 하나도 없는 헛소리 대잔치다.저 글자를 새긴 칼은 분명 장검 종류인데 刀라 했으니, 길건 짧건 지 맘대로 도라 하고 검이라 했다.그건 그렇고 내가 .. 2026. 7. 26.
민족이 없는데 민족을 이야기하는 기이한 역사학 이번에는 한국사의 또 하나의 기둥, 민족사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보자. 혹자는 이야기한다. 우리는 서양사와 달라서 오랫동안 한 군데 같이 모여 살며 공동운명체로 지낸지라오래전부터 민족이 형성되어 있었고, 이런 기반하에 고대부터 민족사로 역사를 보는데 익숙하다. 정말 그런가. 민족사라는 건 최소한의 이익을 구성원 전체가 공유하고 있을 때 그 집단을 우리가 민족이라 부르는 것 아니겠는가. 이제 조선시대 호적을 보자.전 인구 10프로 정도가 양반, 5-6프로 정도가 중인이며,양반 아래에는 노비가 무려 전 인구 절반에 육박하고, 그 나머지가 평민인 사회구성을 하고 있었던 시절이 멀지도 않은 18세기 초반까지, 쉽게 말해 불과 200여년 전까지만 해도한국인이라기보다 서로간에 이익을 공유하기는커녕극소수 지배층이 피지.. 2026. 7. 26.
조국이 없는 노동자, 민족이 없는 노비 막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다음과 같이 갈파했다.."노동자들에게는 조국이 없다" 그렇다면 말이다. 노동자들에게도 없는 조국이노비에게는 있겠는가? 조국도 없는데 무슨 민족주의란 말인가? 그리고 그 조국도 민족도 없는 노비라는 종족이 무려 전국민의 40프로를 넘던 시기가 17세기 조선일진데조선을 어떻게 민족주의로 재단할수 있겠는가? 우리는 "민중"과 "민족"은 거저 얻어진줄 안다. 그런데 18세기 호적만 봐도 그 안에는 민중도 없고 민족도 없었다. 그로부터 200년도 안 된 1919년 독립선언문에는 분명히 "민중"도 있고 "민족"도 있는데 말이다. 이 200년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이것이 궁금하지 않다면 도대체 이 세상에 뭐가 궁금하겠는가? *** [편집자주] *** 노동자한테는 없다는 조국, 저.. 2026. 7. 26.
[미천왕 고을불리] (3) 압록강 배로 오가며 소금장사를 하는 고구려 왕자 고구려 군주 미천왕美川王은 즉위 이전에도 그렇고 심지어 죽어서도 갖은 곤욕을 맛본 희유한 사람이다.호양왕好壤王이라고도 하는 그의 행적은 삼국사기 미천왕본기에 비교적 자세하거니와, 그것을 새삼 음미한다.생전 이름이 을불乙弗 혹은 우불憂弗이라고도 하는 그는 고구려 제13대 군주 서천왕西川王(재위 270~292) 손자다.아버지는 고추가古鄒加 돌고咄固라, 비록 왕의 손자라 하지마는 아버지가 왕이 아님에도 왕이 되었으니 일단 이에서 권력투쟁을 의심해야 한다. 돌고한테 불운은 서천왕 맏아들이 아니라는 데서 비롯한다. 그 형이 봉상왕烽上王(재위 292~300)이라 둘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엄마가 달랐는지 어쩐지 알 수는 없지만, 이럴 때 동생이 핍박을 받기 마련이다. 봉상왕은 의심이 많았던 듯, 그런데가 언제건 돌.. 2026. 7. 26.
2,800년 된 바다거북 모양 도기 움켜쥔 인골 엘살바도로서 발견 엘살바도르 고고학자들이 약 3,000년 전에 바다거북 모양 그릇sea turtle vessel과 함께 얼굴을 아래로 향한 채 묻힌 인골이 있는 특이한 무덤을 발굴했다.이 무덤은 인신공희를 행한 어떤 마야 이전 문명pre-Maya civilization에 속할 수도 있다.엘살바도르 문화부 발표문을 번역한 내용에 따르면, 이 매장지는 예일대학교 박사 과정 학생이자 고고학자인 카를로스 플로레스 만사노Carlos Flores Manzano가 지휘하는 발굴 작업 중 7월 2일 산살바도르San Salvador 교외 안티구오 쿠스카틀란Antiguo Cuscatlán에서 발견되었다.아직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이 유골은 기원전 850년에서 830년 사이, 메소아메리카 중기 선고전기Middle P.. 2026. 7. 26.
왕자의 특권을 없애버린 신라의 시스템, 김유신 밑으로 기어들어간 김춘추의 아들들 신라는 여러 모로 훗날 고려 혹은 조선왕조와는 다른 시스템을 구비하는데 개중 하나가 저 왕자 시스템이다.조선왕조의 경우 익히 알려졌듯이 왕과 그 정비 사이에서 난 아들들은 대군大君이라 해서 관위 품계가 없다. 예서 무품계라는 말은 상것이라는 맥락이 아니라 신성 초월이라는 뜻이라, 품계로 따질 수가 없어 정1품 이하 그 어떤 관료들보다 상위에 위치한다.그래서 길을 가다 저런 대군을 만나면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도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해야 했다. 공주 역시 마찬가지였다.더 요상한 점은 그렇다고 후궁 자식들은 군君, 혹은 옹주 또한 무품계라는 사실이다. 조선시대 무품계 정점에는 말할 것도 없이 왕과 왕비가 위치한다. 왕이야 언터처블 넘버원이라 그렇다 치고, 그렇다고 해서 대군과 공주는 물론이고 군과 옹주까지 무.. 2026. 7. 26.
독일 작센안할트에서 로마 공화정 시대 은화 무더기 발견 로마 공화정Roman Republic 시대 은화는 독일 중부에서 발견되는 경우가 드물다.고고학도들이 독일 작센안할트Saxony-Anhalt 주에서 최초로 기록된 로마 공화정 시대 데나리우스denarii 작은 은화 무더기를 확인했다.다섯 개 은화로 이루어진 이 작은 은화 무더기는 서기 초 로마와 제국 국경 너머에 산 사람들 사이의 교류에 대한 새로운 증거를 제공한다.이 은화들은 2025년 할레Halle (잘레Saale) 근처에서 자원 봉사 고고학 유산 관리인인 디르크 브라운가르트Dirk Braungardt가 발견했다.작센안할트 주 문화유산 관리 및 고고학 사무소는 7월 22일 이 발견을 발표했다.연구자들은 이 보물이 이 지역 로마 시대 역사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본다.보물에는 은화 데나리우스 5개가 .. 2026. 7. 26.
[금관총은 자비왕릉] (6) ‘신라왕은 동시에 일곱’이라는 식칼 물고 월하의 공동묘지를 나타난 국립박물관 1921년 조선총독부에 의한 금관총 발굴 조사에서 수습한 유물 중에 그 환두대도 칼집 끝장식손에서 ‘이사지왕尒斯智王’이라는 긁음 글씨가 확인됐다는 2013년 7월 3일, 국립중앙박물관 고고역사부 보도자료는 내 아무리 봐도 신라고고학도인 당시 학예연구사 김대환이 대본을 작성하고당시 결재라인을 보건대 학예연구관 홍진근, 그리고 고고역사부장 송의정, 그리고 학예실장 곽동석, 그리고 박물관장 김영나 재가를 받아 배포됐겠거니와, 이후 저 김대환이 저 금관총을 두고서 발표하는 글을 볼짝시면, 저 보도자료에서 단 한 치 어긋남이 없다. 그렇다면 저 보도자료는 무엇이 문제인가?간단히 말하건대 호도糊塗다. 나는 앞서 나 김태식을 이야기하면서 내가 모르는 것은 모른다 하고, 아는 것만 안다하는 공자형 겸손가를 자처했거니와.. 2026. 7. 26.
민중이 없는데 민중을 찬양하다 80년대 이른바 민중사학 세례를 받은 우리나라 역사학은일견 굉장히 민중 주도의, 민중에 의한, 민중을 위한 민중의 사학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왠걸. 이 우리나라 역사를 수놓고 있다는 민중사학은조금만 일차 사료를 읽어 내려가면 도대체 누구를 민중이라고 부른 것인지 모호하기 짝이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호적을 보자. 우리나라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200년간 남아 있는 호적을 보면 그 안에 별의별 사람이 다 있다. 이 수많은 배경의, 수많은 성격의 사람을 통틀어서 양반 빼고는 몽땅 민중이라고 부르는 것이 우리나라 민중 사학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나라 사학에서 "민중"이라는 것은 일견 명쾌해 보이지만이것은 20세기 중반, 그 중에서도 한국의 경우 1970년대 이후에나 성립하기 시작한 시민사회를 지.. 2026. 7. 26.
5천킬로미터 떨어진 같은 철기시대 같은 쇠도끼 다른 기술로 제작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발견된 고대 철기 시대 도끼, 서로 다른 제련 기술의 비밀을 드러내다고고학자들이 철기 시대 도끼 두 점을 발견했는데, 이 도끼들은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었다.두 도끼가 발견된 장소가 매우 멀리 떨어져 있다는 사실은 연구자들에게 지역별 고대 금속 가공 기술 차이를 보여주는 새로운 통찰력을 제공했다.카자흐스탄과 독일 북부에서 각각 발견된 이 도끼는 모두 대략 같은 철기 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연구진은 이를 비교 분석했다.잡지 Radiocarbon에 발표된 이 연구에 따르면 두 도끼는 서로 다른 철 제조 기술로 만들었다.연대를 드러내지 않던 철의 연대 측정라이프니츠 연구소Leibniz-Laboratory 마티아스 C. 휠스(Matthias C. Hüls)는 독.. 2026. 7. 26.
크로아티아 연안 비잔틴 난파선서 기록적인 황금 유물 수습 크로아티아 믈례트Mljet 섬 인근에서 발견된 비잔틴 난파선에서 600그램이 넘는 금, 보석이 박힌 허리띠 장식, 황실 동전, 그리고 제국 최고위 관리 중 한 명이 소유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희귀한 인장 반지가 발견되었다.고고학자들은 이 배가 7세기 말 또는 8세기 초에 고위 군사령관, 황실 행정관 또는 외교 사절과 같은 고위 인사를 태우고 상당한 양의 상업 화물commercial cargo을 운반하던 중 침몰한 것으로 추정한다. 크로아티아 문화재보존연구소는 이 난파선을 지중해에서 발견된 비잔틴 시대 수중 고고학 유적 중 가장 중요한 발견 중 하나로 평가한다.고고학 조사를 이끄는 이고르 미홀예크Igor Miholjek에 따르면, 세척 및 복원된 금 유물 무게는 600그램이 넘으며, 이는 지중해 난파선에서 .. 2026. 7.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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