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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으로 건너간 도작이 더 전면적이 된 이유 필자는 앞에서 쓴 것처럼 한반도 도작이 일본을 건너간 후에는 잡곡을 누르고 한반도보다 더 전면적 도작 사회로 성장하였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 이유는 아래 근거 때문이다.   아열대 식물인 벼는 당연히 위도와 평균기온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 처음 야요이문화가 배태된 서일본 일대는 한반도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평균기온이 높다. 한반도 중부 일대와 비슷한 평균기온은 놀랍게도 혼슈 북부 일대의 고산지역을 빼놓고는 거의 없다. 한반도가 중국 대륙의 황하-양자강 사이의 공간 어디쯤 해당된다면, 서일본은 중국 대륙의 양자강 이남에 해당한다는 뜻이다.  *** previous article ***  한반도 남부와 큐슈 북부의 촌락 2024. 5. 22.
한반도 남부와 큐슈 북부의 촌락 도작이 시행되었다는 측면에서 한반도 남부, 특히 남해안 일대의 촌락유적과 일본 큐수 북부의 소위 대륙계 야요이인 초기 정착촌, 이 두 촌락유적 주변에는 농지가 둘러싸고 있었을 것이다. 그 경작지에는 양측 모두 비슷한 비율의 논이 포진하고 있었을까? 아니면 한반도 남부의 촌락에 비해 후쿠오카 평원 일대의 정착촌은 논이 더 많은 모습이었을까? 흥미로운 것은, 일본의 경우 야요이 촌락 복원 모형이나 그림에서는 거의가 풍요로운 논으로 둘러싸인 촌락을 그리고 있더라는 말이다. 만약 이러한 묘사가 그 쪽 발굴 정황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면, 한반도 남부는 어떠했을까? 한반도 남부의 촌락 역시 논으로 둘러싸여 있었을까? 양자간에는 재배하는 작물의 종류 별 비율 차이가 있었을까? *** previous article .. 2024. 5. 22.
여자는 반지를 낀 대동 북위 포옹 무덤 북위 커플의 매장 자세를 보며 껴안고 묻힌 북위 커플 앞서 거푸 이와 관련한 소식을 전했거니와, 저 발굴 좀 더 자세한 내용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저 보도가 이뤄진 시점은 3년 전인 2021년이라, 이 발견이 좀 이채롭다 생각해서인지 중국에서는 국영통신사인 신화사가 관련 소식을 영문으로 타전하기도 했으니 아래가 그것이다.  Over 1,600-yr-old tomb of embracing lovers unearthed in north China Source: Xinhua| 2021-08-16 16:27:35|Editor: huaxia 다만 중국고고학에 통용하는 특유한 개념이나 용어들이 있으므로, 그 내막을 좀 더 자세히 알기 위해서는 당시 중국어 독자용 서비스를 살필 필요가 있다. 당시 중국 보도를 보면.. 2024. 5. 22.
전근대 농업 주력으로서의 화전 한반도 농업 흐름을 짚는 글을 신동훈 교수께서 집요하게 이곳에서 쓰거니와, 그 흐름을 대별하면 전근대 한반도는 잡곡 중심이었으며, 벼농사라 해 봐야 주력이 아니었고, 그나마 한반도 남부 일대나 도작문화라 할 만한 지점이라는 골자로 나는 이해하거니와 물론 그 전공답게 벼농사가 한반도에서 비롯하는 통로라는 관점에서 그것이 어디를 통해 들어왔고, 그것이 언제쯤 일본 열도로 건너가 야요이 문화로 연결되었는지도 주시한다고 보거니와 요컨대 저 잡곡농경이라는 말 말이다, 그 점과 관련해, 또 꼭 저 문제가 아니라 해도 우리가 너무 쉽게 간과하는 문제가 바로 화전이다. 산이나 수풀에다 불을 질러 농경을 하는 그 농업 형태가 너무 쉽게 간과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한반도처럼 산이 많은 데서 잡곡농경, 그 주력을 나는 우리.. 2024. 5. 22.
호북성 양양襄阳에서 출현한 남북조시대 화상전画像砖 가족묘 호북성 양양襄阳에서 남북조시대 화상전画像砖 가족묘 발굴2023년 6월~9월 호북성문물고고연구원湖北省文物考古研究院과 양양시문물고고연구소襄阳市文物考古研究所 합동 조사팀은 왕채묘지王寨墓地 3차 발굴 작업을 진행한 결과 남북조시대 가족묘를 확인하고 그에서 다양한 주제와 풍부한 콘텐츠를 구비한 화상전画像砖을 확인했다고 최근 발표했다. 왕채 묘지, 곧 왕자이 묘지 Wangzhai Cemetery 는 양양시襄阳市 번성구樊城区 왕채사구王寨社区에 위치하며, 동쪽은 한강로汉江路, 남쪽은 대리구大李沟, 서쪽은 와룡대도卧龙大道, 북쪽은 중원로中原路로 둘러싸고 있다.2018년부터 2019년까지 양양시문물연구소는 이곳에서 두 차례 구제 발굴 작업을 진행해 서한 시대 이래 당송 시대에 이르는 무덤 290여 기를 발굴하고 다양한 문.. 2024. 5. 22.
북위 커플의 매장 자세를 보며 껴안고 묻힌 북위 커플 김단장께서 올리신 북위 커플의 매장 자세를 보면 이 인골은 정말 필자로서도 새삼스럽게 놀라게 된다. 커플이 한 무덤 안에서 서로 마주보며 발견되는 경우는 드물지만 꽤 있다. 필자도 이전 인도 발굴에서 부부합장묘로 보이는 케이스를 하나 보고하여 BBC에 보도된 바가 있었다. https://www.bbc.com/news/world-asia-india-46806084?fbclid=IwAR0UyI9W4nwPPH8FJbe5MKRPINwxzNXa5YQlVTFmsf0VzSsmkivmRbW562Y 이외에도 서로 마주보고 있는 정도의 인골은 보았지만, 이 경우처럼 서로 안고 있는 자세의 인골은 필자는 정말 처음 보는것 같다. 저런 자세가 나오려면, 1. 일단 추가장은 아니다. 두 사람이 거의 비슷.. 2024. 5. 22.
삼국지 동이전의 "稻"와 도작중심의 사회 삼국지 동이전에는 벼를 뜻하는 稻가 딱 두 군데 나온다. 어디인가 하면 바로 변진과 왜이다. 변진: 土地肥美, 宜種五穀及稻, 曉蠶桑, 作 布, 乘駕牛馬.왜: 種禾稻·紵麻, 蠶桑·緝績, 出細紵· . 흔히 삼국지 동이전에 나오는 "오곡"에 벼가 포함되는가 아닌가 하는 것으로 설왕설래하는 모습을 보는데, 삼국지 동이전에서는 오곡과 벼를 구분해 썼다. 위에 변진조 문구를 보면 알 것이다. 宜種五穀及稻한반도 북부의 여러 나라에는 오곡은 있지만 벼=도는 기록에 없다. 부여: 土地宜五穀옥저:  其土地肥美, 背山向海, 宜五穀, 善田種. 읍루: 有五穀·牛·馬·麻布.여기서 말하는 "오곡"이란 곧 우리의 잡곡을 말한다는 것을 알 것이다. 물론 벼 재배가 변진과 왜에서만 있었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특히 한반도 서북부 평양일.. 2024. 5. 22.
공구리의 등장과 함께 물은 통제되기 시작했다 이 공구리가 초래한 혁명을 여러 번 간헐로 지적했지만, 내 경험에 따라 다시금 이 공구리가 얼마나 대단한 혁명인가를 각인하고자 한다. 내가 자꾸 이 얘기를 하는 까닭은 내가 고고학 개설 집필을 생각 중이며 그 시작은 모름지지 바로 저 공구리 혁명과 그것을 기반을 삼은 아파트 혁명으로 시작하려 하기 때문이다. 공구리와 아파트, 그리고 그것을 지탱한 또 다른 힘, 곧 철근이 결합한 철근콘크리트는 인류문화사에서 물을 피해 강믈 범람을 피해 줄행랑을 거듭한 인류가 비로소 물을 정복할 수도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었고 이런 자신감은 마침내 인류 출현 이래 인류가 동굴로, 언덕으로 도망치기에 바빴던 인류를 비로소 평야지대로 내려온 발판이었다. 평야 혹은 평지로 내려오면서 그 터전인 농경지도 같이 내려왔다. 물 없이는.. 2024. 5. 22.
껴안고 묻힌 북위 커플 1천600여 년 전 북위(386-534)로 거슬러 올라가 연인 한 쌍이 서로 껴안은 모습으로 묻힌 무덤에 대한 연구 결과가 최근 발표됐다고. (최근이라 하지만 2021년의 일이다.) 이 무덤은 2020년 중국 산시성 Shaanxi province 다퉁시 Datong city 에서 발굴됐다.연구자들은 이 커플이 서로의 허리에 팔을 감고 있는 상태로 위치해 있고 그 여성 얼굴이 그 남자 어깨에 눌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어찌된 일일까?분명 남자 골격은 그의 오른팔에 치유되지 않은 부상 징후를 보여준다. 이 여성은 다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연구원들은 여자가 그와 함께 묻히기 위해 그 남자가 죽은 후 자살했을지도 모른다고 추측한다.이른바 순사殉死다.순사라 해도 강요된 윤리일 수도 있다.순장殉葬이라 해서 부인을 .. 2024. 5. 22.
황소를 잡아먹으려는 사자를 도안한 리디아 황금 주화 세계 최초의 진정한 금화라 해서 소개하는데 사연인즉슨 이렇다. 일렉트럼 electrum 을 순은과 금으로 분리하는 정제 과정을 개척한 크로이소스 Croesus 왕 치하 리디아인들 Lydians 은 기원전 550년 무렵 혁명적인 바이메탈 주화 시스템 bimetallic coinage system 을 도입한다. 저 사진 금색 크로이소스 스테이터 stater 는 그에 해당하는 은색 스테이터 10개와 같은 가치를 지녔다. 교환 비율이 그랬다는 뜻이다. 저 금화 하나랑 다른 은화 10개를 같은 값으로 쳤단 말이다. 금과 은으로 만든 주화니 액면가와 실제 가격이 대략 일치했으리라 보면 되겠다. 한데 황소를 마주보며 포효하는 사자를 묘사한 저 도안이 흥미롭다. 도대체 뭘까? 아마도 그리스 최고신 제우스를 상징하는 황.. 2024. 5. 22.
비파형동검은 이란에서? 청동단검이란 서부, 초기 왕조 시대기원전 2600년경.보스턴 미술관 소장Bronze daggerWestern Iran, Early Dynastic Periodabout 2600 BCE.Now at Museum of Fine Arts, Boston루리스탄 Luristan 언덕에서 발견된 이 단검은 우르 Ur 왕실 묘지에서 발굴한 단검과 거의 동일하다.음..비파형동검이 지금 보니 이란에서 왔군. 루리스탄 청동단검과 그 문화에 대해서는 아래 참조  이란고원 루리스탄 청동기물 Luristan bronzes 속 청동 단검 2024. 5. 22.
'근대 일제'를 몰아낸 참상에서 자란 독버섯들 김제 벽골제가 농경지 농수 공급을 위한 저수지 제방인가, 아니면 바닷물 침수를 제어하기 위한 수갑水閘, 곧 dock인가 하는 논쟁이 대대적으로 붙은 적이 있었다. 내 기억에 후자를 제기한 이는 일본인 고고학도 아니면 농업고고학도였을 것이며 그에다가 제대로 불을 붙인 이는 한국에서 농업경제학도 이영훈이었다. 이 논쟁은 선후관계는 내가 지금 기억에 의존하는 까닭에 자신이 없는데 느닷없는 만경평야 논쟁으로 발전해 다시 이영훈은 느닷없이 소설가 조정래를 끌어들여 두 사람이 대판 맞붙은 일대 논쟁으로 비화했다. 이 벽골제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만경평야 문제도 결단 나니 그 논쟁이 그만큼 치열할 수밖에 없었으니, 나는 이 논쟁이야말로 21세기에 벌어진 제대로 된 논쟁 중 하나로 본다. 물론 양측은 감정싸움으로 발.. 2024. 5. 21.
강안 충적대지가 평야라는 환상, 풍납토성의 경우 물이 제어되지 않는 강안 충적대지는 그때나 지금이나 무용지물이라 철새도래지로는 의미가 있을지 모르지만 사람이 상거하거나 상시 농경지로는 이용할 수 없는 황무지에 지나지 않는다.식민지시대 아차산성에 촬영한 한강과 그 너머 풍납토성 일대 지금의 풍납동이다.저 넓은 강안 충적대지는 사람 살 데가 아니었다.걸핏하면 물이 들이치는 상습침수 구역이기 때문이었다.을축년 대홍수 직후 풍납토성이다.저 넓은 충적대지가 온통 황무지였으며 무허가 부랑인 움막 몇 채가 있을 뿐이었다.같은 시절 풍납토성 내부다.저 넓은 20만평이 다 버려졌다.왜?물이 통제되지 않은 강안 충적대지는 아무짝에도 쓸모없었다.함에도 왜 강안 충적대지 평야라는 등식이 오도되고 있는가?첫째 물이 통제되기 시작한 20세기가 심은 환상이라 이를 아득한 선사시.. 2024. 5. 21.
한국은 전면적 도작 농경 사회가 아니다 한국은 기후나 위도로 볼 때 도작농경이 전면적으로 이루어진 지역이 아니다. 정확히는 도작과 잡곡이 혼재되어 존재한 혼합농경지역으로 중국에서는 황하유역과 양자강 사이 지역 정도에 해당한다. 물론 이것도 한반도나 그렇다는 것이고 더 북상하여 한반도 북부의 북쪽을 상회하면 그나마 있던 도작도 사라지고 완전한 잡곡문명지대가 펼쳐진다. 이것이 고구려, 부여 문명이다. 순수한 도작 문명에 더 근접한 사회는 한반도에서 도작을 받아간 일본이다. 여기는 잡곡보다 도작이 중심이 되어 논의 비율도 우리보다 높았다고 생각된다. 조선시대 기록을 보면 한반도 남부지역 논 비율이 대략 30-40퍼센트 정도로서 밭의 비율이 한반도 전역에서 매우 높았다. 이 정도라면 순수도작사회라고 보기 어렵고 중국의 예를 보자면 혼합농경사회다. 한.. 2024. 5. 21.
곡창지대는 수리조합의 유산이다 지금 우리가 평야라 일컫는 데는 그 역사를 불과 백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모조리 갈대밭이라 봐도 대과가 없다. 왜? 그 평야는 강안 충적대지라 상습 침수 지역인 까닭이다. 이는 실제 발굴로도 명백히 드러나는데 평야지대라 해서 파제껴서 나루터나 보 같은 시설이면 몰라도 일반 집터 관공서 같은 건 흔적도 없다. 이걸 모르고 과거 평야지대, 그러니깐 충적대지를 잘 걸렸다 해서 시굴트렌치 넣고 하지만 넣어봐라 뭐가 나오는지. 눈꼽만큼도 안나오고 논이니 밭이니 하는 것들은 모조리 일제시대 이래 농경지에 지나지 않는다. 이 일제시대 이후 농경지를 무슨 조선시대 이전 농경지라 우기는 연구자도 내가 봤다. 이를 아는 것이 왜 중요한가? 논농사 벼농사 그 자체가 실은 환상이다. 강안 충적대지가 범람원이란 말은 벼농사.. 2024. 5. 21.
야요이 정착촌의 논과 밭 대륙계 야요이인의 정착촌과 주변의 논. 야요이 마을 주변에는 항상 논이 있다. 복원된 야요이 마을 주변에도 논이 천지다. 일본의 논농사는 대륙, 정확히는 한반도를 경유해서 전달된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청동기시대 마을도 저렇게 논에 둘러싸여 있었을까? 중요한 것은 중국의 잡곡농경-혼합농경-도작농경의 지도를 보면, 한반도의 경우 남해안 일대를 제외하면 그 이북은 혼합농경지대로서 청동기시대 마을이라고 해서 논으로 둘러싸여 있지 않았을 것 같다는 말이다. 아마 논보다 밭이 훨씬 많지 않았을까? 논이 밭과 거의 비슷한 비율을 점한 것은 아마도 한반도 남해안이 되면 그럴지 모르겠지만 이것도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도작이 전달되었다고 해서 그 마을의 구조, 마을 주변의 논과 밭의 비율.. 2024. 5. 21.
악어의 변신은 무죄? 로마 갑옷으로 둔갑한 가죽 갑옷 악어 가죽 수트라 간단히 갑옷이다. 서기 3세기 로마시대 유물이랜다. 이집트 만팔루트 라는 고을이 있는 모양이고 그 근처 출토품이라고 하나 궁금한 점은 방어력이다. 방탄성이 있을까? 화살은 그냥 뚫어버릴 때고 칼부림은 견딜 듯한 느낌이다. 것도 그대로 찔러버린다면야 대책이 없을 테고 베임은 견딜 듯하다. 관련 자료 더 추적하니 브리티시 뮤지엄 소장품이라고. 저런 악어가죽 옷을 로마군은 이집트를 접수하면서 접하기 시작했고 군사 퍼레이드에 썼다 한다. 악어는 이집트 문화에선 신성시했다. 그 유습이란다. Crocodile skin suit of armour - Roman, 3rd century AD. From near Manfalut, Egypt 2024. 5. 21.
내가 잘할 수 있고 도움이 되는 일 그게 무엇인지 내가 어찌 알겠는가? 이것도 전직 직장을 그만두면서 뚜렷이 이런 일을 하겠다고 정한 것도 없으니, 그렇다고 나는 내가 다시는 출근하고 하는 그런 일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거니와(물론 이 역시 훗날 유동적일 수는 있다. 살아보니 네버 에버라는 말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더라.) 그러면서 이런저런 일을 손대 보니 그래도 배운 게 도둑질이요, 누에는 뽕을 먹어야 함을 새삼 각인하거니와 그래도 명색이 글쓰기로, 혹은 기자로 30년 이상 굴러먹었고, 더구나 그 대부분하는 생활이 특정한 분야에 집중했으니 그런 일로 내가 잘할 만한 일, 혹은 그래서 혹 어떤 사람 혹은 부류 계층한테는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만한 일을 지금도 실은 찾고 있다 보는 편이 정확하다. 그 일환이랍시며 지금은 세계 문화사 탐구니 .. 2024. 5. 21.
야요이 벼농사 환호취락의 신호탄 판부유적[板付遺跡, 이타즈케이세키, いたづけいせき] 먼저 위치를 본다. 2024. 5. 21.
미라의 보고 타림 분지 이집트 미라는 야릇한 상상력이 가미하는 바람에 과대포장됐으니 실상 그 미라는 내장 골수 다 끄집어낸 건어물에 지나지 않아 빈깡통이나 마찬가지라 그에 얻는 고인류 고병리 정보는 지극히 한정적이다. 미라가 생성하는 조건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기후풍토를 뺄 수가 없다. 그것이 생산하는 통로는 크게 건조사막지대와 습지, 그리고 동토지대로 대별하거니와 조선시대 미라는 저 어디에도 속하지 않아 주자가례가 강요한 문화사의 압박이 작동한다는 점에서 독특함이 있다. 같거나 비슷한 기후풍토라 해도 저 타림분지 미라는 이집트 미라와 결정적인 차이가 있으니 죽은 시신은 그대로 온전히 묻었다는 점이 그것이라 그래서 저에서 빼내는 정보가 이집트 그것이 따를 수는 없다. 다만 작금 정치상황과 결부해 저쪽 신장위구르 지역이 워낙.. 2024. 5. 21.
이스탄불 도심이 쏟아낸 비잔틴 선박 37척 콘스탄티노플 Constantinople, 지금의 이스탄불에서 출현한 잃어버린 항구 테오도시우스 1세 port of Theodosius I 에서 발견된 비잔틴시대 선박 Byzantine ship 중 한 척이다.이 항구 유적은 현재 페리 항구이자 지하철역인 예니카피 Yenikapi 라는 데서 발견 발굴됐다.이 역은 새로운 중앙 교통 허브로 탈바꿈할 예정이었다. 이곳에서 출발하는 지하철 노선은 마르마라이 터널 Marmaray tunnel 까지 확장하고 아울러 경전철을 포함토록 함으로써 예니카피를 교통 허브로 만든다는 계획이었다. 이에 즈음한 공사 과정에서였던 것으로 보이는데 2004년 사라진 비잔틴 항구 테오도시우스 1세가 우연히 드러난 것이다.본격 발굴 결과 4세기에 만들어 운영하기 시작한 이 항구 유적은 .. 2024. 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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