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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금갑射琴匣을 심판한다](5) 정월 15일은 절요와 통감 논술이다 삼국유사 역주본으로 국가기관에 의한 웹서비스까지 장착하는 바람에 가장 널리 활용되는 것이 한국학중앙연구원, 옛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판이라 할 수 있거니와, 이에는 당시까지 거의 모든 관련 연구성과를 집약했다 할 만한 노작이다. 그에서 사금갑을 역주하면서 저 사금갑 사건 발단이 되는 무대 천천정天泉亭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주석이 있다. 현재 천정정이 어디에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신증동국여지승람≫ 권21 경주부 고적조에는 신라 소지왕 10년 정월 15일에 왕이 천정천에 행차하였다고 하여 ≪삼국유사≫의 기사보다 자세한 날짜를 기록하고 있다. 반면 ≪삼국사기≫에는 이와 관련된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 명색이 역사로, 고대사로 밥을 빌어먹고 산다는 자들이 아무도 삼국사절요와 동국통감을 아무도 보지 않았다고 내가.. 2025. 1. 27.
[외치이야기-5] 관광도시에서 연구도시로 바뀐 볼차노 볼차노는 전술한 것처럼 등산과 스키, 휴양의 도시였는데 이곳으로 30여년전 5천년 된 외치 할아버지께서 이 도시로 강림하시면서이 도시는 그 성격이 일변하게 되었다. 먼저 외치를 보존하고 관련된 유물을 연구하기 위한 전용 박물관이 건설되었으니, 그것이 앞서 설명한 남티롤 고고학 박물관(South Tyrol Museum of Archaeology)이다. 이 도시에는 외치 연구만을 위해 움직이는 연구소도 하나 있다. 미라를 위한 연구소인데, Institute for Mummy Studies라 한다. https://www.eurac.edu/en/institutes-centers/institute-for-mummy-studies Institute for Mummy StudiesSnapshots of the pas.. 2025. 1. 27.
[외치이야기-4] 볼차노 풍경 외치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볼차노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외치가 알프스 꼭대기에 발견된 후 이 도시에 정착하기까지는 사실 우여곡절이 많은데이에 대해서는 후술하기로 하고, 먼저 볼차노에 대해 좀 써보기로 한다. 외치란 이 도시에 모셔진 대략 5,000년 전 미라를 부르는 이름이지만 본명은 당연히 아니고 닉네임이다.왜 외치인가?아마 독자 여러분은 티롤이라는 이름을 들어 보셨을 것이다. 이 티롤이라는 지역은 반쪼가리가 나서 오스트리아에 속한 지역과 이탈리아에 속한 남티롤로 나뉘어져 있다. 이 티롤 일대를 외츠탈 계곡 알프스(Ötztal Valley Alps)라고 부르는데 여기서 외치라는 이름이 왔다.쉽게 말해 티롤사람이라는 뜻 정도 되겠다.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의 경계를 이루는 지역을 다른 말로 티롤리안.. 2025. 1. 27.
[외치 이야기-3] 시체 보러 줄을 선 사람들, 볼차노 외치박물관 아래 글은 김단장께서 아래 시간에 올리셨던 글이다. July 12, 2018 at 2:49 PM · 볼차노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할 겸외치 이야기 3번째 토막으로 싣는다. ****관광은 굴뚝없는 산업이다.관광은 굴뚝이 없으나 줄은 있다.이태리 북부 읍내 볼차노Bolzano는 알프스 산맥 남쪽 기슭이라 자못 풍광 훌륭하나, 어제 말했듯 우리의 평창 정선 태백과 비슷한 곳이라, 그 풍광 자체가 썩 비교우위가 있다 하기 힘들다.   이곳을 대표하는 문화자산은 저 랜스케입과 더불어 외치Ötzi라는 신생 미라가 있으니, 1991년, 인근 해발 3200고지에서 등산객에 발견되고 그것이 지금으로부터 거금 오 천년 전 신석기 말기 혹은 청동기시대 초기 주검으로 밝혀짐에 따라이곳을 대표하는 아이콘이 되어 이곳 관광산업의 .. 2025. 1. 27.
정다산 상제上帝가 개독의 흔적? 종교사상사를 한다는 사람들은 매양 다산이 말한 상제上帝가 인격신의 면모가 있다면서 이는 그가 한때 심취한 기독신의 흔적이라 말한다.인격신이란 무엇인가?일반 사람이랑 매양 마찬가지로 성내고 지랄하고 기뻐하며 폴짝폴짝 뛰는 존재라는 뜻이다.개독 침투 이전 동아시아 최고 신이라는 상제가 의지가 있는 존재인가?아니면 그 자신은 아무런 움직임이나 말이 없는 천하자연의 주인인가에 대해선 오랜 논쟁이 있었다.순자는 엿까라마이싱주의자라 하늘을 향해 삿대질하면서 하늘이 말이 있느냐 일갈했다.일식이 일어나면 우연의 소산일뿐 하늘의 소행이 아니라 했다.그 반면 동중서는 개독이라 모든 현상을 하늘의 뜻으로 돌렸다. 그런 점에서 동중서는 천지, 곧 툭하면 천지天志, 곧 하늘의 의지를 팔아먹은 묵자와 매우 흡사하다.나는 동중서가.. 2025. 1. 27.
도리사에서 조망한 금오산 선산 도리사에서 바라본 풍광이라, 대략 10년 전쯤이다. 저 앞쪽으로 불뚝 솟은 산이 금오산으로 알거니와 확실치는 아니하다. 김천이랑 경계를 이루는 해발 976m 금오산이 맞으리라 본다. 저 너머가 김천일 터이며 그 너머 자락에 갈항사 터가 있다.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약탈하고선 내어놓을 생각이 없는 국보 삼층석탑 쌍탑이 있던 자리 말이다. 찍은 도리사는 널리 알려졌듯이 신라에 불교가 도래한 그 역사적인 장소다. 아도화상이 이 일대에서 전도활동을 하면서 절을 창건하니 그곳이 도리사요그에서 지금의 김천 황악산 기슭을 손가락으로 가르키며 저기가 절을 세울 만한 곳이라 해서 세운 절이 직지사直指寺니 직지사는 글자 그대로 손가락으로 가르켜서 점지한 땅이라는 뜻이다. 능선들이 주는 절묘함이 가장 아름다운 시즌이.. 2025. 1. 26.
[사금갑射琴匣을 심판한다](4) 조선시대 지식인은 누구나 안 왕비 나는 계속 현대의 한국사 연구자, 특히 신라사 연구자들이삼국사절요와 동국통감이 삼국사기 및 삼국유사를 전제했다는 믿음하에 새로운 내용이 없다고 확신하고선 아무도 쳐다 보지 않았다는 말을 하거니와 실제 그랬다. 주변에 고대사로 수십 년 밥 벌어먹고 산다는 사람들한테 다 물어 봐라.절요랑 통감 본 사람 있는지.없다. 그러기는커녕 그걸 왜 보냐 되묻는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견주어 뭐가 더 새로운 내용이 있냐는 뜻이다. 하지만 시계추를 거꾸로 돌려 조선시대로 가면, 물론 삼국시대사를 누가 제대로 공부했겠느냐마는, 그래도 삼국 역사를 떠든 사람들은 모조리 삼국사기랑 삼국유사를 본 것이 아니라 실은 절요랑 통감을 봤다. 특히 후자 동국통감이 절대 교재였다.  간단히 말해 조선시대 지식인들은, 물론 절요랑 통감이 나.. 2025. 1. 26.
이 기사에서 배우는 교훈 https://www.chosun.com/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2025/01/26/V5MDACGJRJGSXL3XIQ2JD4UGE4/ “잘 처신하라” 왕이, 루비오와 첫 통화서 훈계성 성어 사용잘 처신하라 왕이, 루비오와 첫 통화서 훈계성 성어 사용 美언론 인삿말로 오역 헤프닝도www.chosun.com 왕이의 오만방자한 말을 미국 뉴스에서 줄줄이 오역했다는 이 기사-. 이 기사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 동아시아의 역사에 대해 동아시아 사람이 가장 잘 아는 것은 확실하다는 말이다.  가끔 동아시아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하버드대, 스탠포드대, 등등 미국 굴지의 대학 교수들이 한마디 하면 너나나나 모두 받아 쓰는 경우를 보는데걔들도 잘 모른다. 그 친구들이 한.. 2025. 1. 26.
[외치 이야기-2] 현대 미라 연구의 표준 외치는 1991년 발견되어 지금까지 35년 정도 연구가 진행되었는데 사실상 현재까지 가능한 최신 연구기법이 거의 모두 적용되어 현대 미라 연구의 표준이 되었다고 보아도 좋다. 외치가 발견되기 이전에 미라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대체로이집트 미라에 대한 연구, 남미 잉카 미라에 대한 연구가 있었고 70년대 중국학자들에 의해 수행된 마왕퇴 미라에 대한 기념비적 연구가 있었지만, 이런 연구는 모두 사실상 최신 연구기법을 보유한 유럽과 북미 대륙 권역 밖에 있었기 때문에 과학적 연구를 충실히 적용하기 어려운 상태에 있었다고 보아야겠다.   반면 외치는 발견된 직후부터 바로 전용 박물관과 연구기관이 수립되어 최근 몇십년간 빠르게 발전하는 과학적 연구기법이 나올 때마다 세계 초일류의 연구진들이 이를 적용하며 놀라운 .. 2025. 1. 26.
일당 대감 이완용의 몽견제갈량夢見諸葛亮 대한제국시대 소설 중에 《몽견제갈량》이란 게 있다.1908년(순종 2) 유원표(1852-?)가 저술한 국한문혼용체 정치소설로, 유원표 자신이 비스마르크 전기를 읽다가 소르르 낮잠에 빠지는 대목으로 시작한다. 그러다 꿈 속에서 그 유명한 제갈량을 만나 동아시아 삼국, 특히 중국과 한국이 살아날 방법을 두고 문답을 주고받는 내용인데, 그때나 지금이나 인기있던 《삼국지연의》에 편승하는 듯 하면서도 정작 저자는 《삼국지연의》에 빠진 이들을 비판하기 위해 제갈량을 내세워 일종의 '이이제이'를 시도하였다고 한다.애국계몽(갑자기 소름이...) 운동기에 적잖이 나타난 몽유록계 소설의 전형이라고도 할 수 있을 《몽견제갈량》 얘기를 왜 하는가 하면, 그로부터 십여 년 뒤 천하역적 일당 이완용(1858-1926)이 역시 꿈.. 2025. 1. 26.
[외치 이야기-1] 순동시대의 유럽인 인류학적으로 볼 때 완벽하게 미궁에 빠져 있던 것이 바로 유럽에 금속문화가 막 시작되던 순동시대다. 순동시대는 청동기보다도 앞 시대로서 chalcolithic period라고 부른다. 아래 그림에서 금속기가 퍼져 나가던 대략 기원전 3000년 즈음에 해당하는데, 이 시기는 이집트에 이미 문명의 서광이 비쳐 기자에 대피라밋이 만들어지기 보다도 약간 이전이 된다. 유럽에서도 이미 신석기시대는 훨씬 이전에 시작했으므로 농경과 유목이 자리를 확고히 잡고 있었을 때라 하겠다. 유럽의 이 시대는 고고학적으로는 어떠할지 모르겠지만, 인류학적으로는 완벽히 미궁에 빠져있던 시기였다. 지중해 건너편 이집트만 해도 수도 없이 발견되는 미라 연구를 통해 동시기의 사람들과 그 사회에 대한 정보가 많이 축적되고 있는 상황이었.. 2025. 1. 26.
[슈겐도와 일본 미라 이야기] (26): 에필로그 [2] 슈겐도 즉신성불 수행은 어떤 사람들이 했을까. 슈겐도 행자는 자연 속에서 수행하던 사람들-. 이들이라고 모든 사람들이 전부 즉신불이 되기를 시도했던 것은 아니다. 필자가 살펴본 바로는, 슈겐도 행자 중 즉신성불 수행에 들어간 사람들은 행자들 중에서도 그 위세가 대단하지 않았던 사람들이다. 행자들 중 버젓한 절에서라도 자리 잡아 있을 수 있었던 사람들은 거의 즉신성불에 들어가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 즉신성불에 들어갔던 사람들은 문자 그대로 가진 것이 별로 없던 분들로 이들이 즉신성불의 고행을 택하여 스스로 즉신불이 되기를 선택하였다. 이 때문에 지금 남아 있는 즉신불 성인들은 비교적 가까운 시기인 에도시대에 살던 사람들임에도 행장이라고 할 만한 이 분들의 일대기가 자세히 남아 있는 경우가 많지 않은 것 같.. 2025. 1. 26.
김유신을 전면에 끌어올린 학술대회[2] 극단의 시대 저 학술대회가 표방한 슬로건 ‘흥무대왕 김유신, 새로운 해석’은 김창겸 형이 밀어부친 제목이었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나는 저 제목 실은 마음에 안 들었다.왜 굳이 김유신을 흥무대왕으로 한정하느냐 하는 불만도 없지 않았고, 저리 되면 문중 냄새가 짙게 나는 까닭이었다. 이 불만은 설계 단계에서 내가 우회로 표출은 했지만, 그러고는 말았다.형이 그렇게 하겠다는데, 더구나 고향 선배이고, 당시 학회장이었는데 내가 더는 어찌할 수는 없었다.그런 점에서 보면 형은 어쩔 수 없는 김해김씨 아닐까 싶기도 하다는 생각은 지금도 한다. 아무튼 제반 준비를 거쳐 학술대회를 공지하게 되었으니, 당시 학술대회 안내문이다. 보다시피 안내문은 내가 작성했다. 현대의 저명한 어떤 역사가는 20세기를‘극.. 2025. 1. 26.
[슈겐도와 일본 미라 이야기] (25): 에필로그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어떤 사건의 동기를 합리적으로 해석한다는 명분 하에 역사적으로 남아 있는 여러 가지 당시의 명분을 너무 쉽게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슈겐도 즉신성불 고행을 한 행자들에 대해서도이들이 왜 이렇게 해야 했는지 그 배경을 찾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를 제시하지만사실 가장 간단한 설명은 이들의 열정적인 종교적 신념이다. 산속을 헤메며 수련하고 죽기 전 상당기간을 곡기를 끊고 나무열매를 먹으며 옻을 달인 차로만 연명하던 그들이 뭐 그렇게 대단한 부귀영화와 명성을 노렸을까. 그들이 밝힌 대로 대자대비, 중생구제를 위해 내 한 몸 던지겠다는 종교적 신념 외에는 설명할 길이 많지 않다. 오늘날 이러한 즉신불에 대해 우리가 어떤 시각을 가지고 바라볼지 모르겠지만 그 어떤 것이라도 .. 2025. 1. 26.
포항 삼국시대 목곽묘가 선사한 추정 옥벽玉璧 포항 흥해 남성리고분군 Ⅰ구역 삼국시대 41호 목곽묘 평면도와 추정 옥벽(玉璧) 기억이 분명하지 않지만 국내 삼국시대 유적 출토품으로는 특기할 만한 유물이 아닌가 생각된다. 436. 추정 옥벽(도면 143, 사진 154)목곽 내 북쪽, 동장벽 아래에서 출토되었다. 일부 결실되었다.내외면은 암올리브색, 속심은 회색을 띤다. 평면은 중앙이 관통된 원형이고 단면은 세타원형이다.현 길이 5.2㎝, 너비 5.5㎝, 두께 0.2㎝, 공경 1.9×1.9㎝, 무게 8.85g 437. 추정 옥벽(도면 143, 사진 154)목곽 내 북쪽, 동장벽 아래에서 출토되었다. 일부만 잔존한다. 내외면은 암올리브색, 속심은 회색을 띤다. 평면은 중앙이 관통된 원형이고 단면은 세타원형이다.현길이 5.0㎝, 현너비 1.7㎝, 두께 0.. 2025. 1. 26.
나이 죽음 이야기만 하다 끝난 견한잡록 칠순 팔순이 넘어가면 본능으로 죽음에 더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내가 아직 그 나이는 아니지만 환갑 앞두고 벌써 내가 언제 훅 갈지 모르겠다는 상념을 떨칠 수가 없는데, 저런 노인들이야 오죽하겠는가?더구나 평균수명이라 해 봐야 마흔도 되지 않았을 조선시대로 들어가서 본다면 어떻겠는가?앞서 안경이 초래한 혁명을 이야기하면서 잠깐 조선 중기를 살다간 심수경沈守慶이라는 사람을 소개한 적이 있다. 1516년, 중종中宗 11년에 나서, 과거 급제하고는 출세가도를 달려 훗날 좌의정까지 역임하고는 장장 84세 장수를 누리다가 1599년, 선조 32년 눈을 감았다. 특히 말년에는 임진왜란이라는 미증유 난국을 만나서도 살아남았으니, 그러고도 천수를 누렸으니 이런 사람이 팔순에 접어들면서 어떤 생각들로 살았을지 짐작하고도.. 2025. 1. 26.
미라사진 없는 미라 이야기 필자는 미라에 대한 연구 작업을 지난 20년간 해 왔는데항상 미라에 대한 보도와 대중의 관심이이에 대한 엽기적 뉴스로만 쏠려 있는 것이 안타까왔다. 이전 포스팅에도 썼지만 필자와 김단장이 함께 집필하는 이번 책에는 미라 사진을 최소화한 미라 이야기로 꾸며보고자 한다. 이런 책은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미라 관련 서적 중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에 가장 가까이 간 책이 언젠가 소개했던 바로 아래 책인데,   이 책에는 표지 사진 외에는 거의 미라 사진이 들어가 있지 않고 사람 이야기, 이를 연구하는 사람 이야기, 그 사회와 문화 이야기만으로 채워져 있다. 필자가 항상 생각해 온 것은미라 사진이 미라에 대한 연구와 그 스토리를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된다는 생각이다. 미라 사진은 마치 매운맛 음식과 같아 갈수록.. 2025. 1. 26.
[슈겐도와 일본 미라 이야기] (24): 즉신성불의 종말 메이지 정부는 유신 이후 신불분리령을 통해이전에는 불교와 뒤섞여 있던 신도를 분리하여 별도의 종교시설화 하는 작업을 하였는데 슈겐도는 여기서 신도의 일종으로 간주되지 않았다. 그렇게 하기에는 슈겐도는 너무 불교 쪽으로 깊이 침투해 있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일단 슈겐도는 전통 신도의 이론적 배경이라 할 고사기 등 문헌에 전혀 나오지 않는 데다가 슈겐도 자체가 불교 천태종과 밀교진언종 등에 깊이 결합되어 신도로 분리해 내기 용이하지 않았던 점, 거기에 한 가지를 더 들자면, 슈겐도의 행자들이 즉신성불을 목적으로 수행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였겠다. 메이지 정부는 유신 이후 가장 문제가 서구 제국과의 불평등 조약을 개정하는 작업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제국주의 국가들이 일본에서 치외법권 등을 요구하는 명분은일본의.. 2025. 1. 26.
김유신을 전면에 끌어올린 학술대회[1] 돈과 조직 이것도 한 시대 편린으로서, 그리고 김태식 궤적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정리해두어야겠다. 보다시피 2007년 10월 19일 금요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신라사학회와 동국대 신라문화연구소가 주최하는 '흥무대왕 김유신, 새로운 해석'을 주제로 내건 학술대회가 열렸거니와 이때는 김창겸과 김태식의 전성시대였으며, 이네가 주축이 되어 조직한 신라사학회가 한창 잘나가던 시절이었다. 신라사 전문 연구를 표방한 신라사학회가 김유신을 빼놓을 수는 없었다. 언젠가는 전면에 내세워야 하는 문제적 인물이었으니, 그런 말만 무성하다가 결국 신라사학회가 칼을 빼들었다. 문제는 돈이었다. 이 학술대회를 준비하면서 나는 창겸형이랑 누가 그리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자연스런 역할 분배가 이뤄졌으니, 형은 조직과 사람 끌어오기를 했고, 나는.. 2025. 1. 26.
[슈겐도와 일본 미라 이야기] (번외 8): 문명개화와 후쿠자와 유키치 문명개화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일본사에서 메이지 유신 이후 몰아닥친 급격한 근대화론을 의미한다. 이 사상에 관련하여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일본 만엔짜리 지폐 주인공 후쿠자와 유키치다.  후쿠자와 집안은 메이지유신 이전에는 하급무사로서사무라이 계급이라 해도 매우 한미한 집안에 속했다. 그의 아버지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아버지는 후쿠자와 햐쿠스케(百助)라는 인물로 번의 회계를 보조하는 한미한 직역을 담당하는 하급번 관리였는데 (사실 이런 직역은 한국사에서는 아전이나 다름 없다)단순히 하급무사-번리였던 것만이 아니라 유학으로 꽤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다만 후쿠자와가 속한 번은 워낙 신분차별이 엄격하여 아무리 학문적 명망이 높아도 도통 이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고, 그렇게 일생을 전전하다.. 2025. 1. 26.
[슈겐도와 일본 미라 이야기] (번외 7): 녹명관鹿鳴館시대 일본 메이지 시대에 지은 건물로 녹명관이라는 것이 있다. 일본어로는 로쿠메이칸이라 읽는다. 에도성에서 도쿠가와가 쫒겨 난 후 덴노가 쿄토에서 쇼군이 살던 성으로 옮겨 앉으니 그것이 바로 지금의 일본 황거(皇居, 고쿄)이다. 일본은 개항이후 서구 제국들과 불평등조약을 맺고 있었는데 1880년대까지도 여전히 그러했다. 일본은 조선에 무력으로 개입한 청일전쟁 시기까지도 여전히 서양 세력과는 불평등조약이었고이 조약은 최종적으로 러일전쟁 이후가 되어서야 완전히 개정되어 사라졌다. 아무튼 1880년대에 일본은 불평등조약 개정을 위해 일본이 서양 못지 않은 문명국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덴노가 사는 동경의 궁성 옆에 외국 빈객을 접대하기 위한 서양식 건물을 짓는데이것이 바로 녹명관, 로쿠메이칸이다. 녹명관을 기점으.. 2025. 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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