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전체 글20997

베르기나 아이가이 일찍 끝내고 완상한 할리아몬 강 절경 과거 경험도 그렇고, 이번에도 새삼 절감했지만, 어느 지역에 입성해서는 최대한 빠른 시간에 보고자 하는 핵심부터 치고 들어가야 한다. 시간 좀 남았다고 넋놓고 여유 부리다간 언제나 막판 돌발변수가 생긴다든가 혹은 여타 이유로 언제나 쫓기는 신세가 되기 마련이다. 어제 입성한 마케도니아 왕국 도읍 아이가이, 현 지명 베르기나는 사흘을 잡았으니, 솔까 볼 만한 데로 점찍은 데는 하루면 충분하지만, 들어오는 날은 어차피 날려버려야 하니 그렇다 치고 본격 답사 첫날이라 할 오늘 이른 아침부터 부산을 떨어 다 해치웠다. 알렉산더 대왕 아버지 무덤인 마케도니아 왕릉 자체를 박물관으로 개조한 아이가이 왕릉군 박물관 Μουσείο Βασιλικών Τάφων Αιγών을 필두로, 마케도니아 왕릉 유적인 아이가이 궁전 .. 2024. 11. 14.
유독 알아달라 징징거리는 고고학 우리 직업 이리 고생하고 이리 고심하며 그래서 그런 직업에 종사하는 우리는 숭고하다 이런 티 못 내서 환장하는 직업군에 고고학이 빠지지 않는데 유독 인문학 중에 고고학만 왜 저리 자랑하지 못해 안달복달할까? 고고학 현장 돌아보면 외국도 똑같은데 특히 그리스 고고학 현장이 더 그래서 그 현장 맨처음 만나는 기념물이 해당 유적 발굴한 고고학도 흉상이라 이걸 국내서도 딱 한 군데 흉내낸 데가 전곡구석기 현장이라 여기엔 공원에다 삼불 흉상을 세워놨다. 연세대 구석기학파는 공주 석장리박물관 안에다가 손보기실을 꾸몄다. 왜 직업군 자랑하지 못해 저리 환장할까? 저건 알아봐달라는 아우성이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몹시도 안쓰럽다. 돌이켜 봐라. 우리 학문 이리 고생한다고 누가 저런 식으로 가는 데마다 자랑질이라던가? 역.. 2024. 11. 13.
설치미술과 만난 고고학, 그 전시의 혁명 자세한 소개는 추후 정리하기로 하고 위선 사진들로만 감상한다. Polycentric Museum of Aigai 라는 데다. 2024. 11. 13.
그리스 자동차 여행[운전] 정리 한달째 지겹도록 천지사방 몰고 다녔으니 이제 정리할 때다. 더 지나면 일상이 되어 문제의식을 소멸한다. 1. 도로사정 물론 일부 고속도로는 사정이 아주 좋다. 남북을 관통하는 1번 고속도로인가는 속도광들한테는 왔다인 데다. 속도제한 표지판이 있기는 하지만 무용지물이며, 지키는 사람 아무도 없다. 한달간 운전하면서 스피드건 단 한 대도 못봤고, 경찰관은 사고현장에서만 보았다. 맘대로 달린다. 기타 주요 간선도로 제외하면 도로 사정은 아주 안 좋다. 어느 정도로? 꼬부랑길 산길은 대책없다. 안전운전 조심운전 방어운전만이 살 길이다. 그리스는 지리가 우리만큼 산이 많지만, 사회간접투자를 어찌 했는지, 도로는 비포장인 데도 제법이고, 꼬부랑길은 우리랑 차원이 달라서 간단히 견주면 김천 수도암 올라가는 길이 수십.. 2024. 11. 13.
너무나 다른 그리스 지리풍토 Google 지도Google 지도에서 지역정보를 검색하고 지도를 살펴보거나 운전경로 정보를 검색합니다.www.google.co.kr 에게해 여러 섬을 돌파하고 아테네 주변과 그 남부를 훑고서 서서히 북상해 지금은 그 북쪽 베르가이라는 데를 정박 중이어니와 이 과정에서 적어도 그리스 내부 지리 풍토를 조금을 보는 안목이 생겼으니 에게해 여러 섬은 위선 메마른 사막지대를 방불하고, 그리하여 숲이라 할 만한 데를 찾기가 매우 드문 반면 그리스 남부에서는 더러 그런 면모가 나타나니, 예컨대 내가 가 본 데로는 스파르타나 올림피아 정도에는 무성한 숲이 보인다. 그렇다고 온 산하가 우리한테 지금 익숙한 그 밀림과 같지는 아니해서 있는 데는 있고 없는 데는 없는 딱 그 정도 수준이다. 그런 까닭에 에게해 여러 섬과 .. 2024. 11. 13.
제국주의 일본과 비파형-세형 동검 문화 일본이 망하지 않고 만주부터 조선, 일본땅을 여전히 통제하고 있었다면고고학적 사실 중 비파형-세형 동검 문화 만큼 정치 이데올로기로 쉽게 이용 가능한 것도 없었을 것이다. 이는 중국문명과 뚜렷이 구분되는 문명의 특징이 있고, 또 요하유역에서 만주일대, 한반도를 거쳐 일본까지 하나의 문명권으로 묶는 것도 가능하다 (아래 그림 참조). 아마 그 이름은 한국청동기문화나 요령청동기 문화 대신 뭐라도 다른 이름을 일본인들은 여기에 붙였겠지만어쨌건 이 문화는 요하유역에서 만주, 조선과 일본을 하나로 묶어 다스리는역사문화적 정당성을 웅변하는데 백프로 활용되었을 것이다. 필자는 일본이 내선일체를 주장하는데 있어 한국청동기문화와 야요이문화의 연결성 만큼 중요한 선전도구는 없었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일본이 조선을 점거하고.. 2024. 11. 13.
학생부군신위 그리스 물고기 테라코타 폰카에 새로운 기능으로 반사 막음인가가 있다 들은 듯한데 맞는지 모르겠다. 혹 있다면 알려주기 바란다. 저런 그리스 로마 번질번질 뺀질뺀질 도기는 별도 조명 장치 없이 전시물 찍으면 그 유물 빛이 받는 데는 반드시 반사가 생겨 사진이 영 이상하게 된다. 이건 박물관에서 마음 먹고 조명 조절해 촬영한 것이다. 저 표현 보니 제사상 생각밖에 안 나고 그 머리맡에는 학생부군신위 지방이라도 써놔야 할 듯하다. 이르기를 Circa 400 BC- a red-figure terracotta dish with a fish inside- from Athens- Greece- This artifact is now housed at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라 하는데 기원전 400년 무렵 유물로 .. 2024. 11. 13.
나무바닥에 돌로 쌓은 백제 산성 연못 금산 진산성에서 드러나 근자 충남 금산군이 고고학 발굴과 관련한 보도자료 하나를 배포했으니 군내 진산면 읍내리 680 일원에 소재하는 고대 성곽 진산성 동쪽 건물터와 동문터가 있을 곳으로 추정한 곳 일원을 국가유산청 2024 역사문화권 중요 발굴조사 일환으로 매장문화재 조사기관인 (재)가경고고학연구소에 의뢰한 발굴조사를 실시한 결과 바닥은 나무로 짜고, 그 외곽은 돌을 계단식으로 쌓은 사각형 백제시대 연못 흔적으로 찾았다고 한다. 이를 조사단과 의뢰 기관은 집수지集水池라 했지만, 계속 하는 말이지만, 이는 말도 되지 않는 표현이라, 물을 모으는 연못이 말이 되는가? 연못이 그럼 물을 모으지 돌을 모은단 말인가? 암튼 이런 목석木石을 혼합한 구조가 이례적이라 평가하면서 백제시대 문화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 가치가 있다고 했다. 이.. 2024. 11. 13.
구본준 떠난지 벌써 10년, 그를 생각하며 곡한다 알렉산더로스 대왕 태생지요 그가 마케도니아 왕위에 즉위한 그리스 베르기나Vergina, 옛 이름 아이가이Aigai에 막 입성해 출출한 허기를 달래느라 식당에 들어가 돼지고기를 뜯고 있는데 느닷없는 카톡 전화, 것도 영상통화가 걸려온다. 찍힌 연락처를 보니 언론계 선배요, 전임 문재인 정부에서 문화재청장을 역임한 정재숙 누나라 이 누님 떠나기 전에는 장도長途라는 글자 적힌 봉투에 100달러짜리 지폐 담아주면서 잘 다녀오라 하면서 돈 떨어지면 언제고 연락하라 신신당부한 정감 많은 사람이라, 또 무슨 장난질을 치려고 영상통화꺼자? 했으니 오늘이 구분준 10주기 되는 날이라, 즐거운 파티를 벌이는 중이라 너스레다. 그는 그런 사람이다. 추모식이라는 표현 굳이 쓰지 않는다. 그러면서 함께 모인 사람들 면면을 보이.. 2024. 11. 12.
베르기나, 사람보다 닭이 많은 알렉산더 본향 안개 낀 메테오라는 차마 눈 뜨고 볼 수는 없어 그대로 다음 행선지 베르기나로 날았으니 두 시간 만에 예약한 여인숙에 여장을 풀고선 읍내 탐방에 나섰으니 물론 현재와 이천삼백년 전 필리포스2세와 알렉산드로스 시절 마케도니왕 왕국 수도랑 지금의 베르기나를 비기겠는가? 다만 그때나 지금이나 이곳은 그리스 기준 변방이기는 마찬가지라 마케도니아가 무슨 희랍인 취급이나 받기나 했던가? 촌구석 뜨내기에 지나지 않았으니 언제나 혁명은 이런 변방이 주도한다. 왜? 절박하니깐..끌어엎지 않음 내가 계속 굴종이니 혁명가가 배태하는 절대의 공간이 바로 이것이다. 이곳을 기반으로 아비가 닦은 거름 무럭무럭 먹고 자라난 알렉산더가 마침내 자신을 얼치기 촌뜨기라 놀리던 아테네 테베를 개박살내고선 이를 발판으로 마침내 종주국 아케.. 2024. 11. 12.
well head에 둘러앉은 여인네들 메트 뮤지엄 소장품 중 하나로 칼라풀하기 짝이 없는 고대 조각이다. 저에다가 메트는 Terracotta group of women seated around a well head Greek, Tarentine 라는 명세로 소개한다. well head가 무슨 뜻인가? 글자 그대로는 저 well이 우물인가? 그럼 우물머리? 암튼 어떤 웰헤드 주변에 우루루 몰려 앉은 다섯 여인네를 형상화한다. 타렌티네Tarentine는 출토지인 듯하다. 2nd half of 4th century BCE On view at The Met Fifth Avenue in Gallery 162 제작 시기는 기원전 4세기 2분기쯤으로 본댄다. 대략 기원전 350년에서 조금 빠른 시점으로 보는 듯하다. 그렇담 저건 어디에 써먹던 것일까? .. 2024. 11. 12.
관음보살 같은 미케네 여인 Mycenaean Lady, Acropolis of Mycenae, Greece, 13th century BC. 곧, 그리스 미케네의 아크로폴리스Acropolis of Mycenae를 튀어나온 기원전 13세기 무렵 미케네 여인이라 하는데 이 분을 어디서 뵈었는지 아닌지 아리까리하기만 하다. 이젠 너무 짧은 순간에 하도 많이 보니 뭘 봤는지 안 봤는지도 모르겠고 더구나 실견이 아니라 해도 하도 이런저런 자료라 해서 소개한 것이 많아 더 헷갈린다. 암튼 저 프레스코화는 목걸이를 받는 여신을 묘사한 것으로 추정한다 하는데 저 생생한 묘사가 놀랍기만 하다. 얇은 블라우스 위에 반소매 보디스bodice를 걸친 모습이 하늘하늘하다. 복잡한 헤어스타일과 풍성한 주얼리(목걸이, 팔찌)가 눈길을 끈다는데 현재 소장처는 .. 2024. 11. 12.
아쉽지만 접어야 하는 메테오라 메테오라는 여러 모로 아쉽지만 기상조건에 이 정도로 만족해야겠다. 그런대로 건질 만한 풍광은 그에서도 몇 가지 건지는 한 듯하니, 이제 다음 행선지 베르기나나로 떠야야지 않을까 싶다. 현지시간 9시 반, 쳌아웃까지 시간 반 남았으니, 어차피 따뜻한 호텔방이 여러 모로 나아 그 시간까지 꽉 채우고 나가려 한다. 혹 그새 안개가 좀 걷힌다면 모를까 싶다. 언덕배기 한 바퀴 돌다보니 수도원 수녀원이 꽤 많아 개중에 묻을 닫은 데도 있지만 연 데가 두어 군데 보이고, 개중에 풍광 좋은 데가 있어 그런 데 들러볼까 한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메테오라는 풍광을 맛보려는 데 아닌가 싶다. 그 유명하다는 곳 나도 와 밨어 하는 안심을 주는 그런 데 아닌가 싶다. 물론 하루이틀 잠깐 훓어보는 인상비평에 지나지 않지만 말이.. 2024. 11. 12.
이가 없음 잇몸으로, 그래도 건지는 메테오라 넋놓고 당할 수는 없다. 어떻게 여길 왔는데 안개 타령만 일삼을 수는 없다. 순간 내가 선 지점이 유독 안개가 많은 데 아닌가 싶었다. 산중 도로를 따라 무조건 달렸다. 수동 2단으로. 역시나 조금 산을 내려가고 언덕길을 도니 우중 안개 수도원이 하나 나타난다. 천우신조다. 적지 않은 사람이 다녀갔겠지만 이런 풍광 맛본 사람 몇이나 될 거 같은가? 역시 마음 먹기 나름이다. 빗줄기가 거세진다. 2024. 11. 12.
가는 날이 장날, 암것도 없는 메테오라 현지시간 아침 일곱시 삼십분 그 유명하다는 그리스 메테오라 어제 늦게 들어와서는 하룻밤 밑에서 유숙하고는 지금 그 뒷동산 포인트라는 데를 차로 몰고 와서는 멍때리기를 하는 중이다. 이 멍때리기는 강요된 것이라 내 자발의지랑은 눈꼽만큼도 관계가 없다. 왜? 계속 비가 내리는 데다 그에 따른 짙은 연무에 암것도 진짜로 암것도 뵈는 게 없기 때문이다. 기온도 뚝 떨어져 지금 나는 차에서 히트 켜놓고 논다. 연무가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눈에 뵈는 게 없음 실성일 텐데 그냥 허탈하다. 오후엔 베르기나로 다시 두 시간을 북상해야 하는데 이러다 귀신 같은 메테오라만 기억에 남을 것만 같다. 어제 늦게 입성하며 받은 첫 인상은 기암절벽 솟구쳐 기이한 광경 연출하는 이곳이 나한테는 또 다른 장가계였다. 평지로 내려온.. 2024. 11. 12.
파르나소스 연무에 받은 신탁? 놓고 가야 할 것들 북한으로 가면 사정이 달라지지만, 남한에는 해발 2천미터 넘는 산이 없다. 한라산이 그 턱밑까지 추격해 1950미터요, 지리산이 1905미터이며, 넘버 쓰리가 설악산이라 1708미터인가다. 북한을 합쳐 한반도는 산악 국가라 하지만 해발 3천미터가 넘는 산이 없다. 우리는 자꾸 더 높은 산을 찾아 선망하기도 하지만, 해발 천미터만 되어도 그 산은 영험의 징조를 자주 보인다. 델피 유적, 그곳 아폴론신전이 정좌하는 그리스 파르나소스산은 내가 테페를 거쳐 델피로 입성하면서, 또 델피를 탈출해 메테오라로 향하면서 그 산고개들을 넘어면서 절감했지만, 해발 2천400미터라 하지만, 그 펑퍼짐한 부피가 엄청나서 고갯길은 달려도달려도 끝이 없다. 그 봉우리와 기슭에는 시시각각 연무와 구름이 피어오른다. 델피 체류 둘쨋.. 2024. 11. 12.
선진국과 후진국, 그 사이에서 더 특이한 한국 필자가 지금까지 접한 경험을 돌이켜 보면, 대개 후진국 대학 교수들이 내부의 정치적 권력에 욕심이 많다. 그리고 학계의 명성이 평생 업적이 아니라그런 내부 권력의 크기에 따라 좌우되는 건 대개 후진국 대학이다. 물론 대학이라 해서 그런 내부 정치적 권력이 없는 것은 아닌데 오로지 대학 내 정치 권력에 의해 교수 사이에 서열이 결정되는 건 후진국 특징이다.  까 놓고 보면, 학문 업적으로야 어차피너나 내나 내놓을 만한 게 없긴 마찬가지니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한국은 더 특이하다. 교수들이 아예 정계 진출해서 국회의원도 되고 장관도 된다. 이런 현상이 대학에 만연한 나라는 정말 선진국에서도 못 봤고 후진국에서도 못봤다. 한국의 사례는 전 세계적으로 특수한 사례로서 기억될 만하다. 인접국인 일본에서 대학교.. 2024. 11. 12.
바위가 굴러 떨어져 폐쇄한 델피, 하필 내가 가는 시점에? 그렇다면 왜 델피 유적은 절반이 폐쇄되었을까?나한테 개구멍을 알려준 그 영국 출신 거주민이 알려준 내용이다.2주 전이다. 산에서 돌덩이가 굴러 떨어져서 도로를 덮치고 유적을 들이쳤다. (이곳 유적 관리 총책임자가) 관람객 안전과 차량 안전을 위해 폐쇄를 결정했다. 안전진단 전문가들을 불렀다. 어찌 될 지는 모르겠다.이는 이곳 주민 증언이니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한테 내용을 확인해야 했다.개구멍 오라클 촬영을 끝내고서 어제 시간 촉박에 보는둥마는둥한 델피고고학유적 제대로 된 관람을 위해 옮아갔다. 오전 일찍인데다, 날씨까지 꾸물꾸물해 사람도 없다. 매표소 직원들 셋 중 남자는 담배나 뻑뻑 피며, 여직원 둘과 노닥이는 중이었다.놀라운 것은 매표소 중년 여성 반응."하이 굿모닝 아앰 ----멤버, 아이 .. 2024. 11. 12.
개구멍 찾아 들어간 델포이 오라클 그리스 당국은 왜 델피 유적 절반을 폐쇄하고선 꼴랑 한 군데만 문을 열었을까? 아 물론 그 인근 델피고고학박물관은 문을 열었다. 어케든 폐쇄한 오라클 유적 그 문제의 기둥 세 개가 선 그 기념물은 사진이라도 담아야 한단 일념으로 개구멍 찾아 현장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산 중턱을 뚫은 편도 1차선 도로는 한 쪽이 천애 바위절벽이고 그 도로 아래로 오라클은 있었다. 실상 현장은 볼 것 없다. 딴건 담을 것도 없고 그 기둥이 선 원형 제사유적만 찍으면 그만이다. 한데 김나지움은 도로에서 내려다봐도 훤히 내부가 보이는데 저 오라클은 올리브 나무 숲이 다 가려 보이지 않았다. 그 입구는 폐쇄한다는 알림만 있을 뿐 사람이 통과할 만한 구멍은 있었다. 현장은 인기척이 없는 듯해 들어가도 상관없을 것 같아 그 구멍으.. 2024. 11. 12.
흐린 날과 맑은 날, 그 차이가 우선순위를 결정한다 지금 가야 할 데가 현장 유적 세 군데랑 박물관 한 곳이다. 아침에 나던 해가 들어갔다. 고민한다 현장은 해가 나서 좋고 안나서 좋을 때도 있지만 대체로 전자가 좋다. 그래서 박물관을 먼저 가서 해 날 땔 기다리나마나 고민이다. 단 현장은 지금 가야 북댁이지 않는다. 그리고 박물관은 체력 소진이 크다. 다행인 점은 이곳 델피 델포이 유적이랑 박물관은 다닥다닥 붙어있다는 사실이다. *** 말은 저리했지만 실행은 정반대가 되어 현장 먼저 돌고 박물관을 갔다. 돌아가는 폼새 보니 해가 나긴 글렀고 무엇보다 세차지는 않았지만 비가 계속 왔기 때문이다. 그리스 전역이 오늘 이렇지 않았나 한다. 상황은 현장 판단에 따라 수시로 변동하기 마련이다. 2024. 11. 12.
[기념품이 된 피양 명물] (2) 평양방송국 존경하는 석지훈 선생님이 댓글로 JBBK의 답을 달으셔서, 아는 분들은 다 알겠지만 그대로 밀고 나가기로 한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직접 보시는 게 나으리라. 바닥면에 새긴 아홉 글자, "평양방송국 개국기념"이다. 이 땅에 방송이란 게 처음 등장한 것은 1927년의 일이다. 물론 그 전에도 시험삼아 전파를 송출하긴 했었지만 엄연한 프로그램을 틀어주는 방송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그땐 TV는 없었다(생각보다 알려지기는 일찍 알려진다. "텔레비-죤으로 파송하여 왔습니다"같은 문구가 1930년대 잡지에 보인다). 라디오 전파를 정동 1번지 산마루(지금 덕수초등학교 터)에 세운 방송국에서 쏘아보냈는데, 그 전파 호출부호가 JODK였다. 일본에서 네 번째로 시작하는 방송국이라 D를 붙였다나. 그래서 방송을 시작할.. 2024. 11. 12.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