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전체 글17698 제8차 남아시아고고학대회 4월 개최 Bihar Museum - Event detail Bihar Museum - Event detailThe SOSAA brings Archaeologists, Historians, Anthropologists, Museum experts, Social Scientists, Archaeological Scientists, etc. working on diverse facets of heritage and culture on one integrated platform to discuss common issues related to population movwww.biharmuseum.org 제8차 남아시아고고학대회가 4월 4일-7일까지 인도 비하르박물관에서 개최된다고 알려왔습니다. 원래 1월이었는데 4월로 연.. 2024. 1. 31.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이 지자체만의 업무인가 국가유산기본법 : 제정 2023. 5. 16. / 시행 2024. 5. 17. 하도 많이 써서 이젠 제정 날짜와 시행 날짜도 외울 지경이다. 작년 5월 국가유산기본법이 제정된 후, “문화재”가 아니라 “국가유산”으로 통칭하고, 분류체계를 “문화유산, 무형유산, 자연유산”으로 재정립하는 변화가 생겼다. 국가유산기본법의 입법 취지와 방향의 큰 틀에 대해 문제를 삼고 싶은 생각은 없다. 법 시행은 24년 5월이지만, 작년부터 문화재청에서는 국가유산 체제 전환에 따라 지자체에 문화재 명칭이 들어간 조직 명칭 변경이나 조례 개정, 안내판 정비 등을 국가유산기본법 시행 전까지 “문화재” 용어를 지우는 작업을 완료해달라고 재촉(?)하고 있다. 그러나 제대로된 가이드라인과 상위법령 개정이 선행되어야만 지자체에서도 혼란.. 2024. 1. 31. 과테말라가 토해 낸 1,700년 전 마야 옥 가면 Stunning jade mask found inside the tomb of a mysterious Maya king National Geographic Explorer Francisco Estrada-Belli’s discovery in Chochkitam, Guatemala, sheds new light on an ancient society. https://www.nationalgeographic.com/history/article/maya-jade-mask-carved-bone-discovery Stunning jade mask found inside the tomb of a mysterious Maya kingNational Geographic Explorer Francisco Estrada-.. 2024. 1. 31. 같은 대머리수리 조난 기사, 결이 다른 두 아티클 미국 덴버 동물원 인식표 단 대머리수리, 전남 광양서 구조돼 2024-01-30 12:38 https://m.yna.co.kr/view/AKR20240130084800054?section=search/news 미국 덴버 동물원 인식표 단 대머리수리, 전남 광양서 구조돼 | 연합뉴스(광양=연합뉴스) 정다움 기자 = 미국 덴버동물원의 인식표가 부착된 독수리가 전남 광양에서 다친 채 발견돼 동물센터에 의해 구조됐다.www.yna.co.kr 이 기사를 보면서 모든 독자가 품는 의문은 똑같다. 어찌하여 미국 덴버동물원에서 인식표를 달아준 대머리수리 라는 독수리가 전남 광양 땅에서 발견되냐 이거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어떤 인연으로 미국 쪽에서 저 독수리를 잡아서 이건 우리 꺼다 하는 표식을 달아줬는데 그놈이.. 2024. 1. 31. 류렬의 한국어 연구 특징 앞서 월북 국어학자 류렬과 관련한 그의 국어학 주장 요지 하나를 소개했으니, 아래 기사는 그 무렵 그와 짝해서 별도로 작성해 송고한 내 기사다. 2000년 당시 여든두살 류렬은 이산가족방문단 일원에 포함되어 딸 류인자(당시 59세) 씨를 상봉했다. [2000.08.17 송고] (서울=연합뉴스) 김태식기자 = "그리하여 이 부문(국어)의 연구에서 부르죠아 반동학자들과 제국주의 침략자들의 앞잡이들이 퍼뜨리고 있는 온갖 그릇된 관점과 주장, 방법론, 그리고 우리나라에 대한 침략과 민족 분렬책동을 합리화하려는 궤변들에 대하여 리론적으로나 자료적으로나 응당한 타격을 주고 짓부셔버려야 한다". 1983년 북한 과학백과사전출판사에서 나온 『세나라 시기 리두에 대한 연구』 서문에서 이 책 저자인 류렬(82)은 이렇게 .. 2024. 1. 30. 삼국시대 지명 분석을 통해 동일민족설을 주창한 월북 국어학자 류렬 앞에 강민경 선생이 월북한 저명한 국어학자 김수경金壽卿 관련 글을 기고했기에, 비슷한 처지였던 월북 국어학자 류렬柳烈(1918~2004)에 관한 기억이 나서 2004년 내가 쓴 관련 부고 기사를 전재한다. 1918년이라는 생년은 남쪽에 남은 같은 국어학자 허웅 선생, 이강로 선생과 같다. 류렬이 특히 비판한 남한 국어학 거물 이기문은 1930년생이라 나이 차이가 좀 난다. 기사 본문에서 보듯이 허웅 이강로 두 선생 논급이 있다. 그의 연구성과 중 《세나라시기의 리두에 대한 연구》는 특히 중요하다. 삼국시대에 보이는 지명은 거의 다 망라하여 그 유래를 추적했다. 물론 그의 주장을 모두 따를 수는 없겠지만, 엄두도 내지 못한 일을 해냈다. 월북 국어학자 류렬 박사교수 별세 연합뉴스 2004.08.02 11:.. 2024. 1. 30. 페라리 타고 도망가던 현종, “너무 왔나?” 앞서 보았듯이 코앞까지 밀어닥친 거란군을 피해 고려 현종 왕순은 1010년 12월 28일 임신壬申, 양력 2011년 2월 3일 남쪽으로 줄행랑을 쳤다. 드라마는 현종이 끝까지 개경을 사수하려다가 할 수 없이 피했다고 해서 고뇌에 찬 군주의 모습을 그렸지만, 실상은 전연 달라 이날 밤 몰래 후비后妃 몇 명과 이부시랑吏部侍郞 채충순蔡忠順을 포함한 금군禁軍(궁궐 수비대) 50여 인과 더불어 아주 단촐한 규모로 경성을 빠져나갔다. 소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꼼수였다. 밤새 달린 현종은 이튿날인 1010년 12월 29일 계유季酉에는 적성현積城縣 단조역丹棗驛이란 곳에 이르고 다시 그곳을 떠나 날이 저물어서야 창화현昌化縣이란 곳에 이르렀다. 앞 지도를 보면 이날 임진강을 도하했음을 본다. 아마 그쪽 현 치소에서 머물.. 2024. 1. 30. 남쪽으로 튄 현종, 보름 만에 날아서 나주에 닿다 성종이 친정한 이른바 2차 고려거란전쟁에서 결국 개경까지 함락 당할 위기가 닥치자 현종은 1010년 12월 28일 임신일에 남쪽으로 줄행랑치기 시작해 1011년 1월 13일 정해丁亥(양력 2월 18일) 노령蘆嶺을 넘어 나주羅州에 입성하니 개경 출발 기준 불과 보름 만이었다. 왕의 행차가 이렇게 빠를 수는 없으니 얼마나 급박했는지를 짐작케 한다. 우사인 볼트보다 빠른 줄행랑이었다. 예서 궁금증. 남쪽은 고려시대 당시에도 개경을 기준으로 삼아 크게 두 가지 통로가 있었다. 나주로 곧장 남진하는 코스와 소백산맥 넘어 경주 방면으로 가는 길이 그것이었다. 두 길은 천안, 구체로는 갈기비가 있는 데서 갈라진다. 현종은 단 코스를 선택했다. 왜? 저 코스는 전반으로 보아 평탄하나 두 개의 고개를 넘어야 한다. 천안.. 2024. 1. 30. 장성을 왜 쌓았을까 우리 역사에는 몇 차례 장성 축조 역사가 있다. 고구려, 고려 때 두 차례 천리장성이 있고 전술한 대령강장성도 어느 시기엔가 쌓았던 6백리짜리 장성이다. 연길에도 장성이 있다. 이것도 고구려 시대라는 주장이 있는데 알 수 없다. 장성을 왜 쌓았을까. 흔히 문명과 야만의 경계라는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우리 조상들이 그렇게 여유가 있었을까. 나이가 들면서 한국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바뀌는데 한국사는 경제적으로 넉넉했던 적이 없는 역사인데 그 없는 살림에 필사적으로 군대도 운영하고 대장경도 찍고 금속활자로 100부 되는 다품종 책도 찍어내고 한글도 만들고 했던 나름 근검 절약 빡센 역사라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다른 나라처럼 호화막대한 건물 유적은 별로 없어도 수천년 무지막지한 침략에도 살아남고 수 없는.. 2024. 1. 30. 강동6주? 서희가 강제로 탈취했지 거져 얻은 것이 아니다 저 강동육주江東六州라는 말은 전통시대 사서에는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이 점이 못내 옛날부터 미심쩍기 짝이 없었지만, 그런 대로 저 시대 역사를 설명할 때는 편리한 점이 많아 그대로 따르기는 했지마는 더는 두고 볼 수 없다. 우리한테 각인한 이미지는 서희라는 세 치 혀로 무장한 뛰어난 고려시대 외교관이 80만 대군이라 설레발 친 거란 소손녕과 외교 담판을 지어 그 자리서 저 땅을 받았다고 하지만 천만에. 당시 양쪽 조정을 대표한 두 사람 사이에 어떤 밀실 야합이 있었는지는 고려사(절요 포함)와 요사 모두 침묵하지만, 이후 전재된 양상으로 보건대 명확해서, 또 많은 이 시대 연구자가 지적하듯이 고려는 송과의 조공책봉 관계를 끊고 이제부터는 거란을 종주국으로 섬겨 요나라에서 조공 책봉을 받겠다. .. 2024. 1. 30. 조선의 건국, 왕후장상을 씨로 따지는 시대의 개막 거리마다 외국산 상품이 넘쳐나는 시대가 있었다. 해마다 외국 상선이 쏟아져 들어오는 시대가 있었다. 장사로 떼돈 버는 사람도 생겼다. 언감생심 출세는 꿈도 꾸지 못할 사람들이 불알 짤라 출세하고 소 잡는 백정하다가 벼락출세하는 시대가 있었다. 그들은 당당히 외쳤다. 왕후장상이 어찌 씨가 있으리오? 이런 시대 카니벌이 있었다. 모인 군중은 툭하면 삼만이요 많으면 수십만이었다. 한데 혁명이 일어나 느닷없이 외국산 수입 전면 금지 조치를 내렸다. 원리주의자들이 등장해 세상은 썩었다고 성토하면서 농업만이 살 길이라고 설레발을 쳤다. 군중 집회 역시 전면 금지되었다. 이로써 한국사는 오백년을 후퇴했다. 저 싸가지 없는자 수괴가 이성계요 정도전이다. 저들이야말로 수구반동이다. (2016. 1. 30) *** 좀 과.. 2024. 1. 30. 혈혈단신, 보재기 들고 가는 사신 없다 전통시대 왕조국가 체제에서 저런 식으로 선물 꾸러미 몇개 든 쫄개 몇 명 데리고 가는 사신 행렬단은 유사 이래 없다. 외교를 내 아버지가 내 담임 선생님 뵈러 갈 때 우와기 걸치고 쌀 가마니 하나 들고 가는 그런 모습으로 할 수는 없다. 심지어 전투 중인 양쪽 군대에서도 협상을 벌일 때도 저런 식으로 하지 않았다. 비상 사태에 대비해 적어도 수 백 명 이상 되는 중무장한 양쪽 군대가 뒤쪽에서 집결한 가운데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물론 이해는 한다. 드라마니깐. 고려거란전쟁에서 2차 전쟁이 끝나고 양측에 전운이 감도는 가운데, 전쟁을 막아보고자 고려 조정에서 김은부를 거란에 파견하는 장면이다. 촬영 무대가 어딘지 모르겠는데, 저런 장소 찾는다고 애를 먹었겠다 싶다. 배경은 CG 처리해야 했으니 돈도 .. 2024. 1. 30. 강동육주와 대령강장성 흔히 강동육주의 획득으로 압록강선까지 진출했다고 하는데 강동6주를 얻기 이전의 고려와 거란, 혹은 여진과의 경계선은 어디었을까. 이것은 맨땅에 그어진 것이 아니라 이것 역시 강을 경계로 국경선이 이루어져 있었을 가능성이 높지 않았을까 한다. 강동육주의 모양을 보면 위와 같은데 남쪽 경계는 청천강이 아니라 대령강이라는 강이다. 강동육주를 얻기전, 고려는 대령강이라는 강을 경계로 거란 혹은 여진과 국경을 맞대고 있었던 셈이다. 이 대령강에는 "대령강장성"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이 장성은 대령강을 따라 남쪽으로 달리는데 전체 길이는 240킬로 미터 정도 된다니 리수로 하면 600리 장성인셈이다. 이 장성은 중국쪽에서는 전국시대에 한반도 안으로 밀고 들어온 만리장성의 유지로 보아왔다. 따라서 중국쪽 주장대로.. 2024. 1. 30. 강동육주, 고려거란전쟁의 최대 변수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이 그 대미라 할 3차전을 향해 치닫는다. 그 전쟁의 야합이 이른바 강동6주였으니 이후 전쟁과 그 간헐 기간 내내 두 왕조는 이 강동육주를 사이에 두고 팽팽한 긴장을 연출하게 된다. 서희는 세 치 혀로 강동6주를 획득했던가? 아니다. 야합이 있었다. 고려는 송과의 조공책봉관계를 청산하고 거란에 칭신하는 대신 그 선물로 저 땅을 받았으니 그렇다면 왜 거란은 저 땅을 순순히 내어주었는가? 그네의 직접 통치력이 미치지 아니하지만, 신속하는 여진 땅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거란으로서는 주나마나 아무런 중요성이 없는 땅이었다. 한데 이 땅이 이후 저리 비린내나는 전쟁 혹은 대치국면마다 그토록 중요한 변수가 될 줄 누가 알았을까? 고려도, 거란도 몰랐다. 애꿎은 여진만 피해를 봤을 뿐이다. #고려.. 2024. 1. 29. 조선왕실을 밝힌 조명과 조명들 그제 국립고공박물관 소장 조명 자료 정리 소식을 전해 드렸거니와 그 추가 사진들을 문화재청이 공개했으니 조명은 조명빨임을 고려해야 한다. 암튼 저를 다음과 같이 소개했으니 참고바란다. 소장욕구 불러일으키는 이 조명들은 모두 조선 왕실에서 사용하던 조명기구예요. 조선 왕실 #조명기구 는 기름(등유)과 초가 사용된 전통식 등기구에서 개항 후 전깃불이 켜지기까지 시대와 용도에 따라 변화하며 궁중의 밤을 밝혀왔는데요,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조명기구 유물을 체계적으로 총정리해서 일괄적으로 소개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공간과 시대를 밝힌 조명이야기(조선 왕실~대한제국 황실)는 누구나 볼 수 있게 고궁박물관 홈페이지에 올려뒀어요. 📙 국립고궁박물관 소장품 도록 : 조명기구 https://www.gogung.go.k.. 2024. 1. 29. 천연기념물의 역설, 꿩과 원앙의 경우 꿩이 많은가 원앙이 많은가? 혹자는 원앙을 천연기념물에서 지정해제하면 다 자 묵는다고 한다. 묻는다. 꿩은 천연기념물 아니라서 멀쩡히 살아있는가? 참새는? 까치는? 까마귀는? 비둘기는? (2014. 1. 29) *** 이거 함부로 말 못한다. 꿩은 눈에 띄게 줄었고 원앙은 없는 데가 없다. 이 역설 어찌 설명할 것인가? 2024. 1. 29. 《직설 무령왕릉 추보》 (6) 이빨은 출토지점도 모른다 이빨 고고학이 참상을 빚었다는 지적은 이미 내가 2001년 무렵에 했다. 나는 관재에 대한 분석도 없이 그 관재를 밤나무라고 지적한 발굴보고서 내용의 부당성을 지적하면서 이를 '밤나무 고고학'이라 명명했듯이, 무령왕릉에서 유일하게 인골로는 건진 어금니 하나를 대상으로 하는 눈대중 감정을 '이빨 고고학'이라 표현했다. 한데 관재는 정작 분석 결과 밤나무와는 하등 거리가 먼 일본 열도 특산 자생종인 금송으로 드러났으며, 이빨 역시 발굴보고서가 인용한 30대 여성 운운한 감정이 눈대중에 지나지 않았음이 이후 백일하게 드러났다. 하지만 우리가 이 지점에서 이 어금니 문제를 다시금 생각해야 할 대목은 이 어금니는 출토 지점을 모른다는 점이다. 그 출토 정황에 대해 김원룡은 발굴보고서에서 "구치臼齒의 법랑질만 남은.. 2024. 1. 29. 아키야마, 오야마, 하리모토 추성훈이 나이 50을 목전에 두고 격투기에 나가 KO패한 모양이다. 댓글을 보니 참... 필자 생각에는 그렇다. 추성훈이 나이 50에 격투기에 나간 것이 뭐 세계챔피언 하자는 동기겠는가. 가족 부양이 가장 큰 이유 아니겠는가. 본인의 체력이야 본인이 더 잘 알거고. 나이 50에 격투기에 나간 추성훈이나 늘그막에 권투를 다시 시작한 조지 포먼이나 사실 그게 그거다. 남자가 가족 부양을 위해 일하는 것 만큼 숭고한게 있을까. 개인의 성취도 그 다음이다. 추성훈이 일본에서는 아키야마, 한국에서는 추성훈이라 하는 것을 두고도 말이 많은데, 조금이라도 더 벌겠다고 아키야마로 일본에서 처신했다면, 그리고 그것이 가족 부양을 위해서라면 거기다 돌을 던질 수 있을까. 그렇다면 하리모토 (장훈)는? 오야마 (최배달)는?.. 2024. 1. 29. 갈돌과 갈판, 이걸 궁구해야지 않겠는가? 이 갈돌과 갈판은 신석기시대 이래 청동기시대에 걸쳐 월드와이드한 출토 양상을 보인다. 물론 청동기 이래 현대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베리에이션 형태로 도구로 줄기찬 생명력을 자랑한다. 한국고고학은 이 갈돌 갈판 문제를 얼마나 심각히 바라보았는가? 양식 문제 말고 그 기능을 두고 얼마나 심각하게 바라보았는자 다시금 묻는다. 난 아무래도 저것이 인류사 혁명일 듯한데, 이런 측면들이 얼마나 제대로 심각하게 논급되는지 못내 의심한다. 왜? 내가 생각하는 그 중대성을 착목한 문제의식 자체도 아예 없기 때문이다. 뭐 우리도 다 생각했다 라고 하면 할 말 없겠지만... #갈돌 #갈판 #갈돌갈판 *** related article *** 돌갈판과 돌가루 돌갈판과 돌가루 빵을 주식으로 하는 문명권에서는 음식을 거칠게 만드는.. 2024. 1. 29. 김천 섬계서원 백촌白村 김문기金文起 원허비 경북 김천시 대덕면 조룡1리 섬계서원 경내에 세운 백촌 김선생 원허비라. 보니 전액은 승지 순천 박씨 종현이 쓰고 본문은 통훈대부 행 지례군수 안동 김씨 누가 썼다 한다. 본문을 보면 원래 섬계서원 자리엔 백촌 선생을 제향하는 섬계사라는 사당이 있었다 하거니와 금상 병인년에 조령으로 훼철되니 여러 후손이 그 황폐함을 차마 보지 못하여 그 자리에 설단하고 그 내력을 기록했다 한다. 뒤이어 백촌 사적을 기술하거니와 보니 비문에선 공이 선덕 병오년에 생원시 문과에 급제하여 두 왕을 섬기다가 세조 병자년에 육신이 주살됨에 연좌되어 주륙당한 삼십여인 중 한명이 공이라 했으니 이 유허비가 공을 사육신으로 보지 않았음이 명백하다. 영묘, 곧 영조 신해년에 비로소 신원 복작되었다 운운... 손이 얼어 차마 비문을 현장.. 2024. 1. 29. 도 밖에 닦을 것이 없을 가야산 청량사 상경하기 전 오늘 하루 시간 내서 가야산 일대 몇 군데를 돌았다. 시간 맘 여유 있다면야 몇날 며칠 여유를 두고 돌아보고 싶지만 언제나 똥침 맞은듯 급하기만 하다. 법수사지 해인사 돌고는 김천으로 돌아오기 전 청량사라는 곳을 들렀다. 석등과 석탑이 좋단 말은 들은 적 있지만 사방 풍광이 이리도 장엄할 줄 몰랐다. 김천 수도산 중턱 수도암과 여러모로 오버랩하거니와 나로선 숨은 보물을 찾은 기분이었다. 앞으로 자주 찾았으면 해 본다. (2017. 1. 29) *** 등잔 밑은 언제나 어두운 법이다. 내가 정작 가장 가 보지 못한 데가 김천 주변이다. 서울이라 해서 다르겠는가? 그래서 몇년 전부터는 일부러 주변을 보자 해서 주변을 싸돌아다니는데 끝도 없다. 저 청량사라는 데는 앞서 논급했듯이 여러 모로 김천 .. 2024. 1. 29. 이전 1 ··· 165 166 167 168 169 170 171 ··· 843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