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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고궁박물관 조선 궁궐 조명기구 총정리 국립고궁박물관이 조선시대·대한제국기 조명기구 조사 결과를 정리한 단행본 《조명기구照明器具》를 발간하는 한편 숙종과 고종 연간에 각각 편찬된 궁궐 보고서인 《궁궐지宮闕志》를 한글로 번역한 고문헌국역총서 《국역 궁궐지-숙종 연간》·《국역 궁궐지-고종 연간』(1건 2책)》을 각각 발간했다고 25일 말했다. 박물관 소장품 도록 제18책인 조명기구는 등잔대, 촛대, 좌등座燈, 초롱燭籠·등롱燈籠, 괘등掛燈 등으로 분류한 전통식 조명기구 43점과 함께 서양식 촛대와 석유등, 전등기구 등 개항과 더불어 들어오기 시작한 근대 조명기구 52점을 합친 총 95점을 사진과 해설로 정리했다. 이런 조명기구 정리는 믿거나말거나 처음이다. 사립 박물관 쪽에서 정리한 적이 있기는 하지마는... 조명기구는 초·석유·전기 등 광원光源별.. 2024. 1. 25.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 건축장인 대목大木의 세계 보고서 발간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가 사라져가는 전통기술의 계승과 보존을 표방하며 전통 건축 목공사를 담당하는 대목大木이 사용한 도구를 그림과 영상으로 풀어낸 보고서인 「근현대 대목大木 도구」, 「그림으로 보는 전통건축 장인 대목의 도구」 두 종을 최근 발간하고 그 원문을 서비스하기 시작했다. 「근현대 大木 도구」는 연구가 2022년 이래 실시한 대목 작업에 대한 현장 조사와 영상 기록화 등을 통해 수집한 다양한 자료를 토대로 심화 연구를 거쳐 완성한 결과물로, 대목이 사용한 도구 50여 종에 대한 정의, 사용법, 관리법, 대목의 경험담 등을 수록했다. 강의환 안강영 두 대목이 직접 출연해 주요 도구를 설명하는 구술 영상(수어 통역 포함)도 정보 무늬(QR코드)로 수록했다. 해당 영상은 연구소 유튜브 채널에서도 제공한다.. 2024. 1. 25.
대장경, 경판은 왜 만들었고 몇 부나 찍었을까? 한국의 금속활자는 다들 아시겠지만 소량 다품종 도구다. 대량생산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따라서 한번 판을 짜면 한 백부나 찍었을까. 20-30부 찍고 판을 깨버리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던 듯 하다. 요즘으로 치면 복사기보다 조금 더 찍는 정도 아니었을까 싶다. 이렇게 해야 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수요가 그 정도였기 떄문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더 많은 인쇄가 필요한 경우는 알다시피 목판을 찍었을 테고. 항상 드는 의문은 대장경판목-. 초조대장경부터 재조대장경까지 판목수가 정말 수십만 장인데 이거 판각한 후 과연 몇 질이나 인쇄했을까. 지금 남아 있는 팔만대장경. 조판 후 지금까지 몇 부나 찍었을까. 왜 이런 생각이 드는고 하면 팔만대장경 전체를 과연 몇 번이나 인쇄했을까 싶어서다. 그만한 종이와 먹이 .. 2024. 1. 25.
[노르웨이] (1) 마음이 쉬어가야 할 때, 송네 피오르, 베르겐 Sognefjorden, Bergen 노르웨이 여러 피오르 중 가장 길다는 송네 피오르, 그리고, 노르웨이 제2의 도시 베르겐. 한동안 마음의 위로가 되어주었던 곳들. 둘 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품고 있다. https://maps.app.goo.gl/nbKncq3UCLafcLVq5 베르겐 · 노르웨이 베르겐노르웨이 베르겐www.google.com https://maps.app.goo.gl/6SjJrwAnZjty5oKu7 송네 피오르 · 노르웨이★★★★★ · 피오르드www.google.com 노르웨이 피오르에 언젠가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은 막연히 했었는데 내가 노르웨이까지 아무 때나 휙 떠날 정도의 금수저는 아닌지라 베를린-베르겐 티켓을 싸게 구한 김에, 지인도 만날 겸 가게 되었다. 게이랑에르와 송네 피오르 등이 유명하고, 멋진 하이킹 코스.. 2024. 1. 25.
사비시대 깊고 둥근 백제 철솥 정체는? 백제고도문화재단이 2017년 사비도성 동쪽 100미터 미만 산지 중 곡간 경작지에 해당하는 부여 석목리 농협주차장 부지에서 찾은 유물 중 사비시대 철솥이다. 뒤에서 개똥폼은 심상육이다. 이 철솥 이상하지 않은가? 엄청나게 깊다. 저기다 밥을 하거나 국을 끓였을까? 이건 고고힉도한테 물어선 답이 안 나온다. 첫째 한국고고학은 그런 물음을 물을 줄도 모르고 둘째 물어봐야 꿀먹은 벙어리를 면치 못하고선 고작 하는 말은 글쎄요? 밖에 없다. 고민을 해 봤어야지? 이건 주부들한테 물어야 한다. 저런 데다 밥 안 하고 국 안 끓인다. 미쳤니? 이 철솥이 출토한 유적을 다른 출토유물과 견주어 볼 때 이곳이 공방이 있던 자리로 추정된다는 발표를 조사단이 했다. 어떤 공방? 금속품 제조와 관련하는 도가니, 철솥과 화살촉.. 2024. 1. 25.
한국 출판문화의 세계화 우리나라 출판계- 지금 같은 시스템으로는 한국 내에서 출판하여 국제적으로 책 팔아 먹기는 참 요원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고 보면 천년 전에 목판 수십 만 장을 파서 대장경 수천 권을 사방에 뿌려댄 우리 조상들도 참 대단한 사람들이다. 그 양반들이 요즘보다 낫다는 생각을 한다. 한국출판물은 한반도 남쪽 절반 바깥으로는 단 한 발자국도 못 나가고 있는데 말이다. 2024. 1. 25.
고려 시대 내내 한반도 밖에 위치한 울릉도 정광태 노래 독도는 우리 땅은 울릉도와 독도가 이사부 정벌 이래, 그러니 신라 지증마립간 이래 두 섬이 죽 한국 땅이라 했지만 웃기는 소리라 놀랍게도 울릉도는 고려시대 내내 고려 땅이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으리만치 철저히 한반도 밖에 위치한 별도 문명 문화권이었다. 고려사 권58卷 志 권 제12 지리地理3 동계東界 울진현蔚珍縣을 이르기를 본래 고구려 우진야현于珍也縣【고울이군古亐伊郡이라고도 한다.】으로, 신라 경덕왕 때에 지금 이름으로 고쳐 군郡으로 삼았다. 고려 때에 현(縣)으로 강등시켜 현령(縣令)을 두었다[置令]. 고 하고는 그에다가 울릉도鬱陵島를 첨부하기를 현縣 동쪽 바다 가운데에 있다. 신라 때에 우산국于山國이라 불렀고, 무릉武陵 혹은 우릉羽陵이라고도 불렀으며 사방이 백리이다. 지증왕 12년(5.. 2024. 1. 25.
[독설고고학] 내가 정통고고학을 전공했다면 뭐하긴 뭐해? 토기 그림 그리면서, 그 변천 양상을 따지면 이건 경주식 신라토기, 이건 의성식 토기하면서 지만 아는 그림 잔뜩 나열하고서는 이건 5세기4사분기, 이건 6세기 1사분기 초기 하며 그걸 논문이라 쓰고 자빠졌거나 그것이 지겨워지는 순간 성곽으로 눈길 돌려서는 아 이건 신라 초축 고려 보축하면서 이런 기술은 한반도에서 먼저 나타나 일본으로 전래되어 나타나니, 동아시아 문물교류양상을 훌륭히 증명하므로 세계유산 크라이테리아 넘버 1원에 해당하니 세계유산이 될 만하다는 보고서나 쓰고는 연구비나 받아먹고 있겠지? 나한테 가장 큰 축복은 선생이 없고 전공이 없다는 점이다. 선생이 있었더래면, 고고학 전공이었더래면 지금과 같은 이야기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한 채 저 그림 그리고 축조술 논하는 일을 내 본령.. 2024. 1. 24.
자작나무 껍질에서 뽑아낸 기름 https://www.youtube.com/watch?v=uHpYwZ71jXg 이 동영상은 자작나무 껍질을 벗겨서 기름을 짜내는 방법을 소개한 것으로 그 방식은 실로 간단해서 깡통 두 개와 장작불로 충분하다. 큰 깡통에다 자작나무 껍질을 잔뜩 채우고, 그 한쪽에다가 구멍을 뚫고서는 작은 깡통을 잇대어 땅을 파고 그 작은 깡통을 아래로 두고, 위로 노출된 큰 깡통 위로 두세 시간 장작불을 피우면 자작나무 껍질에서 흘러내린 기름이 아래 작은 깡통으로 흘러내리는 구조다. 위 큰 깡통 속 자작나무 껍질은 완전히 타서, 기름기를 빼낸 재에 지나지 않아 푸석푸석 바스라지니 버린다. 자작나무는 흔히 그것이 탈 때 자작자작하는 소리를 낸다 해서 그리 일컫는다 하듯이 그만큼 그 이파리에는 기름기가 많다는 뜻이니, 그에다.. 2024. 1. 24.
여진 소굴로서의 울릉도 여진이 약탈경제 기반이라는 선입견 때문인지, 그래서 유목민 비스무리한 족속이라는 선입견이 있어서인지, 그네를 둘러싼 가장 큰 착란이 그들이 바다에 약할 것이라는 실로 막연한 생각이 점철하지만, 그들은 해전海戰의 명수였으며 이들보다 바다를 잘 이용한 민족은 동북아시아에서 찾기 힘들다. 그런 면모는 고려시대에 두드러지게 나타나지마는, 주로 말갈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삼국시대 역시 그에 못지 아니해서 동해안을 치는 말갈은 예외없이 바다를 통한 침략이었다. 신라가 북방으로 치고 올라가고 그곳을 개척하는 과정에서 언제나 이 여진 혹은 말갈은 골치였으니, 동해를 주름잡은 그들의 해군력을 약화하고자 단행한 일이 바로 이사부에 의한 우산국 정벌이었다. 신라가 왜 우산국을 쳤는지는 언급이 없다. 하지만, 당시 추세를 .. 2024. 1. 24.
영산강 유역의 벌집형 고분과 토지이용률 나는 앞서 여러 번 경제적인 이유, 특히 토지 이용률 문제로 신라 적석목곽분이 퇴출되었다고 말했으니, 그에서 비롯되어 봉분 하나에 여러 사람, 특히 부부를 살처분하는 석실분이 등장했다는 말을 했거니와, 이런 문제에 봉착하기는 영산강 유역도 마찬가지라. 실로 희한하게도 저 머나먼 경주 땅에서 경제성 제로인 적석목곽분이 퇴출되던 6세기 무렵, 영산강 유역에서도 똑같은 문제에 봉착했으니, 이들은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이 문제를 타개해나가니 그것이 바로 벌집형 고분(아파트형 고분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이다. 이 벌집형 고분은 그 자체가 씨족, 혹은 가족공동체라. 봉분 하나에다가 매장주체시설을 많게는 수십 개를 조성한 공동묘지를 말한다. 동시대 다른 곳 공동묘지가 구역으로 중심으로 발달했다면, 이곳은 봉분 하나.. 2024. 1. 24.
[독설고고학 ] 나는 왜 독설고고학 연재를 계속하는가? 나를 아끼는 주변에서는 자꾸 이제 그만하라, 그만하면 됐다고 뜯어말린다. 그럼에도 내가 줄곧 저 [독설고고학] 시리즈를 연장하는 까닭은 그 심각성을 더는 방치할 수 없다 보는 까닭이다. 언제까지 껍데기만 매달려 이게 어케 만들어서 어케 변했네 하는 일로 고고학도연하게 구는 일을 더는 구토 나서 참지 못해서다. 진짜로 미안하나, 난 당신들 學으로 보지 않는다. 그게 무슨 고고학이란 말인가? 개돼지도 쳐다보지 않을 글을 논문이랍시고 써 제끼며 학도연하게 구는 꼴을 더는 참을 수 없다. 내가 이쪽 고고학이라는 데 문을 들어선지가 20년이 넘어 30년을 달리는데, 어찌하여 30년 전 문제의식이 눈꼽만큼도 변하지 않은 채 그대로이며, 외려 퇴보를 거듭한단 말인가? 지구상 이런 학문이 계속되는 곳은 오직 대한민국과.. 2024. 1. 24.
[독설고고학] 전기밥통 그 유구함을 현창하며 남영동 사저에서 쓰는 전기밥통이다. 전기만 있음 어디서건 쓰는 휴대용이다. 이 휴대용 전기밥통이 얼마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지 아는가? 계속 소개하는 거란 벽화다. 뭐가 다른가? 다른 거 눈꾭만큼도 없다. 연료가 불에서 전기로 바뀌었을 뿐이다. 고고학이 옛 문화 복원? 복원해서 뭐하게? 고고학은 이름부터 바꾸어야 한다. 考現學이다. 먹고 자고 싸는 문제를 팽개친 학문이 어찌 인문학이겠는가? 쭉정이 그릇 자체가 중요한가 그것이 내포한 의미가 중요한가? 2024. 1. 24.
1만년 전 구석기인이 씹다 버린 껌을 분석했더니 1만년전 중석기시대 스웨덴 서부지역 수렵채집민 유적에서 발견된 당시 사람이 씹다 버린 껌 잔유물 치아 흔적을 분석한 결과 박테리아를 발견하고 그 분석을 통해 당시 낮은 치아 건강 상태를 확인했다고 한다. 덤으로 헤이즐넛, 사과, 겨우살이, 여우, 청둥오리, 삿갓조개, 송어 등을 섭취했음이 확인되었다고. Chewed Birch Pitch May Reflect Hunter-Gatherers’ Dental Health Social Bookmark Button Share Friday, January 19, 2024 https://www.archaeology.org/news/12066-240119-mesolithic-birch-pitch?fbclid=IwAR2abjD0SSyY4zBOr0bMMMUyEbH8RH5-L.. 2024. 1. 24.
걸레가 되어 돌아온 불후의 저서 이런 독자도 있다. 반영할 건 하고 그냥 놔두어도 대세 지장없는 건 놔두었다. 《직설 무령왕릉》이 걸레가 되었다. (2017. 1. 24) *** 저 졸저는 내가 해직되고 나서 반년 뒤쯤인가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도서출판 메디치미디어를 통해 출판한 것이라, 그 책을 숙독한 어느 독자가 저와 같이 걸레를 만들어 보내준 것이다. 아마 초판이었을 텐데, 저 지적 사항 중에 대세에 지장이 없다고 본 것들은 놔두고, 명백한 오류나 오타 같은 데는 2쇄에서 바로잡았다고 기억한다. 저런 독자가 당연히 감사하기 짝이 없다. 한데 곰곰 생각하면 예컨대 저런 독자가 내 상관이라면? 아찔해지기도 한다. 돈다. 저런 엄청난 일을 벌인 사람은 임형진 이라고 박아둔다. 동명이인으로 저 호남땅 고고학을 독식하는 그 임형진일 수는.. 2024. 1. 24.
일본 가장 오래된 인골, 알고 보니 곰뼈? 일본 고치현에서 1950년대 발견된 우시가와[牛川]인-당시 일본 최고의 화석인골-의 인골에 대한 분석결과 곰뼈일 가능성이 제기되었다고 합니다. 화석인골은 아니지만 이후 연구에서 화석인골 연구사에 있어서 중요한 학술적 가치를 가진다고 합니다. 고고학 자료의 연구는 그 결과가 기대와 다르더라도 이를 통해서 새로운 시각이나 발전을 가져올 수 있기에 이 화석의 정체가 곰이 되더라도 중요한 성과였음은 분명합니다. 2024. 1. 24.
남북문제, 하나를 향한 중앙집권에의 욕망 요새는 조금은 달라지는 게 아닌가 싶은데, 젊은층을 중심으로 이런 성향이 두드러진 것이 아닌가 하는데, 첫째 한반도가 작금의 남북으로 두 정치체로 갈라진 현상을 두고 왜 그것을 분단으로 보는가? 둘째 그것을 반드시 합쳐야 하는가? 이 두 가지에 대한 근간에서의 의문이 종래보다는 더 강해진 것이 아닌가 한다. 저 말은 뭐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이 본래 하나였던 것이 어떤 외부의 힘에 의해 강제로 분리되었다는 사실을 전제하거니와, 그래서 하나로 합쳐야 한다는 욕망 혹은 당위의 근거가 된다. 이를 간단히 통일운동이라고도 할 만한데, 강제로 분단되었다는 것이 합쳐야 한다는 전제가 되는가? 그런 당위는 윽박이 아닌가? 이런 점들을 이제는 물어야 한다고 본다. 나는 저 통일운동을 볼 때마다 한국역사학이 주.. 2024. 1. 24.
거란 벽화에서 푸는 초두의 비밀 사진은 4년 전 꼭 오늘, 2020년 1월 24일 우리 THE HERITAGE TRIBUNE가 소개한 적이 있는 온양민속박물관 소장 이른바 초두鐎斗 라는 유물이라. (맨아래 첨부 기사 참조)일명 조두刁斗라고도 한다는 이 유물을 내가 볼 때마다 한국고고학이 설명하는 그 초두 맞는지를 매양 의심한다 했거니와 간단히 말해 저 생긴 양태를 보면 누가 봐도 조리도구 요리도구다. 물론 조리도구 요리도구를 임금 거둥이나 군대에서의 행진에서 무엇인가 신호를 보내기 위한 용도로 전용할 수는 있겠지만, 언제나 나는 저것이 과연 무슨 소리를 낼 만큼 악기 기능도 겸했는가를 의심했다. 저건 누가 봐도 휴대용 조리도구다. 그런 점에서 얼마전에 우리가 소개한 적이 있는 거란 벽화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고 본다.   이 장면이 그.. 2024. 1. 24.
절풍折風과 에보시烏帽子 일본사를 보다 보면 저건 한반도에서 간 것 같은데? 싶은데도 수백년이 사이가 비어 있는 경우를 꽤 여러 번 본다. 대표적인 것이 절풍과 에보시. 필자가 보기엔 일본의 에보시는 어떤 방식이건 한반도 삼국시대 절풍 영향을 받은 복식이다. 에보시는 전국시대에도 성인식 후 착용했고 무가에서도 매우 폭넓게 이용하던 관이다. 그런데 한반도에서는 삼국시대에 고구려, 백제, 신라의 상류층에는 이 에보시와 거의 비슷한 관을 쓰고 있고 이를 고구려에서는 절풍, 신라나 백제에서도 유사한 관을 쓰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양자를 연결시키려 보면 막상 수백 년 공백이라면 공백이 있다는 것이 문제겠다. 또 다른 예. 일본불교에는 전수염불專修念佛, 염불을 죽도록 암기하여 성불하자는 교리의 불교들이 꽤 있다. 그런데 .. 2024. 1. 24.
김은부의 딸 색공色供이 제기하는 의문 앞서 본 고려사 김은부金殷傅 열전에는 그가 수주水州 안산현安山縣 출신이라 했으니, 이곳은 지금의 수원과 화성 정도에 해당하는 곳이다. 그가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랐는지는 저런 표현으로는 알 수 없다. 누가 어디 사람이라는 기록이 그가 반드시 거기서 나고 자랐다는 의미가 아닌 까닭이며, 엄밀히는 그 조적祖籍을 말하는 까닭이다. 이 열전에서 우리가 주목할 다른 대목이 있다. 성종成宗 때 견관승甄官丞을 지냈고, 목종穆宗 때에는 여러 차례 전임하여 어주사御廚使가 되었다가, 현종顯宗 초에는 공주절도사公州節度使가 되었다. 왕이 거란契丹을 피하여 남쪽으로 피난하다가 공주公州에 머무르게 되었는데, 김은부가 예를 갖추어 교외에서 마중하면서 (하략) 이를 보면 그는 성종 시대에 중앙 관료 사회에 편입되어 공무원 생활을 하다.. 2024. 1. 23.
정조는 근대적 존재인가 항상 그것이 의문이었다. 정조는 근대적 인물인가. 정조의 주장은 당시 집권 서인의 사유의 대척점에 있는가. 나는 아니라고 본다. 정조는 같은 이야기를 사대부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군왕의 입장에서 한 것 뿐이다. 같은 소리다 결국엔. 근대성을 함유한 정조가 반근대적인 신하들에 의해 살해되어 한국이 결국 근대화에 실패했다는 이야기는 그래서 공상이다. 둘 다 반동적이다. 다산? 근대성을 인정할 수 없다. 다산의 어디가 근대적이라는 것인가. 18세기 조선사는 바닥부터 다시 써야 한다. 2024. 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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