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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없는 英佛 문화재 맞교환 전시 바이유 태피스트리-서튼후 보물 맞교대 '바이유 태피스트리' 900년만에 영국으로…내년 대영박물관 전시 김연숙기자 양국 정상 합의…프랑스에 서튼후·루이스 체스말 등 유물 대여 맞교환 1066년 윌리엄왕의 잉글랜드 정복과 11세기 생활상 생생히 묘사 이런 소식이 타전됐거니와, 살피면 대단한 결단이다.모나리자(루브르박물관)와 로제타 스톤(브리티시뮤지엄)만 뺘졌지 양국에서 A급 혹은 초특급으로 분류하는 대규모 맞교환 문화재 전시다.이 정도 전시라면 양국 정상이 합의해야 하는 사안인데, 실제 영국 스타머Keir Starmer 총리랑 에마뉘엘 마크롱Emmanuel Macron 프랑스 대통령이 이를 공식 발표한다 하니 말이다. 물론 이를 위한 실무 접촉은 많았을 것이며 이를 양국 정상이 추인한 것이다. 이번 맞교.. 2025. 7. 9.
"유학" 그 강렬한 상징성 조선후기 신분 상승을 꿈꾼 노비들이 19세기가 되면 죄다 스스로 "유학"을 칭한다. 집집마다 동네마다 "유학"이 없는 집이 없을 정도이다. 그런데 왜 하필 "유학"일까? 물론 유학을 칭해야 군역에서 빠지기 쉽다는 현실적인 이익이 분명히 있을 테고, 양반이라면 식자층이어야 하고배운 사람이라는 간판이 있어야 무시당하지 않는다는 생각도 있을 터이다. 그런데 자신의 신분 상승의 수단으로 왜 "유학"을 선택했을까? 이 "유학"이 결국 20세기가 되면 대학졸업장이되고, 박사학위가 되는 것이다. "유학"간판을 단 사람들이 양반 대접을 받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비로소 거기서 "못배운 한"이 나오는 것이다. 19세기에 너도 나도 "유학"을 칭하는 순간에 이미 20세기의 우골탑과 교육열은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겠다. 2025. 7. 9.
출세를 위한 교육, 신분상승을 위한 공부 흔히 출세를 위한 교육, 신분상승을 위한 공부를 망국병이라던가 한심한 동기라고 폄하하는 시각을 보는데, 미안한 이야기지만 조선시대, 공부라는 것이 위기지학으로 수기치인, 도덕적 완성을 위해 해야 한다는 그 시대에도 그렇게 공부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 사서삼경을 읽는 것은 소과라도 붙어 양반 자격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자 함이지 위기지학 수기치인이라는 건 웃자고 하는 소리지 정암 조광조 같은 기인이 아니면 심각하게 이걸 받아들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문집에 이런 이야기를 가득 채워놨다고 해서 정말 그런 동기에서 공부했으리라 보는 건 바보 같은 생각이다. 정말 그렇다면 하루 일과를 적어 놓은 일기에 수기치인의 수련 이야기가 가득차야 할 텐데일기에는 대부분 뭐 먹었는지 이야기, 누구하고 술먹었다는 이.. 2025. 7. 9.
노르웨이 중세시대 마을, GPR 데이터로 재구성 바이킹선 수색에 사용한 그 장비로 지구물리학 탐사 2023년 여름, 노르웨이 문화유산연구소 Norwegian Institute for Cultural Heritage Research (NIKU)기 지상투과레이더ground penetrating radar (GPR)를 이용해 오랫동안 사라진 중세 도시 하마르카우팡엔Hamarkaupangen 위치를 정확히 파악했다. NIKU와 안노 박물관(Anno Museum)이 진행 중인 발굴 작업에서 고고학자들은 마침내 건물의 실제 유적을 발견하고 지구물리학 데이터를 확인했다. NIKU는 2023년과 2024년에 돔키르케오덴Domkirkeodden 유적의 크링카스팅쇼르데트Kringkastingsjordet에서 돔키르케오덴/안노 박물관 Domkirkeodden/Anno M.. 2025. 7. 9.
신분을 끌어올리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 조선 후기 한국인은 18세기 이전까지도 대부분이 노비였다. 양반은 숫자가 얼마 되지 않았다. 남아 있는 호적으로 보면 너무나 명확해서 이를 부정하는 일은 바보같은 짓이라 생각한다. 이렇게 노비사역이 주류가 되어 있는 사회에서 자본주의 맹아론 운운은 부질없는 시도라 본다. 그렇게 본다면 지금 한국인 거의 절대 다수는 17세기 이전 노비 조상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필자의 말에 설마 하겠지만 조선시대 호적을 한 번만 실물을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1700년대 호적만 봐도 양반 수는 많지 않고 절대다수가 노비다. 이들이 다 어디로 갔겠는가. 오늘날 한국인들은 모두 조상이 왕족, 양반, 귀족인 족보를 가지고 있지만 사실 대부분은 노비의 자손이다. 흔히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말을 한다. 헐리웃 영화.. 2025. 7. 9.
3,500년 된 남미 페루의 무역 도시 페니코Peñico 카랄 수페 문명 붕괴 무렵 번성한 새로운 고대도시 [페니코 지도] Bing 지도여러 위치를 찾고, 환승/도보/운전 방향을 확인하고, 실시간 교통량을 보고, 여행을 계획하고, 위성, 공중 및 거리 이미지를 보세요. Bing 지도를 다양하게 이용하세요.www.bing.com 페루 북부 안데스 산맥 고지대에서 일어난 고고학적 발견은 고대 태평양 해안 문화와 산악 공동체 사이의 중요한 연결 고리 역할을 한 3,500년 된 도심urban center을 밝혀냈으며, 아메리카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으로 알려진 문명 유산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제공한다.페니코Peñico의 발견: 잃어버린 도시를 찾다연구진은 8년간의 집중적인 고고학적 조사 끝에 페루 바랑카 주Barranca province에 위치한 기원전 약 1.. 2025. 7. 9.
새로운 시대를 준비한 영정조 시대 영정조 시대를 문예 부흥,이를 조선문화 후기 르네상스로 보는 시각이 있다. 물론 이 시대를 그렇게 정의하지 마란 법은 없겠지만 필자가 보기엔 영정조시대 최대 업적은 19세기 민란의 시대를 낳았다는 데 있다. 18세기 전반기만 해도 노비 사역이 사실상 주류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조선 땅에 18세기 후반을 거치면서 19세기가 되면가구의 크기도 훨씬 줄어들고 노비 사역이 거의 사라진 우리가 알고 있는 가족의 형태가 완성되는 것 같다. 노비 사역이 공고한 상태에서 일어나는 민란은 고려시대 만적의 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겟지만19세기의 민란은 아예 왕조를 뿌리채 흔들어 이를 무너뜨리는 데까지 발전한 까닭은따지고 보면 한국 향촌사회에서 노비 사역이 거의 사라져 버린 데 있다 하겠다. 물론 19세기에도 노비가 완전.. 2025. 7. 9.
4,000년 전 인간 갈비뼈에 박힌 선사시대 화살촉 발견 피레네 산맥 1,800미터 고지대 선사시대 매장지 발굴 스페인 카탈루냐 피레네 산맥 Catalan Pyrenees 해발 1,800미터에 위치한 선사시대 매장지에서 고대 폭력의 놀라운 사례가 발견되었다. 고고학자들이 인간 유골의 갈비뼈에 박힌 플린트 화살촉을 발견했다. 이는 4,000여 년 전 이 지역에서 일어났던 분쟁에 대한 확실하고도 이례적인 증거다. 부상은 확실히 치유되는 징후가 있어, 해당 개인이 결국 사망하기 전까지 공격을 받은 후에도 얼마 동안 살았음을 시사한다. 이 발견은 스페인 북동부 지로나Girona 지역 케랄브스Queralbs에 있는 로크 데 레스 오레네테스 유적 Roc de les Orenetes archaeological site에서 이루어졌다고 아키올로지 뉴스 온라인 매거진이 9일(.. 2025. 7. 9.
치카자와쇼텐, 조선학총서를 내다(2) 그 유명한 세키노 타다시의 , 아유카이 후사노신의 시리즈가 1930년대 경성 장곡천정(하세가와쵸, 지금의 서울 소공동) 74번지에 있던 근택서점, 곧 치카자와쇼텐에서 나왔다. 그 광고지를 보면 이 책들은 그냥 나온 것도 아니고 7원, 1원 80전~6원 50전(우송료 별도)이란 거액을 붙인 호화판으로 나왔다. 일제 때는 금본위제도라 해서 화폐가치가 금을 기준으로 매겨졌다. 거칠게 말하면 이 시절 돈은 은행에서 금과 바꿀 수 있는 증서였다고나 할까. 그 법정가치는 금 1돈에 5원이었다. 지금 금값으로 치면 1원이 대강 10만원 정도인 셈. 세키노의 는 70만원+a짜리였다.하지만 그때, 1920~30년대 기준에서 7원의 실질가치는 도대체 어느 정도였을까? 1924년 발표된 현진건의 을 보면 김첨지가 '운수 .. 2025. 7. 9.
치카자와쇼텐, 조선학총서를 내다(1) 해방의 기쁨이 불안과 초조함으로 바뀌던 1946년 5월, 장안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 하나 터졌다. 이른바 '조선정판사 위폐제조사건'. 조선공산당에서 당 예산을 조달하고 38선 이남의 경제를 교란할 목적으로 1,200만원어치 위조지폐를 만들었다는 미군정 측의 공식 발표가 있었지만, 공산당 측은 고문으로 인한 허위자백 말고는 어떤 증거도 없는 날조극이라고 맞섰다.훗날의 연구에 따르면 진실은 후자에 가까웠지만, 어쨌건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군정은 공산당 계열 인사를 철저히 탄압하기 시작했다. 조선 땅에 불어닥친 냉전의 시작이었다.그런데 그 사건의 발단이 된 '조선정판사'가 어떤 곳인지 찾아보면 꽤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만나게 된다. 지금의 서울 중구 소공동 74번지(사라진 지번인데, 지금의 웨스틴조선호텔 남.. 2025. 7. 8.
폴란드 그단스크 중심부에서 희귀 중세 기사 묘비 Archeoscan 고고학자 팀이 폴란드 그단스크Gdańsk 역사 지구 발굴 과정에서 기사가 새겨진 독특한 중세 묘비tombstone를 발굴했다.이 묘비는 초포바Czopowa, 수키엔니차Sukiennicza, 그로츠카Grodzka 거리 사이에 위치한 그단스크에서 가장 중요한 고고학 유적인 슈루드미에시치에Śródmieście I 지구에서 발굴되었다. 이 유적은 1140년 무렵에 지은 목조 교회와 십자군 전쟁 당시 설립된 독일 종교 및 군사 기사단인 튜턴 기사단이 1335년에서 1341년 사이에 건설한 벽돌 성으로 오랫동안 관심을 받았다.이 성은 1454년 그단스크 주민들이 파괴했다. 2023년에 시작된 고고학 발굴은 지금까지 250구 이상의 매장지, 6개 묘비, 그리고 12세기 목조 교회 기초가 발견되었다.. 2025. 7. 8.
요니, 똥통으로 둔갑한 힌두교 성물聖物 인도 카르나타카Karnataka 숲 깊숙한 곳에 숨은 고대 요니 스톤yoni stone이다.호이살라Hoysala 시대(11세기에서 13세기 무렵) 유산으로, 시바교Shaivism 신성한 유물이다.한때 거대한 사원 단지 일부였던 이 스톤은 이제 이끼로 뒤덮인 폐허와 짙게 드리운 푸른 나무들 사이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다.정교한 대칭으로 조각된 이 스톤은 샤크티 여신을 상징하는 요니 형상을 그대로 간직하며, 한때 시바의 링감을 담았던 중앙 공간을 감싸고 있다.한때 제의가 흘러내렸던 자리에는 빗물이 고여 신성과 쇠퇴, 기능과 경외심의 경계가 모호해진다.모르는 사람이 보면 대뜸 똥통이라 의심하지만, 간단히 여성 성기를 상징화한 힌두교 유산이다. 저런 석조물이 화장실로 둔갑한 대표 케이스가 불국사 그것들이다. .. 2025. 7. 8.
루도비시 갈리아인 Ludovisi Gaul, 켈틱계의 계백이 "루도비시 갈리아인Ludovisi Gaul"으로도 알려진 이 조각은 대략 서기 2세기 제작품이라 본다. 기원전 230~220년 무렵 제작한 그리스 청동 조작 원본을 토대로 삼아 로마시대에 대리석으로 복제한 것이라 한다. 흔히 말하기를 이 조각 원작 청동 제품은 아나톨리아 반도 동쪽 끝 에게해랑 접한 곳에 터잡은 헬레니즘 왕국 페르가몬 Pergamon 왕국의 승전 기념비 일부라 하거니와이르기를 이 왕국 아탈루스Attalus 1세 [재위 241 BC to 197 BC]가 기원전 240년 켈트족 갈라티아인Galatians과의 전투에서 거둔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궁정 조각가 에피고노스Epigonus한테 의뢰해 제작한 것이라 하거니와그 근거가 무엇인지 나는 늘 궁금하다. 훗날 짬이 나면 이런 것들을 찾아 보려 한.. 2025. 7. 8.
오세베르그 수레, 상여로 쓴 바이킹 리무진 오세베르그 마차 Oseberg Wagon - 완벽하게 보존된 바이킹 시대 유일 유산시대 : 서기 9세기 위치 : 노르웨이 오슬로 피오르드Oslo Fjord 인근 오세베르그 무덤 Oseberg burial mound문화: 바이킹 시대1904년 노르웨이 베스트폴드Vestfold에 있는 화려하게 장식된 오세베르그 배무덤에서 발굴된 이 오세베리 마차는 현존하는 바이킹 시대 마차 중 유일하게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다. 이 배무덤은 여러 번 소개했다. 제작 시점이 9세기 초로 추정되는 이 마차는 두 명 고위층 여성과 함께 묻혔으며, 바이킹 시대 고고학적 유물 중 가장 장엄한 유물 중 하나로 널리 알려져 있다. 나무를 정교하게 조각하고 네 개 견고한 바퀴 위에 올린 오세베르그 마차는 기능성을 갖춘 차량일 뿐만 아니라 .. 2025. 7. 8.
라피스 라줄리, 권력을 매료한 푸른 황금 6,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아프가니스탄 산들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귀중한 보물 중 하나인 라피스 라줄리Lapis Lazuli, 곧 청금석이라 번역하기도 하는 광석이 숨어 있었다.바다흐샨Badakhshan 험준한 사르에상 광산들 Sar-e Sang mines에서 이 매혹적인 푸른 돌blue stone이 탄생했다.단순한 보석을 넘어 권력, 영성, 그리고 아름다움의 상징이 되었다.고대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등지에서 라피스 라줄리는 왕족, 사제, 그리고 신성함을 상징하는 보석으로 여겨졌다.투탕카멘 장례 가면을 장식했고, 그 오랜 뒤 그것을 분말화한 안료는 르네상스 걸작의 찬란한 군청색을 만들어냈다.여러 항로를 거쳐 거래된 라피스 라줄리는 '푸른 황금blue gold'으로 알려졌으며, 인류 역사 전반에 걸쳐 제.. 2025. 7. 8.
모아이 석상의 고장 라파누이 섬은 고립되지 않았다 수십 년 동안 고고학자들은 라파누이Rapa Nui(이스터 섬Easter Island)를 폴리네시아 문명의 최전선, 즉 서기 1200년경 최초 정착 이후 완전히 고립된 외딴 전초기지로 묘사했다.이러한 주장은 태평양 고고학계를 지배하며, 이 섬의 유명한 모아이 석상 moai statues과 의례 단지를 더 넓은 폴리네시아 세계와 단절된 사회의 산물로 묘사했다. 그러나 웁살라 대학교에서 Antiquity에 발표한 획기적인 새로운 연구는 이러한 오랜 고정관념을 깨뜨렸다.라파누이는 단순히 폴리네시아 문화를 수용한 곳이 아니라, 의례 사상을 태평양 전역으로 전파하여 동폴리네시아 전역의 성지 발전에 영향을 미친 적극적인 혁신가였음을 밝혀냈다.서쪽으로의 물결: 이스터 섬의 신성한 건축물 수출곧 권위 있는 학술지인 앤티.. 2025. 7. 8.
인도 라키가리 유적 조사의 한 단면 홍종하 선생이 올린 과거 사진이라, 보니 2015년 포스팅이다. 저 무렵 홍 선생이 포함된 신동훈 교수팀이 인도 라키가리 유적 조사에 투입되어 현지조사를 했다. 이 조사 관련해서는 신동훈 선생이 여러 차례 걸쳐 소개했다. 그 조사보고서 제1권이 영어판으로 출간됐고 지금은 그 후속 보고서 작업 중인 것으로 안다. 이 조사가 한국고고학에서는 자연과학, 고인류학의 첫 해외 진출로 알거니와 그런 점에서 대서특필해야 할 사건이다. 2025. 7. 8.
중세 성채에서 똥싸는 방법과 장소 당시 프리비privy 또는 가르데로브garderobe라 일컫던 중세 화장실은 원시적인 형태였지만, 성 안에서는 다른 곳보다 조금 더 편안하고 훨씬 더 많은 디자인적 노력을 기울였다.실용성, 프라이버시, 그리고 효율적인 폐기물 처리가 모두 고려되었으며, 오늘날에도 폐허가 된 중세 성에서 가장 눈에 띄고 쉽게 알아볼 수 있는 특징 중 하나는 외벽에서 튀어나온 변소다.가르데로브garderobe라는 용어는 나중에 프랑스어로 옷장을 의미하게 되었는데, 원래 의미는 성 화장실에서 필요 이상으로 크지 않은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변소는 일반적으로 성벽에 내장되어 코벨(corbel, 성벽 일부) 위로 돌출되어 있었고, 오물은 성 해자로 흘러내렸다.때로는 오물이 강으로 바로 흘러가기도 했고, 어떤 성에서는 안뜰이나 외벽으.. 2025. 7. 8.
구석기 소뼈를 발굴하는 사람 ⁠소 화석을 본 적 있는가?이 사진은 리키 재단 Leakey Foundation 수혜자인 데바라 아닐Devara Anil이 인도 안드라프라데시 주 모트라불라파두 구석기 시대 유적에서 보스(Bos) 속의 특정되지 않은 종 화석 골격을 발굴하는 모습이다.보스 속에는 현대의 가축과 야생 소뿐만 아니라 오록스aurochs처럼 현재는 멸종된 종도 포함한다. 데바라Devara는 인도 간디나가르 인도 공과대학교 Indian Institute of Technology Gandhinagar(IIT) 연구 조교수다.그의 연구는 인류가 어떻게 전 세계로 퍼져 나갔는지 이해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이와 같은 소과 화석bovid fossils은 고대 생태계와 우리 조상이 환경과 어떻게 상호 작용했는지에 대한 더욱 완전한 그림.. 2025. 7. 8.
여전히 오리무중한 미노스 원반 이 고대 문자는 한 세기 넘게 풀리지 않은 채 남아 있다.현재 파이스토스 원반Phaistos disk으로 알려진 이 원반은 현대에도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1908년 7월 3일, 이탈리아 고고학자 페데리코 할베르Federico Halbherr와 그의 제자 루이지 페르니에Luigi Pernier, 그리고 그의 연구팀이 크레타 섬 남부 파이스토스Phaistos에 있는 미노스 궁전Minoan palace 유적을 발굴하던 중, 유적 가운데 지하 퇴적층을 발견했다.페르니에르는 퇴적층 안에서 새까맣게 탄 뼈와 재, 그리고 그 가운데 반쯤 묻힌 금빛 갈색 점토 원반을 발견했다.페르니에가 원반을 꺼내 손바닥에 쥐어보니, 원반의 양면에는 나선형으로 눌려 있는 일련의 작은 그림들이 덮여 있었다.100년이 넘은 오늘날.. 2025. 7. 8.
위대한 18-19 세기 필자가 생각건데 17세기까지 강고하게 이어온 노비 사역의 문제는 우리 역사에서 특정시대에 갑자기 비롯된 것이 아니다. 이름만 바뀌었을 뿐 우리 역사에서 일부 지배층을 제외한 대부분의 농민은이러한 노비에 방불한 신분 억압의 상태에서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다. 18-19세기의 노비해방과 신분 상승운동이 위대한 것은 바로 이러한 점이다. 이 시기에 비로소 수천 년을 이어온 신분제 질서가 동요하게 되고 그 틈을 타고 불과 백년 전만 해도 노비가 절대다수였던 향촌에 너도나도 양반이라고 주장하게 된 것이다. 불과 백년만에! 놀랍지 않은가? 실제로 이러한 변화는 어쩌면 20세기 우리가 목격한 한국사회의 변화보다더 격렬한 것이었을 수도 있다. 2025. 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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