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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황성동 유적 유리 곡옥 거푸집 유리 곡옥을 만들어내던 틀, 곧 곡옥 거푸집 관련 출토품 중 경주 황성동 유적 출토품이 있으니, 그 출전은 다음이라(자료는 차순철 선생이 수고해서 찾아 주었다. 차 선생께 다시금 감사드린다.) 國立慶州博物館 學術調査報告 第12冊 《慶州 隍城洞 遺蹟Ⅰ- '가' 地區 木文·圖面》, 國立慶州博物館, 2000 이에서 이와 같은 유리 거푸집이 발굴되었다 한다. 유리 제품 생김새별로 보면 곡옥曲玉이 있고, 관옥管玉도 있음을 본다. 이로써 보면 곡옥은 유리 제품인 경우가 많아야 하는데, 그 성분 조사가 어느 정도 이뤄졌는지는 솔까 모르겠다.거듭 말하지만, 한국고고학은 과학 분석과는 담을 쌓은 놈들이라, 과학과 담을 쌓은 자리에는 경험이라는 이름의 자의적 판단만이 득시글거리게 되며,이에서 바로 고고학이 아니라 고고 .. 2025. 9. 6.
괴베클리 테페? 카라한 테페? 나도 있다 사이부르치 이 장면을 보면 고고학적 전문 지식을 무장한 사람들한테는 대뜸 괴베클리테페Göbeklitepe를 떠올리겠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현장이 아니다. 하지만 대뜸 봐도 그거랑 떼레야 뗄 수 없는 같은 결을 이루는 곳임 또한 직감한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1만2천 년 전쯤, 저쪽 터키 아나톨리아 반도는 이제 구석기 시대를 훌훌 털어버리고 신석기시대로 돌입하게 되는데, 그 대표하는 증언으로 약방 감초처럼 등장하는 데가 저 괴베클리테페랑 더불어 그 인근 지역 카라한테페Karahantepe라는 데라그렇다면 저 사진은 후자? 천만에!그렇다면 터키 신석기를 너무 우습게 보는 것이다. 저런 신석기 유적이 대개 입지로 보면 언덕에서 발견되고, 그 양태를 보면 돌로 각종 기념물을 세운 까닭에 저쪽에서는 타스 페펠레르Taş Tepe.. 2025. 9. 6.
1억 5천만년 전 아기 익룡, 거센 폭풍에 휘말려 희생 날개 부러진 독일 졸른호펜 두 개체 화석 분석 결과 드러나 by 레스터 대학교레스터 대학교 고생물학자들이 사후 분석 post-mortem을 통해 1억 5천만 년 전 두 마리 아기 익룡pterosaurs의 사망 원인을 밝혀냈다. 커런트 바이올로지(Current Biology) 저널에 게재된 연구에 따르면, 이 비행 파충류flying reptiles는 강력한 폭풍에 비극적으로 희생되었으며, 이 폭풍은 익룡과 수백 개 유사한 화석을 보존하기에 이상적인 환경을 조성했다. 중생대Mesozoic, 즉 파충류 시대는 종종 거인들의 시대로 여겨진다.거대한 공룡, 거대한 해양 파충류, 그리고 거대한 날개를 지닌 익룡이 박물관과 대중의 관심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이러한 익숙한 이미지는 왜곡되어 있다. 오늘날의 생태계가 .. 2025. 9. 6.
호적을 보면 매우 이상한 균역법 1750년 이후 조선시대 호적을 보면균역법의 실체에 대히 의문을 갖는다. 이거이 실제로 제대로 시행되었던 것일까. 매우 의심스럽다는 말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 균역법 실시이후 선무군관 숫자가 너무 적다. 실록인지 어딘지 기록에 의하면 균역법을 실시하면 정부 수입이 줄어드니까 이를 메꿔 줄 선무군관은 정부에서 도별로 숫자를 정해 위에서 반드시 채우라고 내려 꽂았다. 그런데 막상 향촌의 호적을 보면 선무군관이 몇 없다는 말이다. 선무군관을 받으면 직역이 그 이전에 유학이건 업무건 업유건 간에선무군관으로 바뀐다. 거의 백프로 이전에는 갖은 방법으로 군역을 회피하던 소위 향촌의 중인들이 대거 충원되었어야 정상인데막상 호적을 보면 선무군관으로 잡혀 들어간 사람이 몇 안 된다. 그나마 이 사람들도 그.. 2025. 9. 6.
광마狂馬 마광수와 장미여관, 그리고 올림픽여관 마광수는 인간이면 누구나 탑재한 변태를 변태가 아닌 정상으로 자리매김하려 한 이라고 나는 평가하고 싶다. 그의 전법은 폭로였고 대면이다. 그와 동시대를 산 다른 이들이 도덕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점잖이라는 가면 뒤에 감추려 한 그 적나라한 욕망, 인간이면 누구나 지녔을 그 욕망을 그는 그대로 노출했다. 내가 신촌에서 학창시절을 보내던 그때, 한창 젊은 국어국문학과 교수 마광수는 '즐거운 사라'를 발간하기 전이었지만, '가자 장미여관으로'는 그 시절 막 발간했다고 기억하니, 실제 서지사항을 보니 1989년 자유문학사 간이다. 이 무렵 나는 평택 미군부대서 제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이 시집을 정식으로 통독한 적이 없다. 오다가다 한두 편 긁적거렸을 것이로대 그렇다 해서 그 이전 보들레르가 나한테 준 충.. 2025. 9. 6.
호적에서 보는 균역법 균역법은 1750년, 영조 26년에 공포되었다. 온라인의 나무위키 글을 따서 옮겨보면 이렇다. 인정(人丁) 단위로 2필씩 징수하던 군포(軍布)를 1필로 감해주고, 대신 균역청을 설치하여 줄어든 세원을 보충하는 정책을 실행하도록 했다. 왕족이나 권문세가, 지방 관아에서 세금을 매겨오던 어전(漁箭), 염분(鹽盆), 곽전(藿田), 태전(苔田)과 선박에 대해 국가에서 세금을 거두게 하였다. 그리고 토지마다 1결당 2말의 결작미를 징수하였는데, 이는 군역의 부담이 전세로 바뀌게 된 셈이다. 일부 상층 평민을 대상으로는 선무군관제에 따라 선무군관이라는 지위를 주어 선무군관포 1필을 납부하게 하였다.요약하면 군포를 노상 내던 평민들 2필을 1필로 감하는 대신, 새로 1필을 내는 사람들을 뽑아 손실분을 메꾸게 했다 이.. 2025. 9. 6.
유리 곡옥을 만들어낸 거푸집, 거창 출토품의 경우 장수 곡옥 거푸집 출토와 관련해 이곳저곳 본인들이 아는 비슷한 종류 유리 거푸집 소개가 잇따르는데 이는 경남 거창 출토품이라고 이곳 문화재 터줏대감 구본용 전 거창박물관장이 소개한다. (다음번에는 경주 출토품을 소개하려 한다.) 그가 소개하기를 저 유물은2024년 거창 남하면 무릉리 황강정비 사업 발굴 출토품이라 하거니와 정식 발굴보고서는 내년쯤 나오지 않을까 한댄다.조사는 경강문화유산연구원에서 했고 올 초에 해당 유적은 발굴완료되었다 한다.출토 지점은 남하 무릉리 황강 변이고 고인돌 산포지와 삼국시대 고분이 혼재한 유적으로서 곡옥틀은 삼국시대 주거지 바닥에서 출토되었는데 상태는 양호하댄다. 발굴단에서는 삼국시대 자료로 보는 것 같다고 한다.곡옥에 대한 성분분석이 어느 정도 진행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모조.. 2025. 9. 5.
전남 나주에서 출현한 2,000년 전 유리 슬래그 전북 장수군에서 아마도 유리로 곡옥을 만들어냈을 법한 이른바 곡옥 거푸집이 출토한 일과 관련해 한반도 고대 유리 관련 엇비슷한 자료들을 검출하려 하다 보니, 2008년에 다름 아닌 내가 작성 배포한 아래 기사가 보이는데 문제는 나로선 이 기사가 전연 기억에 남지 않으니, 영혼이 없이 썼나 보다. 이에 의하면 지금으로부터 대략 2천 년 전, 지금의 전라남도 나주 땅에서는 유리를 자체 제작하는 시스템이 있었을 여실히 보여주는 유리 슬래그, 곧, 유리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발생한 찌꺼기가 발견됐다는 것이니, 당시 기사 전문은 다음과 같다. 나주 조개무지서 유리 工房 흔적 입력 2008.03.18. 오후 3:16 수정 2008.03.18. 오후 6:11 1-2세기 생활유적..점뼈도 발견 (서울=연합뉴스) .. 2025. 9. 5.
[연구 소식] 일본인류학회 발표 국립청주박물관 이양수 관장, 경상국립대학교 박물관 송영진 선생과 함께 韓国の考古学から見た弥生人の原郷 이라는 제목으로 시모노세키에서 열리는 79회 일본인류학회에서 발표하게 되었다. https://www.kuba.co.jp/anthropology79/index.html 2025. 9. 5.
19세기 유학모칭자들 우리나라 18-19세기에 향촌사회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소위 유학 모칭자들-. 이들은 숫자도 많고 신분 상승의 욕구도 강하여19세기 후반 이미 뚜렷한 입지를 드러내는데, 과연 조선 후기의 각종 차별을 뚫고 입신한 사람들이라 할 수 있겠다. 이들은 구한말의 거쳐 어떻게 되었을까? 물론 이들의 그 이후 추이에 대해서는 아직 확실한 연구를 필자는 본 적이 없다. 일제시대 활발한 활동을 하던 한국인이 19세기 유학 모칭자들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그리고 해방 이후 활동하던 사람들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면밀하게 따라가는 연구를 본 적이 없는 까닭이다 다만 필자의 막연한 추측이기는 하지만이들이 19세기, 유학호를 참칭하며 신분상승을 꿈꾸며 벌이던 그 강렬한 에너지와 물불 안 가리는 행각을 생각하면, 이들은 20세기 .. 2025. 9. 5.
메이지 초기를 지배한 출세주의 (2) 메이지 시대, 하면 우리는 아무래도 식민지배의 기억이 있어서이 시대는 제국주의자들의 시대, 라고 정의하기 쉽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 메이지시대의 초창기는 조금 다른 각도에스의 조명도 필요한 것이, 이 메이지 초기는 막부를 쓰러뜨리고 개국개화의 국가적 대전환 위에 막부편에 섰던 사람이나 아니면 신정부 편에 섰던 사람이나 극소수의 벌열이 된 이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쪽박 차고 시작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여 극도로 빈핍한 이들이 공부 하나로 출세해보겠다는 기풍이 사회 전체를 지배하던 대였다. 이 시기에 일본의 교육제도라는 건 근대적이라고 보기 일천하여 허술하기 짝이 없었는데 아래로는 소학교에서 위로는 대학까지 졸업생도 없고 가르칠 선생도 거의 없는 상태에서 만들어가며 교육하는 상황이라 어제까지 교육생.. 2025. 9. 5.
곡옥 거푸집? 잔류물 분석하라! 이번에 천천–장수IC 연결도로 공사 구간 사전 조사에 포함된 전북 장수군 계남면 화양리 10-1번지 일원 ‘장수 침곡리 유물산포지 G’ 구간 수습 삼국시대 곡옥 거푸집이라 하거니와 보면 흙을 빚어 만든 도기 일종이라, 이미 이게 웬떡이냐 하며 수습과 더불어 솔질을 박박하지 않았나 싶기는 하지만 저거 제대로 분석하고 제대로 그를 기반으로 연구하려면 잔류물 분석을 당연히 해야 한다. 유리를 만들어낸 거푸집이라면 당연히 그 내부에 유리질 흔적이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 한국고고학은 워낙 과학과는 담을 쌓은 존재들이라 저런 거푸집 중에 과연 잔류물 검사한 경우가 몇 사례가 될지 참말로 회의적이거니와 그래 나 역시 거푸집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지만, 그 당연해 보인 것도 쉴새없이 크로스체킹을 해야 한다. 아무리 문질.. 2025. 9. 5.
들끓는 동등에의 욕망, 족보는 그 분출구였고 권리장전이었다 족보.식민지 시대 조선 사람&대한제국 사람이 가장 열망하던 욕망의 도서였다.신분제가 이미 철폐되었지만족보는 재산 상속의 근거가 되니문중, 종가, 종손, 장남이 물려받는 재산을 차지하기 위해서족보에 이름을 올려 지분을 확보해야 했다. 위조족보를 만들어서라도 재산을 차지하려 했으니족보는 그야말로 욕망의 화신인 거다.신분상승의 욕망에서재물상속의 욕망으로붙이기 일가일수록, 종사에 열심히 참여했다.박지원의 양반전이 소설일 수 있는 이유는똥냄새처럼 구린 양반의 행실을 욕망하던 사람이 많았는데양반 신분 사는 것을 포기하는 결말이니 이는 환상이다.현실은 양방이 누리는 똥구린내나는 기득권을 사는 것이 사람이다.그렇게 끝났으면 논픽션, 다큐멘터리, 르뽀르타쥬가 되는 것인데연암은 부자가 양반 신분 매매를 파기하는 것으로 끝.. 2025. 9. 5.
메이지 초기를 지배한 출세주의 (1) 일본 메이지 시대 초기를 보면, 눈에 띄는 것은나도 이제 막부가 쓰러졌으니 출세 한 번 해보자는 것이 되겠다. 에도 막부 300년은 한마디로 말해서 내가 할 일이 명확히 정해져 있고내가 받을 녹봉이 정확히 정해져 있어사무라이들은 위로는 쇼군부터 아래는 말단 하급 무사까지뭐를 해야 하고 얼마나 받을지가 정확히 결정되어 있었다. 이 녹봉이 너무 작은 경우 요샛말로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지만 대체로 벼락출세도 없었고또 하지말라는 거 안 하고 잘 보신주의로 버티면벼락 몰락도 거의 없었다. 한때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칼을 뽑았다가는 나는 물론우리 후손 대대로 먹을 녹봉을 날릴 판이라, 무사는 농민이 약올리면 죽여도 된다고 했지만아무도 그 말을 믿고 칼을 뽑는 이가 없었다. 그랬다가는 얼씨구나 하고 위에서 .. 2025. 9. 5.
스페인 정복 당시 카나리아 제도 원주민이 제작한 15세기 도기 [현재는 스페인령인 카나리 제도 위치] Bing 지도여러 위치를 찾고, 환승/도보/운전 방향을 확인하고, 실시간 교통량을 보고, 여행을 계획하고, 위성, 공중 및 거리 이미지를 보세요. Bing 지도를 다양하게 이용하세요.www.bing.com 아프리카 북서부 모로코 건너편 소재 카나리아 제도Canary Islands 중 라 팔마La Palma 섬에 소재 티자라페Tijarafe에서 고고학도들이 카스티야 왕조에 의한 카나리아 제도 정복 당시인 15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희귀한 도기 그릇ceramic vessel 1점을 온전한 상태로 발견했다. 이 발견은 최근 몇 년 동안 이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고고학적 발견 중 하나로 간주된다.카나리아 북서쪽 섬인 라 팔마에는 원래 원주민 관체Guanche 부족 중 하.. 2025. 9. 5.
국가유산산업전을 존폐 위기로 몰아넣은 케데헌 열풍 속 박물관미술관 박람회 지금 오늘 현재 광주광역시 김대중 컨벤션센터에서는 2025 박물관 미술관 박람회가 열리는 중이다.이 박람회는 역사가 일천하기 짝이 없어 작년에, 그것도 애초 장기 계획에도 없다가 느닷없이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예산 6억원인가 8억원을 내리 꽂아 부산 벡스코서 첫 대회를 열었다. 내력이 일천한 까닭에 그래 솔까 문제 많다. 작년엔 허둥지둥 개판이었다. 올해도 그런 졸속에서 썩 자유롭지는 않는 듯한 현장 참관자들 이야기도 들린다. 나아가 그 구체를 따져보면, 문체부 담당 부서의 지나친 간섭, 말도 안 되는 간섭이 준비 과정에서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었다는 후문도 들리거니와, 관 주도 행사로 성공한 데 없다. 관이 지원한다 해도 다 성공하는 이벤트는 관은 뒤로 빠져 있고 철저하게 그 분야 전문가들이 주도하는 그런 .. 2025. 9. 5.
9,000년 된 수렵 채집 도구 세네갈서 발견 불과 25m² 파고도 아프리카 선사 시대 들여다 보는 창 제공 by 제네바 대학교 서아프리카에 산 마지막 수렵채집인hunter-gatherers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알고 있을까?이 선사 시대 집단은 유럽과 아시아에서 광범위하게 연구되었지만, 프랑스 면적 10배가 넘는 600만 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이 광활한 지역에서의 그들의 존재는 아직 제대로 기록되지 않았다. 제네바 대학교 University of Geneva (UNIGE) 연구팀은 9,000여 년 전 홀로세 초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세네갈의 희귀한 고고학 유적 중 한 곳을 연구하며 학제적 접근 방식을 통해 이들 공동체와 그들이 도구를 제작하는 데 사용한 돌을 깎는 기술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을 밝혀냈다.이 연구 결과는 PLOS One에 게재되었다. 선.. 2025. 9. 5.
세르비아 고대 원형경기장서 로마 검투사와 싸운 곰 두개골 상처 흔적 많아, 6살 숫곰 드러나 세르비아 로마 원형경기장 근처에서 발견된 낡고 손상된 불곰 두개골은 이 야생 동물이 수년간 포로로 잡혀 있었으며, 약 1,700년 전 감염과 싸우다 사망했음을 보여준다. 이 발견은 검투장에서 곰을 사용했다는 최초의 직접적인 증거이며, 로마 제국에서 동물을 이용한 구경거리가 얼마나 야만적이었는지를 보여준다. "곰이 경기장에서 직접 죽었는지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증거를 보면 경기 중에 외상이 발생했고 그에 따른 감염이 사망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베오그라드 고고학 연구소Institute of Archaeology in Belgrade 수석 연구원이자 이번 연구 주저자인 네마냐 마르코비치Nemanja Marković는 이렇게 말했다. 월요일(9월.. 2025. 9. 5.
2000년 된 스위스 로마 다리 공개 참나무 촘촘히 박아, 완벽 대패도 발굴 스위스에서 드러난 2000년 된 로마 다리가 공개되었다. 이를 통해 로마 엔지니어링 경이로움이 하나 더 추가됐다. 스위스 고고학팀이 4세기 넘게 중요한 교통로 역할을 했던 로마 목조 다리 유적을 발굴했다고 Archäologischer Dienst des Kantons Bern이 최근 공개했다. 비엘Biel 인근 에게르텐Aegerten에서 발견된 이 다리는 로마인들이 광대한 제국 전역에 걸쳐 사회 기반 시설을 개발하는 데 얼마나 능숙했는지, 그 정교한 공학 기술을 보여준다. 공사 중 300점 이상 잘 보존된 참나무 기둥이 발견되어 고고학자들은 로마의 공학적 역량에 대한 귀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지하수 환경 덕분에 보존된 이 나무 기둥들은 로마 제국 전역에서 사용.. 2025. 9. 5.
18-19세기 "향촌중인"과 현대 한국의 중산층 현대 한국인은 우리나라가 빈부차가 크다고 생각하지만다른 나라 다녀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한국의 힘은 이처럼 매우 두터운 중산층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각설하고, "한국의 중산층의 기원"은 무엇일까? 한국 중산층이 결국 한국의 산업과 근대화의 횃불을 든 사람들이라 생각했을 때한국 중산층의 기원을 밝혀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우리나라 조선시대-. 향촌에는 원래 "양반"과 "평민-노비-천민" 밖에 눈에 띄는 게 없었다. 여기에 아주 얇은 층으로 "향촌중인"이 존재했는데 그 대부분은 "양반의 서자들"이었다. 이들은 조선 초-중기까지도 강고했던 서얼금고 때문에 조상 중에 한 명이라도 서자가 있으면 몽땅 과거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하층 관직을 전전하며 차별받는 층으로 묶였다. 이들이 바로 "초기 향촌중인".. 2025. 9. 5.
先天下之憂而憂 後天下之樂而樂 일본 동경에는 고라쿠엔後楽園이라는 곳이 있다. 여기는 지금 무슨 경기장인지 체육관인지가들어서서 거기에 이름 붙어 우리에게 유명하지만여기는 원래 에도시대 무슨 영주의 정원이었다. 그 정원의 이름이 고라쿠엔인데, 유명한 북송의 대 유학자, 존경해 마지않은 범중엄 선생의 일갈, 先天下之憂而憂 後天下之樂而樂에서 따온 것이다.에도시대 무사들 입에서 후락원後楽園이라는 말이 나오는거 자체가이미 이 시대 일본 무사란 더이상 전국시대 칼잡이 무사가 아니며이데올로기를 장착한 지사로 진화했다는 거을 의미한다. 한국의 19세기 향촌사회. 그 혼란과 에너지의 멜팅 폿에서 불과 몇 년 후면 진주민란이 일어나기 직전의 상황에서 묵묵히 자기 땅에서 노비 수백명을 1860년대까지도 사역시키던 소위 양반들은, 과연 先天下之憂而憂 後天下.. 2025. 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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