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전체 글21617 독특한 이중꼬리 쥐라기 포식 어류 확인 독특한 이중 노치 꼬리double-notched tail가 새로운 쥐라기 포식 어류를 다른 친척들과 구별하는 특징by 샌디 오스터Sandee Oster, Phys.org 최근 연구에서 루트비히 막시밀리안 대학교 Martin Ebert와 Unidad Ejecutora Lillo의 Adriana López-Arbarello가 이끄는 연구팀이 여러 박물관과 연구소에 소장된 Caturidae과 화석 표본을 조사하여 새로운 종을 발견했다. 카투로이드Caturoid는 빠른 헤엄을 치는 중간 크기(10~40cm) 멸종 포식성 어류predatory fish로, 쥐라기에 가장 넓은 지리적 분포를 보였으며, 당시 14종이 서식했다고 알려졌다. 이들은 종국에는 초기 백악기에 멸종했으며, 현재까지 알려진 종은 단 3종뿐이다... 2025. 9. 2. 차탈회위크에서 20명 주검 묻은 영혼의 집 발견 튀르키예 중부에 위치한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신석기 시대 유적 중 하나인 차탈회위크Çatalhöyük에서 고고학자들이 새로운 발견을 했다.폴란드 포즈난Poznań 대학교 선사시대 연구소 아르카디우스 마르치니악Arkadiusz Marciniak 교수가 이끄는 유적지 동쪽 구역 발굴에서 안뜰을 중심으로 건물들이 밀집된 모습을 발견했는데, 그중 다수는 주거 용도로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마르치니악 교수에 따르면, 가장 주목할 만한 발견은 "죽음의 집House of the Dead" 또는 "영혼의 집Spiritual House"으로 불리는 구조물로, 20명 유해가 의도적으로 바닥 아래에 묻혀 있었다.연구자들은 이 사람들이 다른 곳에서 사망하여 의식적 매장을 위해 이곳으로 옮겨졌다고 생각하며, 이 건물은 .. 2025. 9. 1. 호적만으로 더 이상 지배자가 구분 안되는 시기-19세기 18세기 이전에는호적만으로도 양반 구분이 쉽다. 우선 양반의 직역인 유학, 그보다 하나 아래이지만 어쨋건 양반 취급 받아 군역 면제인 업유,업무, 교생 등 이런 직역을 받아 호적에 적힌 사람도 많지 않은 데다가, 이런 양반들은 모두 많게는 20-30명에서 적어도 5-6명의 노비를 거느리고 있기 때문에 딱봐도 양반인걸 안다. 그런데 19세기 들어오면지금 우리네 주민등록 등본처럼 호적만 봐서는 이 사람이 도대체 양반인지 평민인지, 아니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도 분간이 쉽지 않다. 모두 비슷한 크기의 가구로 나뉘어 호주가 되어 있고, 이들 사이에는 아마도 지주-전호제로 소작관계가 형성되어 있을 텐데그러한 관계가 적어도 호적에서는 파악이 안되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18세기 이전도 노비를 20-30명 거느리고 .. 2025. 9. 1. 왜 양반 수는 불어만 가는가 조선후기 양반 수가 불어가는 이유 중에 한 가지는우리는 기존의 양반들 후손들이 예를 들어 벼슬길이 오래 끊기거나 아니면 서자 집안이라 제대로 된 양반에 결격사유가 생기면 순순히 우리는 양반 아니오 하고 내려갔을 것 같지만천만의 말씀이다. 조선시대 호적을 보면, 한번 양반 후손들은 순순히 양반 자리를 내놓지 않는다. 특히 호적에 유학, 그게 아니면 양반의 끝자리인 업유, 업무라고 적는데 민감하여결사적으로 이에 달라 붙어 쉽게 내놓지 않는다. 어쩌다 호적을 좀 빡빡하게들 조사했는지원래 유학이었다가 업유나 업무, 재수 없으면 선무군관으로 밀렸다고 치자. 다음번 호적 때는 반드시 유학으로 원상 복귀를 시도한다. 당대에 안되면 아들이라도 아버지 직역을 학생으로 반드시 고쳐 놓는다. 그도 그럴것이 호적에 유학으로 .. 2025. 9. 1. 뒤 늦게 불 붙은 장작 우리나라 호적은 시계열 자료로 17세기부터 19세기 까지 남아 있는 것이 전국에 몇 군데 안된다. 이 몇 군데 안되는 자료로 조선후기의 계급의 변동에 대한 대부분의 논문이 나온다. 하지만 이 지역들이 조선 전체를 반영하는데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조선후기의 농업발전에 있어서 현재 호적이 남아 있는 곳이 낙후되었던 지역이 아니라 이앙법이 도입되는 단계부터 수리시설의 증대까지 당시 전국을 주도하는 입장에 있었던 지역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이 지역이 낙후되었기 때문에 노비가 그렇게 많았다?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이앙법 도입만 해도 이 지역이 전국에서 가장 빨랐다. 이 17세기 부터 19세기까지 시계열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는 뒤늦게 불붙은 장작이다. 일본과 비교한다면 옆나라는 17.. 2025. 9. 1. 1690년. 양반인구 7.4 퍼센트 우리나라 조선시대1690년에 양반 인구는 전체 인구의 7.4 퍼센트 였다. 이 당시 사람들이 거의 비슷한 비율로 후손을 남겼다면지금 우리들 중 1690년에 양반 조상을 둔 사람은 10명에 1명도 안되는 셈이다. 그로부터 백년이 지난 1790년 경에도 전체 인구 중 양반 인구는 30프로가 안 되었다. 우리 중 1790년에 양반 조상을 둔 사람은 10명 중 3명도 안 되는 셈이다. 노비인구를 보자면, 1678년에는 62%, 18세기 전반에는 40∼50% 사이, 18세기 중엽에는 30∼40% 사이로 18세기 중엽까지도 전체 인구의 1/3이 아직 노비였다. 이 문제를 우리 학자나 역사의 독자들이 회피하지 않고 직시해야지만 한국의 근대사는 제대로 볼 수 있다. 집집마다 전부 양반 조상이고, 19세기의 양반모칭자.. 2025. 9. 1. 밧줄로 목 감기고 손 뒤로 묶인 2,300년 전 페루 인신공희 유골 발굴 페루의 한 고대 사원을 발굴하던 중 고고학자들은 2,300년 된 12개체 이상의 유골을 발견했는데, 그중 일부는 인신공희 증거를 보였다. 고고학자들은 이 유골에서 몇 가지 희귀한 특징이 발견되었다고 밝혔다. "무덤에 안치된 방식이 이상하다"라고 이번 연구를 이끄는 산마르코스 국립대학교 고고학 교수 헨리 탄탈레안Henry Tantaleán은 말했다. 유골은 "얼굴을 땅에 대고 있었는데, 이는 안데스 선사 시대 전체에서 흔치 않은 매장 방식"이었다. 탄탈레안은 몇몇 사람이 두개골 골절이 있고, 일부는 목에 밧줄이 감겼으며 손이 등 뒤로 묶인 상태였다고 말했다.그는 이로 볼 때 이들이 희생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하며, "제물이나 부장품이 함께 제공되지 않은 것 역시 이례적인 일"이라고 덧붙였다.탄탈레안 박사에 .. 2025. 9. 1. 과거가 없어져 분통이 터진 이승만 부친 우남 이승만의 회고를 보면, 조선왕조의 마지막 과거가 캔슬되어이제는 과거시험 더이상 없다고 했을 때, 이 대통령 부친도 평생을 과거 시험 보러 다녔던 모양으로 땅을 치며 통분해 마지않았다는 구절이 있다. 아마도 자신의 영달 마지막 수단으로 과거를 노렸던 것인데 그것이 좌절되었으니 너무나 분통했을 것이다. 이 대통령 집안은 전주이씨 양녕대군파 이지만이미 오래전에 벼슬이 끊겨 영달하지 못한 집안으로 알아서 아마도 이대통령의 부친이 과거시험 볼 때도 준호구를 떼서 들고가면 틀림없이 거기에는 유학, 친가 3대 외조 학생처가 3대 외조 학생이리 적혀 있었을 것임에 분명하다. 참고로 [일성록]에서고종 28년(1891)의 과거시험 기록을 확인해 보니10만 명 이상이 응시한 시험을 이 해에만 26회 실시했다고 한다.그.. 2025. 8. 31. 될 리가 없었던 조선시대 오가작통법 한국사를 배운 사람들은 누구나 오가작통법을 다 알 것이다. 교과서적인 설명은 이렇다.오가작통법은 5호(戶)를 1통(統)으로, 5통을 1리(里)로, 약간의 리를 하나의 면(面)으로 형성하여 면에 권농관(勸農官), 한성부에는 관령(管領)을 두어 호구의 동태를 보고하게 한 제도이다. 이건 교과서적 설명이 이렇다는 소리이고, 실제는 그러면 어땠느냐, 어떻게 작동했는지는 필자도 모르지만대략 짐작할 만한 것은 있다. 조선시대 호적을 보면이 오가작통법에서 5호씩 묶어 1개의 통을 구성한 내역이 적혀 있다. 예를 들어 5개 호를 연달아 쓰고 나서 그 5개 호는 하나의 통으로 여기에 통수를 지정해 놓는 것이다. 오가작통법이라는 게 말로만 되어 있는 도상 구조가 아니라 실제 있었던 것임을 알 수 있겠다. 그런데 딱 봐도 .. 2025. 8. 31. 지배세력의 교체 우리나라 역사에서 지배세력이 교체된 가장 큰 계기가 무신정권기라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 시기에 이전까지 득세하던 문중들이 사라지고 무신정권기 이후 출현한 집안들이 여말선초의 격변기 이후에도 그대로 이어져 구한말까지 대략 600-700년을 번영한 것이다. 이는 일본에서 무가정권 성립 이후 에도막부의 종식까지 사무라이 시대가 600여년 지속된 것과 비교할 만 하다 하겠다. 일본은 무가정권이 쓰러지고 메이지유신이 시작된 후 그야말로 엄청난 지배세력의 교체가 뒤따랐고 그 흐름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해도 좋겠다. 한국의 경우는 그렇다면전부 양반의 후손이니 조선시대의 지배계급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는 소리일까. 한국도 20세기를 거치면서 지배세력의 교체가 뒤따랐는데, 필자가 보기엔 20세기에 활발하게 .. 2025. 8. 31. 족보와 호적에 솔직하지 못하면 한국근대사는 없다 언젠가 한 번 이야기 한 거 같지만일본 미츠비시상사의 창업자인 이와사키 야타로는 岩崎弥太郎에도시대 그 집안이 완전하게 쫄딱망한 향사 집안으로 향사집안 자체가 사무라이 계급에서는 바닥인데아버지 대인가 할아버지 대인가에는 그 바닥을 치는 사무라이 자격까지 팔아버리고 말 그대로 거지 같은 신분이 되어 있었다. 일본 이토추 상사의창업자인 伊藤 忠兵衛는 에도시대 직물 소매상을 하던 집 출신이며, 미쓰이 그룹은 에도시대 옷집인 에치고야에서 시작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정재계 막론하고 양반 후손 아닌 사람들이 없어서 재벌 집안까지도 조상들은 양반집이라는 것인데필자가 보기엔 모두 19세기에 흥기한 새로운 유학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이다. 아마도 20세기 일제시대와 대한민국 독립이후 활동한 많은 사람들의 가계를.. 2025. 8. 31. 서울대공원에 계셨던 프르제발스키 말 알다시피 서울동물원은 옛날 창경원이 옮겨간 것인데여기에 원래 프르제발스키 말이 있었다. 필자가 2022년 여기를 방문했을 때 찍은 사진이 이것으로프르제발스키 말은 야생말이 전부인데동물원에서 일부를 잡아다 키우던 와중에 야생종이 멸종하여부랴부랴 동물원에서 키우던 녀석들을 야생에 다시 풀어놓아 지금 수천 두 정도로 불어난 것이 전부이다. 국내에도 프르제발스키 말이 들어와 있었는데 2022년 필자가 방문했을 떄까지도 서울동물원에 있었다. 시간 나면 가서들 보시라고 쓰려고 했더니이 말은 2024년인가 저 세상으로 가신 모양이다. 교육상으로도 국내에 한두 마리라도 유지되었으면 좋았을 텐데지금은 국내에 이 말은 한 마리도 없는 상태이다. 2025. 8. 31. 이승만도, 김구도, 박정희의 부친도 봤던 과거 구한말의 과거가 폐지 되기 이전, 거의 끝물에 해당한 과거에는 이승만도, 김구도, 박정희의 부친도 응시한 전력이 있다. 이 세 분의 편력을 보자. (1) 이승만:이승만은 3남 2녀 중 막내로 출생하였다. 이승만의 6대조 이징하(李徵夏)가 음직(陰職)으로 현령(縣令)을 지낸 것을 끝으로 벼슬길이 끊기고 가세가 기울어 어렵게 살아갔다. 도동서당에서 한학 공부. 이승만도 과거에 응시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결과는 낙방. 과거가 폐지된 후 배재학당에 입학. (2) 김구: 무려 11대조부터 벼슬길이 끊김. 9세부터 서당에 나가 한학을 공부. 17세에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낙방. 이후 동학에 입교. (3) 박정희의 부친: 박정희의 12대조부터 벼슬길이 끊김. 박정희의 부친은 무과에 급제하여 정9품 벼슬을 지냈다고 .. 2025. 8. 31. 발해 문왕文王비 효의황후孝懿皇后 묘지 석문 중국쪽에서 최근 공개했다는 발해 왕릉 묘군 출토 묘지 석 점 중 제3대 문왕文王비 효의황후孝懿皇后 묘지 석문이 아래와 같댄다.지인을 통해 얻었는데 혹 결례가 될까봐 제공자 신원은 공개하지 않는다.어차피 보고선엔 다 수록됐을 테니 뭐..죽 훑으니 뭐 뜬구름 잡는 이야기 잔뜩이라 죽 훑어내면 몇 개 남지도 않는다.뭐 또 왕비족 운운하고 상장례 운운하고 나면 할 얘기도 없다.나머진 다 침소봉대라 보면 된다.孝懿皇后墓誌一首并序粵若河洲之鳥/詩人表其和聲/為魯夫人之傳家錄其奇掌故/細求窈窕/立以英賢/積行累功/扶助 王化/后妃之義/其在兹乎/皇后欝氏者/本夏神鄉人也/肅慎福地/久號隼集之林/崑崙勝區/先稱虎臣之地/惟祖惟父/昇闢將門/盡忠 聖朝/以身許國/安邊之計/營平侯之大功/赴敵之心/李將軍之雄氣/剖符受印/襲軒冕而永傳/比山擔河/如帶礪.. 2025. 8. 31. 소설 장길산의 세계관 황석영 작가의 장길산은 필자 또래 사람들이 대학다닐 때 필독서였다. 사실 이 책은 문단의 베스트셀러로 한 번 읽어볼 만한 가치가 분명히 있는 것이로되 이 소설에서 그리는 세계관은 당시 학계를 풍미하던 자본주의맹아론, 17세기 조선사회의 근대적 변화이런 부분을 충실히 반영하여 그려낸 것으로 안다. 그런데- 필자의 생각으로는 이 소설이 그리고 있는 세계관은이 소설의 배경이 숙종 연간이로되, 이 숙종 연간에는 이 소설이 그리는 것 같은 사회가 아니었다고 장담한다. 일단 숙종 연간만 해도 우리나라는 노비사역이 중심이 되어 있는데, 장길산에서 그리고 있는 사회는 소농중심의 사회이며노비는 존재하지만 가내노비 정도만 약간 남아 있는 듯 한데필자가 보기엔 장길산이 그리고 있는 사회는숙종 연간이 아니라 빨라도 18세기 .. 2025. 8. 31. 자본주의 맹아는 있다면서 자본가는 없는 이상한 나라 우리나라 자본주의 맹아론은 이상한 것이자본주의 맹아가 있었다면서 정작 그것 때문에 성장해 나온 세력이 누군지구체적인 바가 아무 것도 없다. 예를 들어 유럽을 보자. 얼마전 오만과 편견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영국은 근대의 여명, 자본주의의 맹아가 성장해 나오면서 부상하는 세력이 분명하다.누군지도 역사상에서 잘 밝혀져 있다. 일반적으로 젠트리라는 계급은 바로 그렇게 농민에서 분화하며 올라왔다. 오만과 편견에서 보듯이 이들도 기존의 귀족들로부터무시와 비하를 받으며 세력을 키웠다. 저놈들은 양반도 아니라는 비하를 받았던 건 19세기 출현한 조선의 유학들만 그랬던 것이 아니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개화하는 시기가 되면 이들이 바로 영국사의 주인공이다. 우리나라는 역사학을 보면자본주의맹아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 2025. 8. 31. 원래 양반 후손인데 집안이 가난해서.... 이런 이야기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집안 내력을 설명할 때의 클리셰다. 원래 양반후손인데 집안이 가난해서 어렵게 살다가 해방이후 공부해서 집안을 일으켜 세워서 그래도 성공했다는 이야기. 이런 분들 전체가 다 그렇다고 어떻게 장담하겠는가마는이런 클리셰의 스토리-. 대부분은 19세기에 양반 모록자이거나, 원래 양반 후손이었다가 서자이건 지손이건 19세기가 되면 양반 끄트머리라 양반이 아슬아슬해진 사람들의 후손일 가능성이 많다. 특히 후자의 경우보다 전자, 양반 모록의 가능성이 더 높다는 말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두 양반의 후손이라 생각한다. 아무리 집안이 어렵고 가진 게 없어도 누구나 다 그렇게 생각한다. 왜 그럴까. 19세기 말 당시 호적에 너도 나도 모두 유학이라 올려 놓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19세기 .. 2025. 8. 31. 사대부는 원래 씨가 없다 동아시아 유교문화에서 보자면양반은 원래 씨가 없다. 왕후장상도 씨가 없는데 양반이 뭐라고 대대손손 이어지는 씨가 있겠는가이중환의 택리지에는 사대부가 생긴 이유를 적어 놓았는데 그의 상상에서 비롯된 기술이지만 정통 유교에서 보는 사대부관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옛날에는 사대부가 따로 없고 모두 민(民)이었는데민은 다시 사(士)를 비롯하여 농(農)·공(工)·상(商)으로 분류되었다고 하였다.이때 사(士)인 사람이 어질고 덕(德)이 있으면 왕께서 벼슬을 주었고,벼슬을 받지 못한 자는 농·공·상이 되었다고 하였다.그러면서 사대부라는 이름이 생겼다는 것이다.다시 말해 사대부란 어질고 덕이 있는 이에게 부여되는 후천적 직역이지 대대손손 물리는 귀족과 같은 것이 아니라는 뜻이 되겠다.다시 19세기 양반.. 2025. 8. 31. DOM1과 프르제발스키 말 DOM1에 대해 좀 더 써 보면, 이 DOM1과 DOM2는 원래 같은 현대 사육종 말의 조상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DOM1이 현대사육마가 아니라 프르제발스키말[프셰발스키말]과 더 가깝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DOM1과 DOM2는 서로 다른 종이라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DOM1인 프르제발스키 말은 구석기시대 유럽의 동굴화에서도 자주 나온다. 머리가 크고 배가 살짝 나온 귀엽게 생긴 녀석이라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DOM1과 DOM2는 아예 염색체수가 다르다. 이 말은 후손이 생길 수 없다는 뜻이다. 프르제발스키 말과 현생 사육마의 교배와 후손은 그래서 성립하기 어렵다.프르제발스키 말은 현재에는 사육되는 개체가 없다. 모두 야생종이며 일부가 포획되어 동물원에서 관리되고 있었는데야생에 살던 녀석들이 남획으로.. 2025. 8. 31. 말 사육 역사에서 DOM1과 DOM2 아래 김단장께서 쓰신 글 중 말의 역사에 관해 조금 부연한다. 최근 말 사육의 역사가 밝혀지면서 인류사에서 말 사육은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이 있었다는 것이 알려졌다. 말사육은 세계 곳곳에서 따로 따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대체로 남시베리아 일대에서 일어났는데 이 사건이 한 번이 아니라 시간 간격을 두고 두 번 일어났다는 것이 알려진 것이다. 첫번째 말사육 사건을 DOM1이라 부르고두번째 사건을 DOM2라 부른다. 이 중 첫번째 사육인 DOM1은 현재 전 세계에서 키우는 사육마와는 관련이 없다. 지금 야생마 중에 프르제발스키 말이라고 있는데이 말을 사육하는데 성공했다고 본다. 하지만 지금 현재 사육되는 말은 이 DOM1이 아니다. 프르제발스키 말은 동물원에서 키우다 야생복원 프로젝트에 의해 현재는 야생.. 2025. 8. 31. 양반사칭, 금전 만능주의자로 매도당한 이들 필자가 생각건데서구의 근대화과정과 다른 경로를 밟아야 한 동아시아에서 그나마 식민지로 전락하지 않고 나름의 근대화-제국주의화에 성공한 일본의 메이지유신의 주체세력과 가장 비슷한 이들을 한국사에서 꼽으라면 역시 양반의 말단, 그러면서도 식자층이며 세상 돌아가는 데도 빠삭한 이들로 필자가 지금까지 계속 소개한, 소위 말하는 19세기 양반모록자들이다. 이들이 일본 메이지유신 주체세력인 하급무사들과 가장 방불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라 하겠다. 한국보다 근대화 과정이 빨랐던 일본조차메이지유신 과정에서 농민은 전면에 등장한 적이 없다. 따라서 한국 근대화 과정에서 "농민"을 앞세우고 이들이 "동학전쟁"을 주도했다고 하는 시각은한마디로 한국사의 특수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몰역사적 시각이라고 필자는 본다. 앞으로 동학.. 2025. 8. 31. 이전 1 ··· 38 39 40 41 42 43 44 ··· 1030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