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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 주자가례의 비극: 왜 우리 조상들은 미라가 되었나 우리 조상 분 들은 왜 조선시대 무덤 안에서 미라가 되었을까? 주자가례와 미라에 관한 이야기-. 다음주 금요일 (5월 3일) 부터. 기대하시라-. *** following article *** 주자가례의 비극: 왜 우리 조상들은 미라가 되었나 (1) 주자가례의 비극: 왜 우리 조상들은 미라가 되었나 (1) 신동훈 (申東勳·서울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연구실)필자가 조선시대 미라로 초창기 논문을 낼 때마다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도대체 왜 미라가 되었다고 생각하는가? 라는 질문이었다. 조선시대 historylibrary.net 2019. 4. 29.
황룡사에선 아픔이(慶州皇龍寺 / Hwangryongsa Temple Site, Gyeongju) 선도산 너머로 해가 질 겨울 무렵 남산 병풍삼은 월성에 벚꽃이 만발할 무렵 유채 너울 대는 4월 중순 무렵 조생종 코스모스 널뛰듯 하는 여름 무렵 이런 무렵들이면 내가 데리고 간 모든 이가 목놓아 울었다. 기뻐서 울었고 버림받은 억울함에 울었고 보낸 사람 애타서 울었다. 딱 한 사람 이런 모든 걸 보여주고팠던 딱 한 사람 그 사람한테만 보여주지 못해 목이 아팠다. 황룡사는 그런 곳이다 언제나 황홀해서 아프고 쓸쓸해서 아프며 기뻐해서 눈물나는 그런 곳이다. 2019. 4. 29.
Namsansinseong Fortress in Gyeongju (경주남산신성 / 慶州南山新城) Located in the north of Mt. Namsan (南山) in Gyeongju, the capital of the Silla Kingdom, also called 'Silla Namsansinseong (新羅南山新城) ', the fortress was built in the 13th year (591 AD) of King Jinpyeong (眞平王) of Silla. Later in the year of 679 when King Munyumu (文武王) reigned, it was repaired or rebuilt. Much of the walls were destroyed, and the relatively well preserved walls are hard to find. At p.. 2019. 4. 28.
남대문 복원 5년 3개월은 기록적인 공사기간이었다 November 28, 2013에 쓴 글이다. 당시 남대문, 곧 숭례문 복원을 두고 말이 많았거니와, 단청 부실로 촉발한 광범위한 숭례문 복원을 둘러싼 사태에 참다참다 싸지른 글이다. 현재도 참고할 만하다 해서 전재한다. 다만 '놈' 등이라고 쓴 대목은 '者' 등으로 바꾼다. ================= 남대문이 불타고 오년삼개월만에 복원한 일을 두고 무리한 공기단축과 이에 따른 졸속복원이라는 말이 근거도 없이 횡행한다.저들이 이르기를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한데 저런 주장하는 그 어떤 者도 옛날엔 어떠했는지 설명하는 者가 단 한 者 없음이 기이하고 신이할 뿐이다. 대규모 공사 실상이 어떠했는지 단 한 者라도 조사를 해보고 저 따위 소리해야 한다. 경주 남산신성, 진평왕때 육개월만에 저 .. 2019. 4. 28.
구 철도청 대전지역 사무소 보급창고 3호 舊鐵道廳大田地域事務所補給倉庫三號 유의미한 기억을 발판으로 대전역을 오간지 대략 20년. 정문격인 서광장 반대편 동광장은 개통이 늦었다고 기억하거니와 이 동광장을 이용할 때마다 지금은 대전역 주차장 부지로 쓰는 이 넓은 광장 한가운데를 차지한 저 널판대기 슬레이트 지붕 건물은 정체가 언제나 궁금했다. 그러던 차 오늘은 이쪽으로 문상할 일이 있어 대전역에 내린 김에 저 정체를 까발리고 말겠다는 일념으로 다가 가니 싱겁다. 저리한 안내판이 떡하니 선 게 아닌가? 이걸 보니, 궁금한 사항은 대전역 역무과로 연락하라 하니, 철도청에서 전환한 철도공사 소유인가 보다. 안내판을 옮긴다. 구 철도청 대전지역사무소 보급창고 3호 / 舊鐵道廳大田地域事務所補給倉庫三號 Former Storehouse No. 3 of Korea Railroad, Daejeo.. 2019. 4. 28.
노트르담성당, 수리는 빨리빨리 해치워야 한다 내 경험이기도 하고, 단군조선 이래 역사를 통괄할 때도 결론은 같다.그래 결론은 버킹검이라, 역사의 교훈으로 그대로 놔둘 것이라면 몰라도, 제아무리 대역사라도 공사는 빨리빨리 해치울수록 좋고, 또 그래야 의외로 뒤탈이 그렇지 않은 경우에 견주어 뒤탈이 상대적으로 적다. 저 길다란 한양도성도 몇년만에 후딱 해치웠고, 조선왕조 개창 직후 저 경복궁도 착공에서 완공까지 내 기억에 4~5년도 걸리지 않았다. 경주 남산신성? 반년만에 후딱 해치웠다. 그렇던 대공사가 시간이 흐르면서, 엿가락 늘어지듯 늘어나는 경향을 보이거니와, 이게 다 잘못된 신화에 기인한다. 특히 문화재 현장에서 이런 신화는 강고해서, 허무맹랑한 설이 난무하거니와, 그들이 이르대 우리 조상들은 나무만 건조하는데 10년이 걸렸다느니, 그래서 그네.. 2019. 4. 28.
국가적 현안에 자문위원으로 발탁되는 공식 문화재판에 국한하기는 하지만, 사회 전반에 걸쳐 같은 패턴이 반복한다. 이걸 아는 놈들이 있다. 특히 몇몇 교수놈이 이 수법을 잘 쓰는데, 약발 좋으니, 혹 관심 있는 다른 교수들은 참고하기 바란다. 예컨대 노트르담성당 비스무리한 문화재 현장에 안전사고가 났다 치자. 그날로 어케든 용을 써서라도 신문 방송에 나야 한다. 사돈에 팔촌 동원하면 못할 거 없다. 신문엔 인용 코트 하나 나야 하지만, 기고문이 약발 젤로 좋다. 방송 출연도 아주 좋다. 전문가연 하면서, 이래선 안되니, 이래야 하니 한두마디 떠들기만 하면 약발 최고다. 그 다음날 대책위원회가 수립되고 며칠 뒤 자문위원단이 구성되는데 어김없이 저런 사람은 자문위원단에 들어가 있다. 2019. 4. 28.
Tops and Insides of Cheonseongdae, Gyeongju 드론 촬영이 아니다. 내가 타이탄도 아닐진대 어딘가 올라 찍은 것이다. 어딘가? 아시바다. 아시바 타고 올랐다. 나도 하이바 뒤집어 썼다. 내가 오른단 소식에 감시한다고 경주시청 꺽다리 이채경이 쫄래쫄래 따라붙었다. 포토바이 오 역시 쫄래쫄래 따라왔다. 이때가 기회다 이거였지 뭐. 동생 덕분에 나도 한판 찍어두자! 이때다 싶었다. 언제 영영 내가 첨성대 꼭대기와 속내 볼 수 있으리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가? 2016년 9월 12일 경상북도 경주시 남남서쪽 8km에서 규모 5.8 지진으로 발생했다. 1978년 지진 관측 개시 이래 한반도에서 발생한 역대 최대 규모 지진이다. 첨성대가 흔들렸다. 피해상황을 감지해야 했다. 경주시와 문화재청이 아시바를 놨다. 그 소식이 내 귀에 들어왔다. 드뎌 내가 첨성대.. 2019. 4. 28.
공론共論은 원탁회의가 아니라 결재라인이다 한국고대사학계 실로 어처구니 없는 오독誤讀으로 나는 매양 포항 영일 냉수리 신라비를 들거니와 신라 지증왕 시대, 아마도 504년에 작성된 것으로 간주되는 금석이다. 그 내용은 지금의 울진 어느 지방에서 일어난 재산 분쟁 사건을 신라조정이 개입해서 내린 판결을 정리한 것이다. 그 판결문이 바로 이 금석문이다. 이 금석문에 의하면, 요즘으로 치자면 말단 9급 주사에서 시작해 계장 과장을 거치고 국장 실장을 지나 장관을 거쳐 최종으로는 당시 최고권력자인 갈문왕까지 모두 7명이 결재를 했다. 당시 소지왕은 죽고 없다 하나, 그래서 저 아득한 일본 상고기를 끌어다가 있지도 않은 이른바 공위空位시대를 설정하는 얼빠진 놈도 있기는 하다만, 죽지 아니하고 식물인간 상태였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아 권력서열 넘버투인 갈문왕.. 2019. 4. 27.
진천의 김유신 태실(忠淸北道鎭川郡金庾信胎室) 내가 현지 사정에 어두워 막상 태실까지 등반했지만, 하산해서 그 정확한 위치를 제대로 표시했는지 자신할 수는 없지만, 화살표 표시한 지점이 아마도 진천鎭川 김유신金庾信 태실胎室 위치일 것이다. 만뢰산萬賴山(해발 611.7m)에서 뻗어내린 태령산胎靈山(해발 421m)이라는 능선 중에서도 사방을 조망하기 가장 좋은 곳에 위치한다. 이 태실은 여러 모로 우리한테 익숙한 조선시대의 그것과는 양식이 판이하지만, 그 위치만큼은 판박이다. 이 김유신 태실은 이미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에도 기록된 것이니, 적어도 기록으로 남은 한반도 현존 최고最古 태실 흔적이다. 중국에서는 전한시대 중기 무덤인 마왕퇴 한묘漢墓 출토 문자자료 중 이른바 《태산서胎産書》에 이미 태실이 보이거니와, 중국에서 태를 묻는 이른바 안태安胎은 .. 2019. 4. 27.
역사학과 문법, 영일 냉수리신라비와 송산리고분 백제 벽돌문자의 경우 예서 문법이란 grammar를 말한다. 전근대 한국사는 절대 다수 기록이 한문이거나 혹은 한자를 빌린 이두류이니 개중 한글문헌이 15세기 이후 일부 있다. 한문은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이라는 말이 상징하듯이 덮어놓고 읽고 쓰기를 강요하나, 엄연히 한문은 문법 체계가 있는 언어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걸 망각하면 평지돌출 파천황 같은 억설이 난무하거니와, 하시何時라도 이를 떠나서 텍스트를 대할 수는 없다. 내가 영일 냉수리 신라비에 등장하는 '此七王等'을 '이들 일곱 왕들'이라고 결코 볼 수 없는 가장 주된 전거로 내세운 논리가 그라마다. 그 그라마 중에서도 호응이었다. 무슨 판결에 관여한 일곱 중 왕은 오직 갈문왕 한 명인데 어찌하여 나머지 여섯까지 왕이 될 수 있는가? 왕이 일곱이라면 此七王이지 어.. 2019. 4. 27.
Site presumed to be the "Goryeo celadon" administrative office in Gangjin 강진서 고려청자 생산 사무소 추정 건물터 확인송고시간 | 2019-04-26 16:53고려 폐기장·가마·도로 발견…매병 조각도 나와 康津高麗靑瓷窯址發掘 (Seoul-Yonhap News) Park Sang-hyun = The ruins of the building, which is supposed to be the administrative office of Daeguso Office responsible for the production of celadon during the Goryeo dynasty, have been discovered in Gangjin, southwest part of the Korean peninsula. Archaeologists said on 26th April that .. 2019. 4. 27.
내것으로 둔갑한 무령왕릉 스크랩북 육당인가? 이 양반은 빌려온 책 거져먹기로 악명이 높아 내 책은 내꺼, 남의 책도 내꺼라는 도덕률의 진정한 실천자였다. 보다시피 이 신문 스크랩 1971년 7월 무령왕릉 발굴 관련 신문스크랩이다. 5살인 저 무렵, 내가 신문을 봤을 리도 없고, 더구나 우리 동네에 신문이랍시고 농민신문이 들어오기 시작한 때가 70년대 중반 이후이니, 내가 만든 스크랩은 아니요 더구나 헌책방 같은데서 우연히 건진 보물도 아니다. 내가 무령왕릉 발굴 30주년 특집을 준비하던 2001년, 그 소식을 접한 어느 교수님이 나한테 이런 스크랩이 있으니 참고하고 돌려달라 했다. 지금에야 말하지만 이형구 선생이시다. 하지만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2016)까지도 스크랩북은 내 수중에 고이 모셔져 있다. 그 선생님이 그런 사실을 잊.. 2019. 4. 27.
신라가 중국에 있다 하는 놈이나, 신라왕이 일곱이라 하는 놈이나 백제 신라가 한반도가 아닌 중국땅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역사학을 일러 사이비역사학이니 재야사학이라 한다. 묻는다. 지증왕 시대에 신라에 왕이 한 명도 아니요 일곱 놈이나 있었다고 주장하는 역사학은 뭐라 불러야 하나?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로부터 경북대 사학과 교수에 이르기까지 전국의 강단 사학자 열명 중 아홉놈이 이 따우 주장을 일삼았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더니 그 짝이다. 말한다. 재야사학 사이비역사학을 조장한 이는 환단고기도 아니요 너희 강단 사학이니라. 2019. 4. 26.
단재와 순국무사, 김유신을 일그러뜨린 악의 축 내가 life work 중 하나로 삼는 주제가 김유신이다. 김유신은 나 말고 제대로 증언할 사람이 없다는 믿음이 있다 이를 위해 단재를 넘어야 한다. 단재가 민족의 성전에 불태워버린 김유신을 복권해야 한다. 이는 첫발이요 넘어선 단재의 자리에 무수한 김유신을 안치해야 한다. 이를 위해 화랑이 순국무사의 청소년 집단이라는 밑도끝도 없는 신화를 나는 우선 붕파해야 했다. 단재와 순국무사, 이 두 가지가 김유신을 일그러뜨린 양대 축이다. 진천 길상사에서.... 3년전 오늘 나는 김유신 태생지에 자리한 그의 사당에서 이리 적었다. 2019. 4. 26.
Gyeonghwoiru Pavilion of Gyeongbokgung Palace(慶福宮慶會樓) 경복궁 경회루 지금 좀 춥다. 2019. 4. 26.
"참으로 순조로운 발굴" "발굴은 그리하는 줄 알았지 뭐" 공주 송산리 고분군 무령왕릉은 그 발굴 전과정이 요새 기준으로 하면 생중계된 한국 최초의 발굴현장이다. 그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던 일이다. 뭐 그만큼 발굴이 개판이었다는 말이다. 기자들이야 언제나 발굴현장의 정보통제를 비난하지만, 솔까 언론에 완전 개방한 상태에서 발굴이 제대로 진행될 리 있겠는가? 우왕좌왕 개판이었다. 그에 더해 기자들 역시 발굴현장을 제대로 취재해 본 적도 없었다. 알아야 면장이라도 하는데, 난생 처음 접한 발굴현장은 그만큼 신기할 뿐이었다.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무령왕릉 발굴이 끝난 뒤 이 사건 보도를 내내 특종보도한 한국일보 취재기자 방담기다. 그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보인다. "발굴 진행은 참으로 순조로왔습니다" 이 한마디가 무령왕릉 발굴 모든 것을 함축한다. 그날 무.. 2019. 4. 26.
너와 나의 연결고리! 이순신과 팔사품도! 온양민속박물관 구정아트센터 '민화 : 일상의 공간' 전시 중 올해는 충무공 이순신(李舜臣 1545-1598) 탄생 474주년이 되는 해. 아산시에서는 매년 기념적으로 이순신 관련 축제를 진행하고, 온양민속박물관에서도 이를 기념해 민화 특별전시 을 진행한다. 전시에는 박물관 대표 소장품인 '십장생도' '책가도' '백수백복도' 등 이 현대작가가 민화를 보고 재해석한 작품과 함께 선보였고, 충무공 이순신 탄생 기념인 만큼 그동안 잘 공개하지 않은 '팔사품도(八賜品圖)'도 만난다. '팔사품도' 전시 전경 팔사품도(八賜品圖)가 이순신과 무슨 연관인고 하니, 팔사품(八賜品)은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지원군으로 왔던 명나라 수군 도독 진린(陳璘, 1543~1607)이 이순신 장군의 공을 명나라 조정에 보고하자, 신종(.. 2019. 4.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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