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미라 이야기443 [마왕퇴와 그 이웃-13] 백고니白膏泥 마왕퇴 주변에는 미라가 나온 한묘漢墓가 이것 외에도 또 있다. 그리고 시대를 올라가면 전국 시대 초나라 무덤에서도 미라가 발견되었다. 전국 시대 무덤이나 한묘는 중국 전국에서 발견되었지만 유독 이 지역 무덤에서만 미라가 확인되었다. 왜 일까? 이 지역 무덤은 독특한 구조가 있다. 관곽棺槨 주변에 "백고니"를 두텁게 둘러 놓는 것이다. 마왕퇴는 발굴 당시 관곽 주변에서 백고니가 무려 1.5 미터 두께로 확인된 바 있다. 이 지역 도굴범들은 도굴 당시 백고니가 두텁게, 온전하게 확인되면 마치 계란의 흰자가 노른자를 둘러싸고 있는 것처럼 내부의 관곽이 온전하게 남아 있다고 추정을 했다고 한다. 백고니가 무엇일까? 우선 "고니"란 고령토를 의미한다. 끈적 끈적하고 고운 고령토가 바로 "고니"인데 한자로 한다면.. 2025. 2. 28. 곽점초간郭店楚簡, 한여름 변사사건이 이끈 세기의 발견 한여름 변사사건이 이끈 세기의 발견 송고 2006-12-20 15:31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1993년 8월, 변사 사건이 중국 허베이성湖北省 징먼시荊門市 공안당국에 접수됐다. 한여름 들판에 시신 한 구가 썩어가고 있다는 보고였다.공안당국은 그 신원을 조사했으나 오리무중이었다.하지만 이윽고 출처가 밝혀졌다. 시신은 최근에 살해되거나 자연사한 사람이 아니라 2천300여년 전, 중국 남방의 강국 초楚나라 시대의 유력지배계층에 속한 남자였다. 도굴꾼들이 징먼시에서 가까운 궈디앤郭店이라는 한적한 농촌 마을의 무덤을 파헤쳤다. 눈에 보이는 보물을 집어내기 위해 미라 상태로 남아있던 시신을 바깥으로 끌어내 폐기한 것이었다. 도굴꾼들은 검거되고 그해 10월, 그들이 도굴한 무덤이 정식 발굴조사에 들어갔다.. 2025. 2. 28. 위대한 신라의 승려들 혜초가 경유한 길 물론 추정로도 있다. 소위 "고구려 사신" 그림이 있었다는 궁전이 위치한 길목이다. 엄청나게 멀어 보인다. 그런데 사실 이 언저리는 인도로 들어가는 이들이 무시로 지나가는 길이었다는 말이다. 고구려 사신이 어떤 외교적 이유로 저길 나타나 저 지역의 국가들과 모종의 외교적 딜을 했다면 저기까지 갈 필요가 있었을까 싶지만, 인도로 들어가기 위해 거쳐가고 있었다고 한다면, 저기는 그냥 지나갈수 있는 길목이라는 뜻이다. 참고로 인도 하면 떠오르는 현장의 천축국 행로도 하나 붙인다. 신라. 서기 6세기에 이미 저 길을 따라 인도로 들어간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우리는 혜초만 있다고 생각하지만, 삼국 통일 이전에 이미 신라 승려들이 중국을 거쳐거기에 만족 못하고 인도까지 들어간 사람들이 꽤 있었다.. 2025. 2. 27. 사마르칸트의 이 한국인은 신라에서 왔다 언젠가 썼지만 사마르칸트의 어느 궁전벽화에 있다는 이 한국인 국적을 놓고 고구려인설 신라인설이 대립하고 있는 모양이며도대체 이 먼 곳에 한국인이 어찌 왔을까 싶지만서기 6세기에 이미 한반도에서 출발한 신라인이 부지기수로 인도까지 구법여행을 했다는 것을 알면사마크칸트에서 한국인 그림이 나오는 건 하다고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필자가 보기엔 저 그림, 신라인이다. 고구려인이 아니다. 당고승전을 보면 인도로 간 한국인, 신라인이 훨씬 많다. 고구려인은 몇 없다. 저 한국인은 신라인이다. *** editor's note ***아프라시압 궁전 벽화 사신도를 말한다.보통 고구려 사신이라 본다. 2025. 2. 27. 못난 후손 때문에 덩달아 폄하받는 선조들 앞에서 잘난 후손 덕에 과대평가받는 일본의 대종사, 구카이[공해空海, 774~835]와 사이초[최징最澄, 767~822] 이야기를 했지만, 반대로 못난 후손 때문에 잘난 양반들이 빛도 못 보는 경우도 있으니, 바로 우리나라 삼국시대 신라승들이다. 우리나라 6세기 신라의 학승들은 우리는 당나라 유학가는 의상이나 가다 말고 가 봐야 별 거 없다고 외친 원효, 인도까지 갔다는 혜초 등만 알고 있는데실제로 당고승전 등의 기록을 보면 신라승들은 처음부터 당나라 유학이 아니라 인도까지 가서 공부할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을 많이 받으니신라승으로 인도까지 가서 공부한 학승은 혜초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상당히 그 숫자가 많다. 신라 학승의 목표는 당나라가 아니라 천축국이었다는 말이다. 때로는 인도까지 가서 공.. 2025. 2. 27. 잘난 후손 덕에 과대평가된 선조들 일본사를 유심히 보면 이들의 에도시대 역사라던가, 메이지 이후의 역사는 분명히 높게 평가해줘야 할 부분이 있다만, 그 이전의 역사가 과연 이들 주장대로 대단한 것인가상당히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어 이런 것이 있다. 일본사에서 사이초[최징最澄, 766~822]과 구카이[공해空海, 774~835]라고 하면각각 천태종과 밀교 진언종을 개창한 굉장한 양반들이라는 것인데, 이 사람들의 행적을 추적해 보면 실소를 금치 못하는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 이 두 사람은 견당사로 일본에서 당나라로 학승 신분으로 건너갔는데, 쿠카이는 일본 쪽 선전을 보면 중국 밀교의 정통을 이은 대 학승으로 소개되는데사실 쿠카이는 혜과惠果를 만난지 6개월만에 혜과가 죽어버려 제대로 뭐를 배웠는지도 의심스러운 정황이.. 2025. 2. 27. 이전 1 ··· 40 41 42 43 44 45 46 ··· 74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