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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 이야기475

미라와 북극 (1) 조사지역 개설 신동훈 (서울의대 생물인류학 및 고병리연구실) 우리 연구진은 2010년부터 7년간 인도에서 연구를 수행했고 그 결과는 몇 차례 이 지면을 통해 소개한 바 있다. 최근 들어 우리는 연구 방향을 러시아 쪽으로 돌렸다. 러시아는 우리나라 연구자도 많이 나가 조사하는 곳이므로 지역 자체가 크게 새로울 것은 없겠다. 북극권. 저녁 10시반에 해가 지지 않는다. 정확히는 하지 때 해가 지지 않는 것으로 이때는 하지가 지났을 때이므로 북극권이긴 하지만 잠시라도 해가 진다. 다만 우리가 찾아가는 곳은 러시아 중에서도 북쪽 끝, 북극권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북극권은 하지 때 해가 지지 않는다. 북극권 지도. 가운데 arctic circle이라고 표시 된 부분이 북극권이다. 위도로는 북위 66°33′47.7″ 이북에 해당.. 2019. 8. 17.
[연재예고] 미라와 북극 북극권과 미라에 얽힌 이야기를 전해 드린다. 8월 17일 부터. 2019. 8. 14.
[외치이야기-24] 외치에 대한 DNA 연구는 흥미로운 사실을 많이 전해주었다. 우선 그의 눈은 갈색이었고 머리카락은 짙은 갈색에서 검정색 사이였을 것이라고 한다. Y 염색체 분석 결과 외치와 가장 유사한 유전형질을 보유한 사람은 지중해안 사르디니아-코르시카 사람이라고 한다. 나폴레옹과 동향인 셈이다. 외치에서는 심장병 환자에 많은 유전적 소인이 확인되었고 유당불내증 (lactose intolerance)이 있었다. 우유를 마시면 제대로 속이 편치 않은 형질적 특성이 있었던 셈이다.   코르시카 섬과 사르디니아 섬. 이 섬에 사는 사람들의 유전형질이 외치와 가장 가깝다.  외치에 관한 연구는 임팩트가 큰 저널에 실리는 것이 보통이다. 그만큼 유럽인과 미국인 관심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사진은 외치가 마지막 먹은 식사에 관련.. 2019. 7. 30.
주자가례의 비극: 왜 우리 조상들은 미라가 되었나 (10): 에필로그 신동훈 (申東勳·서울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연구실) 약속한 대로 조선시대 회곽묘 관련 선행 연구를 소개한다. 아래 연구에 필자의 글은 많은 영향을 받았다. 먼저 조선초기 상장의례의 변천은 정종수 선생의 중앙대 대학원 박사논문 "조선초기상장의례연구"에 자세하다. 이 논문은 회곽묘만 다룬 논문은 아니지만 조선 전기 주자가례를 도입하는 과정의 논란과 변천에 대해 서술하였다. 고려시대의 석실묘가 조선시대의 회곽묘로 변천해 가는 과정도 자세히 다루었다. 정종수 선생 다음으로 회곽묘의 변천과 관련하여 꼭 읽어봐야 할 책으로 김우림 선생의 "조선시대 사대부 무덤 이야기 (민속원)"를 권한다. 이 책이 나오기 전 김우림 선생의 글은 회곽묘의 변천을 이해하기 위해 꼭 읽어야 할 글이었는데 이 책에 이전 주장이 알기 쉽게.. 2019. 6. 11.
주자가례의 비극: 왜 우리 조상들은 미라가 되었나 (9) 신동훈 (申東勳·서울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연구실) 우리나라 조선시대 회곽묘를 연구하는 연구자들이 모두 동의하는 부분의 하나는 회곽묘 구조가 처음 조선 땅에 출현했을 때와 나중 시간이 많이 흘렀을 때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한백문화재연구원 방유리 선생의 "조선시대 회격묘 출토 유물의 수습과 보존" (야외고고학 제 7호)이나 김우림 선생의 단행본 "조선시대 사대부 무덤 이야기" (민속원)을 보면 이 부분이 비교적 자세하다. 김우림 선생 주장에 따르면 조선전기에는 "국조오례의"에 기술된 방식대로 회곽묘를 만들었는데 그 방법은 다음과 같다는 것이다. 소위 "국조오례의" 방식의 회곽묘 제작 기법. 방유리 선생의 논문에서 전재하였다. 초기 방식의 회곽묘 제작 방식이다. 간단히 요약하면 묘광을 파고 그 위에 목곽-.. 2019. 6. 7.
주자가례의 비극: 왜 우리 조상들은 미라가 되었나 (8) 신동훈 (申東勳·서울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연구실) 조선의 성리학자들이 불교식 상장례를 타파하고 주자가 정리한 주자가례를 조선의 공식적인 매장 방식으로 채택했다고는 하지만 조선 바닥 그 누구도 회곽묘를 실제로 만드는 방법을 목격한 사람은 없었다는 이야기를 이미 했다. 회곽묘에 사용한 재료. 위에 보이는 재료 중에 석회·모래·황토를 삼물三物이라 부르는데 이것으로 섞어 관 주위에 다져두면 굳어 회곽이 된다. 마사토는 무덤 주변의 생토층을 상징한다. 회곽묘는 지배계층의 대 불교 "사상투쟁" 과정 중에 채택된 묘제이므로 회곽묘는 조선 계급사회의 가장 높은 지위의 사람부터 아래로 그 유행이 흘러 내려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처음 회곽묘는 "국조오례의"의 흉례 "치장" 편에도 기술되어 있을 정도였으니까 국초에 이미.. 2019. 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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