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2485 흘러간 물, 지나간 작업 필자의 지금까지 연구 작업을 최근 계속 정리 작업 중인데 가끔 아직도 잊지 않고 이런 저런 연구 작업에 불러주는 분들이 있어 고마울 뿐이다. 하지만 또 생각해 보면 필자에게 있어 지금까지 해오던 작업은 이미 흘러간 물일 뿐인 것으로, 이제 더 이상의 관련 작업에 대해서는 필자를 찾지 않아주셨으면 감사하겠다. 지금까지 작업은 필자는 더 일을 벌릴 생각도 없고, 해오던 작업은 향후 몇 년 안에 모두 정리하여 출판될 것으로 관련학계에서 필요한 내용이 있다면 그 출판물을 참고하면 될 일이다. 필자의 작업은 을지대 오창석, 경희대 홍종하 교수가 훌륭히 이어 받고 있으니 이 두 분 연구자에게 의뢰들 하시기 바란다. 필자가 지금까지 유지 관리하던 모든 관련 연구자료도 일체 두 분 교수께 이미 양도되었으므로 앞으로 몇.. 2023. 12. 8. 범중엄 악양루기岳陽樓記 嗟夫!予嘗求古仁人之心,或異二者之為,何哉?不以物喜,不以己悲。居廟堂之高,則憂其民;處江湖之遠,則憂其君。是進亦憂,退亦憂;然則何時而樂耶?其必曰:「先天下之憂而憂,後天下之樂而樂」歟!噫!微斯人,吾誰與歸? 아! 나는 일찍부터 옛 어진 사람들의 마음을 살펴보았는데, 아마도 앞서 든 두 가지 예와는 다른 듯 하니 무엇 때문일까? 그들은 외부의 사물을 보고 기뻐하지 않으며, 또한 자신의 개인적인 일로 슬퍼하진 않기 때문이다. 조정의 높은 직위에 있으면 백성들을 걱정하고, 물러나서 멀리 강호에 거처하게 되면 임금을 걱정했다. 그러니 조정에 나아가서도 걱정, 물러나서도 걱정이었으니 어느 때에나 즐거울 수 있었겠는가? 틀림없이 하는 말들은 "천하의 근심은 누구보다도 먼저 근심하고, 천하의 즐거움은 모든 사람이 즐거워한 뒤에 즐긴다.. 2023. 12. 7. 후방 및 남방항렬 사회의 이질성 이병도 선생은 한국사 초두의 여러 정치체를 서북항렬 (고조선 낙랑) 후방항렬 (부여 고구려) 남방항렬 (삼한) 으로 나눈바 있다. 이 중에 소위 후방항렬과 남방항렬은 삼국지를 보면 사회 조직에 있어 모종의 이질성을 간취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부여 고구려에는 부체제가 있지만, 남방항렬은 부체제보다는 소국의 중층적 연합, 소국 수장의 체계화와 그 정점의 왕의 존재 같은 모습을 띤다. 부여 고구려가 갖는 이러한 사회조직의 이질성을 우리는 흔히 "반농반유목"이라 하여 일종의 유목사회적 성격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부여-고구려의 후방항렬 사회와 삼한으로 상징되는 남방항렬 사회의 이질성은 잡곡농경과 도작 농경사회의 차이일지도 모른다. 유목적 요소가 아니다. 2023. 12. 6. 한국사에서 농경을 어떻게 볼 것인가 지금은 도작농경을 "본격적인 농경의 시작"으로 보고 이 시각을 한반도와 남만주 지역 등 부여에서 삼한까지 한국사의 모든 주체에 적용한다. 하지만 중국의 경우, 신석기 이래 농업을 보는 시각은 위와 같다. 황하유역 이북의 잡곡농경지대, 양자강 이남의 도작농경지대, 그리고 그 사이 지역 (회하일대)의 점이농경지대 (양쪽이 혼합)이다. 한반도는 다를까? 한반도 남단의 도작농경지대, 한반도 북부와 남만주 일대의 잡곡농경지대, 그리고 평양과 한강유역의 점이농경지대로 설정하고 농경의 시작과 발전을 각각의 시각에서 서술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는 농경의 개시와 확산을 도작 농경 하나만을 놓고 보는 일본과는 분명히 다른 시각인데 이런 입장에 서야 한국사의 농경의 기원과 발전을 제대로 조망할 수 있다고 본다. 2023. 12. 6. 부여와 고구려를 한국사에 포함하려 한다면 지금 처럼 한국사에서 도작의 개시와 본격적 농경의 시작을 일치시키는 일본 농업사적 시각에서 벗어나야 부여와 고구려사가 한국사에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다. 도작의 개시와 본격적인 농업의 시작을 일치시킨다면 도대체 부여와 고구려는 그럼 무엇이라는 것인가? 부여와 고구려는 도작이 없었다. 고구려는 도작의 맛을 본 것은 대동강 유역을 손에 넣으면서부터다. 부여와 고구려, 이 두 형제문명은 명백히 잡곡농경에 기반한 것으로서, 한국사의 농업사 기술에서 지금처럼 도작과 본격적 농업의 개시를 일치시키는 시각은 교정되어야 옳다. 이러한 시각은 야요이시대에 도작이 건너가면서 비로소 농경이 본격화한 일본의 시각을 한반도에 그대로 연장한 것으로, 그렇기 때문에 도작농경에 기반한 한반도 중부 이남의 문명만 선택적으로 설명할 .. 2023. 12. 5. 한국사에서의 잡곡농경 한국사에서는 농경의 획기를 도작농경의 시작으로 잡는 것 같다. 도작 농경 이전에도 잡곡농경이 있었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다만 그 잡곡농경은 고도의 농경이 아니고 수렵채집등 부수적인 생산기법이 있어야 유지되는 초보적 수준의 농경으로 보는 듯 하다.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생각해 본다. 중국의 경우 이른바 진령-회하선을 경계로 그 이북의 잡곡농경권과 이남의 도작농경권이 오랫동안 병립하면서 존재한 것으로 본다. 황하유역은 잘 아는 것처럼 도작농경문화가 아니다. 그럼에도 찬란한 중국문명의 맏형 노릇을 했다. 우리는 부여와 고구려가 한국사의 한 축을 담당한 문명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잡곡농경 그 자체에 대해서는 아직 이해의 정도가 깊지 않은 것 같다. 부여와 고구려 시대의 잡곡농경과 신석기 시대의 잡곡농.. 2023. 12. 5. 이전 1 ··· 233 234 235 236 237 238 239 ··· 415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