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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2450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조선은 아전들에게... 제목 그대로다. 나는 조선시대를 보며 풀지 못할 의문이 하나 있다. 도대체 조선은 무슨 생각으로 향리(아전)들에게 엽전 한 푼 안주고 부려 먹을 궁리를 했을까? 놀랍게도 조선시대 아전은 자기가 아전 노릇한다고 해서 어느 곳에서도 돈 한 푼 받는 것이 없었다. 그런데도 아전 노릇은 대대로 세습되었다. 미칠 노릇아닌가? 무료봉사를 대대로 하라니. 나는 그래서 춘향전의 이방만 보면 슬프다. 가렴주구를 조선시대 이방에게 뒤집어 씌우는 자들은 전후사정 모르는 사람들이다. 나라에서 하라 해서 일을 했는데 돈 한 푼 못받으니 남은 것은 삥 뜯는 방법, 횡령하는 방법 말고 생계수단이 뭐가 있으랴? 이 말은 내가 가끔 농담 삼아 주변사람들에게 이런 거 알고는 있냐고 물어보는데 대부분 믿지를 않는다.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 2022. 10. 11.
고쿠다카(석고제)를 쉽게 이해 하는 법 에도시대 일본에는 고쿠다카(석고제石高制)가 있다. 위로는 쇼군의 직접 다스리는 천령부터 아래로는 사무라이 말단 관리까지 일년에 얼마를 산출하고 녹봉으로 받아가는지가 표기되었는데-. 쉽게 이해하는 방법을 써 본다. 전기밥통에 밥을 할 때 주는 자판기 커피 종이컵 만한 계량 컵이 있다. 이 계량컵의 크기가 정확히 1홉이 된다. 1홉은 일반인이 밥을 지어 먹을때 하루 두끼, 하루를 먹는 양이다. 이것은 지금도 그렇다. 전기밥통에 계량컵으로 한컵 밥을 하면 남자들 둘이 먹기에는 약간 양이 적고, 남-녀가 먹으면 딱 맞고 여자 둘이 먹으면 남는다. 대략 전기밥통 계량컵 한컵이 1홉이 되는데. 바로 하루에 한홉씩 1년을 먹을수 있는 양이 바로 1석이다. 따라서 1석이라 하면 사람 한 명이 1년 동안 먹을 수 있는 .. 2022. 10. 11.
신라장적문서에서 신라의 산성을 본다 삼국시대 말, 신라의 땅에 만들어진 산성들은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도 그 정밀함, 규모, 군사적 입지, 전략적 측면에서 매우 탁월하게 보인다. 당시 정립한 삼국이 모두 비슷했을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이런 규모의 정밀한 산성이 구축된것은 아마도 신라땅이 확연했던 것 같고, 이런 추세가 신라의 삼국통일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이런 산성이 만들어지려면 무엇이 필요했을까? 판도안에 존재하는 촌락민에 대한 엄정한 파악이다. 인구와 생산력이 정확히 파악되어야 성을 쌓던 군사를 만들던 했을 것 아닌가? 이런 의미에서 신라장적 문서를 본다. 현재 2종이 일본에서 파악된 이 문서를 보면, 인구부터 각종 생산물의 물량까지 정확하게 파악되어 있어 신라의 "둠스데이북"이라 할만하다. 역사서에는 남아 있지 않지만.. 2022. 10. 11.
Proud 김부식 김부식 하면 사대주의 역사집필의 화신 처럼 되어 있지만 당시 정황을 조금만 파보면 이는 사실과 거리가 멀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본기 체제를 도입했다던가, 삼국 어떤 나라에도 정통을 주지 않고 무통론에 입각한 기술을 했다던가, 중국과 한국의 기록이 서로 다를 때 한국 기록에 대해 상당한 신뢰를 보였다던가 하는 점은 이미 잘 알려졌으므로 더 쓰지 않겠다. 기록을 보면 김부식은 사실 사대주의자가 아니라 그 반대이다. 고려초, 한국사에 대한 정보는 이미 상당히 망실되어 있었기 때문에 도대체 한국사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어 삼국사기를 짓는다고 되어 있으니 당시 사대부들 중 과연 김부식보다 한국사를 더 잘 아는 사람이 있기는 했을지도 의문이다. 기록을 보면 김부식은 (혹은 그의 집안은).. 2022. 10. 10.
열전 짓기의 어려움 동아시아 전통사서에서 열전 짓기의 어려움에 대해 앞에 잠깐 써 보았다. 이 부분에 대해 조금 더 써 보기로 한다. 사실 기전체라고 하지만 열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 본기 (세가), 표 등은 편년체와 별로 다를 바가 없는 기록이다. 중앙에서 모아 놓은 기록을 날짜별로 쭉 정리한 후 왕력을 매 해 연두에 표기해 놓은 채 적어 내려가면 편년체, 각 왕별로 권을 나누어 쓰면 기전체의 본기(세가) 부분이 되는 탓이다. 기전체라고 하지만 본기(세가)의 부분은 사실 편년체와 작업과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열전이 포함되면 이야기가 다르다. 우선 열전에 입전한 기록들은 정보의 소스가 다르다. 개개인의 역사가 정부를 털어 봐야 나올 리가 없다. 이것은 전부 개인 (집안) 기록의 몫이다. 그리고 그.. 2022. 10. 10.
일본사 감회 몇 가지 체계적인 관련 교육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일본사라는 볼륨 두꺼운 역사를 언급하는게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어쨌건 관련 내용을 공부하는 입장에서 감회가 없을 수 없어 이곳에 적어둔다. 1. 일본사: 생각보다 볼륨이 두텁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역시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역사의 디테일 면에서 차이가 많이 난다. 관련 역사서가 남은 양이 일본이 많기 때문이라고 치부하기에는 곤란한 것이 야요이 시대라면 우리의 청동기 시대로 발굴의 정도나 남아 있는 역사서의 양은 저기나 여기나 비슷할 텐데도 역사서술의 디테일 면에서 아직도 차이가 많이 난다. 우리 학자들의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듯 하다. 2. 한일 양국의 인문학 수준차이는 에도시대 학문의 수준차의 연장: 양국 인문학 수준차이가 아직도 있다면 그 차이는 에도시대 .. 2022.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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