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역사문화 이모저모 2410 오토만 황제의 갑옷, 속대발광욕대규束帶發狂欲大叫 저런 복장을 일상에서 쓰겠는가?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 잠깐 쓰다 말아야지 저 상태서 사타구니나 등이 근지럽다면 어찌하겠는가? 개똥폼 잠깐 내는 용에 지나지 않는다. 이 갑옷은 1757년부터 1774년까지 오스만 제국 술탄으로 재직한 무스타파 3세가 착용한 것이다. 오스만 제국의 웅장함과 술탄의 강력한 통치자로서의 지위를 반영한다. 뭐 이리 설명하지만 너 같음 저런 옷 걸치고 싶으니? 돌아버릴 옷감이다. 괜히 속대발광욕대규束帶發狂欲大叫라 했겠는가? 2024. 5. 8. 뭉크 미라? 오모나 미라? 파카라스 미라 Pacaras Mummy 저 상태가 연출이 아닌 발견 당시 모습이랜다. 흡사 뭉크 그림 절규를 연상케 한다. 페루 수도 리마 소재 페루 국립 고고학, 인류학 및 역사 박물관, 리마 National Museum of Archaeology, Anthropology and History of Peru , Lima에 소장 중이란다. 페루 고고학자 훌리오 C. 텔로 Julio C. Tello 가 "파라카스-네크로폴리스 Paracas-Necropolis" 라고 부른 것은 현재 친차 계곡 Chincha Valley (기원전 500-200년)에서 더 북쪽에 위치한 토파라 문화 Topará culture 라는 문화 전통에 속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요 지수는 지하실로 구성된 와리카얀 Warikayan .. 2024. 5. 8. 헤르클라네움 공중목욕탕, 로마제국과 목욕탕 문화 2천년 전 헤라쿨라네움 교외 목욕탕의 테피다리움 Tepidarium Tepidarium or warm bathing room in the Suburban Baths of Herculaneum, ca. first century CE 목욕탕은 고대 로마의 사회적, 문화적, 공공 생활에서 중심적이고 다각적인 역할을 했다. 이러한 공공 목욕 시설은 청결과 위생을 위한 장소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 상호 작용, 휴식, 운동, 심지어 정치적 담론의 허브 역할을 했다. 고대 로마에서 목욕탕의 중요성은 몇 가지 주요 측면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위생 Hygiene 과 건강 : 목욕탕은 많은 사람이 집에 개인 목욕 시설이 부족한 도시에서 개인 위생에 중요한 기능을 제공했다. 모든 사회 계층의 로마인이 덥고 따뜻하며 차가운.. 2024. 5. 8. 동네 목욕탕 패션의 완성, 투탕카멘 쓰레빠 3,000살 드신 투탕카멘 샌들 Sandals of King Tutenkhamen 카이로 이집트박물곤 무덤에서 나온 투탕카멘 조각상을 보면 그가 황금 샌들을 신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샌들은 나무로 만들었고 치장 벽토 베이스 stucco base 에 나무 껍질 bark, 녹색 가죽 및 금박으로 된 장식 베니어판 marquetry veneer 으로 덮었다. 겉창은 흰색 치장 벽토로 덮었다. 살아선 빌빌 싸다 죽고 나서 훨씬 유명한 파라오 투탕카멘 유품 중 하나라, 동네 목욕탕 갈 때나 신는 샌들을 신고 다녔다. 2024. 5. 8. 자발적 사랑? 강요한 사랑? 3천년 전 이상한 우크라 커플 무덤 이런 장면 심심찮게 사랑이라는 키워드로 소개되곤 하는데 그럴까?일단은 의심해야 한다.부부가 동시에 죽은 확률을 생각해야 한다.나아가 죽은 뒤 모습이라 실은 저는 살아남은 자들에 의한 연출이다.죽은 사람들이 무슨 저런 연출을 스스로 하겠는가?죽음의 동시성에 대한 의문은 자살 혹은 강요된 죽음을 바탕에 깐다.전자가 순사殉死라면 후자는 순장殉葬이다. 후자는 억지로 죽여서 넣었다는 뜻이다.문제의 저 장면은 우크라이나 한 무덤에서 발견된 3천년 전 청동기 시대 인골 양상이다. 2018년 7월 주요 언론을 통해 발굴 소식이 공개됐다.죽은 남편과 함께 산채로 매장된 부인이다.고고학자들은 이 여성이 남편과 함께 다음 세계로 가기 위해 기꺼이 산 채로 매장되었다고 믿는다는데 글써 그랬을까?부검 전문가들은 여성이 이미 죽.. 2024. 5. 8. 렙티스 마그나 Leptis Magna, 리비아 땅에 남은 로마의 흔적 가 볼 만한 데가 너무 많다. 생은 유한한데 볼거리는 천지빼까리다. 오늘날 리비아에 남은 고대 로마 도시 렙티스 마그나 Leptis Magna 라 한다. 리비아라면 지금은 몰락한 최원석 신동아건설과 그에 따른 중동노동자 파견, 그리고 비참하게 끝난 카다피 제국으로 각인한다. 저 동네는 이미 기원전 7세기경 페니키아인들이 식민지로 건설했고, 이후 기원전 6세기 말에는 카르타고 제국 주요 중심지가 되었다. 기원전 146년 제3차 포에니 전쟁 Third Punic Wars 에서 로마가 승리한 후, 이 도시는 로마 지배에 들어갔다. 그 아래서도 번성을 구가했으니, 특히 그곳에서 태어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Septimius Severus 황제(서기 193-211) 통치 기간 동안 번성은 극에 다달았다. 이 도시는.. 2024. 5. 8. 이전 1 ··· 103 104 105 106 107 108 109 ··· 402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