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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질병사34

질병과 네안데르탈인 DNA를 연결시키는 연구는 신중해야 최근에 인류의 질병과 네안데르탈인의 DNA 혹은 인골 형태를 연결시키는 연구가 많이 나온다. 이런 연구가 많아지는 이유는 당연하다. 인류의 특정 질병에 있어 유전적으로 정상인과 어떻게 다른가 하는 것이 논문화하기 쉽고, 이를 네안데르탈인 DNA와 비교하면 쉽게 논문 출판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업적이 자꾸 쌓이면 특정 유전적 변이에 의해 질병을 앓게 되는 사람들이네안데르탈인 DNA 때문에 그렇다는 편견을 낳게 된다. 이러한 인식은 사람 유전체의 복잡함을 고려하면 섣부른 편견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예를 들어 사람의 얼굴형태는 유전형으로 결정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아직도 사람의 얼굴형태는 DNA만으로 알 수 없다.처음에는 DNA만 잘 연구하면 이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사람의 유전형질과 실.. 2025. 7. 29.
공지가 돌파되는 경우: 병자호란의 예 앞에서 한국과 중국 양국간 공지空地 이야기를 했다. 이 공지가 없어지면 어떻게 되는가 하는 예를 병자호란을 보면 알 수 있다. 최근에 병자호란과 관련하여 알려진 것이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병자호란 때 서울 인근까지 침투한 홍타이지가 서둘러 철수한 배경에는 당시 주둔지 주변에 천연두 환자가 발생했었다는 점-. 물론 이것이 청나라 군대가 서둘러 철퇴한 배경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서로 분리되었던 두 지역 사람들이 어느날 대면하는 것은 전염병의 측면에서 매우 위험한 일이라는 것은 신대륙 발견 당시 유럽인에 의해 원주민들이 속수무책으로 전염병에 의해 쓰러진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다음은 같은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 군을 따라 남하한 우역-. 이 우역은 처음에는 청나라 영토인 심양에서 발생하였는데 호란 당시 .. 2025. 2. 20.
간도 이주민처럼 숨어 든 위만 위만이 연나라에서 도망쳐 그 무리와 함께 처음 숨어든 땅은한나라가 지키는 요새 바깥은 공지空地였다. 그리고 이 공지는 고조선 땅도 아니었다. 구체적으로는 고조선과 한나라 사이에 존재하는 공지였다는 말이다. 고조선으로서는 공지에 사는 위만을 서쪽 변경을 지키는 박사로 임명했다니고조선이 볼 때 그 땅은 공지가 아니라 자기들 땅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그 땅은 비워둔 땅이었다. 관념상 누구의 땅이건 간에 일단 비운다는 말이다. 청나라 때 유조변柳條邊 바깥 땅도 관념상으로는 청나라 땅이었지만 자기네들 땅을 비워 공지로 만든 것이다. DMZ가 오늘날 한국과 북한 사이에만 있었다고 생각하면 곤란하겠다. 위만이 건너와 살았다는 한나라 요새 바깥의 공지는 아마도 청나라 때 유조변 바깥에서 압록강 북쪽에 설정된 공.. 2025. 2. 19.
국경의 변화와 전염병 근대국가는 국경에서의 체계적 검역을 특징으로 한다. 이 때문에 제국주의 국가 침탈도 국경선에서의 검역관리라는 모습으로 들어올 때가 있다. 일본도 구한말 조선에 대해 검역관리를 이유로 국권침탈을 시작했고 조선이나 중국이나 모두 개항 이후 가장 서두른 것이 바로 검역이었다. 언젠가 김 단장께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신 것으로 기억하는데 근대국가의 전환은 곧 국경선 모습의 변화이기도 하다. 전근대시대 국가간 경계가 꼭 이렇다는 보장은 할 수 없겠지만 이 당시 국가간 경계는 공지를 두어 관리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본다. 지금처럼 국경선이 국가간 영토가 맞닿는 선의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경계 사이에는 공지를 둔다는 것이다.이런 국가간 국경선에 두는 공지의 기원은 한국사에서는 멀리 고조선시대에도 볼 수 있.. 2025. 2. 19.
유조변이 만든 공지: 전염병의 장벽 조선시대 육로를 통한 중국 사행길을 표시하는 이 지도를 보면, 동쪽으로 이어진 중국의 경계가 압록강과 거리를 두고 남하하다가 압록강 어귀에서 만다는 것을 본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유조변柳條邊으로 봉금封禁 지역으로 못 들어가게 하기 위한 경계선으로 안다. 조선과 청나라는 국경을 서로 맞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양국의 국경은 공식적으로는 압록강과 두만강이었지만, 조선측 국경인 압록강을 넘어 저 유조변 안쪽으로 들어가기 전에 몇 십 킬로미터에 걸친 공지를 거쳐야 했던 것으로 안다. 조선 쪽에서는 압록강을 넘어 저 안으로 들어가는 데는 모종의 허가가 필요하며, 이는 중국 쪽에서도 마찬가지로 저 유조변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니 곧 유조변의 동쪽이 소위 말하는 봉금지역이 되겠다. 이 공지 아닌 공지가 우리에게 남긴.. 2025. 2. 17.
개간, 산림파괴, 말라리아 (6) 신동훈 (申東勳·서울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연구실) 에필로그 1 앞에서 살펴 보았듯이-. 15세기부터 한반도는 새로운 농경지를 찾아 개간을 시작했다. 개간은 처음에는 무너미 일대에 물을 대어 논으로 바꾸는 형태로 시작했지만 이것도 16세기에 들어 거의 개간이 완료되자 이번에는 사람들은 산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산꼭대기까지 불을 놓고 논밭을 일구어 19세기 초반이 되면 평지의 농경지와 산의 농경지가 거의 같은 수준에 도달했다. 그야말로 나라 전체가 농경지로 바뀌고 산에는 나무 하나 없는 터무니 없는 상태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여기다 기왕에 존재하던 밭까지 새로 논으로 바꾸는 활동이 시작되면서 전체 경작지에서 논이 차지하는 비중도 점점 높아졌다. 몇백년간에 걸친 이런 조선 농촌 변화의 충격파는 16~19.. 2019.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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