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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보 이야기279

삼차방정식을 일차방정식처럼 풀려는 일제시대사 일제시대 역사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수학으로 치면 삼차방정식 정도의 난이도인데 일차방정식으로 풀겠다고 덤비는 꼴이다. 분명히 답은 있을 것이다. 또 그 당시 역사에서 선과 악이 바뀌는 일은 벌어지지 않으리라 본다. 그런데 삼차방정식은 삼차방정식처럼 풀어야지 이걸 일차방정식이 훨씬 쉽다고 무리하게 여기 얹어 쉽게 풀려다 보니 제대로 된 답을 못내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를 일차방정식처럼 풀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들 할 것이다. 일제시대, 특히 그 시대 후반기는 더욱 그렇다. 이때가 되면 일제가 철저히 시스템화해서 식민지배까지도 시스템으로 구조적으로 돌리고 있을 때다. 그 구조를 해명해야 한다는 뜻이다. 2024. 10. 14.
청주한씨 족보에 보이는 한승원 한강 부녀 유서 깊은 청주한씨 족보 중 한 장면이라 한승원이 보이고 그의 따로 한강이 보인다. 대전 중구 족보박물관이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에 편승해 우리도 한 다리 걸쳐볼끼라고 궁리 중인 모양인데 물 들어올 때 노는 저어야 한다. 무슨 고민이 필요하단 말인가? 심민호는 머리 굴릴 시간에 전시하면 된다. 이런 일은 일단 저지르고 봐야 한다. 2024. 10. 13.
외발뜨기(흘림뜨기), 족보의 탄생 비결이 된 제지술 한국족보박물관 제2전시장 한가운데 닥나무 껍질(백피)와 분산제(황촉규 뿌리)가 수조에 담기고 발틀 위에 발을 올려 한지를 뜬다 족보를 만드는데 사용된 전통 한지 초지(제지, 제작)기술 전시 한국족보박물관에 소장된 족보의 섬유배양성을 분석하여 초지기술의 개량(근대, 산업)화로 도입된 쌍발뜨기(가둠뜨기) 기술이 아닌 조선시대에 한지를 만들던 외발뜨기(흘림뜨기) 기술로 제작된 종이가 16세기~일제강점기에 간행된 족보에 사용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물론 전수 조사를 한 것이 아니니 예외가 나타날 것임. 그래도, 일단은, 전시장 중앙을 차지한 오브제가 전시의 의도를 말해 줄 것. 그런데 왜 철망안에 가두었을까? 팬더도 남방돌고래 제돌이처럼 자연으로 돌려보내야 할까? 팬더를 보호하고 관리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2024. 9. 21.
과격한 척불론은 성리학의 본령이 아니다 물론 척불론은 성리학자들이 계속 이야기한 부분이긴 하다. 당대의 거목 유학자로 성리학의 남상을 이룬다고 평가받는 한유도 그 유명한 (논)불골표에서 척불의 뜻을 남겼고 이 글은 그 후 천여년간 유학자들이 줄곧 읽고 읽고 또 읽었다. 우리나라 성리학자들의 모든 척불론도 이러한 흐름의 파생이다. 그런데-. 척불론은 성리학의 주장에 분명히 들어 있기는 하지만 그 누구도 조선처럼 불교의 씨를 말리라고 한 사람은 없다. 벽이단론闢異端論은 이미 맹자에서 나오는 오래된 유교의 주장이지만 이 벽이단론은 불교를 씨를 말려버리라는 소리가 아니다. 이 때문에 척불론을 포함한 성리학이 국가체제교학이 된 송대 이후의 중국, 에도시대 이후의 일본에서도 불교는 여전히 살아 남은 것이다. 이 두 나라에서는 중앙정치와 사대부의 정신세계.. 2024. 9. 20.
아는 것보다 더 나간 여말선초의 사대부들 우리나라 성리학자들이 사서집주에서 주희가 적어 놓은 이야기를 완전히 이해하게 된 것은 16세기이지 싶다. 사서집주가 워낙 유명하고 쉽게 접할 수 있다 보니 이를 우습게 보는 경우도 있던데 사실 성리대전이니 하는 성리서를 본다고 해서 사서집주의 수준을 많이 뛰어 넘는 것이 아니다. 조선성리학 16세기의 발전은 성리대전과 각종 성리서를 수입해서 이루어진 게 아니라 사서집주에 대한 오랜 침잠의 결과로 그 내용을 마침내 이해하게 된 데서 온다. 사서집주의 성리철학 주가 이해하기 상당히 난해해서 그것을 이해하고자 주자어류니 성리대전이니 하는 것을 보는 것이지 사서집주의 주자 주 자체가 수준이 낮은 것은 절대로 아니라는 말이다. 사서집주의 주자 주를 다 이해하면 다른 성리철학 관련 서적은 볼 필요도 없다. 그 안에.. 2024. 9. 20.
절 재산이 탐나 벌인 척불정책 물론 성리학에는 척불적 기조가 있다. 그런데-. 그 척불적 기조의 정도가 문제겠는데, 당장 성리학자의 원류 중 하나로 척불론의 원조격이 될 한유만 해도 논불골표論佛骨表 등을 보면,부처의 말을 다 믿지 말고 이를 중앙 정치판에 끌고 오지 말라는 이야기지절 집을 뺏고 재산 몰수하라는 소리가 아니다. 조선에 들어오기 이전의 송-원대 성리학자들 주장 어디에도 절집 재산 빼앗고 박해하라는 소리는 없다. 중국에서는 역사적으로 네 번의 폐불운동이 있어 불교를 탄압했는데정작 성리학이 흥한 후 북송대 이후에는 제대로 된 폐불운동이 일어난 바 없다. 앞에서도 한 번 쓴 것 같은데 여말선초 조선의 성리학자들이 이해하는 성리학 수준은 그다지 깊지 않아 솔직히 말하면 주자의 사서집주 주석도 완전히 이해 못한 수준이었을 것이라 .. 2024. 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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