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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보 이야기333

1700년대까지도 노비가 생산의 기초 우리나라는 별로 유별날 것 없는 동네의 조선시대 호적을 봐도 1700년대에는 소위 양반에 속할 호주의 아래에 평균 5-6명의 노비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18세기 초까지도 노비 비율이 40프로는 된다는 주장도 있는데필자가 직접 본 어느 동네의 조선시대 호적도 그랬다. 1700년대 초반, 그 동네에는 인구의 상당수가 노비였다. 이 시대가 언제인고 하니 숙종 연간이다. 숙종 임금의 시대까지도 우리나라에는 인구의 상당수가 노비였던 셈이다. 1700년대 중후반을 넘어서면서 노비의 숫자가 급감하는 것 같으니대체로 영 정조 시대를 거치면서 우리나라 마을의 인구 구성은 급변한 것 같다. 같은 동네의 1800년대 초반 호적을 보면동네가 완전히 달라져 있다. 노비는 거의 유명무실해지고,1700년대까지도 몇 안 되는 .. 2025. 7. 4.
민농시 쓴 여가에 노비 잡으러 다니던 양반들 웃기는 것은 양반들이 민농시를 열심히 써제끼던 그 시절-. 문집에 남길 글에는 불쌍한 농부를 노래하다가붓을 놓고 나면 도망간 노비를 잡으러 다녔다는 것이다. 문집에 남아 있는 조선 시대 사대부들 글을액면 그대로 믿으면 안되는 이유이다. 이들 역시 생활인으로서 먹고 살자니 농사 지을 노비가 도망가면 그걸 잡으러 다녔을 텐데 생활인으로 살면 그렇게 살면 될 것을 가지고 불쌍한 농민의 땀이 어쩌고 하는 글은 왜 짓는가 말이다. 20세기 들어 나라가 망한 후에 우리나라 유도가 완전히 망해 쪽박을 차게 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절실하지도 않고 솔직하지도 않고 누구보다도 더 속물이었던 주제에아닌 척 군자인 척 글을 남기고 죽고 나면 그걸로 목판 일만장을 파서 문집을 꾸리니 나라가 망한 후에 유가를 어떻게 봤겠는가.. 2025. 7. 3.
우리 맘대로 엮어댄 망향의 노래 임란 관련 이야기 중에 꼭 나오는 이야기의 하나가 임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이들이 조선을 그리면서 부른다는 소위 "망향의 노래"다. 이거 사실일까? 이들이 정말 떠나온 고향을 그리워했을까? 필자가 보기엔 케이스 바이 케이스다. 물론 고향을 그리워 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강항 같은 이. 일본으로 잡혀 가기 전에는 무려 문과 급제자였다. 당연히 돌아오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끌려간 이들이 노비라면? 그들도 망향의 노래를 불렀을까? 일본으로 끌려간 도공들은 조선에서 보나마나 백프로 천역으로 천시받았을 텐데 이들은 고향으로 돌아오고 싶었을까? 쇄미록을 보면 천만의 말씀이다. 양반집안을 봉양하는 노비들은 양반들 식사 때 버려지는 음식이 이들 차지였을 테고, 그나마 그것도 없으면 굶었다는 이야.. 2025. 7. 2.
승병과 노비 필자가 항상 궁금하게 생각한 것 중의 하나는 양반 출신 의병들이야 나라가 망하면 자기들이 가진 것을 다 날릴 판이니 그렇다고 쳐도, 도대체 승병들은 왜 궐기하여 왜병과 싸웠을까 하는 점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필자는 아직 답을 못 얻었다. 조선사람인데 왜병과 싸우는것은 당연한 거 아닌가라는 말은 하나 마나한 이야기이다. 쇄미록을 보면, 과연 기회가 없어서 그렇지 당시 왜란 정국에서 양반에게 사역되던 노비들이 왜병이 자신들에게 득이 되는 무언가를 해줄 수 있다는 확신만 있다면과연 적극적으로 왜병 편을 들지 않았을까 상당히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당시 조선에서 양반의 지배를 받던 많은 수의 노비들은 조선의 양반 지배를 받으나 왜병의 지배를 받으나 그게 그거인 상황이었다고 보아도 좋다. 특히 양반들.. 2025. 7. 2.
19세기는 해방의 세기이다 우리는 19세기를 망쪼가 든 세기라고 생각하고 삼정 문란이라는 것, 이런 시각도 마찬가지인데조선시대에 삼정이 문란하지 않은 시기가 있었던가? 조선은 원래 국가의 작동 방식 자체가 문란한 삼정을 바탕으로 하고 성립한 나라다. 떼먹을 거라고 생각하고 넉넉히 부르고, 아전은 봉급 안줘도 알아서 떼먹고 이런 식으로 오백년을 갔는데 새삼스럽게 어떻게 삼정의 문란이 갑자기 튀어 나온단 말인가? 19세기는 삼정의 문란의 세기가 아니라해방의 세기다. 17세기만 해도 우리나라는 노비를 사고 팔았다. 잘 봐줘야 중세의 예농 정도 되는 공짜 인력을 데려다 강제 사역을 시키는 것이 양반들의 경영방식이었고 이런 역사적 흐름은 18세기가 되면 상당히 무너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조선이라는 나라를 작동시키는 방식이었다는 말이다. 이 .. 2025. 7. 2.
그간 오해해서 미안한 김홍도 타작도 김홍도 그림 중에 타작하는 그림이 있다. 이 그림을 보면 일하는 이들 옆에 비스듬히 자빠져 있는 양반이 보인다. 내가 그동안 저 양반을 오해했다. 미안하다. 쇄미록을 보면, 저 양반은 정말 부지런한 양반이다. 왜냐. 어쨌건 벼타작하는데 직접 가서 제대로 하나 안 하나 지켜보고라도 있었으니까. 쇄미록에 나오는 양반들은 저것도 안한다. 그냥 밭으로 논으로 김매러 노비들을 몰아낼 뿐그러니 그게 제대로 될 턱이 있나. 하루종일 사역시켜도 손바닥 만한 밭과 논 김도 제대로 못매고 싹이 나온 걸 보면 듬성듬성 제대로 나오지도 않아노비 놈들이 씨를 가져다 자기들 밭에 심었나보다 불평일뿐내가 보기엔 저런 농사 감독이나 제대로 한 양반도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저 그림의 양반은 정말 부지런한 양반이다. 어쨌건 타작 판에.. 2025. 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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