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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족대다 6년간이나 고려에서 억류생활한 거란 사신 지랄리只剌里 앞서 고려거란전쟁 와중에 하공진이라는 고려 충신이 있었음을 보았거니와, 그와 비슷하게 상대 진영 고려에 전권특사로 갔다가 6년간이나 억류생활을 한 거란 조정 신하도 있다. 이 일은 고려사나 고려사절요와 같은 고려 측 기록과 거란측 증언인 요사遼史에 모두 남아있지만, 문제는 단순히 표기가 다른 데서 한 발 더 나아가 그 정체도 다른 듯한 느낌을 준다는 사실이다. 이를 위해 위선 고려 측 기록을 본다.그에 의하면 1013년, 그러니깐 거란에서는 성종 야율륭서 개태開泰 2년, 고려로서는 현종 4년 3월 17일에 거란에서 사신으로 좌감문위 대장군左監門衛大將軍 야율행평耶律行平이라는 이가 와서 흥화興化를 비롯한 6개 성을 빼앗은 일을 질책하더니, 같은 야율행평이 석달 뒤인 같은 해 1013년 7월 18일에 다시 고.. 2024. 3. 6.
당최 안 보이는 소주의 흔적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을 구해 읽을 수 있었다. 왜 이를 찾았느냐 하면, 이 의서에 '소주'가 등장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향약구급방은 발간 상한선이 고려 고종 연간이라 하니 어쩌면 우리나라 '소주'가 몽골의 영향 이전에 있었다는 증거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도통 '燒酒'란 말이 보이지 않는다. 물론 성과가 없는 건 아니어서, 당시에 '酒'와 '淸酒'가 구분되었다든지, '溫酒'에 약을 타서 마시는 경우가 많았다든지 하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근데 '소주'나 소주를 의미하는 듯한 문구는 당최 안보이는데....그 이야기의 근거를 알 수가 없다(아는 분은 어느 대목에 소주가 등장하는지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일단 에는 '소주'가 안보인다. 막걸리는 '백주白酒'라고 해서 나오지만서도. 아마도 '백주'는.. 2024. 3. 6.
[백수일기] 부담스런 점심 약속 백수에 적응하면 거개 오전을 거니하게 뻗어잔다. 백수란 야행성 내지 새벽형이라 이 긴 밤을 이런저런 소일거리로 때우게 되는데 그래서 점심 약속이 매우 부담스럽다. 왜? 그 시간에 맞추어 일어나기가 고역인 까닭이다. 그래서 백수한테는 하루가 짧다. 점심 무렵 일나서 어영부영하다 보면 금방 해가 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론은? 백수가 낫다. 2024. 3. 5.
SCI 논문 쓰느라 날 샌 조선시대 조선시대에 한문 읽는 건 둘째 치고 한문으로 글 짓고 동문선 백 이십 몇 권을 쉽게 보는 것을 많이 보는데, 필자가 보기엔 우리나라는 한문 때문에 나라 망했다. 한문 익히고 쓰는 그 노력의 10분의 1만 국문에 신경 쓸 겨를이 있었으면 우리나라는 지금보다 100배는 많은 인문적 자산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21세기에도 SCI 논문 한 편 쓰려면 머리털 다 빠지는데 조선시대에 한문으로 글 짓고 시 쓰고 동문선에 왕조실록에 고려사 도대체 왜 그렇게 한문에 집착해야만 했을까? 딴 거 없고, 과거제 때문이다. 과거제의 시험과목이 딱 정해지면 식자층은 거기서 한 걸음도 벗어날 수 없다. 조선시대 내내 사림들은 과거제의 폐단을 지적했지만 문과는 고사하고 사마시라도 붙으려면 과거 시험 공부를 안 하면 어쩔 건데? 젊.. 2024. 3. 5.
심곡서원과 친일파 한규복(韓圭復) 정암 조광조 선생을 모신 심곡서원(深谷書院)은 1985년, 1992년 두 차례 소장 전적을 도난당해서 남아 있는 자료가 많지 않다. 그렇지만 심곡서원 강당 안에는 송시열이 찬한 1673년 강당기(講堂記), 1730년 숙종대왕 어제(肅宗大王 御製), 도암 이재(李縡, 1680~1746)가 원장으로 취임하여 제정한 1747년 심곡서원 본원 학규(本院 學規) 등 심곡서원의 역사를 알 수 있는 편액들이 남아 있다. 이 가운데 1931년과 1933년 심곡서원 중건 당시를 기록한 중건 상량문 편액과 조광조 선생이 심었다고 전해지는 은행나무를 소재로 지은 한시 ‘행수가(杏樹歌)’ 편액이 남아 있는데, 찬자는 한규복(韓圭復, 1881~1967)이란 사람이다. 한규복은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친일반민족행위자 중 한 사람이다.. 2024. 3. 5.
문명의 구조 문명은 다양한 사회적 구조 위에서 피어난다. 한국과 일본-. 임란 이전 상황을 보면 이렇다. 한국: 목판인쇄물이 다량 나오며 과거제가 11세기 이후 계속된다. 한문의 이해와 그 배경 사상에 익숙한 사람들이 상당수 있다. 문제는 이런 식자층 외에는 문자 그대로 그 외에는 까막눈. 이번에는 일본: 목판인쇄물의 기원은 헤이안시대까지 올라가지만, 한국만큼 보편화하지는 못했다. 책은 대부분 필사본이다. 인쇄본은 중국이나 한국에서 인쇄된 것이 많다. 심지어는 칙찬서도 필사본이다. 무가정권 이후 한문에 대한 이해도가 높지 않다. 심지어는 스승을 자처하는 이들도 한문을 쭉쭉 읽어내려가는 이들이 드물다. 한문에 대한 이해가 있는 사람들은 공경 아니면 스님으로 숫자가 많지는 않다. 그런데... 15세기 조선의 기록을 보면.. 2024. 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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