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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언제나 천국을 꿈꾼 어느 가족 이야기 사람들은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옳게 보았다. 아버지는 난장이었다.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아버지를 보는 것 하나만 옳았다. 그 밖의 것들은 하나도 옳지 않았다. (...)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단 하루라도 천국을 생각해 보지 않은 날이 없다. 하루하루의 생활이 지겨웠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활은 전쟁과 같았다. 우리는 그 전쟁에서 날마다 지기만 했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모든 것을 잘 참았다. -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1978) 그들은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그대로 서서 우리의 식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 숭늉을 다 마시자 어머니가 밥상을 들었다. 내가 먼저 내려가 잠갔던 대문을 .. 2022. 12. 29.
어느 파독광부의 독백, 하필 내 팔이 되어 이리 고생하는고? 이 불쌍한 나의 두 팔아. 이 세상 많은 잘나고 부한 사람도 있는데 그런 사람들의 팔이 되지 못하고 왜 나의 팔이 되어가지고 이렇게 많은 고생을 하느냐고. 3년동안 기른 정신과 인내로 고국에 가서 살아간다면 못할 것이 없을 것이다. -1966.11.30. 파독광부 권이종 씨 일기 저런 걸음을 비료로 깔고서 오늘날 BTS가 있지 않겠는가? 식민지말 탄광 노무자가 된 선친이 자꾸만 어른한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쓴다. 2022. 12. 29.
500년 전 군관 나신걸이 아내한테 부친 편지 나신걸羅臣傑(1461~1524)은 조선초기 군관軍官이다. 그의 아내는 신창 맹씨新昌孟氏. 군인이어서인지, 그 자신 또한 한문보다는 한글이 익숙했는지, 혹은 그것을 받아볼 사람이 부인이었기에 아무래도 언문으로 편지를 썼으리라. 그가 부친 한글 편지 두 장이 2011년 대전시 유성구 금고동 신창맹씨 묘지 부인 무덤에서 발굴됐다. 편지는 그의 머리맡에서 여러 번 접힌 상태로 발견됐다. 머리 쪽에 둔 이유는 그만큼 더 소중한 껴묻거리라고 판단해서 무덤을 만든 사람들이 그리했을 것이다. 이 편지를 포함해 저고리, 바지 등 의복 28점까지 합쳐 총 41점 유물이 나왔다. 나신걸이 속한 이 문중, 조선시대에는 무관직武官職에서 이름을 떨쳤다. 편지를 쓸 때 나신걸은 함경도에서 하급 군관으로 근무 중이었다.요즘으로 치면.. 2022. 12. 29.
아래 포스팅 "발해의 특산품"을 보며 이미 알려진 사실이라 자세히 적지는 않겠다. 이 그림의 근거가 되는 부분은 《신당서》 발해전으로 원문은 다음과 같다. 그 나라가 귀중히 여기는 것은 太白山의 토끼·南海의 다시마·柵城의 된장[豉]·扶餘의 사슴·鄚頡의 돼지·率賓의 말·顯州의 베·沃州의 솜·龍州의 명주· 位城의 철·盧城의 벼·湄沱湖의 가자미이다. 과일로는 九都의 오얏과 樂游의 배가 있다. 이밖의 풍속은 高[句]麗나 契丹과 대개 같다. 俗所貴者, 曰太白山之菟, 南海之昆布, 柵城之豉, 扶餘之鹿, 鄚頡之豕, 率賓之馬, 顯州之布, 沃州之緜, 龍州之紬, 位城之鐵, 盧城之稻, 湄沱湖註 154之鯽. 果有九都之李, 樂游之梨校勘 043. 果有九都之李樂游之梨 滿洲源流考卷一九引本書同, 注云:「『九都』當是『丸都』,『樂游』當是『樂浪』之訛.」 餘俗與高麗·契丹略等. 여.. 2022. 12. 29.
새로 읽는 책: 《文明としての江戸システム》 금명간 새로 읽게될 책으로 《文明としての江戸システム 문명으로서의 에도 시스템》 日本の歴史19 (講談社学術文庫)이다. 물론 저자 혼자 읽는 것은 아니고, 일본문화 교수님들의 지도를 받아가며 읽는다. 저자는 鬼頭 宏. 에도시대의 사회가 어떻게 굴러갔는지를 설명해 놓은 책으로 필자의 전공 공부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기회가 되면 일독 후 소감을 나중에 써보겠다. 2022. 12. 28.
벼루 덕후 유득공이 채록한 명품 벼루 우리나라 벼루〔東硯〕 유득공柳得恭(1748~1807), 《고운당필기古芸堂筆記》 제3권 김도산金道山이라는 자는 홍주의 아전이다. 벼루 만드는 솜씨가 뛰어나 서울에 떠돌며 살 때 사대부들이 다투어 불러 갔으니, 평생 만든 벼루가 아마도 수천 개는 넘을 것이다. 나도 그에게 검은 벼루와 푸른 벼루 두 개를 만들게 하였다. 김도산이 벼루 만드는 석재를 품평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남포석藍浦石이 가장 유명하지만 너무 검고 어두운 것이 애석하고 화초 무늬도 그다지 뛰어나지 못합니다. 위원석渭原石은 그 청색은 흡주석歙州石 같고 자주색은 단계석端溪石 같아 상품에 속합니다. 허나 은은한 청색에 흰색을 띠고서 두드리면 맑은 소리가 나고 옥처럼 온윤하며 발묵이 잘 되는 종성鐘城의 치란석雉卵石만은 못합니다. 평창의 자석紫石과.. 2022.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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