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3446 거짓과 과장으로 얼룩진 광개토왕비 내가 이 얘기만 꺼내면 고구려 강성주의 신도들이 개떼처럼 들고 일어나거니와, 나는 매양 저런 공적비는 조심해야 하며 거짓과 과장과 축소로 점철됐으며 외려 훨씬 후대에 편집한 삼국사기가 정확할 수 있단 말을 여러 번 했다. 저 비문은 당장 추모에 의한 고구려 건국부터 거짓말을 일삼는다. 저 비문에 의하면 추모는 자발적으로 북부여를 떠나 남쪽으로 가서 고구려를 건국했다 한다. 하지만 이런 기술은 비문 자체에서 벌써 거짓임을 폭로하거니와 그의 남순 길에 부여 엄리대수라는 강에 이르렀을 적에 배도 없어 자라의 도움을 받아 겨우 강을 건너 위기를 벗어났다는 대목을 그 대표로 거론할 수 있다. 왜 그가 배도 없었는가? 도망쳤기 때문이다. 북부여 내부 권력투쟁에서 패한 추모는 목숨까지 위태로워진 순간 줄행랑을 쳤다... 2021. 1. 30. 《한경지략漢京識畧》, 유득공-유본예 부자의 연결고리 인연이란 게 묘해서 얼마전엔 유득공柳得恭(1748~1807) 《고운당필기古芸堂筆記》가 한국고전번역원에서 완역 출간되어 며칠만에 독파했거니와 그에서 군데군데 저 《한경지략漢京識畧》이 언급되어 가만 생각하니 저 역주본 역시 얼마 전에 도서출판 민속원에서 서울역사박물관 박현욱 부장 손을 거쳐 역주본이 출간되었으니 난중에 시간 날 적에 훑어 보리라 젖혀 두었던 것인데 기왕 이리된 거 내친 김에 이것도 보리라 해서 마침내 꺼내들고는 이리 뒹굴 저리 뒹굴하며 살폈으니 뭐 이런 지리지 보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겠는가? 앉은 자리에서 그냥 훑으면 한두 시간이면 족하다. 저에서 무슨 거창한 내용을 뽑고 싶거덜랑 그런 자리는 찾아서 살피면 될 일이다. 둘을 이어주는 고리는 저 《한경지략》 저자 유본예柳本藝(1777∼18.. 2021. 1. 30. 군대 가기 싫어 일본으로 밀항한 이맹희 이맹희..이병철 장남, 이건희 큰형. 1931년생 6.25 발발 때 스무살...징집대상 이를 피해 그는 일본으로 밀항했다고 자서전에서 썼다. 밀항의 역사..이것도 누군가는 정리해야 한다. 이 무렵에 대규모 밀항이 이뤄지게 되거니와 내가 아는 문화계 저명인사 중에도 제법 있다. *** 특히 경상도 지역 인사들이 대규모로 밀항을 감행한다. 그 이유 중에 가장 큰 것이 군대였다. 화가 이우환이 대표적이다. 그 역시 징집을 피해 서울대에 다니다가 도망쳤다. 자서전을 이런 식으로 읽으면 그 자체 그 시대의 박물관임을 엿볼 수 있다. 경상도 지역 인사들이 많은 이유는 뭐니뭐니 해도 일본과의 지리적 인접성이었다. 밀항을 위해서는 교통로가 필연적으로 전제되어야 하는데 이 교통로는 제국주의 식민지가 가져다 준 축복이었다.. 2021. 1. 30. 새해 첫날 멕시코 수풀 파다가 건진 500년전 여인석상 수박 심으려던 멕시코 농부가 발견한 500년전 여인 조각상 송고시간2021-01-30 02:25 고미혜 기자 k-odyssey.com/news/newsview.php?ncode=1065573231297292 수박 심으려던 멕시코 농부가 발견한 500년전 여인 조각상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멕시코 동부 베라크루스주의 농부 세사르 카브레라(52)는 수박을 심으려고 밭을 갈다 이상한 석회석 덩어리가 삐쭉 나와있는 것을 발견했다. 올해 1월 1일 k-odyssey.com 하긴 이런 일이 국내에서도 아주 없지는 않다. 태안 앞바다에서 주꾸미잡이하다가 고려시대 침몰선박 발견한 일도 있으니깐 말이다. 멕시코에서는 수박 심던 농부가 500년전 돌로 만든 여인상 하나라를 찾아 대박을 쳤다는데, 이쪽도 .. 2021. 1. 30. 한국근현대 100년을 농축한 정주영 회고록 재벌회장이나 기업 창업주 회고록은 실상 요란한 선전과는 달리 빈깡통 소리만 요란한 수레에 지나지 않는 일이 많아 얻을 게 없다. 공허한 말이 너무 많고 후세를 계도하려는 선전성이 너무 강한 까닭이다. 이병철 회고록이 그랬고 김우중 회고록은 빈강정이었다. 이 정주영 회고록 《이 땅에 태어나서》 또한 그런 부류가 아닐까 해서 아무리 2천원밖에 하지 않는 창업주 이야기라 괜히 미어터지는 서재만 더 복댁이게 하지는 않나 해서 주저한 것도 사실이다. 이런 회고록은 워낙에나 기업에서 많이 찍어 홍보용으로 돌리는 까닭에 같은 책이 여러 종 헌책방을 차지하는 일이 많거니와 이 회고록도 살피니 판을 거듭해서 난중엔 하드카바까지 있었지만 개중 가장 오랜 판본을 찾았으니 이것이다. 틀림없이 대필작가를 썼는데 기초자료는 아마.. 2021. 1. 30. 아들 많이 낳으려 이름까지 바꿨다는 조선 정조 송고시간 2010-10-04 06:05 "정조, 아들 많이 낳으려 이름 바꿨다" 안대회 교수 "후손 많은 사람 이름 낚아채 '이산→이성'"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세종과 더불어 조선왕조를 대표하는 성군聖君으로 꼽히는 정조正祖(재위 1776~1800)가 후손, 특히 아들을 많이 두고자 본래 성명인 '이산李祘'의 발음을 '이성'으로 바꿨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한국한문학 전공인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는 정조의 이름은 원래 '이산'으로 읽었지만 1796년 8월 11일 규장전운奎章全韻이라는 한자의 소리 사전 발간을 계기로 외자 이름인 '祘'의 발음을 '성'으로 바꿨으며 정조 사후에도 이 글자는 '셩(성)'으로 읽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4일 밝혔다. 안 교수는 우선 규장전운과 같은 기록을 근거로 정조의 본.. 2021. 1. 30. 이전 1 ··· 2650 2651 2652 2653 2654 2655 2656 ··· 3908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