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3532 21세기 한국사는 엄격한 메타인지를 기반으로 해야 20세기 한국사는 한마디로 우리는 못난놈이 아니다에 올인한 역사라고 할 수 있다. 20세기 초반 나라가 식민지가 되면서 수천년 역사도 덩달아 별볼일 없는 것이라는 주장이 판을 치니여기에 맞서 역사를 해석하려 한 것설사 실증사학적 측면에서 약간 부족함이 있더라도 그 시대에 이러한 사학의 가치는 인정할 수 밖에 없겠다. 그런데-. 21세기는 이럴 필요가 더 이상 없다. 한국인들이 못난 놈들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전 세계에 이미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21세기 한국사는 20세기 한국사와는 달라야 하고 엄격한 메타인지를 기반으로 쓰여야 한다. 민족주의 깃발만 꽂으면 다 용서되거나 어거지 우리 역사 문화 자랑은 20세기 과거에 묻어두고 냉철한 자기자신에 대한 메타인지를 21세기 한국사의 기초로 삼아야 하.. 2025. 2. 6. 대월사기전서大越史記全書, 내셔널리즘으로 점철한 베트남 통사 대월사기전서大越史記全書라는 책이 있다. 베트남의 삼국사기라고 할 수 있다. 삼국사기는 삼국시대 단대사인데 반해대월사기전서는 편찬되던 시기까지의 베트남의 역사가 모두 편년체로 들어 있다. 동국통감에 더 비슷하다고나 할까. 한국에는 아직 필자가 알기로 번역되지 않았다. 순한문체로 인터넷에는 전문이 많이 돌아다닌다. 구해서 읽어볼 수 있는데 한문 자체가 많이 어렵지는 않다. 뜻을 파악하는 데는 큰 어려움은 없다. 대월사기전서를 보면, 한국의 전통 역사학 사서들의 엄중함 객관성 냉정함이 참 많이 드러난다. 월남전은 대월사기전서를 보면 이미 이 책이 집필되어 있을 때 예고되어 있었다는 생각을 한다. 20세기 월남전 때 월맹군 격문으로 써도 될 정도로 민족주의에 충만한 책이란 뜻이다. 반면 우리 사서에 이런 민족주.. 2025. 2. 6. 치사량 국뽕을 넣은 한국사의 기원 우리나라 역사가 원래 이렇게 국뽕을 치사량으로 넣어 놓은 역사였냐. 고려시대나 조선시대 사서를 보면 알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이 한국사의 치사량 국뽕의 기원은 정확히 말하자면 식민지시대, 일본의 황국사관의 영향을 받은 일본사이며이것이 해방이후 한국사에 그대로 투영되어 국뽕 한국사를 낳았다. 이 국뽕 한국사는 일본의 식민사관을 비판하고 황국사관을 비판하지만 정작 자신이 그 황국사관의 쌍생아라는 사실은 별로 자각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이 국뽕한국사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가 하면우리나라는 좌파 우파 할 것 없이 어느 쪽 사관도 모두 국뽕부터 깔고 시작한다. 한국사는 식민사관 청산도 청산이지만, 그 안에 가지고 있으면서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는 자기안의 황국사관 국뽕부터 청산해야 옳다. 이 황국사관 국뽕이 .. 2025. 2. 6. 탐조에 미친 어느 날 같은 참새라도 서울 참새랑 김천 참새는 달라서울 것들은 오동통하니 하도 잘 쳐먹고 받아먹는 습속이 들어 도망도 가지 않지만김천참새는 우간다 난민 같고 걸핏하면 도망간다.서울참새는 궁디가 실룩실룩 이쁘다. 난 그래서 서울참새 궁디 찍기를 좋아한다.이놈들이 남영동 사저 전봇대에 일정한 시간에 전깃줄에 앉아 무료급식 나오길 기다린다.전봇대 아래서 위를 꼬나보며 참새 궁디 몰카 촬영을 하는데 참새똥이 내 대가리로 떨어졌다.마눌님한테 자초지종 블라블라했더니 이러신다.암데나 똥싸는 건 당신이나 참새나 비슷하군.(2022년 2월 6일) *** 불과 3년 전, 그때 나는 저짝 회사 한류기획단장인지 K컬처기획단장인지 뭔지 암튼 그런 단장질 놀이 중이었으니세계를 향해 발신할 K컬처 상품 중 하나로 왜 느닷없이 저 새bir.. 2025. 2. 6. 눈발 흩날린 어느 겨울날 아산 공세리성당 2022년 2월 5일 촬영이라 내장한 아산 공세리 성당 한 컷이다. 보니 눈발이 흩날린 날이다. 저곳이야 하도 이름이 난 곳이라, 이러저라한 장면을 포착한 사진이 무수하게 쏟아지나 내가 참 맘에 드는 한 컷이다. 차갑지만 아늑한 그 무엇이 있지 않은가해서다. 요새 과거팔이 중이라, 명멸한 그 한 순간을 소환한다. 나도 언젠가는 한 줌 흙으로 사라지고, 또 그 한 줌조차 내 흔적이라는 기억조차 사라질 날이 있지 않겠는가?부처님도 불법이 언젠가는 멸하는 날이 올 것이라 했는데 하물며 나같은 범부凡夫임에랴? 2025. 2. 6. 석물공장 주인 해강 김규진 1910년대의 어느 날, 고금서화관이란 화랑 겸 표구사를 운영하던 서화가 해강海岡 김규진金圭鎭(1868-1933)의 머릿속에 아이디어 하나가 떠오른다. "옳거니! 지금 세태가 너나할것 없이 양반양반 하니, 조상 무덤 석물도 번듯하게 만들어야 진짜 양반이요 효자 아니겠나?" 이에 그는 무덤에 세울 석물을 만들어주겠다고 에 광고도 넣었는데, 싸게 파는 건 기본이요 아예 자기가 직접 비문 글씨를 써주겠다고까지 했다. 요즘도 더러 도롯가에 보이곤 하는 석물공장의 원조격인 셈인데, 과연 해강 선생은 이 "조선 초유의 신사업"으로 돈 좀 만지셨을까. ***editor's note ***혜강으로서는 이른바 핫 아이템이라 해서 신사업으로 달라든 모양이다.한데 진출 분야가 장송업이었다.보람상조 선하先河였다. 2025. 2. 6. 이전 1 ··· 872 873 874 875 876 877 878 ··· 3922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