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ESSAYS & MISCELLANIES2540 주52시간은 바꿀 수 없는 정언명령이다 이 때문에 언론사 역시 난리다. 300인 이상을 고용한 사업장은 이 규정 7월1일자로 강제로 준수해야 하며(300인 이하 사업장은 내가 알기로 2020년까지 시행이 연기되는 것으로 안다) 이를 어기면 형사처벌한다. 우리 공장 차원에서도 골머리를 앓지만, 그 공장 문화부에서도 이에 대처해야 한다. 문화부는 상대적으로 다른 부서에 견주어 나은 사정이라 하지만 이도 실상과는 달라, 특히 공연 쪽은 쓰리디라, 툭하면 마치는 시간이 자정이다. 이에 나는 문화부장으로 오자마자 밤 열시 이후까지 일하면 담날 오전은 자동 오프다고 선언했으며, 연차휴가는 법이 허용한 범위에서 니들 맘대로 쓰라 했다. 나부터 연차 다 쓰겠다고 호언장담했다. 20일치 휴가를 한꺼번에 간대도 나는 결코 막을 생각 없다 했다. 부원 휴가 결재.. 2023. 5. 15. 나는 돈을 숭배하나 돈은.. 내 꿈은 지폐로 장판지 깔고 벽지 발라보는 일이다. 침대 속에도 채우고 베개 호총도 지폐로 채워보고 싶다. 내가 돈을 이리 숭배하는데 돈은 날 신도로 안 받아들이네? 떠거럴 (2014, 5. 13) 문제는 저거 아니겠는가? 돈을 향해 불구덩이 향해 불나방처럼 돌진하나 돈이 나를 간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처참할 뿐이다. 돈이 다냐?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어느 누구도 돈의 위력을 가진 쪽에서 경험하지 못했다는 역설이 있다. 돈은 가져 봐야 위력을 안다. 이런 말 하는 나 역시 위력이라 할 만한 돈을 휘둘러 본 적이 없어 뭐라 단안은 못하겠다. 2023. 5. 13. 고고학과 언론, 특히 곡해하며 소비하는 엠바고에 대하여 뭐 제목이라 해서 거창하게 보이겠지만 이 얘기만은 반드시 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이 관계 잘 아다시피 복잡미묘하다. 나 개인으로 말하자면, 이때문에 인간관계까지 틀어진 일 여러 건이며, 개중 어떤 것은 현재진행형이다. 이에서 고고학 관련 업무 중에서도 발굴건만 국한해서 얘기하고자 한다. 첫째, 문화재청이건 사업자건, 혹은 발굴조사단이건 기본적으로 비밀은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 속성에 따라 그 발굴소식을 감추거나, 발표를 미뤄야 하는 경우가 있다는 거 잘 알지만, 그 소식 아무리 덮어봐야 눈가리고 아옹이다. 내가 모르는 발굴소식 없다. 감추려 하지 마라. 이 정보 캐내는 방식 간단하다. 적을 치는 것이다. 그 발굴과 전연 무관계한 사람 혹은 기관을 들이치거나, 혹은 그 기관 혹은 그 기관 종사자랑 사이.. 2023. 5. 12. 대통령실 이전과 청와대 개방에 즈음한 예언, 1년이 지나서 보면? 대통령집무실 이전과 청와대 개방 이를 둘러싼 적지 않은 논란이 있었다. 반대론....이 반대론이 두려워한 것은 환호와 갈채였다. 왜? 내가 반대하는 놈은 환호와 갈채를 받아서는 아니되므로.... 이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국정을 망칠까바가 아니었다. 혹시 잘한다는 소리 들을까봐서다. 청와대 개방한다 해서 그리되겠는가? 청와대 개방과 국정은 별개다. (2022. 5. 10) 2023. 5. 10. 진흥왕이 순수비 세운 데가 하필 비봉인지를 제대로 물어야 한다 저 의문을 더는 미룰 수도 없고 더는 미뤄서도 안 된다. 의문이 없는 데서 무슨 창안創案이 나오겠는가? 사방을 조망하기 좋아서? 그에선 이론이 있을 수가 없다. 문제는 저런 데가 많을 텐데 하필 저 지점인가다. 이번 신영동 고려시대 건물터 너머 저 현대식 건물들 뒤쪽으로 북한산 자락이 펼쳐진다. 형제봉을 기점으로 비봉 승가사로 어어지는 산록이다. 지금은 건물들에 가려 잘 보이지 아니하나 이곳이 바로 정통으로 비봉이 조망하는 구기동 세검정 골짜기다. 왜 저 지점에 순수비를 세웠는가? 저 비봉에서 당시 한강 하류 유역을 다스리던 광역행정구역 치소治所가 있던 지점이기 때문이다. 당시 이 치소에서는 저 비봉 순수비가 보였다. 치소도 보이지 않는 데다가 저런 중요한 기념비를 세웠겠는가? 간단하다. 이번에 고려시대.. 2023. 5. 10. 신라계 양식을 계승한 고려 삼층석탑三層石塔? 이 석탑은 상, 하층 이중 기단 위에 3개 탑신석塔身石과 3개 옥개석玉蓋石으로 구성된다. 각 층 옥개석에는 야트막한 받침이 표현되어 있고 상륜부相輪部는 간략한 보주寶珠 형태로 마감되었다. 전체 모습에서 신라계 석탑 양식을 계승한 고려시대 석탑 수법을 찾아 볼 수 있다. 부여 전통문화대학 교정에 선 이 석탑을 저리 설명하거니와 비단 저 탑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고려시대 탑파에는 관성으로 신라석탑을 계승한 고려 석탑 운운하는 대목이 보인다. 미안하나 저 말 하나마나요 그래서 췌언贅言에 지나지 않는다. 고려가 신라를 계승했지 350년 전에 고구려 백제를 계승했겠는가? 고려가 고구려 후예를 표방했지만 그건 반란을 획책한 땅이 옛 고구려 영역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지 그 직접 자양분은 신라일진댄 그들이 무슨 용가리.. 2023. 5. 9. 이전 1 ··· 180 181 182 183 184 185 186 ··· 424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