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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2629

문화재와 국가주의 망령 - 석굴암과 무령왕릉의 경우 문화재와 국가주의 망령 - 석굴암과 무령왕릉의 경우 *** 이 글은 사단법인 한국박물관협회가 발간하는 소식지인 《박물관소식》 2002 3․4호에 ‘특별기고’ 형태로 투고한 글 전문이다. 석굴암을 감도는 유령이 있다. 국가주의와 국민주의가 응결된 국민국가주의라는 망령이 그것이다. 한국인은 석굴암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감한다. 하루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TV는 장중한 애국가를 들려주며 그 배경으로 석굴암을 빼놓지 않고 있는 것이다. 석굴암이 훌륭한 문화유산의 하나임을 의심하는 이는 없다.다만 여기서 이런 의문을 품어봐야 한다. 석굴암을 ‘반만년유구한 한민족의 가장 위대한 문화유산’으로 만든 주인공은 과연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그렇게 했는지를 이제는 되짚어보아야 한다. 이러한 반추 과정이 왜 필요.. 2018. 2. 12.
해외문화재, 그 참을 수 없는 약탈의 신화 대책없다. 해외로 나간 우리 문화재라 해서 그것이 약탈이란 방식으로 나간 경우는 매우 드물고 실상은 합법적인 통로를 통해 반출된 것이 대부분이라 해도 도통 믿으려 하지 않는다. 더구나 약탈당한 것으로 의심을 산다 해서 그것이 곧장 약탈로 치환되어 인식되곤 한다. 그렇지 않단 말 수십 번 수백 번 골백 번 해도 말귀가 도통 통하지 않는다. 서산 부석사 보살상만 해도 헛소리가 난무한다. 약탈? 약탈 의심? 그건 우리의 욕망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이 실제 약탈당했다 해도 그 사실이 증명되지 않으면 말짱도루묵이다. 조선시대엔 대마도가 조선의 對일본 무역중개기지다. 두 나라 사이에는 국가 혹은 민간차원에서 수많은 물자가 오갔다. 요즘은 문화재라는 가치가 투여된 물품이 이 방식으로 교류됐다. 조선초기 일본이 매양 .. 2018. 2. 12.
앙코르 유적과 경주 앙코르 유적이 있는 캄보디아 시엠립에 들어오는 국적기가 하루 물경 15대. 한창 여행 성수기에 이곳으로 쏟아져들어오는 한국 관광객 하루 2천명. 묻는다. 서울발 경주행 케이티엑스 하루 몇 대나 설까? 앙코르 유적군이 있는 시엠립 문화재 정책을 총괄하는 압사라청. 오늘 확인 결과 전담 직원 3천251명. 이곳 소속 고고학도 116명. 기념물과 소속 고고학도가 35명이란다. (2014년 2월 11일, 씨엠립 방문 당시 페이스북 포스팅이다) 2018. 2. 11.
알록달록과 백자 막 개막한 국립중앙박물관 체코 보헤미안 유리전 출품작을 보면 주류가 16세기 이래 현대에 이르는 유리공예품이다. 한데 그 색감을 보면 알록달록 화톳장 보는 기분이라 갖은 교태 부리는 평양기생 같기만 하다.동시대 한반도 사정을 보면 이런 알록달록 요소는 극히 일부 계층에 국한한다. 더구나 장장 반세기를 군림한 영조는 이 알록달록을 사치와 등치하고 그것을 억제했다. 백자가 지금은 칭송받는지 모르나 실은 돈이 적게 든다. 이 알록달록 문화라 하면 불교를 빼놓을 수 없다. 장엄莊嚴이라 해서 불교는 화려찬란 삐까번쩍을 트레이드 마크로 삼는다. 하지만 불교는 조선 중기를 넘기면서 종래의 주도적인 지위를 내려놓고 산중으로 밀려난다.알록달록은 그 시대 경제와 밀접하다. 그것은 필연으로 여타 산업의 비약적인 증대를 이루.. 2018. 2. 11.
detour & meander 아마 고교 지리학 시간이었다고 기억한다. 편평한 모래사장에 물을 대면 물은 직선으로 뻗어 물길을 내지 않는다. 어찌된 셈인지 구불구불하게만 흘러간다. piciture from https://geographyiseasy.files.wordpress.com/2013/11/meanders-2.png 이런 곡류하는 행위를 meander라 하며 그렇게 형성된 하천을 곡류천 meandering stream이라 한다. 인생살이도 이와 비슷해 직선으로만 달리면 얼마나 무미건조하겠는가? 그래서 하늘은 우리에게 우회detour를 만들어주었는지 모르겠다. 한데 돌아보면 직선 거리를 달리지 못한 과거를 한탄하기 마련이다. 이를 종교에서는 시련 ordeal or hardship이라 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비극은 언제나 de.. 2018. 2. 11.
우연과 필연, 역사의 분식 내가 기억에만 의지해서 그 정확한 맥락을 옮겼는지는 자신이 없다. 단재 신채호가 우리 앞에 주어진 史라는 것이 얼마나 뜬금없음을 말해주는 일화 중 하나로 든 어떤 역사학도 이야기가 있다. 그에 의하면 이 역사학도가 간밤에 옆집 부부가 싸움하는 소리를 다 듣게 되었다. 다음날 동네에 이 싸움을 둘러싸고 소문이 돌았다. 한데 자기가 간밤에 들은 부부 싸움 내용과 그 소문은 진상이 너무나 달랐다. 이를 보고 그 역사학도는 자기가 쓰던 역사책을 불질러 버렸다. 내가 쓰는 역사라는 게 어쩌면 저 부부 싸움과 같을지 몰랐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가 단재 시대엔 유행이었던 듯하다. 같은 충청도 출신으로, 단재와는 절친이었던 벽초 홍명희 어떤 글에서도 저 이야기를 내가 본 적이 있으니 말이다. 2009년 2월로 기억한다.. 2018.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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