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분류 전체보기19402 추억의 향, 아카시아 누구에게나 특별한 추억이 있는 향이 있을 것이다. 그 향은 실오라기 처럼 아주 가늘지만, 가는 향줄기 하나로 가끔은 순식간에 그 때 그 공간으로 나를 데려가 준다. 나에게도 추억을 소환하는(?) 그런 향이 있다. 바로 아카시아꽃의 향이다. 초등학교때 나는 순순히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학교 운동장에서 더운 해가 질 때까지 놀고도 집에 가는 길이면 늘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아카시아 꽃이 필 때 즘이면 꼭 학교 앞에 있는 언덕에 올랐는데, 신나게 언덕바지에 오르면 온통 새하얀 아카시아 꽃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시원한 저녁 바람에 아카시아꽃 향기가 우리를 감싸 안았고, 꽃송이들이 축 늘어져 있는게 금방이라도 꿀이 뚝뚝 떨어질 것 같았다. 손에 닿는 한송이 툭 꺾어 꽃 뒤꼭지를 따고 쪽쪽 빨면 향긋하고 .. 2021. 5. 10. 7㎝x7㎝ 곰대가리 소묘가 다빈치 작품이라 해서 100억? 다빈치의 '곰의 머리' 경매에…낙찰가 최고 187억 전망 이광빈 / 기사승인 : 2021-05-09 07:32:24 런던 크리스티서 7월 경매…은첨필화 다빈치의 ′곰의 머리′ 경매에…낙찰가 최고 187억 전망 (서울=연합뉴스) 이광빈 기자 =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거장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의 작품 ′곰의 머리′(Head of a Bear)가 경매를 통해 최고 1천200만 파운드(187억원)에 낙찰될 것이라는 전 k-odyssey.com 나참 같잖아서...다 빈치가 긁적거렸다 해서 코딱지만한 저 크기 소묘가 100억원을 호가할 것으로 본단다. 이 그림을 우리 공장 기사는 아래와 같이 논급한다. 가로 7㎝, 세로 7㎝ 크기의 '곰의 머리'는 연분홍색 베이지색 종이에 그려진 은첨필(silv.. 2021. 5. 9. 하이애나가 사냥한 네안데르탈인? youtu.be/qtqYW5RylZs 로마 남동쪽 약 90㎞ 지점 과타리 동굴이라는 데서 이태리 고고학도들이 네안데르탈인 8명에 해당하는 유해 흔적으로 발굴했다는 것인데, 이를 둘러싼 보도에 이상한 점이 있으니 이를 전하는 여타 대부분의 언론이 이번 발굴성과와 그에 따른 의미 부여를 비교적 팩트 위주로 전달하고자 했지만 유독 BBC만큼은 아래와 같은 제목 아래 Neanderthal remains unearthed in Italian cave Archaeologists in Italy have discovered the remains of nine Neanderthals who may have been hunted by hyenas, in a prehistoric cave south-east of Rome.. 2021. 5. 9. 이상과 현실의 괴리, 창덕궁이 '자연과의 조화'라는 개소리에 대하여 창덕궁을 선전하는 문구 중에 빠지지 않는 것이 자연과의 조화다. 이 논리는 유네스코까지 들이밀어 그것이 세계유산에까지 등재되는 큰 발판이 되었다. 예서 자연은 노자의 그것보다 양놈들의 nature에 가깝다고 나는 본다. 그 영문 등재신청서와 그 영문 등재목록을 자세히 살핀 것은 아니로대 틀림없이 그리 되어 있을 것으로 본다. 한데 예서 주의할 것은 자연과의 조화 실체가 무엇이냐는 거다. 이는 말할 것도 없이 궁 전체와 그것을 구성하는 개별 건축물들의 레이아웃 혹은 디자인이다. 그것이 다르다는 것이다. 이에서 무엇과 다른가 하는 고민을 유발한다. 첫째 동시대 혹은 같은 한반도 문화권에서 여타 궁과 다르다는 뜻이니 예컨대 조선왕조 법궁인 경복궁과 다르다고 한다. 둘째, 같은 동아시아 문화권 궁과도 다르다고 .. 2021. 5. 9. 천생 오태사[天生五太史] 극옹(屐翁) 이만수(李晩秀, 1752-1820), 풍고 김조순, 죽석(竹石) 서영보(徐榮輔, 1759-1816), 사영(思潁) 남공철(南公轍, 1760-1840), 두실(斗室) 심상규(沈象奎, 1766-1838)는 ‘하늘이 낸 다섯 태사[天生五太史]’라 불렸다. 정조가 후원하여 육성했고 순조·헌종 연간에 정치와 사단(詞壇)을 주도했다. 2021. 5. 8. 산성이 무에 소용인가? 북한산서 소환한 임경업과 윤선도 조선후기에 접어들면서 산성 무용론이 봇물터지듯 한다. 산성을 놔두고 적들이 횡하니 지나치기 일쑤였으니 말이다. 백마산성 임경업이 그 결정적 단초였다. 호언장담.. 하지만 철기군은 잘 있으레이 한마디 남기곤 한양으로 휑하니 날았다. 멍 때린 임경업이 할 일은 암것도 없었다. 산성이 효용성을 지닐 때는 첫째, 적이 쌈을 걸어와야 하고 둘째 걸어오지 않고 지나 쳐도 산성에서 기어나와 끊임없이 적 배후를 교란할 때다. 하지만 조선군은 산성에만 기어박혀 암짓도 하지 않았다. 산성이 효용성을 지닌 유일한 곳이 고갯길. 이곳은 적들 역시 지나치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다. 산성 무용론엔 정치투쟁도 점철한다. 윤선도는 대표적 산성 무용론자였다. 산성이 완전 폐기되기는 조선말 대한제국이었다. 실제 페기된 것이며 아무짝에도.. 2021. 5. 8. 이전 1 ··· 1882 1883 1884 1885 1886 1887 1888 ··· 3234 다음 반응형